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감독 선임에 ‘와글와글’
절차 문제 넘어 세대 갈등 확대
“2002 월드컵 세대 기득권 비판”
홍명보 축구 대표팀 감독 선임 논란은 처음에는 절차적 공정성 문제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기성 축구인과 개혁을 요구하는 새로운 세대 간 갈등 양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축구계 안팎에서는 지도자로서 실력보다는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후광으로 자리를 지켜온 이들이 이제는 물러날 때가 됐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홍 감독의 대표팀 감독 선임은 밑바닥부터 시작해 지도자 자리에 오르려는 이들에게 좌절감을 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박문성 해설위원은 최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현안 질의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제가 아는 지도자가 ‘이제는 지도자를 그만둘 생각이다. 이름 없는 지도자는 10년, 15년을 계속 굴러도 프로팀 감독, 코치 한번을 하기 어렵다. 그런데 누군가는 특혜를 받으며 국가대표 감독을 준다? 나는 지도자 못하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홍명보 감독이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한다는 의견이 70%를 넘겼다. 정윤수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부교수는 “홍명보 감독의 선임 절차는 형식상 정당했을지 모르나, 실제로는 공정성에 큰 의문을 남겼다. 2002 월드컵 세대가 한국 축구계에서 지나치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고 봤다.
이번 논란을 두고 신구 세대 간 기득권 갈등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전력강화위원으로서 감독 추천 임무에 참여했다가 내부 논의 방식을 비판한 박주호를 비롯해 이영표, 박주호에 대한 대한축구협회의 법적 대응 시사를 비판한 이동국, 조원희 등 홍 감독 후배 세대 축구인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협회 고위층 인사들은 ‘어떤 자리를 노리고 목소리를 내는 것 아니냐’며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지만 경험과 의견 표출 방식의 차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대길 경향신문 해설위원은 “해외에서 활동한 선수들이 한국으로 돌아오면 그들이 보았던 축구 문화와 시스템의 차이로 인해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천수는 개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제는 기강을 잡는 방식으로는 대표팀을 이끌 수 없다”면서 “해외에서 경험을 쌓은 선수들은 지도자의 능력과 철학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기강으로 선수들을 통제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꼬집었다.
기존 한국 축구계의 폐쇄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대길 위원은 “2011년 조광래 감독이 월드컵 예선 레바논전에서 패배한 직후, 기술위원회가 열리지도 않은 상태에서 감독 해임이 발표됐다”고 떠올렸다. 이어 “당시 나는 기술위원회에 있었지만, 감독 해임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구조도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은 “이런 의사결정 방식은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할 수 없으며, 협회는 보다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