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 훔치기와 두번째 기회읽음

이용균 기자
[이용균의 베이스볼 라운지]사인 훔치기와 두번째 기회

토론토가 2021시즌 류현진을 앞세워 가을야구를 꿈꿨던 건, 나름 계산이 있어서였다.

볼티모어와 보스턴이 리빌딩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니 뉴욕 양키스와 탬파베이만 넘어서면 될 것 같았다. 탬파베이도 에이스 블레이크 스넬과 찰리 모튼을 모두 떠나보내는 등 스토브리그 동안 전력이 줄었다. 토론토는 ‘한번 해볼 만한 시즌’을 눈앞에 뒀다. 휴스턴 외야수 조지 스프링어를 6년 1억5000만달러에 영입하며 박차를 가했다.

2021시즌 반환점을 막 돌고 있는 가운데, 그 계산이 조금 틀렸다. 동부지구 1위는 양키스도, 탬파베이도 아닌 리빌딩하는 줄 알았던 보스턴이었다. 보스턴은 53승32패를 거두며 탬파베이에 4.5경기 앞선 동부지구 1위를 달리고 있다. 오히려 돈 많이 쓴 양키스가 간신히 5할 승률을 거두고 있어 토론토는 동부지구 3위다.

보스턴은 2020시즌을 앞두고 무키 베츠와 데이비드 프라이스를 LA 다저스로 트레이드시키는 등 전력 구성의 약화가 뚜렷했다. 이번 스토브리그에도 대형 FA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큰손으로 유명했던 데이브 돔브로스키 야구 운영부문 사장도 해고했다. 2018년 우승을 이끈 주역 중 하나였지만 보스턴의 운영 방향은 명확해보였다. ‘돈을 아끼는 것.’ 메이저리그 빅 마켓 구단이 지갑을 닫으면 성적은 떨어지기 마련이라고, 많은 이들이 생각했다.

그 예상을 모두 빗나가게 만든 건, 알렉스 코라 감독의 복귀였다.

코라 감독은 2018년 보스턴을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지만 2020시즌을 앞두고 불거진 휴스턴의 사인 훔치기 파문 때 ‘1년 자격 정지’ 징계를 받았다. 2017년 휴스턴 벤치 코치 시절 선수들의 사인 훔치기를 함께했다는 혐의였다. 사실상 사인 훔치기를 주도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파문의 크기를 고려하면 코라의 야구 인생이 끝날 법했다. 하지만 보스턴은 1년의 징계가 끝난 뒤 코라 감독을 다시 임명했다. ‘스토브리그 가장 과감한 결정’이라는 해석이 뒤따랐다. 메이저리그 전체 여론이 좋지 않았지만 보스턴 팬들의 지지를 받았고, 무엇보다 선수들이 적극 환영했다.

뚜렷한 전력 강화 없이 보스턴이 성적을 내는 것은 8할이 코라 감독의 힘이다. MLB.com은 5일 “보스턴 전반기 MVP는 알렉스 코라 감독”이라고 전했다. 데이터와 분석의 시대에 코라 감독이 더그아웃에서 보이는 ‘리더십’이 성공 핵심 요소다. 선수 시절 동료였던 LA 다저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선수들과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다”라며 “선수들은 언제나 코라와 함께 있다는 걸 안다”고 설명했다.

보스턴 체임 블룸 단장은 보스턴 글로브와의 인터뷰에서 “더그아웃에서 선수들이 항상 야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걸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양키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조 토레 전 감독은 “데이터와 숫자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지만, 여전히 야구에서 사람을 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모두를 같은 방향으로 보게 만드는 것이 바로 리더십이고 코라의 힘이다.

물론, 코라의 복귀가 ‘과거 잘못이야 어쨌든, 성과만 내면 된다’는 결과 만능주의의 승리는 아니다. 코라는 보스턴 감독으로 복귀할 때 과거 잘못에 대해 모든 것을 열어놓고 접근했다. 아무리 작은 비판과 비난이라고 해도 에둘러 피해가지 않았다. 수많은 질문에 솔직히 답을 했다. 코라 감독은 “여전히 야유와 비난이 있지만, 그것 역시 내 인생의 일부”라고 말했다. 야구는 기회의 종목이다. 앞선 타석의 실패와 실수는 두번째 타석, 기회의 양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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