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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리하는 생활]떨어진 신발 밑창 뚝딱 고치던 거리의 기술자, 사라지지 말아요
    떨어진 신발 밑창 뚝딱 고치던 거리의 기술자, 사라지지 말아요

    얼마 전, 밑창이 떨어진 워커를 들고 수리점을 방문했다. 아저씨는 먼저 들어온 신을 고치고 있었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수리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신발은 4cm가량의 굽에 지퍼가 달린 검은색 앵클 부츠, 가장자리에는 갈색 털 장식이 달려 있었다. 신의 주인은 아마도 중·노년 여성인 듯하다. “이거 좋은 신발이야. 가끔 이렇게 들어와.” 내 인사가 살가웠던 모양인지 도통 말이 없는 수리공의 입이 열렸다. “요즘 손님 좀 있어요?” “아니. 다들 그렇게 운동화를 신고 다니니까 고칠 일이 없지.” 그러면서 내 발을 슬쩍 흘겨본다. “뾰족구두를 신고 다녀야 내가 일이 많은데.”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어색한 기분으로 내 애착 신발을 내놓았다. “밑창이 다 떨어졌네. 꿰매줄까?” 어디를 어떻게 꿰매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반가웠다. 아무래도 본드칠보다는 바느질이 훨씬 단단하니까. 그런데 곧 의견이 바뀌었다. “안 되겠다. 이건 그냥 붙이는 수밖에 없겠어. 떨어지면 다시 붙...

    2025.03.29 15:00

  • [수리하는 생활]이웃집 이사날 구조한 원목 의자, 쿠션 리폼하고 나사 조이면 ‘맞춤 가구’ 부활
    이웃집 이사날 구조한 원목 의자, 쿠션 리폼하고 나사 조이면 ‘맞춤 가구’ 부활

    ‘기이이잉~.’ 어디선가 사다리차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이사를 가는 모양이다. 떠난 사람이 두고 간 물건들을 구경하기 위해 오후의 산책 경로를 수정한다. 길에서 물건이나 가구를 줍는 데는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지만, 이사 당일에는 비에 젖거나 벌레의 습격을 받지 않은 ‘신선한’ 원목 가구를 주울 수 있다. 이웃의 가구는 우리 집에 들어와 또 한 번 삶을 이어간다. 식사할 때 앉는 원목 의자도 이삿날 구조한 친구다. 긁힌 데도 많고 딱히 예쁜 구석은 없지만, 앉았을 때 이런 생각이 든다.‘모든 것이 적당하다.’ 좋은 의자란, 앉아 있는 동안 서서히 그 존재를 잊게 되는 것이다. 다행히도 이웃의 의자는 나에게 잘 맞았고, 낡은 쿠션을 리폼해 8년째 사용하고 있다.▲의자 쿠션 리폼하기준비물: 스크루 드라이버, 수동 타카, 마음에 드는 원단, 육각 렌치, 육각 홈 나사1.의자를 눕히고 좌판 밑 고정 나사를 풀어 의자와 쿠션을 분리한다.2.기존 원단에 ...

    2025.03.22 15:00

  • [수리하는 생활]하나님 아니라 ‘나님’이 보기에 좋도록…내 공간에 딱 맞춘 빛이 있으라
    하나님 아니라 ‘나님’이 보기에 좋도록…내 공간에 딱 맞춘 빛이 있으라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몇 있다. 그중 하나가 이것이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진화론 신봉자가 천지창조 이야기를 좋아한다니 어불성설 같지만, 오히려 믿지 않기에 낭만을 느끼고, 옛사람이 느꼈을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닐까. 또 하나의 불경한 짓을 고하자면 어두운 방의 불을 켤 때 가끔 “빛이 있으라” 하며 이 집의 창조주처럼 군다는 것이다(이 집의 조명등을 내가 설치하기는 했다).어떤 빛은 공해와도 같다. 형광등처럼 밝은 조명에서 발생하는 블루라이트는 우리 몸을 과도하게 긴장시키고 수면을 방해한다. 그렇다고 일하는 시간에 노란 조명을 켤 수는 없어서 작업실 천장에는 스마트 조명을 달았다. 낮에는 주광색(하얀색)으로, 일하지 않을 때는 전구색(오렌지색)으로 켠다. 리모컨으로 빛의 색상을 여러 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요즘은 휴대폰 앱으로도 전등 켜는 시간과 끄는 시간을 정하고 빛의 색을 바꾸는 스마트...

    2025.03.15 12:00

  • [수리하는생활]40년 세월 손때 탄 머리핀…손뜨개 리본 붙여 귀하게, 재탄생
    40년 세월 손때 탄 머리핀…손뜨개 리본 붙여 귀하게, 재탄생

    종종 지인의 의뢰를 받아 물건을 고친다. 타인의 물건을 수리하는 일은 한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는 것만큼 조심스러운 작업이다. 그래서 의뢰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열심히 듣고, 가끔 ‘알아서 해달라’는 이들에게도 재차 묻는다. ‘이 물건의 어떤 점이 좋아서 계속 쓰고 싶은가요?’ 수리는 물건을 ‘계속’ 쓰기 위한 노력이다. 시간을 들여 생각해보면 분명히 ‘그 물건’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이유를 들을 수 없다면 직접 유추한다. 새 사람을 만나면 그의 됨됨이를 생각해보듯, 물건을 만나면 그의 용도와 쓰임과 만듦새를 탐색한다. 어떤 물건은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울린다. 친구 어머니가 맡긴 오래된 머리핀이 그랬다.처음에 ‘머리핀을 고쳐달라’는 부탁을 들었을 때는 고장 난 부품을 구해 교체하면 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막상 받아보니 리본이 무척 낡아 있었다. 색이 바래고 올이 풀린 데다 벨벳의 표면이 닳아 누더기 같았다. 이 머리핀은 1985년 대구백화점 포항점...

    2025.03.08 09:00

  • [수리하는 생활]가운데 ‘똑’ 부러진 뿔테 안경, 어쩔 도리가 없다?
    가운데 ‘똑’ 부러진 뿔테 안경, 어쩔 도리가 없다?

    안경을 써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겨울에는 바깥에서 실내로 들어갈 때마다 김이 서리고, 여름에는 코 받침이 땀에 미끄러져 성가시다. 그런데도 울며 겨자 먹기로 안경을 쓴다. 안경 없이는 일상생활이 힘들기 때문이다. 고장은 왜 그리 자주 나는지. 특히 뿔테 안경은 금속테 안경보다 자주 망가진다. 21세기의 안경테는 동물의 뿔이나 거북이 등딱지가 아닌 플라스틱으로 만들지만 우리는 여전히 ‘뿔테’라고 부른다. 뿔테 안경은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점점 더 가볍고 탄력 있는 소재로 거듭나고 있지만 내구성에는 한계가 있다.나사가 헐거울 때는 휴대용 안경 드라이버로 조이고, 코 받침이 망가지면 안경점에 가면 되지만 렌즈와 렌즈를 연결하는 브리지가 부러지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안경을 수리하게 되면서 내가 버린 안경들이 머릿속에 동동 떠다녔다. 진작 안경을 고칠 줄 알았더라면 고친 안경을 자랑스럽게 쓰고 다녔을 텐데. 관심 있는 누군가가 안경의 흉터를 보고 묻는다면 내심 반가워하며 ‘...

    2025.03.01 12:00

  • [수리하는생활]경첩 하나 바꿨을 뿐인데…신경 긁는 삐거덕 소리, 탈출
    경첩 하나 바꿨을 뿐인데…신경 긁는 삐거덕 소리, 탈출

    길을 걸을 때마다 버려진 가구들을 관찰한다. 대형 폐기물 스티커가 붙은 가구들은 쓰레기장으로 실려 가 모조리 태워질 운명인데, 그 생각을 하면 속이 탄다. 철물들은 수명이 한참 남았건만 어째서 망가진 판재들과 함께 화형을 당해야 하는가. 나는 버려진 가구들의 경첩과 손잡이 따위를 장신구만큼 탐내고 수집한다. 옷봉, 서랍 레일, 바퀴, 힌지(경첩), 다보…. 재개발 구역 골목마다 굴러다니는 꺾쇠와 와셔…. 철물의 종류와 쓰임새를 두루 알면 그들이 쓰레기장으로 향하도록 내버려둘 수가 없다.철물 중에서도 집에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경첩이다. 전통적인 경첩은 대칭형의 금속판들이 중심축을 기준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다. 경첩은 그것이 견뎌야 하는 무게에 따라 크기가 확연히 달라진다. 작은 수납함에는 손톱만 한 경첩을 쓰지만, 방문 경첩은 축의 길이만 해도 한 뼘이고, 문짝 하나에 3개까지 설치한다. 관리 방법은 단순하다. 움직임이 뻑뻑하거나 불쾌한 소리가 나면 방청윤...

    2025.02.22 12:00

  • [수리하는 생활]낡은 아이폰SE의 부활···2만5천원에 세기말 감성 소환
    낡은 아이폰SE의 부활···2만5천원에 세기말 감성 소환

    서랍 속에 묵혀두었던 아이폰SE의 배터리를 직접 교체했다. 수리 비용은 단돈 2만5000원. 진작 고쳐 쓸 걸 그랬다. 하지만 그것도 지금의 감상이다. 휴대전화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내 안의 목소리가 나를 재촉한다. ‘고치는 것보다 새로 사는 것이 이득이다.’ 그 목소리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으나, 한편으로는 들떠 있다. 새로운 기술과 더 좋은 카메라가 장착된 스마트폰을 갖지 않으면 급변하는 시대에 뒤처질 것이며, 최신폰을 구매하는 것은 콘텐츠 창작자로서 최소한의 투자라고 말한다. ‘뒤처진다’라는 말에 겁을 먹은 나는 휴대전화를 고쳐 쓰는 대신 최신 제품을 구입하곤 했다.애플 공식 서비스센터의 경우 배터리 교체 비용은 10만원대로 합리적인 가격이다. 하지만 액정에 조금이라도 손상이 있으면 수리가 거절되고, 액정까지 교체해야 배터리 수리가 가능하다. 메인보드나 액정 손상은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170만원짜리 휴대폰을 고치는 데 100만원 안팎의 거금이 든다. 후면 유리나...

    2025.02.15 12:00

  • [수리하는 생활]세면대 아래로 물이 뚝뚝?…2천원으로 뚝딱 해결
    세면대 아래로 물이 뚝뚝?…2천원으로 뚝딱 해결

    자취 생활 1년 차의 일이다. 어느 날부턴가 세면대 아래에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건만, 고이는 물의 양이 하루하루 늘어갔다. 머지않아 근원지를 찾았다. 온수를 공급하는 호스가 낡아서 터진 것이었다. 일단 밸브를 잠갔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손 씻는 데 따뜻한 물이 왜 필요해? 온수를 안 쓰면 난방비도 아끼고 좋지. 전문 회피꾼의 사고방식이었다. 그러다 어느새 겨울이 됐다. 단열이 안 된 옥탑의 욕실은 뼈가 시리도록 추웠다. 얼음을 막 녹인 듯한 냉수로 손을 씻으면 손마디가 얼어서 타자를 치기가 힘들었다. 그 지경이 되어서야 슬슬 문제를 해결할 마음이 들었다.수리비가 얼마나 나올까.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모르는 사람이 집에 오는 것도 싫은데 그 사람에게 돈을 줘야 한다니. 오히려 내가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면서 인터넷을 검색했다. 페이지를 넘기다가 ‘셀프 수리’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직접 해결할 수 있다고?...

    2025.02.08 12:00

  • [수리하는 생활]손잡이 떨어진 ‘최애 공중부양 채반’, 철사 꼬아서 고정하면 문제없죠
    손잡이 떨어진 ‘최애 공중부양 채반’, 철사 꼬아서 고정하면 문제없죠

    쓸수록 편애하게 되는 물건이 있다. 그런 물건이 고장 나면 대체할 물건이 있어도 불만이 많아진다. 결국 그것을 고치거나, 똑같은 물건을 구해야 불만이 사라진다. ‘이케아 사각 콜랜더’가 나에게 그런 물건이었다. 콜랜더(colander)는 식재료의 물을 빼는 데 사용하는 우묵한 그릇을 말하는데, 물 빠짐 구멍이 있거나 촘촘한 체망으로 되어 있다. 쓰임새로 따지면 소쿠리에 가깝지만 뭉뚱그려 ‘채반’으로 불린다(본래 채반은 쟁반처럼 납작한 형태의 물건으로, 둥글고 우묵한 소쿠리와 구분된다). 여러 개의 채반 중에서 이케아 사각 콜랜더가 ‘최애’가 된 이유는 ‘싱크대에 걸어 쓰는 채반’이라는 획기적인 아이디어 때문이었다. 길이가 조절되는 손잡이가 달려 싱크대 폭에 맞추어 걸면 공중 부양한 상태로 물기를 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손잡이가 통째로 떨어졌다. 더 이상 싱크대에 걸 수 없게 된 것이다. 10년 가까이 ‘공중 부양 채반’에 익숙해진 나는 야채...

    2025.01.26 12:00

  • [수리하는 생활]구멍 난 패딩에 ‘투명 패치’ 붙이면…흔적 지우고, 통장 구멍도 막을 수 있어요
    구멍 난 패딩에 ‘투명 패치’ 붙이면…흔적 지우고, 통장 구멍도 막을 수 있어요

    롱패딩이 제철을 맞았다. 붐비는 전철 안에서 롱패딩 사이에 끼어 있으면 묘한 소속감과 동질감을 느낀다. ‘나만 이렇게 추운 게 아니구나’ 이불 같은 옷으로 칭칭 싸맨 사람들의 부푼 덩어리는 전철이 흔들릴 때마다 에어백처럼 서로를 버텨준다. 다른 계절과 달리 서로 부딪쳐도 불쾌감이 적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의 감상이고, 패딩의 입장도 들어봐야 한다. 패딩점퍼의 겉감은 얇은 폴리에스터 재질로 마찰에 약하다. 날카로운 단면이나 뾰족한 물체에 걸리면 순식간에 찢어진다. 가격을 생각해서 모른 체하고 싶어도, 문밖을 나서면 왠지 구멍 난 부분만 시린 느낌이다. 유료로 A/S를 받는 것도 방법이지만, 모든 브랜드가 흔쾌히 수선을 맡아주지는 않는다. 구멍 하나 때문에 3년 전 영수증을 찾아 헤매느니, 그냥 직접 수리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롱패딩의 나라’ 한국에서는 다양한 색상의 패치를 판매한다. 다만 이것은 패딩에만 붙일 수 있고 색상이 미묘하게 달라 거슬린다. 완벽하지 않...

    2025.01.1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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