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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2020 도쿄올림픽’이 5년 만에 개막되면서 스포츠에 관심이 높아진 때 여성 선수들의 입는 ‘유니폼’을 둘러싼 논쟁에 불이 붙었습니다.

시작은 노르웨이 비치핸드볼 대표팀이었습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이들은 유럽선수권대회 동메달 결정전에서 반바지를 입고 경기에 출전했다가 선수 한 명당 150유로씩(약 20만원), 총 1500유로(약 204만원)의 벌금을 받습니다. “여성 선수는 비키니 하의를 착용해야 한다”는 유럽비치핸드볼연맹의 복장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였죠.

반면 전날 영국 육상선수권대회에 출전했던 한 여성 선수는 “하의가 너무 짧고 노출이 심하다”는 이유로 주최 측으로부터 경고를 받았습니다.

노르웨이 비치핸드볼 대표팀. 노르웨이 비치핸드볼 대표팀 인스타그램

노르웨이 비치핸드볼 대표팀. 노르웨이 비치핸드볼 대표팀 인스타그램

‘너무 길어서, 혹은 너무 짧아서….’ 양상은 다르지만 여성이 무엇을 입을 수 있고, 무엇을 입을 수 없는지가 검열과 통제의 대상이 됐다는 점은 같습니다. 여성 운동 선수의 ‘적절한 복장’은 무엇일까요. 그 기준을 정하는 권한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여성 선수들의 ‘복장 논란’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지금까지 논란이 된 사례들을 플랫팀이 차근차근 되짚어봤습니다.

■꿈쩍 않던 협회가 드디어 움직였다

비치핸드볼은 이름 그대로 모래 위에서 열리는 핸드볼 경기입니다. 선수들은 수영복을 입고 경기에 출전하는데, 남녀의 복장 규정엔 차이가 꽤 큽니다.

국제핸드볼연맹(IHF) 규정에 따르면 여성 비치핸드볼 선수는 ‘밀착된 핏으로 다리 윗부분을 향해 위쪽 각도로 옷의 구멍이 나있는 비키니 하의’를 입어야 합니다. 하의의 측면 폭이 최대 10㎝를 넘어도 안됩니다. 반면 남성 선수들은 ‘무릎 위 10㎝ 길이에, 너무 헐렁하지 않은 반바지’이기만 하면 됩니다.

국제핸드볼연맹(IHF)의 유니폼 규정 . 국제핸드볼 연맹 제공

국제핸드볼연맹(IHF)의 유니폼 규정 . 국제핸드볼 연맹 제공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노르웨이 선수단이 비키니 대신 반바지를 착용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던 것은 무려 2006년부터입니다. “비키니는 불필요한 성적 시선을 유발하고, 경기 중 움직이기도 불편하다”는 것이죠. 하지만 연맹은 아무 반응을 하지 않았고, 선수들은 벌금을 감수하고라도 반바지를 입고 경기에 나섭니다. 반바지 착용은 연맹의 성차별적 복장 규정을 고발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던 셈입니다.

노르웨이 선수단에 대한 징계 결정이 알려지자 전세계 언론이 비판했습니다. 이에 제시카 록스트로 국제핸드볼연맹 대변인은 “내부 검토가 진행 중”이라면서도 이런 규정이 생긴 이유에 대해서는 “모르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전세계적으로는, 특히 남미 같은 국가에서는 비키니를 입고 경기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유럽핸드볼연맹도 “복장 규정 개정은 국제핸드볼연맹 소관”이라며 책임을 회피하죠.

이에 대해 아비드 라자 노르웨이 문화부 장관은 “남성우월주의적이고 보수적인 국제 스포츠계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미국 팝가수 핑크는 지난 25일 자신에 트위터에 “성차별적 복장 규정에 항의한 노르웨이 선수단이 자랑스럽다”며 “내가 벌금을 낼 테니 계속 싸워 달라”라고 밝혔습니다. 논란이 지속되자 유럽핸드볼연맹도 “스포츠 분야에서 여성과 소녀의 평등을 지지하는 주요 국제 스포츠재단에 벌금을 기부하겠다”는 입장문을 지난 26일 발표하며 몸을 낮췄습니다.

📌미 가수 핑크 “노르웨이 여자 비치핸드볼팀 ‘반바지 벌금’은 내가 낼게”

■너무 길어도, 너무 짧아도 논란이다

대부분 스포츠는 ‘공정한 경쟁’을 위한 복장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기준은 각 연맹이 자체적으로 만듭니다. 하지만 규정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선수들이 각자의 경기력을 극대화해줄 복장을 찾는 것도 흔한 일입니다. 수영 선수만 해도 짧은 길이부터 무릎 길이까지 다양한 길이의 수영복을 선택할 수 있죠.

하지만 여성 선수들의 경우에는 유니폼이 너무 길어도, 너무 짧아도 문제가 되곤 합니다. 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육상·멀리뛰기 선수인 올리비아 브린은 지난 18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영국 육상선수권에 출전했다가 지나치게 짧은 바지를 입었다며 제지를 당했다”고 밝혔습니다. 특수 고안된 바지를 착용하고 수년간 대회에 출전했던 브린은 “(복장 제지에) 할 말을 잃었다. 남성 경쟁자도 비슷한 비판을 받았을지 의문이 들었다”며 “우리는 18세기가 아니라 2021년을 살고 있다”고 반발했습니다.

올리비아 브린이 지난달 27일 영국 맨체스터 리저널 아레나에서 열린 영국 육상 선수권대회 여자 멀리뛰기 결승에서 경기를 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올리비아 브린이 지난달 27일 영국 맨체스터 리저널 아레나에서 열린 영국 육상 선수권대회 여자 멀리뛰기 결승에서 경기를 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리그 흥행’을 명목으로 여성 선수들은 노출이 심한 복장을 강요받기도 합니다. 2011년 세계배드민턴연맹은 ‘미니스커트 유니폼’을 도입하면서 “관객들이 배드민턴 경기에 다시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선수들이 복장을 갖추고 경기를 해야 한다”고 발표해 구설에 올랐습니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 후반 한국여자농구연맹이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쫄쫄이 유니폼’을 도입했다가 2년 만에 철회했습니다. “쫄쫄이 유니폼 차림으로 뛰는 여자 선수들의 모습은 남자 농구에서는 볼 수 없는 눈요깃감”이라는 연맹 관계자의 발언이 기사화되는 등 여성 선수를 성적 대상화한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기 때문입니다.

성적 대상화는 여성의 경기력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몸에 달라붙는 복장을 입었을 때 주의력이 분산되고 부상 위험도 커졌다는 선수들의 증언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죠. 올림픽과 젠더를 연구해 온 헬렌 렌스키쉬 전 토론토대 교수는 캐나다매체 '글로벌뉴스' 인터뷰에서 “복장 규정은 돈이나 상업적 인 이해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이러한 규정은 대부분 국제 연맹의 임원급 남성들이 만든다”고 했습니다.

■성차별적 규정 바꾸는 여성 선수들

여성 선수들의 복장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노출’이 아닙니다. 이들은 여성이기 전에 운동선수이며, 경기에 도움이 되는 옷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받아야 합니다.

여성 선수들은 성차별적 복장 규정에 끊임없이 도전해왔습니다. 흰색 경기복 착용 규칙을 비롯해 보수적인 복장 규정으로 유명한 테니스가 대표적인 종목입니다. 윔블던 대회의 경우 흰색 옷뿐 아니라 모자와 두건, 양말, 속바지 등도 모두 흰색에 맞춰야 하죠.

보디슈트를 입은 세레나 윌리엄스, 세레나 윌리엄스 인스타그램

보디슈트를 입은 세레나 윌리엄스, 세레나 윌리엄스 인스타그램

세레나 윌리엄스 선수는 2018년 프랑스 오픈에 출전할 때 이른바 ‘와칸다 슈트’로 불리는 검은색 나이키 전신 유니폼을 입고 등장했습니다. 이에 프랑스테니스연맹은 “경기와 장소를 존중하지 않는 의상”이라며 이후 경기에서 보디슈트 착용을 금지해버립니다. 어쩔 수 없이 민소매와 치마로 구성된 ‘전통적인 의상’으로 갈아입긴 했지만 윌리엄스는 “보디슈트를 입고 나옴으로써 여성들에게 자신감을 주고 싶었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당시 출산 후 폐색전을 앓고 있었던 윌리엄스는 보디슈트가 혈액 순환에 도움이 된다고도 밝혔습니다. 선수의 경기력을 제한하면서까지 ‘전통을 고수해야 할 합리적인 이유가 있냐’는 질문을 사회에 던진 셈이죠. 19세기 긴 팔에 긴 치마, 코르셋까지 착용해야 했던 여성 유니폼이 현재의 형태로 바뀐 것도 수많은 선수들의 끊임없는 문제 제기로 가능했던 결과입니다.

독일 체조선수 파울린 쉬퍼 인스타그램

독일 체조선수 파울린 쉬퍼 인스타그램

이번 도쿄올림픽에서도 성차별적인 복장 규정을 없애기 위한 여성들의 목소리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독일 여자체조대표팀은 지난 25일 하반신 전체를 발목까지 덮는 유니타드를 입고 나타나 화제가 됐습니다. 성적 대상화에 반대하는 의미로 선택한 복장입니다. 여자 체조선수들은 보통 원피스 수영복에 긴 팔만 덧대진 형태의 레오타드를 입죠.

엘리자베스 자이츠 선수는 인터뷰에서 “우리는 모든 여성, 모든 사람들이 무엇을 입을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새 유니폼 착용이) 기존 유니폼을 더는 입지 않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떤 유니폼을 선택할지는 우리가 어떻게 느끼고, 무엇을 원하는지에 따라 매일매일 바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참고문헌 : 여성 스포츠 유니폼 트렌드와 성 상품화 현상의 관계 탐색(2011·김지선, 이근모, 김준)


심윤지 기자 sharpsim@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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