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사이클 이도연, 리우·평창…그리고 도쿄서 ‘투혼의 레이스’읽음

도쿄패럴림픽공동취재단·이정호 기자
이도연이 31일 일본 시즈오카현 후지국제스피드웨이에서 열린 2020 도쿄 패럴림픽 사이클 여자 도로독주(스포츠등급 H4-5)에서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도쿄패럴림픽공동취재단

이도연이 31일 일본 시즈오카현 후지국제스피드웨이에서 열린 2020 도쿄 패럴림픽 사이클 여자 도로독주(스포츠등급 H4-5)에서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도쿄패럴림픽공동취재단

도로독주서 12명 중 10위
“인생에서 가장 벅찬 코스”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하며
혼신의 힘 다 쏟은 질주

남은 개인도로·단체 계주
“자신감 갖고 다시 도전”

“하늘의 아버지 생각하면서 죽을 만큼 달렸는데….”

대한민국 장애인 스포츠의 ‘철녀’ 이도연(49·전북)이 도쿄 패럴림픽 첫 레이스를 마친 뒤 눈물을 쏟았다. 3년 전 평창 동계패럴림픽에서 노르딕스키 전 종목을 완주하고 나서도 활짝 웃었던 그이다.

이도연은 31일 일본 시즈오카현 후지국제스피드웨이에서 열린 도쿄 패럴림픽 도로사이클 여자 도로독주(스포츠등급 H4-5)에서 55분42초91로 결승선을 통과, 12명 중 10위를 기록했다. 취재진 앞에 선 이도연은 “성적을 내야 하는데… 미안하다”를 연발했다. 고글 아래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그의 머릿속은 응원해주신 분들의 얼굴이 스치며 온통 ‘미안함’으로 채워졌다. 이날 그는 일생일대의 난코스를 마주했다. 어깨가 부서져라 손 페달을 돌렸건만 숨돌릴 틈 없이 나타나는 오르막은 지독히도 가혹했다. “정말 열심히 준비했고, 후회없이 달렸지만 제 인생에서 가장 어렵고 벅찬 코스였다”고 털어놨다.

사점을 넘나든 혼신의 레이스를 마무리한 ‘철녀’의 진한 눈물은 후회나 아쉬움 때문뿐만이 아니었다. 딸의 도쿄 패럴림픽 메달을 기대하셨던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도 컸다. 이도연은 “달리면서 정말 죽음까지 갈 정도로 힘들었다. 달리면서 아버지 생각을 많이 했다. 아버지가 이 자전거 풀세트를 해주셨는데…”라며 다시 눈물을 글썽였다. 도쿄 패럴림픽 무대에서 그의 분신이 된 자전거는 평생 그의 편이었던 든든한 후원자, 하늘나라로 가신 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도쿄 메달을 기대하다가 작년에 돌아가셨는데, 같이 있진 못하지만 아버지께 기쁨을 드리고 싶었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여자 사이클 이도연, 리우·평창…그리고 도쿄서 ‘투혼의 레이스’

“만화 <달려라 하니> 아시죠? 엄마 생각하면서 힘껏 달리는…. 그 마음이 어떤 건지 알 것 같아요.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고, 아버지께 기쁨을 주고 싶단 마음… 저, 우리 아버지 보고 싶어서라도 더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이도연은 리우 패럴림픽의 이 종목에서 4위를 했다. 첫 레이스를 마친 이도연은 1일 여자 개인도로(H1-4), 2일에는 혼성 단체전 계주(H1-5)에 출전한다. 사이클 개인도로는 이도연이 은메달을 따낸 종목이다.

이도연은 장애인 스포츠에서 희망과 긍정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19세에 건물에서 떨어져 하반신 마비 장애를 갖게 됐지만 스포츠를 통해 삶의 활력을 되찾았다. 탁구에서 두각을 보인 그는 마흔 살이던 2012년에는 육상 선수로 전국체전에서 좋은 성적을 냈다. 2013년부터는 사이클을 타면서 3년 만에 국가대표로 발탁돼 첫 패럴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는 감동적인 스토리를 썼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2018년 평창 동계패럴림픽에서는 노르딕 스키 선수로 전향해 출전한 전 종목에서 완주하는 투혼도 펼쳤다. 늘 밟은 미소로 도전을 맞는 그의 자세는 감동을 준다.

설유선(28), 유준(26), 유휘(24) 세 딸의 어머니기도 한 이도연은 같은 시간 전북 무주 펜션에 모여 열띤 응원전을 펼친 딸들 이야기에 ‘엄마 미소’를 되찾았다. “우리 딸들, 저를 달리게 하는 힘이죠. 언제 어디에 있든 정말 사랑하고, 우리 딸들 응원 영상 보니까 내일은 정말 뭐라도 값진 것 하나 갖고 가고 싶어요. 우리 딸들 위해서라도… 물론 메달 못 가져도 우리 딸들이니까 실망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엄마로서 열심히 해서 뭔가 보여주고 싶어요.”

이도연은 “정말 감사하게도 개인도로는 제가 좋아하는 코스다. 자신감을 갖고 더 열심히 도전해 보겠다”고 각오를 새롭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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