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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애는 하염없이 기다렸다…이런 나였는데도
시력이 점점 사라져가던 시기…좋지 않은 소문에 휩싸인 친구 ‘윤’‘실패자’라는 동질감에 그에게서 도망쳤던 과거…나는 비겁했다, 그때도 지금도윤은 뭐든지 나보다 빨랐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이미 좋아하는 남자애가 수시로 바뀌었다. 하굣길에 그 애는 연예인 이야기나 텔레비전 오락프로그램 내용을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반면 나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내가 지루해하며 발길을 서두르면 그 애는 유행가를 소심하게 부르며 안무 동작을 흉내 냈다. 그깟 거 연습해 뭐에다 쓰냐 물으면 윤은 좋아하는 애에게 보여줄 거라며 얼굴을 빨갛게 붉혔다.“공부도 못하는데 이런 거로라도 뽐내야 나를 봐주지 않겠어?”유치하다 생각했지만 내버려 두었다. 춤 연습을 하느라 뒤처지는 윤을 신경 쓰지 않고 앞만 보고 타박타박 걸어갔다. 윤은 도로 위에서 춤을 추다 내가 저만치 앞서 걸어가면 기다리라 소리치고 달려와 숨을 쌕쌕 내쉬며 내 옆에서 걸음을 맞췄다. 그러다 다시 두 팔... -
“마음의 눈은 헛소리” 그 위로 꽃비가 내렸다
활동지원사 수미씨와의 반보만큼의 거리가 무너졌던 그날 이후, 나는 그와 감정과 감각을 공유하며 빛이 고이지 않는 눈동자로 상상한다…아름다운 것들부터 슬픔까지 모두창으로 들어찬 봄볕이 유혹하듯 밖으로 나오라 손짓했다. 활동지원사가 도착하면 하천을 따라 한두 시간 산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된 시간에 초인종이 울렸고, 수미씨가 집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왔는지 바람 냄새를 몰고 들어왔다. 그녀는 내가 부탁하기 전에 앞장서 오늘은 반드시 산책하러 나가야 한다고 힘차게 주장했다. 천변의 벚꽃들이 흐드러지게 만개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원한다면 한번 동행해주겠다고 새초롬하게 거드름을 떨며 말했고, 수미씨는 “같이 나가줘서 고마워요”라며 내 장난에 맞장구쳐주었다.수미씨는 올해로 7년째 활동지원사로서 내게 도움을 주고 있다. 나는 그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세월이 흐른 만큼 그녀는 내 감각을 보조하는 역할을 넘어 감정의 일부를 떠안고 있다. 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