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 수 없다면 비겨라…‘무승부 홍수’ KBO리그

안승호 선임기자

일정 소화 위한 ‘9이닝 제한’에

후반기 경기 13.2%가 ‘무승부’

최초의 3경기 연속·7무 팀까지

19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1 프로야구 KBO리그 KIA 타이거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에서 5대5로 무승부를 기록한 양 팀 선수들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19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1 프로야구 KBO리그 KIA 타이거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에서 5대5로 무승부를 기록한 양 팀 선수들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4년 한국시리즈는 현대와 삼성의 혈전 속에 9차전까지 진행됐다. 당시 현대 유니콘스의 우승으로 끝난 시리즈의 최종 전적은 4승3무2패. 프로야구팀 전적인지 프로축구팀 전적인지 혼돈될 만큼 희한한 숫자로 2004년 프로야구 챔피언은 가려졌다. 오후 10시30분 이후로는 9회 이후 새 이닝에 들어갈 수 없는 시간 제한 때문이었다. 당시 연장 승부가 불리할 것으로 계산하는 팀의 투수는 마운드에서 괜히 스파이크 끈을 풀어 다시 묶으며 10시30분이 지나기를 기다리는 ‘신발장 야구’를 하기도 했다.

중동의 ‘침대 축구’를 연상시키는 선수들의 연기 대결이 볼 만했다.

그때의 코미디 같은 풍경만큼은 아니지만, 올해 후반기의 ‘무승부 홍수’도 여러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다.

잔여경기 수가 부담스러운 후반기 일정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소화하기 위해 선택한 ‘9이닝 제한 승부’로 비롯된 것이다. 지난 14일 현재 후반기 144경기가 진행된 가운데 13.2%에 해당하는 19경기가 무승부로 끝났다.

특히 한화는 후반기 31경기 가운데 벌써 7무를 기록했다. 10승7무14패. 마치 프로축구 K리그 어느 한 팀의 전적 같다. 또 지난 12일 대전 원정 한화전에서 최초로 더블헤더 2경기 연속 무승부 기록을 남긴 삼성은 14일 홈 대구로 이동해서는 LG와 3-3으로 비기며 리그 역사상 최초의 3경기 연속 무승부라는 다시 있기 어려운 이력을 남겼다.

사실, 현장에서는 경기 운영에 있어 9이닝 제한 승부에 크게 거부감을 보이지는 않고 있다. 특히 투수 자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팀이라면 더욱 그럴 수 있다. 김원형 SSG 감독도 지난주 “9회로 끝나기에 불펜 운용에는 용이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2009년에는 무승부를 1승1패로 계산하는 요상한 제도를 KBO리그에서 도입한 적도 있다. 이로 인해 그해 정규시즌 우승팀이 SK(80승6무47패)에서 KIA(81승4무48패)로 바뀌기도 했다. 공격야구 권장 취지로 만든 제도였지만, 공격과 수비 이닝이 제한돼 있는 야구에서 승률 계산법으로 공격야구를 유도할 수 있다고 한 발상 자체가 몽상적이었다.

이후로 프로야구에서 무승부는 당연히 승률 계산에서 제외되고 있는데, 올해의 경우 홍수 나듯 불어나는 무승부 숫자가 시즌 막판 순위싸움의 적잖은 변수가 될 수도 있다. 상위 팀의 경우, 승률 계산에 있어 무승부 하나가 나중에는 승수 하나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 시즌 막판, 5강 싸움 팀들에 전하는 조언 하나. ‘이길 수 없다면 비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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