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그, 1000번의 백신

이용균 기자
[이용균의 베이스볼 라운지]마이너리그, 1000번의 백신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샌디에이고)는 ‘천재’다. 공수주에서 모두 최상급 활약을 펼친다. 빅리그 데뷔 첫해인 2019년 신인왕 3위에, 2020년에는 내셔널리그 MVP 투표 4위에 올랐다. 올시즌 고질적 어깨 부상 때문에 몇 차례 부상자 명단을 오르내렸음에도 36홈런으로 내셔널리그 홈런 선두를 달린다. 도루 24개를 기록해 30-30이 가능하다.

주 포지션은 유격수인데, 어깨 부상 방지를 위해 8월16일부터는 외야수로 나선다. 시즌 중 포지션 변경인데도 외야수 적응이 순조롭다. 아직 실책은 없다. 아무데나 갖다 놔도 야구를 잘한다.

분명 ‘천재’지만, 수련 과정이 필요했다. 2016시즌부터 2019시즌 초반까지 마이너리그에서 276경기, 1213타석에 들어섰다. 아무리 천재라도 마이너리그 1000타석을 소화해야 제 실력을 내는 게(혹은 낼 수 있다고 믿는 게) 야구라는 종목의 특징이다.

미국프로농구(NBA), 프로풋볼(NFL)과 다르다. NBA는 1라운드 지명 선수가 첫해부터 리그를 ‘씹어먹는’ 일이 잦다. NFL 상위 지명 선수들도 첫 시즌부터 주전으로 활약한다. 잘 뽑은 신인 1명이 바로 다음 시즌 팀 성적으로 이어지는 반면 야구는 ‘오래 묵혀야’ 선수가 된다. 로널드 아쿠냐 주니어(애틀랜타)도 마이너리그에서 1129타석을 뛰었고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토론토) 역시 마이너리그에서 1262타석에 나섰다.

야구는 실패의 종목이다. 타자는 10번 중 3번만 안타를 때려도 ‘수준급’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투수 역시 100개 모두를 원하는 곳에 던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성공이 환희와 희망과 기대로 이어지는 것보다 수많은 실수와 실패가 불안과 걱정으로 연결되는 일이 많다. 제아무리 천재 타자라도 마이너리그 1000타석을 거치는 것은 그 많은 실패를 통해 욕심을 내려놓는 동시에 좌절하지 않는 내성을 쌓기 위해서다. 마이너리그는 ‘1000번의 백신’인 셈이다.

KIA 황대인은 거포 유망주다. 2015년 2차 1라운드에 지명됐다. 타율 0.237보다는 순장타율(장타율-타율) 0.145에서 기대감이 크다. 장차 KIA의 중심타선을 이끌어갈 재목이다.

KIA 맷 윌리엄스 감독은 황대인에 대해 “파워는 분명히 좋은 타자”라면서도 “일관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400타석에서 30홈런을 친다 하더라도 나머지 370타석에서 어떻게 일관성을 유지하느냐가 타자의 성장을 좌우한다. 윌리엄스 감독은 “홈런은 일부러 치는 게 아니라 저절로 나오게 만드는 것”이라면서 “30홈런을 노리는 게 아니라 안타 수가 늘면 30홈런도 되고 40홈런도 된다는 것을 젊은 선수들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며 웃었다.

최형우와의 차이가 바로 그 지점이다. 윌리엄스 감독에 따르면, 최형우는 “경기 상황에 따라 자기에게 필요한 것인지 뭔지 정확하게 이해하는 타자”다. 주자 2·3루라면, 최형우는 2타점을 올릴 수 있는 안타를 머릿속에 그리지만 아직 황대인은 “3점 홈런을 마음에 두는 타자”다. 그 안타들이 잘 맞았을 때 홈런이 된다. 경험이란, 결과를 상상하며 조급해하지 않고 과정이 쌓여 결과가 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경지다.

야구만 그럴까. 혈기 넘치던 시절 모두는 매 타석 홈런을 꿈꾸지만 인생은 삼진과 실책의 연속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될 때쯤이면, 남은 타석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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