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천사, 역도 메달리스트 이배영 감독 “내가 웃는 이유는···”

글·진행 김재현 한국문화스포츠 마케팅 진흥원 이사장
이배영 종로구청 여자역도팀 감독. 사진·동영상 청년서포터스 ‘젊은나래’

이배영 종로구청 여자역도팀 감독. 사진·동영상 청년서포터스 ‘젊은나래’

2008년 베이징올림픽 66㎏급 역도경기. 금메달 후보였던 이배영 선수가 경기장에 들어섰다. 인상에서 무난한 성적을 거둬 메달이 기대되던 상황. 그러나 다리에 쥐가 나며 용상 1차 시기에 실패했다. 마지막 3차 시기. 이배영 선수는 넘어지면서도 끝내 바벨을 놓지 않았다. “성적은 꼴찌지만 나는 최선을 다했기에 꼴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는 그의 말은 명언으로 남았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영원한 ‘미소천사’ 이배영 종로구청 여자역도팀 감독을 만났다.

-역도를 접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역도를 시작하게 됐나.

“우연히 다니던 학교에 역도부가 창단됐는데, 선수를 뽑다 보니 체육시간에 학생들을 테스트했다. 나는 그때 주번이라 교실을 지켜야 해서 테스트를 못 받았다. 내가 체구는 작아도 빠릿빠릿했다. 그게 담임선생님 눈에 띄었는지 역도 선생님에게 쟤(이배영 감독)는 테스트를 받았는지 물어봐 따로 테스트를 받았다. 다행히 재능이 있어 보인다며 뽑았다.”

-‘이배영에게 역도는 무엇이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역도 자체가 스포츠 종목에서 가장 기본이다. 역도에 국한되지 않고 스포츠를 표현할 때 ‘정착하지 않는 멍게’라는 표현을 쓴다. ‘그냥 멍게면 멍게지 무슨 정착하지 않는 멍게냐’ 할 수도 있다. 사실 멍게는 뇌가 있다고 한다. 움직이고 있을 때는 그 뇌를 쓰고, 바위에 정착하고 나면 뇌를 에너지원으로 써버린다더라. 그래서 정착하는 순간 멍게는 바보가 돼버린다.”

-선수 시절 별명이 ‘미소천사’였다. 어떤 생각이 드나.

“좀 부담스럽긴 하다. 안 웃으면 안 될 것 같다(웃음). 원래는 선수 때 사연이 많았고, 힘든 일도 많았다. 그런데 우울해해봤자 내 손해더라. 더 우울해지더라. 그런 일이 많았기 때문에 더 긍정적으로 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웃게 되는 것 같다.”

-오늘도 치과에 갔다 왔다 했는데, 이를 악물고 역기를 들어 이가 나빠진 것은 아닌지.

“그건 선수마다 다르다. 운동하면서 이를 악물 때 파워가 더 나온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훈련해왔기 때문이다. 이를 물었을 때 강한 사람이 있고, 벌렸을 때 강한 사람이 있다. 나는 보통 그런 루틴을 하지 않았다. 새끼손가락을 접을 때 약지가 따라 움직이듯, 다른 부분에 안 좋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굳이 거기다 에너지를 쓰지 않으려 했다.”

-시합 당시 선수가 준비하고 있으면 지도자가 선수의 뺨을 치면서 정신 차리게 한다. 효과가 있나.

“그건 효과가 있다. 체중 조절을 하고 나면 정신이 몽롱해진다. 각성효과를 주기 위해 암모니아를 쓰든가, 뺨을 때리든가 한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걸 막으려는 것이다. 100명이 보고 있는 앞에서 강연하라 하면 누구나 머리가 하얘지는 기분이 들 것이다. 그런 것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이다.”

-다른 선수들과 경쟁한다고 하지만 혼자 경기를 하기 때문에 더 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모든 시선이 나에게 꽂히는 걸 느끼는 순간 갑자기 몸이 굳어버린다. 그걸 없애기 위해 그런 방법을 쓰는데 나중에는 즐기게 된다.”

-역도에서 심리적인 요소가 중요할 것 같다.

“정말 짧은 순간에 많은 판단을 해야 한다. 판단을 뇌에 맡겨버리면 그땐 늦는다.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해야 한다. 중추신경이라는 게 있지 않나. 물체가 눈앞에 다가오면 본능적으로 눈을 감는다. 반사신경처럼 나오는 현상이다. 바벨을 들어올릴 때 ‘앞으로 쏠렸다’라는 생각을 하면 늦는다. 앞으로 쏠림과 동시에 내 몸을 반사적으로 뒤로 움직일 줄 알아야 한다. 그게 여러 번의 반복훈련을 통해 나와야 한다.”

-역도는 무거운 바벨을 계속 들어올려야 하지 않나. 부상 위험이 클 것 같다.

“팔만 4번 다쳤다. 오른쪽은 수술했고, 왼쪽은 인대가 늘어나 팔이 바깥쪽으로도 굽는다는 걸 처음 느꼈다(웃음). 그렇게 다쳐봤기 때문에 다치지 않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난 국내 최고 수준은 갖췄지만, 국제적인 수준까지는 올라가지 못했다. 팔을 다친 게 국제적인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단순히 무게를 들어 다쳤다고는 생각 안 했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왜 저 사람은 안 다치고 나는 다치는 걸까. 열심히 보강해 괜찮았다면 거기서 끝났을 텐데. 보강 운동을 많이 하고도 다쳤다. 그래서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내가 바벨을 들어올릴 때 팔 위치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그게 팔 4번 부러지고 난 스물한 살 때다. 그걸 깨닫고 바꾸는 데 오래 걸리더라.”

-슬럼프가 있었을 것 같은데.

“올림픽 메달을 따고 강연도 많이 다녔다. 그때마다 슬럼프 극복 방법을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스스로 슬럼프라 생각하면 슬럼프가 되고, 이유를 찾게 되면 슬럼프가 없어진다고 대답했다. 다치는 것 때문에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 않았나. 나는 다치면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기록이 떨어진 다른 이유를 찾아내려 노력하면 슬럼프라고 좌절하거나 우울해할 겨를이 없다. 그래서 나는 ‘슬럼프가 없었다’라는 표현을 쓴다. 운동선수라면 슬럼프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슬럼프가 아니라 그 자체를 스스로 만든 것이고, 바뀌는 것이다. 그걸 찾아내지 않는 사람일수록 슬럼프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2004년 8월 아테네 올림픽 역도 경기에서 이배영 선수가 190kg을 들어올리며 은메달을 획득하고 있다. 이날 활짝 웃는 모습으로 인해 ‘미소천사’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 연합뉴스

2004년 8월 아테네 올림픽 역도 경기에서 이배영 선수가 190kg을 들어올리며 은메달을 획득하고 있다. 이날 활짝 웃는 모습으로 인해 ‘미소천사’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 연합뉴스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가 있다면.

“2000년 시드니올림픽이다. 올림픽은 축제라고 하는데, 그걸 느낀 게 그때뿐이다. 부담이 없었으니까. 그 당시에는 기록이 저조해 시합을 나가도 메달과 거리가 먼 상태였다. 메달과 상관없이 정말 올림픽을 만끽하고 왔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는 유력 우승후보였던 불가리아 선수가 도핑에 걸려 출전을 못 했다. 그래서 기대감이 조금 생겼다. 그다음에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넘어지면서 바벨을 놓지 않았던 장면으로 유명해졌다. 그 세 대회가 기억에 많이 남지만, 사실 모든 대회는 특별한 것 같다.”

-인터뷰를 보니 ‘훈련은 전쟁, 올림픽은 축제’라고 했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중추신경은 판단을 통해 감각뉴런과 운동뉴런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중추신경을 움직이는,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훈련을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반복과 생각을 해야 한다. 이걸 왜 하는지 마인드 컨트롤도 해야 한다. 실제로 무대에 올라갔을 때 몸이 알아서 움직이도록 만들면 실전에선 아무것도 아니다. 그걸 즐기고 분위기를 누리면 된다.”

-선수 이배영과 지도자 이배영,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선수 때는 나 혼자 판단하고 나 혼자 움직였다. 선수 때는 그런 게 좋은지 몰랐다. 지도자가 되고 나니 권한은 나에게 있는데 행동은 다른 사람이 한다. 내가 생각하고 내가 지도하고, ‘이렇게 하면 될 거야’ 하고 알려주는데도 내가 하는 게 아니므로 내 맘대로 안 된다. 엄청 어려운 거다. <삼국지>를 보면 유비가 제갈공명에게 삼고초려를 하지 않나. 삼고초려만으로 안 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 사람의 마음뿐 아니라 몸도 같이 움직이게끔 만들어줘야 한다. 그게 지도자인 것 같다. 선수 때 나 혼자 했던 것을 전달하는 게 상당히 어렵다. 지도자를 하면서 표현력이 좋아졌다.”

-지도자가 된 후 가지고 있던 생각과 다른 부분이 있는지.

“지도자는 단순히 동작만 가르치는 사람인 줄 알았다. 막상 지도자가 되고 보니까 지도자의 역할이 선수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지도자의 자질도 중요하지만, 지도자가 어느 정도의 인성과 지식을 갖췄는지에 따라 선수들의 훈련 환경이 많이 바뀐다. 지도자가 지식이나 인성을 갖추지 않으면 선수의 환경이 나빠진다. 훈련시설이 개선됐으면 좋겠는데, 지도자의 인간관계가 좋지 않으면 누가 지원해주지도 않고 나아지지도 않는다.”

-미디어 마케팅 측면에서 역도의 가치도 중요할 것 같다.

“역도만큼 노출이 쉬운 종목이 없다고 생각한다. 항상 1명한테 집중돼 있다. 축구의 경우 운동장 전체를 비추면서 다수를 조명해야 하지만 역도는 한 선수만 집중하면 된다. 중계카메라도 포커스가 다 맞춰진다. 대한역도연맹에서 복장 규정이나 홍보 규정 등 관련 규정을 좀 더 완화해 상표권 등 마케팅을 활용하는 쪽으로 움직이면 좋을 것 같다.”

-얼마 전에 펜싱 김용호, 체조 여홍철, 농구 강동희와 함께 <K-메달러>라는 유튜브 콘텐츠를 시작했다.

“예전에 올림픽 메달리스트 모임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체육행정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그런 단체를 만들었다. 체육인들만 모여 하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단체를 만들고 서로 연락만 하고 지냈는데 당시 한 기획사에서 일하던 분이 도와줬다. 그분이 이번에 코로나19 때문에 여러 행사가 사라지면서 새로운 변화를 주고 싶다며 유튜브를 시작했다. 최근에 나뿐만 아니라 스포츠인들이 계속 참여하고 있다. <K-메달러> 첫 편은 나랑 여홍철·김용호·강동희 선배가 같이 찍었다. 다음 편도 곧 나온다. 유도 이원희, 쇼트트랙 공상정, 사이클 장선재 선수가 함께 찍었다. 지상파 방송이 아니더라도 스포츠를 콘텐츠화해 알릴 방법은 많다. 그렇게 스포츠가 친근해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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