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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핑’의 시대, 삶의 질 ‘수직 상승템’의 유혹
숏폼 콘텐츠에서 추천한 아이템을 쇼핑하는 ‘숏(폼)+(쇼)핑’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사람들이 사용하기도 전에 업계에서 먼저 ‘트렌드 키워드’라 주장하는 말들이 있는데 ‘숏핑’도 그렇다. ‘숏핑’은 아직 아무도 사용하지 않지만, 이 개념의 흥행은 납득이 간다. ‘쿠팡 청소템 5’ ‘다이소 꿀템 7’이라는 썸네일의 숏폼에 영향받아 장바구니를 채우고, 영상을 캡처하며 꼭 사리라 다짐한 경험이 많다. 숏폼이 쇼핑을 위한 매체가 되자 썸네일에서 존재감을 발휘하는 관종력 충만한 단어들이 인기다. 언어에도 ‘관종력’이 있다면, ‘필수템’처럼 ‘템’으로 끝나는 이들은 평균 이상의 관종력으로 쇼핑을 부추긴다.아이템의 ‘템’을 활용한 ‘○○템’은 다양한 방식으로 조립되지만 크게 두 계의 파로 나뉘어 발전해왔다. 첫 번째 계보는 신뢰 호소용으로 ‘국민템’ ‘찐템’ ‘필수템’처럼 ‘템’의 필요성을 설득한다. 두 번째는 상황 해결용으로 ‘육아템’ ‘꾸안꾸템’ ‘러닝템’처럼 특정 상황에 도... -
행복해지는 ‘이때 이곳 이것’, 고유명사로 지정해!
행복해지는 법 하나를 알고 있다. 세상에 뭘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내가 유일하게 이 방법만큼은 자신 있게 안다고 말할 수 있다. 감히, 이 혼돈과 불안의 시대에 ‘행복해지는 법’을 안다고 적으니 일단 나 자신을 검열해보게 된다. 내가 진짜 행복해지는 법을 알고 있나? 다시 생각해도 역시 안다. 행복해지는 법은 바로 이거다. 고유명사를 외우는 것. 내 인생에서 행복이라 말할 수 있는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다양한 고유명사를 기쁘게 흡수하거나, 단 하나의 고유명사를 내 마음에 심고 그를 틔우고 키우기 위해 정성과 심혈을 기울이던 때다. 이건 너무나 확실한 방법이다.한 사람이 가장 많은 고유명사를 알고 있는 분야는 그가 가장 많이 사랑하는 영역이다.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그냥 ‘들꽃’이 없다. 각기 다른 모양과 색을 지닌 식물 저마다의 이름이 있기 때문이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책 편집자의 이름을 기억하고, 좋아하는 외국 작가의 번역가 이름을 외운다. 이... -
#오운완…매일 성실하게 ‘완료’하며 살고 있구나
‘인증’은 우리가 세계와 관계를 맺는 새로운 방식이다. 디지털상에서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한 각종 인증서와 절차를 생각해보자. ‘공인 인증서가 없는 한국인처럼 슬퍼하고 있었다’라는 밈처럼 인증은 이 세계에 우리를 입증하는 수단이다. ‘인증 사진’은 우리가 스스로를 그리는 방식이다. 창작 권한이 내게 있기에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지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사진 기술의 발전으로 현실의 정확한 묘사보다 일시적 순간의 인상을 포착하는 인상주의가 유행하는 것처럼, 인증 사진의 맥락은 그 시대의 사회상과 시대적 감수성의 반영이다.미술사에 ‘사진 기술의 발명’이라는 사건이 있다면, 인증 사진엔 ‘코로나19’라는 사건이 있다. 소셜미디어의 발명 이후 ‘인증 사진’은 ‘허세’와 ‘나르시시즘’이라는 오해와 함께였지만, 코로나19를 맞아 비로소 인증 사진은 새로운 코드를 얻었다. ‘성실함’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외... -
이성과 본능의 절묘한 화해…‘저당 마라 소스’의 비밀
“나 요즘 그거 먹고 살 빠졌잖아.” 귀를 쫑긋하게 하는 친구의 발언에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오트밀에 우유, 과일, 견과류를 넣고 냉장고에서 숙성시킨 후 먹으니 살이 빠졌다는 그의 간증에 이끌려 레시피를 몇개 찾아보니 카카오 가루를 넣으면 더 달콤하게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카카오를 먹고도 살이 빠질 수 있다고? 신이 나서 오트밀과 카카오를 주문하고 인증 사진을 친구에게 보내니 답이 바로 날아온다. “야! 카카오도 저당으로 사야 돼!” 저당 카카오라니. 그렇다. 지금은 분명 ‘저당’이 대세인 시대다.식품 앞에 ‘제로’와 ‘저당’이라는 키워드가 붙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 것처럼 뺄셈의 언어가 식품계를 장악 중이다. 혈당과 식습관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높아지면서 마트 양념 코너 주요 진열대에 놓인 제품들은 대부분 ‘저당’ ‘제로’ ‘프리’라는 키워드와 함께다. ‘양념’의 역할은 ‘입맛’을 돋우는 것. 그 엄청난 임무를 당도, 설탕도, 나트륨도 없이 해내겠다는 ... -
진지한 대화의 시작 ‘그르륵갉’
계절은 빛으로 물든다. 연둣빛 봄, 주황빛 가을, 하얀빛 겨울. 그러나 여름만큼은 시각적 자극보다 청각적 자극이 더 선명하다. 높은 습도가 소리에 울림을 만들고 여름의 소리들은 그 울림을 타고 마음까지 울렁이게 한다. 쩌렁쩌렁 매미 소리, 장맛비가 창문과 바닥을 때리는 소리, 여름 바람이 나뭇잎을 쓰다듬는 소리, 파도 소리와 모래 밟는 소리… 그리고 카페도 술집도 모두 닫은 늦은 밤, 편의점 의자에 앉아 맥주 캔을 따고, 플라스틱 의자를 ‘그르륵갉’ 끌면서 시작되는 나지막한 목소리.‘그르륵갉’은 편의점 앞 테이블에서 진지한 대화를 위해 상대방 쪽으로 의자를 조금 더 끌어당길 때 나는 소리로 ‘편의점 의자’이자 ‘진지한 대화’를 뜻한다. 앉기만 하면 나도 모르게 고민과 비밀을 털어놓게 된다는 ‘진실의 의자’로 불리던 편의점 의자가 ‘그르륵갉’이란 예명과 함께 ‘대화’라는 새로운 차원으로 의미를 확장했다. “우리 ‘그르륵갉’ 할까?”는 “우리 진지한 대화 할까?”를 뜻한다... -
AI가 대체 못할 영향력의 이름, ‘앰배서더’
챗GPT 출시 이후 엔비디아는 최단기간 시총 1위를 달성한 기업이 되었다. 시총 증가 속도보다 빠르게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일을 대신해가는 바람에 ‘AI가 대체할 직업’도 계속 업데이트 중인데 최근 ‘광고 모델’이 그 목록에 등장했다. 궁금해졌다. 광고 모델에 이어 ‘브랜드 앰배서더’ 역시 AI에 대체될 수 있을까?럭셔리 브랜드의 패션쇼가 열리는 패션위크는 화려하고 환상적인 이미지로 가득하다. 요즘은 패션쇼 컬렉션보다 쇼에 초대받은 브랜드 ‘앰배서더’들의 모습이 더 화제다. 그들은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값비싼 장신구를 두르고 완벽하게 재단된 미소와 포즈를 보이며 패션쇼장으로 향한다. K콘텐츠의 부상으로 한국 연예인, 특히 아이돌이 명품 브랜드 앰배서더가 된 덕분에 ‘글로벌 패션위크’에 대한 관심이 한국에서도 뜨겁다.‘앰배서더’는 직책의 언어고, 직책의 언어는 인물에게 임무를 부여한다. 그 역할은 분명 ‘광고 모델’과 다르다. 앰배서더는 브랜드 메시지와 이미지... -
맛깔나는 ‘맛’의 언어
영어에는 have(가지다)를 활용한 관용어가 많고, 한국어에는 ‘먹다’를 활용한 관용어가 많다. 한국어는 많은 걸 ‘먹음’으로써 해결한다. 나이도, 마음도, 수익도 먹는다. 물론 욕, 겁, 골탕도 먹는다. ‘가져야만’ 하는 서구식 사고와, 갖는 것으로는 모자라 직접 입으로 넣어 삼켜 소화까지 시켜야 후련한 한국식 정서를 비교해보면 두 문화권의 사고방식 차이가 더 선명해진다. 요즘은 어떤 분야를 ‘깊이 있게’ 보지 않고 겉핥기로 보는 행위를 ‘찍먹’이라 표현한다. 탕수육을 소스에 찍어 먹느냐 부어 먹느냐로 논란이 된 ‘찍먹’이 행위의 진지성을 논하는 언어로 사용되고 있다.옥스퍼드 영어사전에까지 등록된 새로운 콘텐츠 장르인 먹방(mukbang)을 만들어낸 국가로서, 세상을 맛으로 표현하는 데 익숙한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영역에서 ‘맛’의 언어를 활용한다. ‘맛’은 가장 원시적이면서도 가장 동시대적 감각이다. 그 어느 때보다 ‘감각’과 ‘주관’이 중요해진 지금, 입과 혀로 ... -
‘최선의 나’를 찾는 일…내 마음의 ‘퍼스널 컬러’
최선이 아닌 것을 선택할 용기가 있을까? 요즘은 모두가 나에게 ‘최선’을 권하려 최선을 다한다. 알고리즘은 말한다. ‘너에게 딱 맞는 콘텐츠야.’ 이커머스는 확언한다. ‘너에게 최저가를 보장할게.’ 내비게이션 앱은 묻는다. ‘최적 경로를 선택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색조 화장 코너에 큼직하게 쓰여 있다. ‘네 피부톤에 착 붙는 컬러를 선택해.’ 이들이 보장하고 자부하고 추천하는 ‘최선의’ 선택을 하지 않는 건 용기가 아니라 어리석음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내 피부에 환한 불을 켜준다는 ‘퍼스널 컬러’라는 단어는 어쩐지 미심쩍다. 나를 위하는 것처럼 위장했지만 내 지갑을 노리고 있다는 의심과 ‘퍼스널’이라고 하면서 계속 ‘보이는’ 면을 강조하는 모순 때문이다.‘퍼스널 컬러’는 크게 두 가지의 뜻을 지닌다. 하나는 개인의 머리카락, 피부, 눈동자 색과 같은 본연의 색. 다른 하나는 개인의 신체 색과 가장 조화를 잘 이루는 색이다. 최근 몇년간 후자의 뜻이 대중적으로 확산되었다... -
1인 가구 시대, 여전히 유효한 ‘엄빠랑’
중국 20대들 사이에선 ‘우정 불황’이란 말이 유행이다. 2020년대 초반 북미에서 유행하던 ‘프렌드 리세션(friend recession)’과 유사한 개념으로, 실질적으로 교류하는 친구 수가 줄어드는 현상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팔로어 수와 유튜브 구독 채널은 늘어도 정작 실생활에의 ‘관계’는 기피하게 되는 우정 불황은 전 세계적으로 외로운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통계와도 이어진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연결’되지만 정작 ‘관계’는 불황이라는 지금, 우리 시대의 ‘관계’는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세 가구 중 한 가구가 1인 가구이며, 출생률은 전 세계 꼴찌인 대한민국 통계는 우리 사회의 ‘관계’ 역시 위기를 마주했음을 암시한다. 허나 관계에 위기는 있어도 소멸은 아직이다. 달라진 시대에 맞춰 새로운 관계와 그에 걸맞은 관계의 언어가 생겨난다. 온라인 소통만으로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관계의 유연함은 ‘인친’(인스타친구)으로, 관계의 대상이 사람에 한정되... -
현대미술과 ‘프사각’
소개팅을 앞둔 친구에게 가장 먼저 물어본 건 그 사람 “카톡 프사가 뭐야?”였다. 프로필 사진은 종종 소개팅용 신상 정보보다 그 사람에 관한 더 많은 걸 말해준다. 만약 프로필 사진이 귀여운 동물 사진이면 난 꽤 단호하게 말한다. “진국이네.” 정작 나 자신은 친구의 인생 사진을 찍고는 말한다. “이거 프사각. 당장 이걸로 바꿔.”프로필 사진은 내가 나임을 증명하는 ‘증명사진’과는 역할이 다르다. 내가 지명하지 않은 누군가가 볼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선택된 프로필 사진은 증명 대신 설명을 한다. 내가 아끼는 것, 하고 싶은 말 혹은 내가 엄선한 나의 모습을 담는다. 아무 의미나 의도가 없는 사진을 골랐다는 선택 자체도 그 사람의 성향을 반영한다. 페이스북이 대중화시킨 디지털 ‘프로필 사진’ 덕에 디지털 세계에 자신의 정체성을 이미지로 등록하는 이 설정에 모두가 익숙해졌고, 프로필 사진의 역사성은 프로필 사진의 장르와 코드를 만들었다. ‘무관심’ ‘부지런’ ‘아리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