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여자들을 잘 모르겠어요” 사상첫 ‘트레블’ 차상현 GS칼텍스 감독

글·진행 김재현 한국문화스포츠마케팅진흥원 이사장 사진·동영상 청년서포터스 ‘젊은나래’ 기자

우승한 다음 날 아침 떠오른 첫 단어는 ‘다행이다’

올 시즌 한국프로스포츠 최고의 팀은 GS칼텍스 여자배구팀이다. GS칼텍스는 여자프로배구 사상 처음으로 트레블(챔피언결정전·컵대회 우승·정규리그 1위)을 달성했다. ‘어우흥(어차피 우승은 흥국생명)’이 득세한 올 초만 해도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스토리였다. 이 스토리를 써내려간 중심에는 차상현 GS칼텍스 서울KIXX 배구단 감독이 있다.

차 감독의 별명은 ‘차노스(차상현+타노스)’다. 훈련할 때나 팀의 기강을 세울 때는 영화 <어벤져스>에 나오는 빌런, 타노스처럼 독한 구석이 있지만, 스스럼없이 스무 살 어린 여자선수들과 어울리는 모습은 장난기 많은 토니 스타크를 닮았다. “아직도 여자들을 잘 모르겠다”는 차상현 감독을 만났다.

차상현 GS칼텍스 서울KIXX 배구단 감독.

차상현 GS칼텍스 서울KIXX 배구단 감독.

-배구를 어떻게 시작했나.

“처음에는 육상을 했다. 울산초등학교에 다닐 때, 키가 크다는 이유로 배구를 가르치던 선생님이 스카우트해 시작하게 됐다.”

-지도자를 하게 된 계기가 있나.

“배구는 키가 커야 하는데 중학교 때까지 키가 185㎝이었고, 현재 187㎝이다. 공교롭게 2㎝밖에 자라지 않았다. 그래서 대학에 입학해 운동하면서 어느 순간 키 때문에 난관에 부딪힐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 나름대로 공부를 하면서 지도자의 꿈을 키워왔다.”

-코치로 보낸 2013~2014시즌 이후 야인으로 지냈는데 힘들지 않았나.

“처음에 든 생각은 ‘배구를 하고 싶지 않다’였다. 그런데 한 시즌이 끝나고 나니 나도 모르게 다시 배구 채널을 돌려 보고 있더라. 배구 중계를 보며 또 혼자 평을 하기 시작하고(웃음). 그렇게 지내다가 대한배구협회로부터 꿈나무 선수들을 코치해볼 생각이 없냐는 제안을 받았다. 1년 만에 배구공을 만졌는데 너무 좋았다. 이 계기로 한번 지도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역일 때와 비교하면, 배구 지도 환경이 많이 달라졌는지.

“내가 한창 운동할 때는 감독님과 코치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무조건 따라야 한다’라는 것이 있었다. 이게 옳은 건지, 그른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믿고 따라야 했다. 요즘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잘 이야기한다. 선수들도 자기가 보기에 감독인 내가 잘못한다고 생각하면 바로 이야기해준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많이 바뀐 것 같다.”

-GS칼텍스 첫 부임 이후부터 팀 순위를 한단계씩 끌어올렸다. 특별한 노하우가 있나.

“포인트는 ‘진정성’인 것 같다.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숙이 가지고 있는 ‘진정성’으로 선수들을 대하고 훈련했다. 평소에 자신을 많이 아끼고 있다는 사실을 선수들이 알고 다가오더라.”

-현재 여자배구 인기를 어떻게 평가하나.

“개인적으로 여자배구의 인기가 거의 정점을 찍고 있다고 본다. 선수들이 길거리에 나가면 알아보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한명의 운동선수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거의 스타를 만난 듯한 시선으로 바라봐 준다. 그런데 현 대표팀에 있는 고참급 선수들이 이번 올림픽을 기점으로 많이 은퇴할 것 같다. 향후 4~5년 정도 과도기가 올 것인데, 그사이 지금 초·중·고등학교에 있는 선수들이 많이 성장해줘야 한다. 하지만 단기 성적과 결과물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배구 붐’이 일어났으니 누군가는 신경을 써서 선순환이 되도록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수일 때, 코치일 때 그리고 감독일 때의 차이점이 있다면.

“선수로 활동할 때가 더 편했던 것 같다.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됐다(웃음). 물론 당시에는 그게 또 괴로웠다. 매일 힘들게 훈련하고, 또 조금만 딴 생각해도 혼나고…. 다음으로 편했던 적은 코치를 할 때였다. 감독이 추구하는 방향성을 잘 읽어 선수들을 이끌고 가면 인정받을 수 있었다. 감독이 되고 보니까 승패에 너무 많은 것들이 좌지우지된다.”

차상현 GS칼텍스 감독이 도드람 2020~2021 V리그 여자부 경기에서 승리한 뒤 선수들과 하이파이브하고 있다. KOVO 제공

차상현 GS칼텍스 감독이 도드람 2020~2021 V리그 여자부 경기에서 승리한 뒤 선수들과 하이파이브하고 있다. KOVO 제공

-여자배구 사상 첫 트레블을 달성했다. 챔피언결정전이 끝난 후 시간을 어떻게 보냈나.

“경기를 마치고 숙소에 들어갔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스태프들만 잠깐 방으로 불러 맥주 한잔 마셨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가장 처음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가 ‘다행이다’였다. 체육관에 연습하러 가지 않아 다행이다. 연습을 간다는 건 졌다는 이야기니까. 원정경기에다 선수들의 부상으로 팀 분위기가 넘어가는 상황이어서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우승해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챔피언결정전에서 한수지 선수가 차 감독의 어깨를 다독이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팀 분위기가 굉장히 열려 있는 것 같다.

“그런 선수들이 한두명이 아니다. 다 내려놓았다(웃음). 그래도 훈련을 할 때는 남들 못지않게 정말 강하게, 독하게 한다. 원하는 훈련 효과가 안 나온다든지 또는 우리 팀의 전체적인 기량과 분위기가 어느 정도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훈련시간에 계획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면 정말 가차 없다. 하지만 그 외적인 시간까지 (이런 분위기를) 연장하고 싶지는 않다. 훈련 외의 시간이 편안해야 다시 운동을 시작할 때 편안한 마음으로 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훈련이 끝나면 선수들도 나를 막 대한다. 선수들이 한 인터뷰에서 ‘팀워크가 가장 잘 맞을 때가 언제인가?’라는 질문에 ‘감독을 괴롭힐 때’라고 답하더라(웃음).”

-팀워크를 유지하기 위해 벌금 제도도 운용하고 있다고 들었다.

“예를 들어, A라는 선수가 감기에 걸려 훈련을 쉬게 되면 전체적인 훈련 방향이 다 바뀔 수밖에 없다. 배구는 개인운동이 아니라 단체운동이기 때문에 팀워크에 문제가 될 수 있다. 프로선수들이기에 자기관리를 하는 데에 문제가 있으면 벌금을 내야 한다. 또 훈련시간에 지각하거나, 오후 11시 이후에 SNS를 하다가 적발되면 벌금을 내는 제도가 있다. 다 팀을 위한 벌금이다. 이게 선수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태프들에게도 모두 해당하는 것이고, 그중 내가 제일 많이 냈다(웃음).”

-시즌이 끝나면 스트레스가 좀 덜하지 않나.

“코치들에게 말한 적이 있다. 시즌이 보통 3월 말에서 5월 초에 끝나는데 나한테 가장 힘든 시기는 4월이나 5월이라고. 왜냐하면 선수를 정리해야 하고, 또 다른 1년을 위해 팀의 전체적인 방향성을 결정하는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은 내가 결정해 정리하는 선수들도 있고, 기존 코칭스태프 중에서도 새로 오는 코칭스태프로 인해 나가야 하니까 나에겐 4월이 굉장히 힘든 달인 것 같다.”

-지금의 지도 스타일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감독님이 있다면 누구인가.

“색깔이 확실했고, 쉽게 정말 다가가기 힘든 ‘신치용 감독님’이다. 선수시절 말 한마디 붙이기 힘들었지만 내 눈에는 적어도 이기고자 하는 준비과정이 확실하게 보였다. 새벽에 어느 순간에 가도 아침 먹기 전에는 늘 사무실에 불이 켜져 있었다. 그 정도로 관리나 시합을 이기기 위한 준비과정 등이 철저했다. 전체적으로 나한테 도움이 됐던 건 정말 많은 지도자분을 모셔봤다는 거다. 김호철 감독님, 신영철 감독님, 돌아가신 최삼환 감독님 등 그분들의 장점을 내가 다 접목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트레블로 여자배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일단은 올 시즌이다. 우리 팀의 주축을 이루었던 메레타 러츠 선수와 이소휘 선수가 빠지면서 다른 팀컬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키는 좀 작지만 용병을 데리고 와 다른 팀컬러를 만드는 게 첫 번째 목표다. 이를 통해 봄배구에 한 번 더 가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지금 전력상으로는 흔들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선수들이 들으면 기분 나쁠 수도 있지만 이제 노력해야 한다.”

-바리스타 자격증도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바리스타라 그러면 웃음부터 나온다. 바리스타는 사실 한유미 해설위원 같은 분이 잘 어울린다. 바리스타 시험 칠 때 정말 떨렸다. 큰 배구공을 잡고 20~30년을 하면서도 긴장을 그렇게 안 해봤다. 그런데 요만한 잔을 잡고 ‘덜덜덜’ 떨렸다. 어쨌든 카페를 2년 정도 운영했는데, 이왕이면 창피당하고 싶지 않았다. ‘혹시 누군가가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느냐’고 물어보면 당당하게 ‘있습니다’라고 얘기를 하고 싶었다.”

-감독 외에 배구인으로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많은 지도자가 공감할 수 있는 유튜브를 하고 싶다. 수익성이 아닌 배구에 대한 기본기를 찍어 공유해보고 싶다. 지도자들도 사실 매일매일 훈련이 반복되다 보면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이 막힐 때가 있다. 그때 내가 찍은 영상을 보면서, 거기에 조금만 살을 붙이면 될 것이다. 잘될지 안 될지 내가 하는 지도방식이 정답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배구발전을 위해 조금 더 도움이 된다면 해보고 싶다. 또 도와주는 분들이 많이 생긴다면 배구발전을 위해 체육관을 하나 짓고 싶다. ‘차노스 체육관’을 생각해봤다. 그 옆에 재활센터도 같이 운영해 배구도 하지만 선수들이 아프면 거기서 재활도 함께할 수 있도록 하고 카페도 커피는 팔지 않고 스포츠에 관련된 음료만 파는 곳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GS칼텍스 서울KIXX 배구단 선수들을 위한 영상편지를 보낸다면.

“성격이 그렇게 썩 좋지 못한 감독과 같이 운동한다고 힘들겠지만 잘 견뎌주고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따라와 줘서 굉장히 고맙다. 이제 또 새로운 시즌이 시작될 건데 쉽게 무너지지 않는 팀이 됐으면 좋겠다. 부상 없이 올 시즌 잘될 수 있도록 잘 준비해보자. 고맙다.”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인식하면 인터뷰 동영상을<br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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