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kyo 2020

“10번 찍어도 넘어가지 않은 나무…그래도 계속 도전해야죠”

도쿄 | 김은진 기자

‘배드민턴 천재’ 안세영, 생애 첫 올림픽 8강에서 마무리

안세영이 30일 일본 무사시노노모리 종합 스포츠플라자에서 열린 도쿄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8강에서 중국의 천위페이를 상대로 스매싱 공격을 하고 있다. 도쿄 | 연합뉴스

안세영이 30일 일본 무사시노노모리 종합 스포츠플라자에서 열린 도쿄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8강에서 중국의 천위페이를 상대로 스매싱 공격을 하고 있다. 도쿄 | 연합뉴스

중학교 3학년에 국가대표 된 뒤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훈련

올림픽에 세계랭킹 8위로 참가
8강서 중국 1인자 천위페이 만나
접전 펼쳤지만 뒷심 밀려 패배

눈물 쏟았지만 다시 일어설 준비
“열심히 해도 안 되면 더 열심히”

매치포인트를 내준 순간, 코트 위로 넘어진 안세영(19)은 한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밤낮으로 셔틀콕을 올려주며 함께 훈련했던 ‘선생님’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겨우 일어났지만 결국 눈물이 쏟아졌다.

꿈 많은 사춘기 소녀의 가장 큰 꿈은 올림픽 메달이었다. 하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많았을 10대의 마지막에 무거운 태극마크를 달았기에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땀 흘렸지만, 가장 큰 산을 너무 일찍 마주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하신 엄마의 말씀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찍어봤으나 이번에도 나무는 넘어가지 않았다.

안세영(19)이 생애 첫 올림픽 도전을 8강에서 마무리했다.

안세영은 30일 일본 도쿄 무사시노포레스트플라자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단식 8강전에서 세계랭킹 2위 천위페이(23·중국)에게 0-2(18-21 19-21)로 졌다.

‘배드민턴 천재’로 불리며 중학교 3학년이던 2017년 12월 성인대표팀에 선발된 뒤 세계무대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드러낸 안세영은 이번 올림픽에 세계랭킹 8위로 참가했다. 정체기였던 한국 여자 단식에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방수현 이후 처음으로 올림픽 메달을 안겨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받았다.

8강에서 만난 천위페이는 중국 배드민턴 여자단식 1인자로 세계랭킹 1위 타이쯔잉(대만)과 함께 강력한 금메달 후보다. 안세영이 4차례 만나 한 번도 이기지 못했던 상대이기도 하다.

멋진 승부를 펼쳤다. 1게임에서는 6-6에서 6연속 득점해 12-6까지 달아났고, 2게임에서도 8-3까지 앞서며 최강 선수를 상대로 중반까지는 오히려 경기를 끌어갔다. 하지만 노련하게 조용히 한 점씩 따라붙는 천위페이에게 결국 마지막 힘에서 뒤져 승리를 내줬다.

경기가 끝난 뒤 수건에 얼굴을 깊게 파묻고 눈물을 쏟은 안세영은 벌게진 눈으로 믹스드존에 나와서도 한동안 눈물을 훔쳤다.

안세영은 “새벽에도 야간에도 항상 같이 운동시켜주시느라 선생님(장영수 여자단식 코치)이 정말 많이 힘드셨는데 죄송해서 눈물이 나는 것 같다. 내가 아직 많이 부족한가보다”며 “공격력이 약하다고 해서 공격 연습을 정말 많이 했는데 긴장도 많이 해서 그런지 제대로 안 나왔다. 집중력과 인내심에서 천위페이에게 이번에도 뒤진 것 같다”고 했다.

천재 안세영은 독종이기도 하다. 국가대표가 된 뒤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조별리그에서는 넘어져 무릎이 까져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이날도 발목을 접질렸지만 치료받고 또 끝까지 뛰었다. “이보다 더 크게 다쳤어도 훈련한 것이 아까워서라도 계속 뛰었을 것”이라고 한 독한 천재 안세영은 눈물을 닦은 뒤 바로 내일을 약속했다. 안세영은 “코로나19가 있었지만 올림픽은 분명 할 거라 믿고 정말 열심히 했는데, 그렇게 했는데도 안 되는 거면 그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라며 “엄마가 1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하셨는데 아직 있는 것 같다. 그래도 계속 도전해보겠다”고 했다.

2002년 2월생인 안세영은 선수촌에서 땀 흘리는 사이 스무 살, 성인이 됐다. 올림픽이 끝났으니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제서야 안세영은 벌게진 눈으로 웃으며 말했다. “혼자 있고 싶기도 한데, 스무 살 되면 다들 하고 싶어하는 거 있잖아요. 술 딱 한 잔만 먹어보고 싶어요. 기분 좋게 마실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술이 어떤 맛인지 궁금한 나이, 스무 살의 안세영은 한바탕 울고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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