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읽음

이용균 기자
[이용균의 베이스볼 라운지]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이를테면 ‘한선태 룰’이라 할 만하다.

KBO리그는 드래프트 참가 대상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에 6년간 등록된 선수로 제한하고 있었다. ‘엘리트’라 불리는 전문 선수로 6년 이상 뛰어야 신인 지명 대상이 된다는 규약이었다. ‘동호인 선수’ 한선태(LG)가 국가인권위원회를 두드린 끝에 2018년 규약이 개정됐다. 해외에서 학교를 다닌 김기태 전 감독의 아들 김건형이 KT에 지명될 수 있었던 것은 ‘한선태 룰’ 덕분이었다.

KBO리그는 아예 드래프트 전체를 ‘신청제’로 바꿨다. 과거에는 KBSA에 등록된 선수 중 고교 및 대학 졸업자들이 자동으로 드래프트 대상자가 되는 방식이었다. 드래프트 신청제가 도입되면서 4년제 대학 선수가 2학년을 마친 뒤 드래프트에 나서는 ‘얼리 드래프트’가 가능해졌다.

최근 수년간 선수들에게는 4년제 대학보다 2년 뒤 다시 한번 프로 지명에 도전할 수 있는 2년제 대학의 인기가 훨씬 높았다. 현재 대학 최강팀은 2년제인 강릉 영동대다. 영동대는 지난해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4명이나 지명되는 성과를 거뒀다. 지명받지 못하면 4년제 대학 편입을 통해 다시 한번 드래프트에 도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2023년 신인 지명부터 도입되는 ‘얼리 드래프트’를 통해 이제 4년제 대학 선수도 2학년 가을에 프로에 도전할 수 있다. 도전의 기회가 늘어난다.

13일 열리는 2022년 신인 드래프트에 변수가 하나 발생했다. 이른바 ‘나승엽 룰’이다. 나승엽은 덕수고 3학년이던 지난해 메이저리그에 도전할 것으로 알려졌다. 신청제 도입 전이었으니,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무조건 지명 대상이었다. 롯데가 2차 2라운드에서 나승엽을 지명했고, 설득 끝에 입단 계약에 성공했다. 다른 구단들이 눈을 흘겼다. 그래서 올해 ‘나승엽 룰’이 생겼다. 서울컨벤션고 내야수 조원빈이 그 적용 대상이다.

조원빈은 메이저리그 도전 의사를 밝혔다. 그에 앞서 시행 첫해인 드래프트 신청제를 통해 ‘신청’도 해 놨다. 그의 도전이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앞서 나승엽도 마지막에 마음을 바꿨다. 대학 수시원서도 6군데까지 내는 시대다. 드래프트 신청은 일종의 원서접수다.

여기서 ‘나승엽 룰’이 발동한다. KBO리그는 조원빈의 ‘미국 출국’을 메이저리그 협상으로 간주하고, 드래프트 대상 제외는 물론 해외파 복귀 제한 규정을 적용하기로 했다. 협상이라는 의도만으로 직업 선택을 제한했다. 드래프트 신청에 앞서 해당 내용을 설명했다고는 하지만 경쟁 회피를 위한 사실상의 담합이다. 혹시 모를 메이저리그와의 협상 결렬에 대비해 나승엽처럼 지명을 해 둬야 하는 부담감을 다들 피하고 싶어서다. 특정 구단과의 ‘짬짜미’가 의심스럽다면 적어도 드래프트 대상에서 제외하기 위해 대상 선수에게 드래프트 신청 철회 동의서 등을 통해 의지를 확인하는 것이 먼저다. 아니면 최선을 다해 해당 선수를 평가하고 몇 라운드 지명이 적당한지 가치를 매기면 된다.

돈 많은 메이저리그 구단과 싸움이 안 된다는 핑계를 대는데, 메이저리그도 해외 아마추어 계약 총액 제한 제도 때문에 과거처럼 한국의 유망주들을 쓸어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걸 다들 잘 알고 있다.

도쿄 올림픽에서 ‘우물 안 야구’를 확인했다. 연장전 폐지를 비롯해 여전히 ‘경쟁 회피’에만 골몰하는 중이다. 힘들 것 같으면 안 하고, 줄이고, 없앤다. 고양이가 무섭다면, 방울을 달 용기 정도는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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