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kyo 2020

태극마크가 악몽이었던 오지환, ‘국대의 자격’ 증명했다읽음

도쿄 | 김은진 기자

야구 이스라엘전 타자들 침묵 속

동점 홈런·역전 2루타 ‘원맨쇼’

3년 전 아시안게임 아픔 씻어내

[올림픽] 오지환 '동점이다!'. 연합뉴스

[올림픽] 오지환 '동점이다!'. 연합뉴스

3년 전, 가문의 영광이자 인생의 훈장인 태극마크를 달고 오지환(31·사진)은 악몽을 꿨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국가대표로 선발되자 형평성 논란이 일었다. 입대를 미루고 있다 국가대표가 된 오지환이 정작 대회에서 두드러진 활약도 못하고 돌아오자 비난은 더 거셌다. 하필 경기 전 집단 배탈이 났고 그중 한 명이었던 것조차 밉상이 되고 말았다.

한국 야구가 쑥대밭이 됐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온 선수단은 마음껏 웃지 못했고, 선동열 국가대표 감독이 국정감사 증언대까지 서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국회의원들은 ‘청탁’이라는 엄청난 의혹을 실체도 없이 제기했다. 한 국회의원은 “소신껏 뽑았다”는 선동열 감독을 반박하기 위해 해당 년도가 아닌 전년도 기록을 들이대고도 그것이 문제인지 끝까지 모르는 무지를 드러냈다.

야구라고는 전혀 모르는 것이 분명해보이는 국회의원으로부터 “그런 금메달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모욕까지 들은 선동열 감독은 결국 “금메달의 명예와 분투한 선수들의 자존심을 지켜주지 못해 참담한 심정”이라며 국가대표 사령탑을 사퇴했다.

최상의 목표였던 금메달을 따고 돌아온 대표팀이 초상집으로 돌변한 중심에는 오지환이 있었다. 그 오지환은 다음 사령탑에게서도 또 선택을 받았다.

투수들의 경험 부족을 야수들의 경험과 수비력으로 채우려고 한 김경문 감독은 주전 유격수 오지환을 선발하는 데 일말의 주저도 없었다. 3년 전과 비슷한 논란이 생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을 테지만 뚝심 있게 오지환을 뽑았다.

몇 년간 죄인이 돼버린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오지환은 도쿄로 떠나기 전 한마디했다. “그때 못한 것들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자신이 왜 뽑혔는지 누구보다 입증하고 싶었던 오지환은 13년 만에 다시 올림픽에 나간 한국 야구를 구했다.

오지환은 지난 29일 2020 도쿄 올림픽 조별리그 첫 경기 이스라엘전에서 4타수 3안타 3타점을 터뜨렸다. 0-2로 뒤지던 4회말 2점 홈런으로 동점을 만들었고 4-4로 맞선 7회말 2사 2루에서는 적시 2루타를 때려 역전시켰다. 믿었던 중심타자들이 침묵하고 모두가 타격감을 상실한 듯 보이던 대표팀의 첫 경기에서 오지환은 유일하게 날아다녔다.

김경문 감독은 이미 오지환의 활약을 예견했다. 도쿄 입성 이후 첫 공식훈련을 하던 날 “오지환이 이번 대회에서 제일 잘할 것”이라고 했다.

오지환은 대표팀 소집훈련을 시작한 뒤 아내가 출산을 했지만 감독이 준 하루 휴가도 마다하고 아기만 본 뒤 곧바로 돌아오는 열정을 보였다. 또 연습경기 중 상대 스파이크에 턱이 찢겨 피를 흘린 뒤 봉합했지만 아무렇지 않게 도쿄에 왔다. 오지환의 왼쪽 턱에는 수술 자국을 가리는 반창고가 여전히 붙어 있다.

2020 도쿄 올림픽은 오지환의 야구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이다. 오지환은 이스라엘전을 마친 뒤 “대표팀은 항상 중요한 자리다. 걸맞은 성적을 내기 위해 준비 열심히 했고 이기는 것만 생각했다. 또 이기겠다”고 말했다. 자신을 뽑아준 두 국가대표 감독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겠다는 의지가 결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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