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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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어의 업데이트]불안의 안정제이자 증폭제 ‘로드맵’

    불안의 안정제이자 증폭제 ‘로드맵’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명확히 보이는 건 단 하나, 간극이 커지고 있다. 대부분 지역의 집값은 몇달째 하락 중인데 강남 3구 아파트는 연일 신고가를 기록한다. 토지거래허가제가 풀린 지역 호가는 한 달 새 4억원이 올랐고 그 4억원은 대한민국 신입사원 평균 연봉의 10년 치보다 많다. 애석하게도 신입사원이 되는 것도 척박한 환경이다. 대기업 중 61%가 올해 신입사원 채용 일정을 발표하지 않았다. 소비 침체와 장기 불황으로 자영업자 폐업률은 코로나 때보다 높다는 기사와, 한 반도체 기업이 기본급의 1500%를 성과금으로 지급했다는 기사가 언론을 달군다. 슬금슬금 오르던 환율은 계엄 후 치솟아 내려올 줄 모르고, 환율을 결정하는 요소는 죄다 불안정하다. 수치로 표현되는 양극화의 간극이 더 벌어지니 불안이 커진다.사람들은 불안할수록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확보한다. 팬데믹 시기에 작고 확실한 통제감을 주는 ‘루틴’이 흥행한 것처럼, 요즘은 ‘로드맵’이라는 단어가 안정제...
  • [언어의 업데이트]나만의 시점 ‘POV’…AI를 뛰어넘는 상상력의 가능성

    나만의 시점 ‘POV’…AI를 뛰어넘는 상상력의 가능성

    “POV: 너는 학교에서 인기가 많은 학생이고, 졸업식 날 네가 좋아하던 아이와 눈이 마주쳤어.” 웹소설 도입부 같은 이 문장과 함께 60초 내외의 쇼트폼 영상이 시작된다. 영상 속 잘생긴 남학생이 아련한 눈빛으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다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다. 인기가 많았던 적도 없고 잘생긴 남자친구도 없었더라도 어느새 그 영상 속 주인공이 되는 마법에 걸려 60초 동안 내가 주인공인 드라마에 들어간다.영화나 연극에서 특정 인물의 시점을 강조하기 위한 촬영 기법을 의미하는 POV(Point of View)는 틱톡, 릴스와 같은 쇼트폼 플랫폼에서 인기 있는 콘텐츠 장르다. 영화에서 POV는 특정 인물의 시점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지만, 쇼트폼에서는 시청자가 직접 그 상황 속으로 들어가는 방식으로 확장된다. 그 덕에 시청자는 주인공의 감정에 공감할 뿐만 아니라, 마치 롤플레이 게임을 하는 것처럼 직접 역할을 수행하는 듯한 몰입감을 느낀다. 주로 ‘네가 이런 상황이라면...
  • [언어의 업데이트]열렬한 고백의 언어 ‘붐은 온다’

    열렬한 고백의 언어 ‘붐은 온다’

    ‘잘될 거야’라는 말이 공허하게 들릴 때가 있다. 마음이 삐뚤어진 날이면 잘되는 게 도대체 뭔지도 모르겠고 그런 날이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다. 결국은 우리 모두 ‘다 잘될 거야’라는 믿음을 붙잡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말이 가진 낙천성과 대책 없음이 가끔씩 야속하다. 어쩌면 언어에도 배터리가 있어서 어떤 말이 필요 이상으로 많이 쓰이면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자주 낙담하고 수시로 절망을 경험하기 쉬운 요즘 같은 날은 더더욱 ‘다 잘될 거야’라는 말이 무력해 보인다.그런데 여기, 아직 닳지 않은 말이 있다. “붐은 온다.” 이 문장에는 신선한 에너지가 있다. 이 말을 들으면 마음속 어딘가에서 희망이 뭉근하게 끓어오른다. ‘붐은 온다’는 전성기가 지났거나 아직 주목받지 못한 무언가가 영광을 누리길 바라는 강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밴드 붐은 온다’(밴드 음악을 지지하는 동명의 인스타 계정이 밴드 신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 [언어의 업데이트]나쁜 날들에 필요한 좋은 위로 “보고, 듣고, 말하기”

    나쁜 날들에 필요한 좋은 위로 “보고, 듣고, 말하기”

    한석규 배우가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라는 드라마로 ‘2024 MBC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시상식이 열렸던 날은 지난 12월30일. 바로 전날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생방송이 취소되었고, 미룰 수 없는 시상식은 녹화되어 1월5일에 방송되었다. 항상 시상식을 채우던 축하와 감사의 언어는 안타까움과 송구함이 대신했다. 가장 큰 축하를 받아 마땅할 대상 시상 자리, 한석규 배우는 “송구하다”는 말을 여러 번 하고는 끝내 수상 소감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축하의 자리에서 송구함을 말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를 바라보며 내가 감히 그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느낀 이유는 나 역시 위로의 말을 잇지 못하고 망설인 기억들이 많기 때문이다.황망한 참사 앞에서는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당연한 인사조차 염치없게 느껴진다. 올 한 해 무탈하게 보내자는 그 평범한 안부도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신년 인사가 전처럼 자연스럽지 않다. 축복...
  • [언어의 업데이트]애쓰고 마음 쓴 모두가 새 역사를 ‘쓰다’

    애쓰고 마음 쓴 모두가 새 역사를 ‘쓰다’

    하나의 동사가 한 해를 대표할 수 있을까? 일 년 동안 떠올랐던 모든 질문과 고민의 흔적을 담아내는 동사가 있을까. 2020년대를 반쯤 지나온 지금, 지난 오 년을 돌이켜보면 한 해를 대표하는 동사들이 있었다. 2020년, 우리는 ‘멈췄다’. 갑작스레 찾아온 팬데믹 덕분에 우리는 삶의 의미와 방식을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2021년은 ‘적응했다’. 경험한 적 없는 새로운 세계의 규칙에 몸을 맞추며 뉴 노멀을 받아들였다. 2022년 우리는 ‘만났다’. 단절되었던 공간과 멀어진 사람들을 다시 만났고, 그 만남이 전과 달라졌음을 실감했다. 2023년은 ‘떠났다’. 오랫동안 머물렀던 곳으로부터 마스크를 벗고 여행과 모험을 떠났다. 2024년 우리는 ‘모였다’. 흩어진 마음과 힘을 모았고, 그 모임이 내뿜는 힘으로 소중한 걸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시대의 흐름과 함께 동사들은 새로운 의미로 거듭났다.2025년을 시작하면서 올 한 해 동안 기꺼이 함께하고 싶은 동사를 골...
  • [언어의 업데이트]선한 의지·유머·우리를 연결한 무기 ‘모임’

    선한 의지·유머·우리를 연결한 무기 ‘모임’

    2024년 겨울 이후 ‘모임’이란 단어의 위상이 달라졌다. 나를 기준으로 동심원을 그리는 모임이 아니라, 더 큰 우리를 품는 모임들이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재난 문자는 울리지 않았지만 심리적 재난만큼은 복구되기 어려운 수준이었던 계엄령 선포 후, 매일같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다채롭고 새로운 ‘모임’이 열렸다. ‘책 읽다가 뛰쳐나온 활자 중독자 모임’ ‘전국 집에 누워있기 연합’ ‘푸바오의 행복을 바라는 모임’이라 적힌 깃발들이 여의도 하늘에 우뚝 솟아 있었다. 지나가다 한참을 바라본 깃발은 ‘이참에 내 고양이 자랑 모임’ 깃발이다. 깃발에 정말 귀여운 고양이 사진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취향과 관심사가 확고한 모임부터 ‘먹을까 말까 고민되면 먹기 운동본부’처럼 공감의 범위가 넓은 모임, ‘전국 뒤로 미루기 연합회- 그러나 더는 미룰 수 없다’는 해학적 멘트의 모임까지. 깃발에 적힌 문장들을 읽다 보면 이 세계가 완전히 잘못되지만은 않을 거라는 안심이 되었다. 그 아래 모인 ...
  • [언어의 업데이트]합의도 동의도 필요 없는 고유한 감각 ‘느좋’

    합의도 동의도 필요 없는 고유한 감각 ‘느좋’

    한 해를 마무리하며 올해 내가 무엇을 사랑하며 보냈는지 궁금해 소셜미디어에 남겨둔 하트들을 살펴본다. 김태리 배우, 육아 꿀팁, 예능 콘텐츠, 빈티지 유리 조명…. 그런 것들에 다 하트가 묻어 있다. 하트를 누르는 기준을 명확히 정의할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느낌이 좋았다. ‘느낌이 좋다’. 줄여서 ‘느좋’은 올해 들어 유독 많이 보이는 신조어다. ‘지금 카페에서 나오는 노래 완전 느좋’ ‘무신사에서 느좋패딩 발견’과 같은 맥락으로 ‘느좋’의 순간과 대상들을 공유한다. 텍스트 기반의 소셜미디어 엑스(옛 트위터)에서도 ‘느좋’의 언급량이 ‘추구미’ 언급량을 역전했다. 내년을 전망하는 여러 트렌드에서 잘파세대를 이해하기 위한 언어로 꼽은 ‘추구미’보다 ‘느좋’이 더 많이 유통 중이다.줄임말이 한글을 파괴하고 세대 간 소통을 단절시킨다는 우려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외면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사람들이 어떤 말을 줄여 쓴다는 건 자주 쓴다는 뜻...
  • [언어의 업데이트]나만의 관점으로 만들어내는 스타일 ‘코어’

    나만의 관점으로 만들어내는 스타일 ‘코어’

    바람막이 점퍼에 나일론 바지를 등산복이라 부르는 대신 ‘고프 코어’라 말하면 잘파세대(Z세대+알파세대)의 미감을 이해하는 사람이 된다. 축구 유니폼과 청바지를 함께 입는 조합을 ‘블록 코어’라 부르면 거리에서 마주친 대학생들의 낯선 착장들이 이제야 좀 이해된다. 야외 활동을 위한 아웃도어 의류를 일상에서 멋스럽게 입는 것을 고프 코어, 유니폼을 일상복과 어울리게 입는 것을 블록 코어라고 한다. 명명은 유행을 더 빠르게 확산시킨다. 단, 유행하는 이름엔 조건이 있다. 사람들의 귀에 그 이름이 꽂혀야 하며, 그리 어렵지 않게 많은 사람이 동참할 수 있어야 하고, 동시대와 연결되어야 한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패션 스타일도, 예술 사조도, 철학의 계보도 자신만의 이름을 찾고 알리면서 역사 속 목차를 만들었다. 다다이즘, 미니멀리즘, 브루탈리즘과 같은 수많은 ‘이즘(ism)’들을 생각해 보자. 역사 속 ‘이즘’들은 강력한 철학적 토대를 바탕으로 시대에 신선한 화두를 던졌고, 사...
  • [언어의 업데이트]숙련이 빚어낸 결론 ‘파인’

    숙련이 빚어낸 결론 ‘파인’

    나는 기분이 울적하면 모자 가게에 가곤 했다. 다양한 모자들이 늘어져 있는 가게에서 얼굴을 반쯤 가릴 법한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몇 개 쓰고 벗다 보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고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토록 나를 쉽게 바꿀 수 있다니. 가을이 오면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줄 털모자들을 하나씩 꺼내 썼다. 빨간색으로 염색하는 건 두렵지만, 빨간 털모자를 쓰는 일은 두렵지 않다. 파란색으로 염색하는 건 큰 결심이 필요하지만 보송보송한 파란 앙고라 모자를 쓰는 건 신이 난다. 모자 하나만 덮어쓰면 나는 금세 다른 분위기를 갖는다.언어도 모자를 쓰면 금세 다른 뜻을 지닌다. 본질은 놔두면서 말의 결을 바꾸는 단어의 힘 덕분이다. 성능의 시대에는 ‘울트라 화이트닝 크림’, ‘초강력 세제’처럼 성능의 강력함을 강조하는 언어를 주로 얹었다. 가치의 시대에는 ‘럭셔리 리조트’, ‘프리미엄 서비스’처럼 부가가치를 강조하는 언어가 흥했다. 오가닉, 에코, 그린 등 다양한 언어가 사회의 흐...
  • [언어의 업데이트]‘나락 감지 센서’ 끄기

    ‘나락 감지 센서’ 끄기

    어떤 농담은 슬프다. 나는 ‘나락감지센서’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유쾌하게 웃지 못한다. ‘나락감지센서’는 나락에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을 사전에 감지하고 피하려는 본능적인 능력을 뜻한다. 이 센서를 말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건 그만큼 우리가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뜻. 작은 실수도 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과 실수 이후 회복이 어렵다는 안정감의 부재에 맞선 방어기제로 그 감각이 더 정교해지고 있으나 한편으론 계속 떠오르는 질문을 떨칠 수 없다. 실수가 나락으로 이어지는 사회적 분위기는 얼마나 위험한가. ‘나락’이라 불렀던 실수는 과연 ‘회복할 수 없는 절망’을 감당해야 할 만큼의 실수일까? 이 센서를 꺼버릴 수는 없을까?실패도 실수도 쉽게 허락되지 않는 시대다. 위험 감수보다 실수 없음이 우선이다. 어떤 플랫폼에서든 ‘실패 없는’을 검색하면 실패를 피할 방법을 제안한다. 실패 없는 레시피, 노후준비, 가성비템까지 실패와 실수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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