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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나라 사람들의 마음, 날씨처럼 뜨거웠다
베트남 냐짱(나트랑)에 도착한 건 새벽 2시였다. 다섯 시간을 쓰러지듯 잠들었다가 기상해 호텔 로비에서 로컬가이드를 기다렸다. 11월 냐짱은 한창 우기였다. 아침 기온은 서늘했고 물기 먹은 공기가 묵직했다. 새벽부터 시끄럽던 오토바이 경적이 잠잠해졌다. 출근 시간이 지난 까닭이었다.호텔 리셉션 직원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대략 방의 컨디션을 묻는 것 같았다. 내가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자 로비에 있던 어느 한국인이 다가와 통역해주었다. 짐작대로 그녀는 내게 호텔에서 불편한 사항은 없었는지 질문한 것이었다. 나는 그녀를 향해 최고의 가격, 훌륭한 룸 컨디션이었다고 답했다. 조금도 과장되지 않은 진심이었다. 불과 1만5000원짜리 방이라고는 상상치 못할 깨끗하고 정돈된 시설이었다. 직원이 무척 기뻐하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통역을 해준 한국인 남자는 내 옆에서 담배를 피웠다.멀리서 오토바이 한 대가 달려와 내 앞에 정차했다. 오늘 나와 여행을 함께할... -
고물차 터덜터덜…가이드 투덜투덜…멘털은 너덜너덜…어쨌든 웃겼으니깐, 그걸로 된 거야
지진 여파로 붕괴된 클라크국제공항, 리조트는 환불 불가…돈 아까워 울며 겨자먹기 출발 껄렁대는 가이드·툭하면 바뀐 일정에 여행 내내 실소가 터졌다, 그래도 이 정도면 해피엔딩 아닌가24시간 후 내가 도착할 공항이 사라져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모든 사고가 멈췄다. 당혹스러운 마음을 추스르며 부랴부랴 항공사에 연락을 취했다. 상담원은 보상 따위는 없으며 항공료만 전액 환불 조치될 거라 통보하고 멋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때라도 나는 이 여행을 멈췄어야 했다.필리핀 클라크국제공항은 지진의 여파로 건물이 붕괴되고 기능이 정지됐다. 리조트에 전화를 걸어 환불을 요구했지만 리조트 상담원은 공항만 지진 피해를 입었을 뿐, 리조트 시설은 아무 이상 없이 정상 영업 중이므로 환불은 불가능하다 말했다. 항의하자 그는 마닐라공항은 운영되니 그곳으로 입국하면 픽업 차량을 보내주겠다는 합의안을 내놨다. 물론 비용은 별도 청구였다. 클라크에서 마닐라까지는 자동차로 3시간 거... -
소리로 그린 천지, 어느새 내 안에 깃들었다
장애 이해하려는 사람들 덕에 용기 얻고 ‘한 걸음’동료들에게 전하리라, 이 멋진 풍광우리가 백두산 서파에 도착한 시각은 정오를 10분 남겨두었을 때였다. 오전 7시에 숙소를 출발해 백두산 입구까지 한 시간을 달려왔다. 점퍼 안에 옷을 두세 겹 겹쳐 입었어도 한기가 몸을 움츠리게 했다. 구름이 발밑에 있고 태양은 가까워진 만큼 강렬히 망막을 자극했다. 내 발 앞에는 1442개의 계단이 천지를 향해 등을 돌리고 있었다. 연신 승합차들이 내국인, 외국인 상관없이 우르르 관광객을 쏟아놓고 돌아갔다.어머니의 칠순 기념으로 백두산 탐방여행을 신청했다는 아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 앞에서 도저히 안 될 것 같다며 포기했다. 그는 시각장애만 있는 게 아니라 워킹 보조기구를 사용해야 할 정도로 걷는 것이 불편했다. 애써 웃으며 어머니라도 천지를 보고 오시라, 자신은 밑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돌아서는 그의 목소리에서 아쉬움과 익숙한 체념이 느껴졌다. 그가 보조기구를 ... -
도쿄타워보다 눈부셨다, 용사님의 노래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아라이 부부와 함께한 오모테산도·하라주쿠·점자도서관, ‘도상’과 간 다이보 커피점… 관광지의 기억은 희미해졌어도 ‘만찬의 밤’ 날 살려준 노랫가락은 여전히 생생20대의 나는 안마사 일을 하며 적금을 붓는 한편 남동생의 대학 등록금까지 모아야 했다. 소문난 수전노로서 내 유일한 취미는 책을 듣는 것이었다. 잠을 자거나 일하는 시간 외에는 이어폰을 항상 귀에 꽂고 있었다. 독서는 현실을 견디게 만드는 즐거움이었다. 일본 소설을 들으며 아기자기한 시모키타자와의 골목을 상상했고, 홀로 고고히 빛을 밝히는 도쿄타워가 궁금해졌다. 7년짜리 적금이 만기되는 날, 반드시 일본으로 떠나리라. 그 계획은 고된 노동의 원동력이 되었다. 인내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수백권의 책이 쌓여갔다.그리고 7년 후 일본은 내 첫 자유여행지가 되었다. 우선 절친한 동료로부터 한국과 일본 시각장애인들의 교류를 돕는 직업학교 교사분을 소개받았다. 그는 흔쾌히 일본 저시력... -
그런 애는 하염없이 기다렸다…이런 나였는데도
시력이 점점 사라져가던 시기…좋지 않은 소문에 휩싸인 친구 ‘윤’‘실패자’라는 동질감에 그에게서 도망쳤던 과거…나는 비겁했다, 그때도 지금도윤은 뭐든지 나보다 빨랐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이미 좋아하는 남자애가 수시로 바뀌었다. 하굣길에 그 애는 연예인 이야기나 텔레비전 오락프로그램 내용을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반면 나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내가 지루해하며 발길을 서두르면 그 애는 유행가를 소심하게 부르며 안무 동작을 흉내 냈다. 그깟 거 연습해 뭐에다 쓰냐 물으면 윤은 좋아하는 애에게 보여줄 거라며 얼굴을 빨갛게 붉혔다.“공부도 못하는데 이런 거로라도 뽐내야 나를 봐주지 않겠어?”유치하다 생각했지만 내버려 두었다. 춤 연습을 하느라 뒤처지는 윤을 신경 쓰지 않고 앞만 보고 타박타박 걸어갔다. 윤은 도로 위에서 춤을 추다 내가 저만치 앞서 걸어가면 기다리라 소리치고 달려와 숨을 쌕쌕 내쉬며 내 옆에서 걸음을 맞췄다. 그러다 다시 두 팔... -
“마음의 눈은 헛소리” 그 위로 꽃비가 내렸다
활동지원사 수미씨와의 반보만큼의 거리가 무너졌던 그날 이후, 나는 그와 감정과 감각을 공유하며 빛이 고이지 않는 눈동자로 상상한다…아름다운 것들부터 슬픔까지 모두창으로 들어찬 봄볕이 유혹하듯 밖으로 나오라 손짓했다. 활동지원사가 도착하면 하천을 따라 한두 시간 산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된 시간에 초인종이 울렸고, 수미씨가 집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왔는지 바람 냄새를 몰고 들어왔다. 그녀는 내가 부탁하기 전에 앞장서 오늘은 반드시 산책하러 나가야 한다고 힘차게 주장했다. 천변의 벚꽃들이 흐드러지게 만개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원한다면 한번 동행해주겠다고 새초롬하게 거드름을 떨며 말했고, 수미씨는 “같이 나가줘서 고마워요”라며 내 장난에 맞장구쳐주었다.수미씨는 올해로 7년째 활동지원사로서 내게 도움을 주고 있다. 나는 그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세월이 흐른 만큼 그녀는 내 감각을 보조하는 역할을 넘어 감정의 일부를 떠안고 있다. 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