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0주년 경향신문


경향신문

기획·연재

조승리의 언제나 삶은 축제
  • 전체 기사 13
  • [조승리의 언제나 삶은 축제]“울트라맨” 어릴 적 우상, 내 안의 어둠을 부쉈다
    “울트라맨” 어릴 적 우상, 내 안의 어둠을 부쉈다

    일곱 살 내게 우상이 생겼다. 구두쇠 엄마를 몇날 며칠 졸라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앨범을 손에 넣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카세트로 서태지 음악을 틀어댔다.“난 알아요. 이 밤이 흐르고 흐르면 누군가가 나를 떠나버려야 한다는 사실을…”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이는 안무를 따라 하며 하루에도 수십 번 서태지 흉내를 냈다. 집에 손님이 오면 서태지가 되어 노래와 안무를 뽐냈다. 내가 하도 서태지를 좋아하자 서울 사는 이모는 당시 서태지가 자주 착용했던 모자와 비슷한 베레모를 선물했다. 나는 신이 나서 모자를 쓰고 다녔다. 잘 때조차 그 모자를 벗지 않았다. 누구도 모자에 손대지 못하게 했다. 모자에 달린 가격표는 절대 떼서는 안 되었다. 서태지가 그렇게 쓰고 다녔기 때문이다.외할아버지의 돋보기를 훔쳐 쓰고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난 알아요’를 쉴 새 없이 외쳤다. 도수가 맞지 않는 돋보기가 어질어질 현기증을 일으켰다. 대롱대롱 매달린 가격표가 내 멋의 정...

    2025.07.19 12:00

  • [조승리의 언제나 삶은 축제]뜨거운 여름날의 도전, 서툴고 엉망이라도, 그 끝은 해피엔딩
    뜨거운 여름날의 도전, 서툴고 엉망이라도, 그 끝은 해피엔딩

    나는 세상이 궁금하다. 볼 수 없는 세상이. 만져 볼 수 없는 모든 질료가. 소리로는 감각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납작한 형상이 너무도 보고 싶다.시각의 부재를 채울 수 있는 것은 낯선 체험이다. 새롭게 시작되는 모험이다. 인권 영화 동아리에 가입한 것도 세상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오리엔테이션이 있던 날 처음으로 서로를 소개했다. 연배가 가장 높은 한 선생님은 만능 재주꾼이었다. 취미로 색소폰을 연주하고 합창 동아리를 비롯해 여러 활동에 참여 중이라 했다. 나와 동갑인 솔은 전직 특수교사였고 현재는 다섯 살 아이를 양육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시각장애인 동료상담사로 전향해 프리랜서로 일했다. 나보다 세 살 어린 이군은 보디 프로필을 찍을 정도로 멋진 체형을 가지고 있었다. 싱글싱글 웃으면서도 자기주장을 똑 부러지게 말하는 청년이었다. 모두가 개성이 뚜렷했다. 나는 이 모임이 순탄히 흘러갈지 의문이 들었다. 그만큼 각자의 캐릭터가 강했다.인권 ...

    2025.06.21 15:00

  • [조승리의 언제나 삶은 축제]“우리 애기한테 붙지 마!”…엄마는 허공에 식칼을 던졌다
    “우리 애기한테 붙지 마!”…엄마는 허공에 식칼을 던졌다

    유년기의 나는 이유 없이 병이 나서 자리보전하는 일이 흔했다. 그날도 해열제를 먹고 겨울 솜이불 속에서 덜덜 떨어대다가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슬며시 눈을 뜨자 창호지 문으로 볕이 스며들었다. 벽에 걸린 괘종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부르튼 입술 사이로 더운 숨이 색색 소리를 내며 새어나왔다. 몸을 일으켜 머리맡을 살핀다. 작은 소반에 양은 대접 하나가 놓여 있다. 엄마가 들에 나가기 전에 타 놓은 흑설탕물이다. 대접을 들어 맛을 본다. 다디달다. 마른 입술이 그릇에 달라붙었다 떨어지며 찌릿한 통증을 일으켰다. 혀로 통증 부위를 핥다 다시 한번 따끔한 통증 때문에 깜짝 놀란다. 쇠 냄새가 혀끝에 달라붙는다. 대접을 소반 위에 내려놓고 이불로 파고들어 몸을 둘둘 말았다. 그러고는 눈을 대굴대굴 굴린다. 누렇게 빛바랜 천장과 파리똥이 덕지덕지 붙은 형광등이 보인다. 눈을 감고 한동안 있자 소음들이 날파리떼처럼 귓가로 날아든다. 마당 수도의 모터 돌아가는 소리....

    2025.05.24 15:00

  • [조승리의 언제나 삶은 축제]서른아홉, 나의 재롱잔치 프로젝트…올레!!
    서른아홉, 나의 재롱잔치 프로젝트…올레!!

    플라멩코를 배운 지 6개월이 흘렀다. 강사님이 학원 원생들과 봄에 소극장 발표회를 열 거란 계획을 전했다. 나는 겨우 두 곡 진도를 나간 참이라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강사님이 말했다.“당신 두 곡 준비됐잖아요. 무대 올릴 거예요.”날벼락이었다.“제가요? 왜요? 정말요?”점점 목소리도, 내 눈도 커졌다. 강사님은 당연한 걸 묻는다는 말투로 춤을 배웠으니 당연히 무대에 서는 게 뭐 그리 놀랄 일이냐고 되물었다. 나는 한발 빼며 자신 없다고 사양했다. 속으로는 재밌을 것 같다고 여기며 숫기 없는 학생을 연기했다.“그런 얼굴로 마음에 없는 소리 할래요? 80석이니까 관객이나 모아봐요. 표는 무료로 뿌릴 테니 소극장 대관비나 보태요.”강사님은 관객석이 채워지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했다. 나는 30석은 내 손님이 올 거니 제일 좋은 자리를 내놓으라고 닦달했다.80석 소극장 무대에손은 차갑고 무릎은 ‘달달’관객석엔 내가 ...

    2025.04.26 12:00

  • [조승리의 언제나 삶은 축제]논 귀퉁이엔 분홍 꽃비 날리고 그렇게 나의 봄은 저물어갔다
    논 귀퉁이엔 분홍 꽃비 날리고 그렇게 나의 봄은 저물어갔다

    내 고향은 폭넓은 하천을 끼고 부락이 조성됐다. 수량이 풍부한 저수지가 곳곳에 있고, 들녘마다 작게 물을 가둬 놓는 방죽이 있었다. 지형이 밭농사보다는 벼를 심는 게 더 적합했다. 더욱이 농산물 중 값이 정해진 품목은 벼가 유일했다. 또 논농사만큼 사람 손을 덜 가게 하는 작물이 없었다. 지금은 거의 모든 작업이 기계화되었지만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적에만 하더라도 논농사 역시 사람 손이 여간 많이 가는 것이 아니었다.3월 개학을 해 학교에 가다 보면 집집마다 마당에 커다란 고무통을 내놓고 볍씨를 담가 놓는 광경이 흔했다. 빨간 소독약을 푼 물에서는 고약한 약 냄새가 났다. 엄마는 산비탈 밭에 문짝만 한 체를 비스듬히 세워 놓고 삽으로 흙을 퍼 체로 곱게 걸렀다. 모판에 담을 흙이었다. 모판은 직사각형의 납작한 플라스틱 판때기로 바닥에 촘촘히 구멍이 뚫려 있었다. 모판에 흙을 깔고 싹튼 볍씨를 뿌려 키우는데 이걸 육묘종이라 했다.나는 학교가 끝나면 외바퀴 ...

    2025.03.29 15:00

  • [조승리의 언제나 삶은 축제]좁고 얕은 물길, 누군가에겐 수천리…건널 수 없는 강으로 흘렀다
    좁고 얕은 물길, 누군가에겐 수천리…건널 수 없는 강으로 흘렀다

    아무리 강한 고통이라 해도 일상이 되어 버리면 무뎌지기 마련이고 어느 순간 통증을 인지하지 못한 채 현실을 살게 된다. 내겐 장애가 그러했다. 시각의 부재를 잊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현실을 자각하고 영원히 넘어설 수 없는 벽이 있음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만다. 비단 내가 망각하고 사는 것이 장애만은 아니리라.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내가 분단국가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매해 통일과 분단의 아픔을 호소하는 웅변을 그토록 연습했음에도 말이다. 사실 텔레비전 속 이산가족 상봉이나 남북 정상회담 같은 일들은 모두 내 관심 밖이었고 내 삶에 와닿지 않는 먼 이야기였다.탈북 얽힌 험난한 세월 풀어내던 이가 문득 떠올랐던 그곳 내겐 관심 밖 분단이 다른 이에겐 사선…평화는 당연하지 않다, 잊었을 뿐그녀는 아주 작은 사람이었다. 뼈는 가늘었지만 온몸이 근육으로 꽉 차 있어 손이 들어가질 않았다. 마치 밧줄이 온몸을 칭...

    2025.03.01 12:00

  • [조승리의 언제나 삶은 축제]곰솥을 닦는다, 고향의 온기 나누려고
    곰솥을 닦는다, 고향의 온기 나누려고

    설이면 벼를 찧어달라 연통 넣고 만두 빚고 차례 음식 준비하던 엄마…그땐 이해가 안 됐지만이제는 내가 명절이면 모이는 동료들을 생각하며 기꺼이 떡국을 끓인다명절이 가까워지자 동료들로부터 이번 명절에는 무슨 음식을 준비해오면 되냐는 연락이 왔다. 나는 배달 음식을 시키면 되니 서로 부담 없이 가볍게 만나 한 끼 먹고 수다나 실컷 떨자 말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있는 곳이 중심이 되어 명절이면 으레 모이기 시작했다. 말로는 싫다 귀찮다 하면서 나도 모르게 명절 준비를 하고 있다. 창고에서 곰솥을 꺼내 놓고 시장을 봐 냉장고를 채운다. 이런 내 행동에 실없이 웃음이 났다.어린 시절 외가 동네에 더부살이하듯 살던 때는 명절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건 엄마 때문이었다. 엄마의 명절 준비는 보름 전부터 시작된다. 추석에는 솔잎을 따다 말리는 게 명절 시작이고 설날이 다가오면 지난해 농사지어 방앗간에 맡겨 놨던 벼를 방아...

    2025.01.29 09:00

  • [조승리의 언제나 삶은 축제]여름 나라 사람들의 마음, 날씨처럼 뜨거웠다
    여름 나라 사람들의 마음, 날씨처럼 뜨거웠다

    베트남 냐짱(나트랑)에 도착한 건 새벽 2시였다. 다섯 시간을 쓰러지듯 잠들었다가 기상해 호텔 로비에서 로컬가이드를 기다렸다. 11월 냐짱은 한창 우기였다. 아침 기온은 서늘했고 물기 먹은 공기가 묵직했다. 새벽부터 시끄럽던 오토바이 경적이 잠잠해졌다. 출근 시간이 지난 까닭이었다.호텔 리셉션 직원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대략 방의 컨디션을 묻는 것 같았다. 내가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자 로비에 있던 어느 한국인이 다가와 통역해주었다. 짐작대로 그녀는 내게 호텔에서 불편한 사항은 없었는지 질문한 것이었다. 나는 그녀를 향해 최고의 가격, 훌륭한 룸 컨디션이었다고 답했다. 조금도 과장되지 않은 진심이었다. 불과 1만5000원짜리 방이라고는 상상치 못할 깨끗하고 정돈된 시설이었다. 직원이 무척 기뻐하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통역을 해준 한국인 남자는 내 옆에서 담배를 피웠다.멀리서 오토바이 한 대가 달려와 내 앞에 정차했다. 오늘 나와 여행을 함께할...

    2024.12.28 09:00

  • [조승리의 언제나 삶은 축제]고물차 터덜터덜…가이드 투덜투덜…멘털은 너덜너덜…어쨌든 웃겼으니깐, 그걸로 된 거야
    고물차 터덜터덜…가이드 투덜투덜…멘털은 너덜너덜…어쨌든 웃겼으니깐, 그걸로 된 거야

    지진 여파로 붕괴된 클라크국제공항, 리조트는 환불 불가…돈 아까워 울며 겨자먹기 출발 껄렁대는 가이드·툭하면 바뀐 일정에 여행 내내 실소가 터졌다, 그래도 이 정도면 해피엔딩 아닌가24시간 후 내가 도착할 공항이 사라져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모든 사고가 멈췄다. 당혹스러운 마음을 추스르며 부랴부랴 항공사에 연락을 취했다. 상담원은 보상 따위는 없으며 항공료만 전액 환불 조치될 거라 통보하고 멋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때라도 나는 이 여행을 멈췄어야 했다.필리핀 클라크국제공항은 지진의 여파로 건물이 붕괴되고 기능이 정지됐다. 리조트에 전화를 걸어 환불을 요구했지만 리조트 상담원은 공항만 지진 피해를 입었을 뿐, 리조트 시설은 아무 이상 없이 정상 영업 중이므로 환불은 불가능하다 말했다. 항의하자 그는 마닐라공항은 운영되니 그곳으로 입국하면 픽업 차량을 보내주겠다는 합의안을 내놨다. 물론 비용은 별도 청구였다. 클라크에서 마닐라까지는 자동차로 3시간 거...

    2024.11.30 09:00

  • [조승리의 언제나 삶은 축제]소리로 그린 천지, 어느새 내 안에 깃들었다
    소리로 그린 천지, 어느새 내 안에 깃들었다

    장애 이해하려는 사람들 덕에 용기 얻고 ‘한 걸음’동료들에게 전하리라, 이 멋진 풍광우리가 백두산 서파에 도착한 시각은 정오를 10분 남겨두었을 때였다. 오전 7시에 숙소를 출발해 백두산 입구까지 한 시간을 달려왔다. 점퍼 안에 옷을 두세 겹 겹쳐 입었어도 한기가 몸을 움츠리게 했다. 구름이 발밑에 있고 태양은 가까워진 만큼 강렬히 망막을 자극했다. 내 발 앞에는 1442개의 계단이 천지를 향해 등을 돌리고 있었다. 연신 승합차들이 내국인, 외국인 상관없이 우르르 관광객을 쏟아놓고 돌아갔다.어머니의 칠순 기념으로 백두산 탐방여행을 신청했다는 아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 앞에서 도저히 안 될 것 같다며 포기했다. 그는 시각장애만 있는 게 아니라 워킹 보조기구를 사용해야 할 정도로 걷는 것이 불편했다. 애써 웃으며 어머니라도 천지를 보고 오시라, 자신은 밑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돌아서는 그의 목소리에서 아쉬움과 익숙한 체념이 느껴졌다. 그가 보조기구를 ...

    2024.11.02 12:00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경향신문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