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개막한 ‘2020 도쿄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 가운데 여성 비율은 48.5%입니다. 여성 선수의 올림픽 출전이 처음으로 허용됐던 것은 1900년 파리 올림픽입니다. 당시 여성 선수 비율이 2.1%였습니다. 남성과 여성의 성비가 1 대 1 균형을 이루는 데 120년이 걸린 셈입니다. 기울어진 스포츠계의 운동장에서도 선수들이 끊임없이 도전한 결과일 것입니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최선을 다해 경기를 치르고 있을 이들을 응원하며, 플랫팀이 주목할 만한 여성 선수들 소식을 정리해드립니다.
SNS 달군 이다빈의 ‘버저비터 발차기’
남은 시간은 단 1초. 상대방의 머리에 발차기가 명중한 그 순간, 경기 종료를 울리는 버저비터가 울렸다. 22-24로 끌려가던 이다빈(25)은 세계랭킹 1위 비앙카 워크던(영국)에 3점 헤드킥을 성공시키며 25-24로 역전했다. 지난 27일 ‘2020 도쿄올림픽’ 여자 태권도 67㎏ 초과급 준결승전 이야기다.
한 편의 드라마를 연상시키는 ‘버저비터 발차기’에 대한민국은 열광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내 인생 가장 짜릿한 역전 드라마”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이다빈은 “이런 경기는 살면서 처음”이라며 “절대로 지면 안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간절함이 승패를 바꿔줬다”는 소감을 밝혔다.
밀리차 만디치(세르비아)와의 금메달 결정전에서는 아쉽게 패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경기 직후 승자를 향해 엄지를 들어 보이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평소 이다빈의 신념은 “더 간절한 사람이 승리한다”는 것. 그의 ‘엄지 척’은 더 간절했던 상대 선수에 보내는 존경의 의미였다.
간절함만큼은 이다빈도 뒤지지 않았다. 왼쪽 발목 뼈 앞쪽에 1㎝ 크기의 조각이 생겨있음을 발견하고, 지난 1월과 4월 두번에 걸쳐 수술을 받았다. 재활에는 최소 세 달이 필요했고, 의사는 “올림픽 출전을 포기해야 한다”고 권유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재활에 매진한 끝에, 이다빈은 생각보다 빨리 대표팀 복귀에 성공한다. 그에게 은메달을 안겨준 헤드킥이 바로 이 왼쪽 발목에서 나왔다.
수비 위주 경기로 ‘발펜싱’이라는 오명이 붙은 태권도계에서, 이다빈의 공격적 플레이는 태권도 특유의 박진감과 재미를 되살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8년 아시아경기대회 결승전에서는 화끈한 난타전으로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 이다빈 극적인 역전극, 女태권도 67㎏ 초과급 결승행
한 많은 여자 에페의 값진 ‘은메달’
한국 펜싱 여자 에페는 ‘한(恨)’의 종목이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신아람은 멈춰버린 시계 때문에 역전패했다. 눈물을 닦고 일어선 단체전에서 선전했지만 중국과의 결승에서 25-39로 져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지난해 3월엔 헝가리 국제그랑프리대회에 나갔다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확진’이 곧 ‘유죄’가 되던 때였다. 강영미는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국가대표 첫 확진’이라는 낙인도 찍혔다. 여자 에페는 웃음보다 눈물이 더 많았다.
10년 가까이 괴롭힌 ‘불운’의 그림자가 다시 도쿄에 드리운 듯했다. 세계랭킹 2위 최인정은 32강전에서 아이자나트 무르타자에바(ROC)에 11-15로 지며 예선탈락했다. 무르타자에바는 세계랭킹 258위였다. 유일하게 본선에 진출한 송세라도 16강에서 멈췄다.
그럴 때마다, 한국 여자 에페는 똘똘 뭉쳐 힘을 냈다. 최인정, 강영미, 송세라에 후보 선수 이혜인(강원도청)으로 구성된 대표팀은 27일 준결승전에서 오랜 숙적 중국을 38-27로 꺾고 결승에 진출한다. 하지만 에스토니아와의 결승전에선 석패했다. 울먹이는 최인정을 동료들이 다독였다. 언제나 그랬듯, 똘똘 뭉친 모습이었다.
📌 한 많은 여자 에페, 코로나 아픔 이겨내고 눈물의 ‘은메달’
IOC의 시대착오적 규정에 날린 체조선수의 한 방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는 “경기 중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의사표현을 할수 없다”는 규정이 있다. 시대변화에 뒤처진 규정이라는 선수들의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코스타리카의 여자체조선수 루시아나 알바라도(18)는 이 규정의 허를 찌르고 흑인 인권 운동을 지지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예술적 표현과 조합된 제스처에 대해서는 IOC가 처벌할 근거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지난 25일 ‘2020 도쿄 올림픽 기계체조’ 여자 마루운동에 출전한 알바라도는 연기 중 한쪽 무릎을 꿇고 오른 주먹을 들어올리는 동작을 취했다. 점프와 턴, 율동 등을 조합해 경쾌한 연기를 펼친 뒤, 마무리 동작으로 오른쪽 무릎을 꿇고 왼손은 허리 뒷편에, 오른손은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다.
지난해 조지 플로이드 사망 이후 미국과 유럽 선수들이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을 지지하는 의미로 경기 전 무릎을 꿇은 행위,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당시 미국 육상 메달리스트 토미 리 스미스, 존 카를로스가 흑인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 표시로 시상식에서 검은 장갑을 낀 오른손 주먹을 들어올린 행위를 체조 동작으로 재현한 것이다.
알바라도는 AP 인터뷰에서 “오늘 루틴은 BLM 운동에 경의를 표하고, 모든 인간의 평등을 성취하자는 뜻을 담았다” “우리는 모두가 같고, 모두가 아름답고, 놀라운 존재들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다행히(?) IOC는 알바라도의 연기에 대해 아무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 [도쿄올림픽] 연기중 흑인 인권운동 퍼포먼스, IOC의 허를 찌른 코스타리카 체조선수
“성적 대상화 반대” 독일 체조대표팀에 대한 올림픽의 응답
비치발리볼, 체조, 수영, 육상 등 노출이 많은 유니폼을 입는 종목의 여성 선수들을 중심으로 기존 체계를 바꾸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독일 체조 대표팀은 지난 25일 기계체조 예선에서 발목까지 내려오는 ‘유니타드’ 스타일의 유니폼을 입고 등장해 화제가 됐다.
대표팀 소속 선수인 엘리자베스 자이츠는 “우리는 모든 여성, 모든 사람들에게 무엇을 입을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기존의 ‘레오타드’ 스타일이 여성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성적으로 대상화 한다는 문제제기였다.
이러한 독일 선수들의 메시지에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도 응답했다. 야니쉬 엑사쵸스 올림픽주관방송사(OBS) 대표이사는 미국 매체 AP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대회에서는 선수의 신체 일부를 자세하게 클로즈업하던 과거의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특히 여자 선수들의 이미지를 지나치게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부분을 없애겠다”며 “성적인 매력이라는 뜻의 ‘섹스 어필’이라는 표현도 ‘스포츠 어필’로 대체한다”고 덧붙였다.
📌 독일 女 체조대표팀 메시지에 올림픽 조직위가 응답했다 “성적인 이미지 방송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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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국 기자 stylelomo@khan.kr
이용균 기자 noda@khan.kr
김경호 선임기자 jerome@khan.kr
하경헌 기자 azimae@khan.kr
심윤지 기자 sharpsim@kh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