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연인과 치맥 먹으며 함성 지르는 야구장은 언제쯤…”

이용균 기자

코로나19로 제한됐던 야구장 관객 단계 확대 ‘최대 50%’까지

그래도 “직관은 포기 못해” 꾸준히 찾는 열성팬 발길 이어져

스트레스 날리는 함성·맛있는 음식 나누기 ‘되찾고 싶은 낭만’

KBO리그 야구장은 “세계 최고의 노래방”(제리 로이스터 전 롯데 감독)이었다. 1번부터 9번까지 모든 타자의 응원가를 모두가 함께 따라 부르는 열광의 공간이었고 1만명 넘는 ‘동지’들이 한목소리로 하나가 되는 ‘연대의 장’이었다. 그리고 지난해부터 야구장은 ‘정적’의 공간이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속에 관중 입장이 제한된 뒤 10% 수준으로 간신히 열렸다가 이제 막 20~50% 수준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육성 응원과 음식 섭취는 금지됐다. 3시간 넘도록 간신히 손만 흔들면서 보는 야구는 과거의 야구와 다르다.

프로야구 롯데 팬들이 지난 18일 관중 입장이 50%까지 확대된 부산 사직구장에서 삼성과의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프로야구 롯데 팬들이 지난 18일 관중 입장이 50%까지 확대된 부산 사직구장에서 삼성과의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럼에도 야구장을 찾는 열성 팬들이 있다. 23일 기준 전체 일정의 45%에 해당하는 324경기가 열린 가운데 71만8681명의 팬들이 ‘직관’했다. 2019년 총 관중수의 10% 수준이다.

지난 22일 KT-KIA전이 열린 수원 KT위즈 파크와 두산-키움전이 열린 잠실구장에서 팬들에게 직접 ‘코로나19 시대의 야구 직관’에 대해 물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도 야구장을 찾는 이유와, 아쉬운 점, 어서 빨리 해결됐으면 하는 점들을 물었다. 야구를 사랑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한결같았다.

“어서 더 많이 모여서, 야구장 가득 채운 다음 신나게 목청껏 소리 질러 응원하고 싶다!”

야구장하면 ‘치맥’으로 대표되는 먹거리장이지만, 대부분 “그건 둘째 문제”라고 답했다. 1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마스크의 시대’, 사람들의 간절한 소원은 일단 소리를 지르는 것이고, 함께 지르는 함성은 야구장이 딱이라는 얘기다.

■ 그래도 야구장에 간다

“집이 가까워서 올해만 열 번 넘게 왔다”는 KT팬 조원모씨는 “야구를 원래 좋아하니까 혼자 봐도 재밌게 본다. 야구장 오면, 이 운동장에 오면 마음이 편하다. 직관하면 여유가 생긴다”고 말했다. 조씨는 “코로나 이전만 해도 집사람, 조카, 조카사위 이렇게 자주 왔는데, 지금은 같이 못 온다”고 했다.

혼자라도 야구장에 오는 건, 그만큼 야구를 사랑해서다. KT팬 천유진씨는 “친구들한테 아무리 야구장 가자고 말을 해봐도 걔네들이 무섭다거나 그런 얘기를 하다 보니까, 혼자 다닌다”고 말했다. 천씨는 “그래도 경기를 직접 눈으로 본다는 것, 선수들이 플레이하는 걸 직접 본다는 것, 그게 매력”이라고 말했다. “올해만 46번째 직관”이라고 말한 열성팬 손지율씨(KT, SSG팬)는 야구장 오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그러게요, 제가 왜 오고 있을까요”라고 웃으며 “못 끊겠다. 중독된 것 같다”고 말했다.

KIA팬 유은비씨는 “육성 응원 못하지만 그래도 선수들에게 응원을 보내줄 수 있잖나. 선수들도 팬들이 응원하는 것 보고 힘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원준 선수, 정해영 선수, (이)의리 선수 너무 좋다”고 말했다. 야구는 ‘애정하는 우리 선수’들을 직접 볼 수 있는 곳이다. KIA팬 김원희씨도 “이의리, 정해영 선수 보고 응원하러 오니까 좋다”고 했고 KT팬 장현구씨는 “제일 좋아하는 강백호 선수 직관하는 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 “어서 소리 지르고 싶다”

두산 원년 팬 임명희·이경희씨 부부는 “매년 시즌권을 끊었는데, 올해는 시즌권을 안 해서 회원권만” 했을 정도로 열성 야구팬이다. 이씨는 “국민학교 어린이 여자 1호 회원이었다”고 했다. 오랜 열성팬에게 조용한 야구장은 낯선 공간이다. 이들 부부는 “너무 조용해졌다. 야구장이 조용하면 재미없잖나. 선수들도 응원을 듣고 역전할 수 있는 힘을 내는 건데. 스피커에서 나오는 짝짝짝 소리만 들리니까 힘이 안 나는 거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호회에서 KBO 총재한테 서신을 보냈는데도 응답이 없다. 팬들이 진짜로 뭘 원하는지 직접 와서 봤으면 좋겠다”며 “먹는 건 중요하지 않다. 다 함께 열광하는 걸 원하는 거다. 관객 입장 몇 % 되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희로애락을 같이 느끼고 싶은 거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 소리를 못 지르게 하는 거 이치에 안 맞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새로운 환경에도 직관을 즐겨온 손씨도 “다 함께 소리 높여 외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건데, 되게 답답하다. 나도 모르게 소리치면 어디선가 안전요원분들이 나타나서 자제해 달라고 한다”며 “팬 입장에서는 진짜 육성 응원이 간절한 것 같다”고 말했다. 수원구장을 찾은 이세영·이경호씨 부자팬도 “같은 팀을 같이 응원하는 게 야구의 재미인데, 얼른 육성 응원부터 풀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그다음은 ‘야구장 치맥’

잠실구장을 찾은 전수빈씨는 “일본에서 3년 만에 들어와 야구장이 5년 만이다. 옛날에 친구들이랑 야구장 오면 맥주도 마시고 치킨도 뜯으면서 응원하는 재미가 있었다. 얼마 전에 야구장 처음 오는 친구 데리고 왔는데, 아무것도 못 먹으니까 재미없어 하더라”고 말했다. 여지환씨는 “야구장이 딱 야구만 보러 오는 것 아니지 않나. 어차피 식당에서도 거리 두기만 지키면 다 먹는데, 이렇게 뻥 뚫린 야외에서 못 먹게 하는 거 좀 그렇지 않나”라고 말했다. 수원구장을 혼자 찾은 조원모씨도 “맥주 한잔 먹는 맛도 사라졌다. 내가 오늘 햄버거를 하나 싸 왔다. 5회 끝나고 시간 있을 때 나가서 먹고 들어올 거다”라며 “나이 많은 우리 같은 사람들은 백신도 다 맞았다. 얼른 음식 관련 규제 풀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수원구장에서 만난 김성수·최정우씨는 연인이라고 밝혔다. “야구장 온 게 올해 처음”이라고 했다. 최씨는 “야구장 데이트가 술마시고 맛있는 것도 먹고 이런 재미가 있다는데, 막상 우리는 그걸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야구장은 언제쯤 다시 ‘사랑을 키우는 곳’이 될 수 있을까. 가족끼리, 연인끼리, 친구끼리 그리고 팀과 선수를 위한 사랑이 넘치는 곳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시간이 너무 많이 흐르면, 더 이상 그때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이 기사는 경향신문 57기 수습기자(강은 강한들 김혜리 김흥일 민서영 이두리 이홍근 한수빈)와 함께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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