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개막한 ‘2020 도쿄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 가운데 여성 비율은 48.5%입니다. 여성 선수의 올림픽 출전이 처음으로 허용됐던 것은 1900년 파리 올림픽입니다. 당시 여성 선수 비율이 2.1%였습니다. 남성과 여성의 성비가 1 대 1 균형을 이루는 데 120년이 걸린 셈입니다. 기울어진 스포츠계의 운동장에서도 선수들이 끊임없이 도전한 결과일 것입니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최선을 다해 경기를 치르고 있을 이들을 응원하며, 플랫팀이 주목할 만한 여성 선수들 소식을 정리해드립니다.
삭발 투혼, 아쉬운 패배, 그래도 계속되는 강유정의 도전
원래도 짧은 머리 스타일로 도쿄에 왔지만, 얼마 되지 않는 머리카락을 파르라니 깎아버린 것은 계체(체중 측정) 때문이었다. 올림픽 유도 종목은 경기 전날 오후 7시30분부터 8시까지 예비 계체를 한다. 평상시 몸무게에서 5㎏ 정도를 뺀 강유정은 계체 직전까지도 350g 정도의 몸무게가 초과됐다. 이후 물조차 마시지 않으며, 무더위에도 바깥으로 나가 러닝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150g 정도로 기준을 넘어서자 미련없이 머리를 밀었다.
결국 강유정은 계체를 통과했지만 이 과정에서 정상 컨디션을 놓치고 말았다. 24일 오전 일본 부도칸에서 열린 도쿄 올림픽 유도 여자 48kg급 첫 경기 32강전에서 그는 스탄가르 마루사(스로베니아)에게 지구력에서 열세를 보이며 세로누르기 한판으로 경기시작 2분 여 만에 패하고 말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의 권유로 유도를 시작한 강유정은 한국 여자 유도 48㎏의 ‘간판’이다. 2019 안탈리아그랑프리 동메달, 2019 뒤셀도르프 그랜드슬램 은메달 등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올림픽 메달 도전은 아쉽게 좌절됐다. 강유정은 “올림픽 첫 경기에서 패해 매우 안타깝다”면서도 “비록 도쿄올림픽은 아쉬운 성적으로 마쳤지만, 이대로 주저앉지는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계체 위해 ‘삭발 투혼’…여자 유도 강유정의 아쉬운 첫 올림픽
‘강철멘탈’ 안산의 마지막 10점이 승기를 굳혔다
3세트 26-51에서 대한민국의 세 궁사는 마지막 한 발씩을 남겨놨다. 금메달을 위해서는 최소 25점이 필요한 순간, 1번 주자 안산(20)이 쏜 마지막 화살은 과녁 한가운데로 날아가 꽂혔다. 6차례 중 3차례 9점을 쐈던 ‘막내’ 안산은 이 마지막 한 발로 3번째 10점을 꽂아넣어 승기를 굳혔다. 언니 강채영(25)과 장민희(22)도 연달아 9점씩을 쏘면서 확실한 마무리에 나섰다.
강채영, 장민희, 안산으로 구성된 양궁 여자대표팀은 25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여자단체전 결승에서 ROC(러시아올림픽위원회)에 세트포인트 6-0으로 완승을 거두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로써 한국 양궁 여자대표팀은 올림픽 단체전 9회 연속 금메달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1988년 여자 양궁 단체전이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후 33년 동안 단 한차례도 우승을 놓치지 않았다. 올림픽 특정 종목 9연속 우승은 수영 남자 400m 혼계영(미국), 육상 남자 3000m 장애물(케냐)에 이어 한국 여자 양궁이 역대 세번째다.
📌한국여자 양궁 단체전, 또 금메달…올림픽 9연패 기록 명중
17살과 58살 선수가 한 코트에서 맞붙는 올림픽
장내 아나운서가 승리를 확인하는 코멘트를 하자 앳된 얼굴의 소녀가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한국 탁구의 희망으로 떠오른 신유빈(17·대한항공)은 자신보다 나이가 41살 많은 베테랑과 대접전을 벌인 끝에 값진 승리를 따냈다. 신유빈은 25일 일본 도쿄체육관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여자 탁구 개인 단식 2회전에서 룩셈부르크의 니시아렌(58)을 세트 스코어 4-3으로 눌렀다.
신유빈의 상대였던 니시아렌은 올림픽 탁구 역사 사상 최고령 출전자다. 1963년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난 니시아렌은 38년 전인 1983년 메이저대회에 처음 입상한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1991년 룩셈부르크로 귀화한 뒤 2000년 시드니 대회부터 이번 도쿄 올림픽까지 5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했다. 니시아렌의 현란한 기술에 밀려 1세트를 내준 신유빈은 과감한 코너 공략으로 상대방의 체력을 떨어뜨리며 반격에 나섰다.
니시아렌은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신유빈이 정말 좋은 경기를 했다”면서 “오늘의 나는 내일보다 젊으니 계속 도전하라”는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신유빈의 다음 경기는 27일, 3라운드(32강전) 상대는 홍콩의 두호이켐이다.
이란의 ‘모범여성’ 거부하고 태권도 선수를 선택하다
2016 리우 올림픽 동메달리스트가 다시 한번 올림픽 무대에 섰다. 5년 전과 두 가지가 달라졌다. 가슴에 달린 국기는 ‘난민팀’으로 바뀌었고, 전자호구 헤드기어 안에 썼던 히잡도 벗어버렸다. 25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 메세 A홀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여자 태권도 57㎏급 경기에 나선 키미야 알리자데 제누린(23·난민팀) 이야기다.
알리자데는 이란 하계 올림픽 역사상 첫 여자 메달리스트였다. 하지만 2020년 1월 이란 국적을 포기하고 난민 자격을 신청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란 정부의 억압도 문제지만, 여성에 대한 차별이 더 큰 이유였다. 고국의 슈퍼스타가 된 이후에도 그를 향한 시선은 ‘동메달리스트’가 아니라 ‘여성’에 맞춰졌다. 복장과 태도, 말투와 표정 모두 ‘이란의 모범 여성’처럼 보여야 했다. 알리자데는 ‘여성 메달리스트’ 대신 ‘태권도 선수’를 선택했다.
4강까지 오른 알리자데는 동메달 결정전에서 터키의 하티스 쿠브라 일군에 6-8로 패했다. 알리자데는 못내 아쉬운 듯 눈물을 흘리며 믹스드존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