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겠지 하면서도 ‘이길 그날’ 꿈꾸는 “우리는 아픈 사람들”

김세훈 기자

FIFA 최하위 산마리노 대표팀
20년간 176번 도전 끝 3승 뒷얘기

팀 X 팬계정 팔로어 인구 5배 넘어

어렵겠지 하면서도 ‘이길 그날’ 꿈꾸는 “우리는 아픈 사람들”

세계 꼴찌 팀에서 뛰는 것, 그 팀을 응원하는 심정은 어떨까.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최하위(210위) 산마리노 남자축구 대표팀과 서포터스는 지난 9월5일을 잊을 수 없다.

그날 산마리노는 홈에서 열린 유럽축구연맹(UEFA) 네이션스리그 경기에서 리히텐슈타인을 1-0으로 꺾었다. 후반 초반 19세 공격수 니코 센솔리가 넣은 골을 끝까지 지켰다. 산마리노는 1986년 3월28일 첫 번째 A매치 이후 212경기를 치르면서 12경기(2승10무)를 빼고 모두 패했다. 20년 만에, 176번째 도전 끝에 역대 세 번째 승리를 한 것이다.

미드필더 마르첼로 물라로니는 1일 CNN에 “경기 전, 동료들 눈에서 이길 수 있다고 믿는다는 걸 느꼈다”며 “모두 ‘그래, 오늘이 바로 그날이야’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37세 베테랑 수비수 단테 로시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감정이었다”며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을 때 모든 것이 영화처럼 멈췄다”고 회고했다.

이탈리아 내에 있는 소국 산마리노는 인구가 3만3600명이다. 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인구가 적은 나라다. 산마리노가 기록한 최고 FIFA 랭킹은 1993년 9월 118위다. 최하위를 면한 마지막 때는 3년 전으로, 35일간 209위에 있었다.

산마리노 대표 선수들은 ‘이중생활’을 한다. 물라로니는 국가대표로 45번 출전했고 현재 주장이지만 비즈니스 컨설턴트로 일한다. 물라로니는 “산마리노 대표 선수들은 사무직 직원, 트레이너, 학생, 그래픽 디자이너 등 대부분 세미 프로”라며 “풀타임 선수는 니콜라 난니(이탈리아 3부 리그 토레스) 한 명뿐”이라고 말했다.

산마리노 축구 국가대표팀의 엑스(옛 트위터) 팬 계정 @SanMarino_FA(사진)에는 인구의 5배가 넘는 팔로어 17만8000명이 있다. 팔로어인 마르티노 바스티아넬리는 “나는 늘 ‘아마 오늘이 그날일지도 몰라’라고 생각한다”며 “물론 경기가 시작되면 그 생각이 달라지지만”이라고 말했다. 서포터 그룹 중 하나인 ‘브리가타 마이 우나 조이아(Brigata Mai 1 Gioia)’의 뜻은 “단 한 번의 기쁨도 없는 여단”이다. 2018년부터 브리가타 회원으로 활약하는 이탈리아인 크리스티안 산티니는 “우리는 절대 이길 수 없는 팀을 응원하기 때문에 병든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뮌헨에서 산마리노까지 운전해서 오는 바이에른 사람도 있고 오스트리아인, 아일랜드인, 프랑스인도 있다”면서 “아주 간단하다. 우리는 모두 아픈 사람들”이라며 웃었다. 또 다른 회원 바스티아넬리는 “우리가 그들을 응원하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와 같기 때문”이라며 “그들은 주중에 열심히 일하면서 우리에게 꿈을 꾸게 한다”고 말했다. 물라로니는 “단 한 번의 기쁨도 없는 여단? 이제 이름을 좀 바꿔도 되지 않을까”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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