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위대한 유산 남기고 떠난다

‘테니스 전설’ 페더러 은퇴 선언

잦은 부상에 1년 넘게 대회 출전 못해…다음주 레이버컵 ‘마지막 무대’
20여년간 최정상급 기량 유지…최초 메이저 20회 우승 등 불멸의 기록
특유의 ‘한 손 백핸드 플레이’ 도미니크 팀 등 후배들에 큰 영감 주기도

남자 테니스의 위대한 전설 로저 페더러(41·스위스)가 라켓을 내려놓는다.

페더러는 15일(현지시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제는 경력을 마무리할 때가 됐다. 다음주 열리는 레이버컵이 남자프로테니스(ATP)에서 내 마지막 대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페더러는 지난해 7월 윔블던 이후 무릎 부상 등의 이유로 1년 넘게 공식 대회에 나오지 못하다가 다음주 레이버컵을 통해 복귀전을 치르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그러나 지난 3년간 잦은 부상과 수술 등으로 코트를 오고갔던 페더러는 결국 레이버컵을 끝으로 정들었던 코트와 작별하기로 했다. 페더러는 SNS에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내 몸의 한계를 난 잘 알고 있다”고 은퇴를 결심한 이유를 밝혔다.

‘테니스 황제’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페더러는 2000년대부터 20년 넘게 남자 테니스의 정점에 군림한 선수였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와 같은 위상을 누렸다.

1998년 프로 전향 후 그가 써내려 온 역사는 경이롭다. 2003년 윔블던에서 생애 첫 메이저대회 타이틀을 따낸 것을 시작으로 2018년 호주오픈까지 메이저대회에서만 20차례 우승했다. 자신과 남자 테니스 ‘빅3’를 이룬 라파엘 나달(22회·스페인), 노바크 조코비치(21회·세르비아)가 페더러의 기록을 넘어섰지만 20회 우승에는 페더러가 처음으로 도달했다. 여기에 윔블던(2003~2007), US오픈(2004~2008) 동반 5연패를 달성하며 역대 유일의 두 개 메이저대회에서 남자 단식 5연패를 달성한 선수로 남아 있다. 윔블던(8회)과 US오픈(5회)은 최다 우승 기록 보유자다. 이 밖에 237주 연속 남자 단식 랭킹 1위, 역대 최고령 남자 단식 랭킹 1위(36세10개월) 등 일일이 다 세기 어려울 정도의 기록을 역사에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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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에 활약한 라이벌 나달, 조코비치와의 경쟁에서 메이저 우승 기록이 추월당했고, 상대 전적도 나달에 16승24패, 조코비치에 23승27패로 밀리면서 커리어의 약점으로 남았다. 하지만 테니스계에 끼친 영향력을 따진다면 그 어떤 선수도 페더러를 능가할 수는 없다.

페더러의 테니스는 ‘완벽함’을 넘어 ‘우아함’으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트로크부터 서브, 발리 등 모든 플레이가 최상위권에 있었다. 특히 그의 상징이었던 한 손 백핸드는 도미니크 팀(오스트리아), 스테파노스 치치파스(그리스) 같은 젊은 선수들에게 영감을 줬다. “스페셜리스트들의 시대에서 당신은 클레이코트 전문가이거나, 잔디코트 전문가이거나, 하드코드 전문가이거나, 아니면 페더러일 것”이라는 전 세계 랭킹 1위 지미 코너스(미국)의 말은 페더러의 테니스가 어떤 경지에 있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페더러는 ‘신사 숙녀의 스포츠’로 불리는 테니스에 가장 걸맞은 이미지를 가진 선수였다. 데뷔 후 단 한 번도 스캔들에 휘말린 적이 없으며, 팬들에겐 늘 친절했다. ATP가 선정하는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를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19년 연속으로 놓치지 않았다. 또 지난달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최근 1년간 테니스 선수 수입 순위에서도 17년 연속 1위를 지켰다. 무릎 부상 때문에 상금 액수가 0원이었음에도 무려 9000만달러(약 1257억원)를 벌어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3~2018 메이저 20승 ‘영광의 순간들’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스위스)는 2003년 윔블던에서 첫 우승(왼쪽 위)을 차지한 뒤 2018년 호주오픈에서 마지막 메이저 타이틀을 추가하며 남자 테니스 역사상 최초로 메이저대회 20승 고지를 밟았다. AFP연합뉴스

‘황제’의 은퇴에 많은 인사들이 앞다투어 작별 인사를 전했다. 페더러와 필생의 라이벌이었던 나달은 “오늘은 나 개인적으로는 물론 스포츠를 좋아하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슬픈 날”이라며 “페더러와 코트 안팎에서 수많은 엄청난 순간을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영광이자 특권이었다”고 전했다. 지난 US오픈 우승으로 역대 최연소 남자 단식 랭킹 1위에 오른 카를로스 알카라스(스페인) 역시 “어릴 때부터 내게 영감을 준 선수였다. 꼭 경기해보고 싶었다”며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US오픈을 끝으로 은퇴한 1981년생 동갑내기 세리나 윌리엄스(미국)도 “당신은 테니스를 완벽하게 평정했다. 항상 당신을 존경해왔다”고 작별 인사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