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환 선수’ 여자 역도 허버드를 향한 시선

대중의 눈엔 신기한 ‘이방인’, 동료들에겐 똑같은 ‘경쟁자’[Tokyo 2020]

도쿄 | 윤은용 기자
올림픽 최초의 성전환 선수 로럴 허버드가 지난 2일 일본 도쿄 국제포럼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여자 역도 최중량급에서 역기를 들어올린 뒤 기뻐하고 있다.  도쿄 | AP연합뉴스

올림픽 최초의 성전환 선수 로럴 허버드가 지난 2일 일본 도쿄 국제포럼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여자 역도 최중량급에서 역기를 들어올린 뒤 기뻐하고 있다. 도쿄 | AP연합뉴스

비인기 종목으로는 이례적으로
취재진의 관심 과도하게 집중

부담감에 평소 실력 발휘 못한 듯
인상 1~3차 시기 실패로 마무리

“무대 선 것만으로 많은 것 얻어”
단지 ‘평범함’ 원하는 심경 밝혀

역도는 수영, 육상 같은 올림픽 인기 종목이 아니다. 그래서 현장을 찾는 기자들도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그러나 지난 2일 2020 도쿄 올림픽 역도 여자 최중량급(+87㎏) 결승이 열린 일본 도쿄 인터내셔널 포럼은 비일상적인 취재 열기로 뜨거웠다. 경기 시작 30분 전 기자석의 빈자리는 사라졌다. 경기 시간에 맞춰 온 기자들은 관중석에 특별히 마련된 취재석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거리 두기로 믹스트존 입장 제한이 걸려 있어 오는 순서대로 티켓을 받을 수 있다. 일찌감치 티켓이 동이 나며 ‘대기표’까지 만들어졌다.

이날 역도장 분위기가 달아올랐던 것은 올림픽 최초의 ‘성전환 선수’ 로럴 허버드(43·뉴질랜드) 때문이었다.

허버드는 원래 남자 역도 선수였다. 그러다 성 정체성에 혼란이 와 23세 때이던 2001년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2012년 성전환 수술을 받고 여성이 된 허버드는 2016년부터 여자 역도 선수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7년 세계선수권 인상과 합계에서 은메달을 따 뉴질랜드 역도 사상 최초로 세계선수권 입상자가 됐다. 그가 이번 올림픽 출전을 선언했을 때의 반응은 뜨거웠다. 비록 여성이라도 성장기 시절 남성 호르몬으로 받은 이점을 누리고 있어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는 한편 성평등성에 대한 침해라는 얘기도 있었다.

경기 시작 전 무대로 올라온 선수들을 한 명씩 소개하는 순서는 차분히 진행됐다. 한국의 이선미(강원도청)가 소개됐고, 이어 그 옆에 있던 허버드가 인사했다. 선수들의 특별한 반응도, 관중석의 야유도 없었다. 그를 대하는 다른 선수들에게 그는 ‘이방인’이 아닌, 그저 메달을 놓고 겨루는 ‘경쟁자’ 중 한 명일 뿐이었다.

그리고 시작된 경기. 다른 선수들이 순조롭게 경기를 풀어가는 가운데 인상 1차 시기에서 120㎏을 신청한 허버드의 차례가 왔다. 취재진의 시선이 쏠렸고, 허버드를 크게 응원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그런데 부담감이 컸기 때문일까. 평소 같으면 쉽게 들었을 무게를 그만 놓치고 말았다. 2차 시기에서 125㎏으로 올려 다시 또 실패, 그리고 3차 시기에서 똑같은 무게를 다시 들지 못하며 인상 1~3차 시기를 모두 실패하고 경기를 마무리했다. 3차 시기 실패 후 손하트를 그리며 인사하는 그의 얼굴에는 아쉬움보다는 후련함이 보였다.

허버드의 경기가 끝나자 수많은 기자가 경쟁하듯 믹스트존으로 달려가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기자 역시 인터뷰를 들어보려 믹스트존으로 전력 질주했지만 대기줄에 막혔다. 다행히 공간이 생겨 믹스트존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허버드의 인터뷰를 간신히 들을 수 있었다. 너무 많은 취재진이 몰리면서 허버드는 믹스트존에서도 마이크를 들고 인터뷰를 해야만 했다.

성적이 좋지 않았던 그가 이런 많은 관심과 시선을 모으는 이유는 ‘성전환 선수’라는 다름 때문이었다. 그는 “나의 올림픽 출전에 대한 논란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나는 올림픽 무대에 선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얻었다”며 “스포츠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다는 것을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증명했다”고 말한 뒤 믹스트존을 떠났다.

허버드가 ‘성전환 선수’라는 이슈가 아닌 ‘역도 선수’로 주목받으려면 적잖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는 그를 대하는 미디어와 대중의 시선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메달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안고 대회에 나온 허버드는 조기 탈락하고도 활짝 웃었다. “오늘 함께 출전한 선수들과도 불편함 없이 지냈다”는 허버드의 말처럼 그가 정작 원하는 건 다름이 아닌 평범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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