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놈’ 노무현이 사랑했던 그 막걸리··· 4대째 100년 이어온 충북 단양 대강양조장

글·사진 김형규 기자
충북 단양 대강양조장에서 만드는 막걸리들. 왼쪽부터 아로니아 막걸리, 검은콩 막걸리, 소백산 생막걸리.

충북 단양 대강양조장에서 만드는 막걸리들. 왼쪽부터 아로니아 막걸리, 검은콩 막걸리, 소백산 생막걸리.

“야, 기분 좋다!” 대통령 퇴임식을 마치고 고향에 내려간 날,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시원하게 내뱉은 그 장면에 공감한 것은 분명 그의 지지자들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무거운 짐 내려놓고 비로소 마음 쉴 곳에 도착한 이라면 누구라도 그런 감탄사를 터뜨리지 않을까. 그럴 때 마시는 술은 얼마나 달고 시원할까. 그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서 주민들과 나눠 마신 술은 충북 단양 대강양조장에서 만든 대강막걸리다.

자타공인 ‘촌놈’인 노 전 대통령은 막걸리를 좋아했다. 그가 대강막걸리를 처음 맛본 건 2005년 봄이다. 농촌체험마을로 전국에 이름을 알린 단양군 가곡면 한드미마을을 방문했다가 식사자리에서 대강막걸리를 거푸 여섯 잔이나 마셨다.

대강양조장은 항아리에서 술을 발효·숙성시킨다. 항아리는 모두 80~90년 된 것들이다.

대강양조장은 항아리에서 술을 발효·숙성시킨다. 항아리는 모두 80~90년 된 것들이다.

조재구 대강양조장 대표(55)는 “이장이 찾아와서 ‘옆마을에 높은 분이 오시니 술을 잘 만들어달라’ 해서 군수나 도지사가 오는 줄 알았는데 저녁 뉴스에 대통령이 나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날 노 전 대통령은 떡메를 치고 팥씨를 뿌리고 두부를 만드는 등 여러 가지 체험을 했다. 고구마 순을 심으면서는 “어릴 때 어머니가 고구마 순을 심어 내다팔아 학비를 댔기 때문에 고구마 순만 보면 어머니 생각이 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은퇴하면 손주들이 찾아올 수 있는 농촌 시골에 가서 터 잡고 살면 어떨까 한다”며 처음으로 퇴임 후 계획을 비추기도 했다.

2005년 5월 단양 한드미마을을 방문해 파종기로 씨 뿌리는 체험을  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 내외. 청와대사진기자단

2005년 5월 단양 한드미마을을 방문해 파종기로 씨 뿌리는 체험을 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 내외.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로 돌아간 노 전 대통령은 대강막걸리를 정기적으로 주문해 마셨다. 경제5단체장, 3부요인, 헌법기관장 등 중요한 손님을 모시는 청와대 식사자리마다 대강막걸리가 올랐다. 미국프로풋볼리그(NFL) MVP로 금의환향한 하인스 워드가 청와대를 찾았을 때도 건배주는 대강막걸리였다. 퇴임 후에도 그 맛을 잊지 못했던 것 같다. 봉하마을 사저로도 두 차례에 걸쳐 대강막걸리가 30병씩 담긴 박스가 배달된 기록이 남아 있다.

조재구 대표는 자기 술을 사랑해준 대통령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퇴임식 날 봉하마을에 막걸리 2000병을 보냈다고 한다. 얼마 후 답례 선물로 인삼이 돌아왔다. 조 대표는 그걸로 술을 담갔다. 차마 먹을 수 없어 술을 담근 것인데, 노 전 대통령이 돌아간 뒤에는 그 술도 마시지 못하고 양조장 사무실에 고이 보관만 하고 있다.

조재구 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선물받은 인삼으로 담근 인삼주. 노 전 대통령 내외의 이름이 적힌 카드가 함께 놓여 있다.

조재구 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선물받은 인삼으로 담근 인삼주. 노 전 대통령 내외의 이름이 적힌 카드가 함께 놓여 있다.

냉정히 말해 대강막걸리는 맛이 특별히 뛰어난 술은 아니다. 전국 어디를 가도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지역 막걸리에 가깝다. 쌀로만 만드는 게 아니라 밀을 섞었으니 결코 고급이라 할 수 없고, 아스파탐 같은 합성감미료도 물론 들어간다.

노 전 대통령 생전엔 요즘처럼 좋은 재료만 골라 넣는 무첨가 수제막걸리가 유행하지도 않았다. 설령 그런 술이 있었다 한들 그가 좋아했을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특색 없어보이는 그 밋밋한 막걸리야말로 꾸밈없이 소탈하고 권위주의를 혐오했던 인간 노무현에게 가장 어울리는 술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음미하면 범상했던 술맛도 조금은 다르게 느껴진다. 술도 음식이고, 음식이란 건 결국 그 안에 담긴 추억과 사연으로 맛이 배가되는 것 아니던가.

대강양조장에 딸린 갤러리에는 오래된 기물과 자료가 그득해 막걸리박물관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대강양조장에 딸린 갤러리에는 오래된 기물과 자료가 그득해 막걸리박물관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1980년대 초반에 사용된 1000㎖ 용량의 유리 막걸리병. 유리병은 페트병이 등장하면서 금세 사라졌다.

1980년대 초반에 사용된 1000㎖ 용량의 유리 막걸리병. 유리병은 페트병이 등장하면서 금세 사라졌다.

대강양조장의 시초는 1919년 충주에서 고(故) 김영태씨가 문을 연 수안보양조장이다. 외손자 조국환씨(83)가 교직을 나와 1969년 가업을 이었고, 1979년 단양으로 옮기며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1999년부터는 아들인 조재구 대표가 대기업을 그만두고 4대째 100년 가업을 잇고 있다. 아직도 80~90년 된 옹기 항아리 50여개에 술을 담근다. 대강(大崗)이란 이름은 지명(대강면)에서 왔다. 큰 언덕, 즉 단양을 둘러싼 부드러운 소백산 능선을 뜻한다.

대강양조장 한쪽에 딸린 갤러리는 ‘막걸리박물관’이나 다름없다. 쳇다리(술 거르는 체를 올려놓는 도구), 도봉(술항아리 안의 술을 휘저어 섞는 기구), 함퇴미(술밥을 술독에 넣을 때 사용하는 도구) 등 골동품 가게에서나 볼 법한 오래된 양조장 기물들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소화(쇼와) 6년이라는 글씨가 선명한 술병

소화(쇼와) 6년이라는 글씨가 선명한 술병

1970~80년대에 유통된 포스터. 막걸리를 ‘건강식품’이라고 표현한 게 흥미롭다.

1970~80년대에 유통된 포스터. 막걸리를 ‘건강식품’이라고 표현한 게 흥미롭다.

다이쇼·쇼와 연호가 새겨진 사기 술병이나 1980년대 초반에 잠깐 쓰이다 페트병 등장과 함께 사라진 갈색 유리 막걸리병 등은 민속문화재라 부를 만하다. 막걸리를 ‘영양음료’라고 표현하는 1970년대 밀주금지 캠페인 영상도 흥미롭다.

갤러리 옆 체험·교육관에선 술 빚기, 술 짜기, 시음, 양조장 견학 등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대강양조장은 주력 제품인 소백산 생막걸리를 비롯해 특허받은 검은콩 막걸리, 직접 농사지어 빚는 아로니아 막걸리, 강냉이 막걸리 등을 판매한다. 가격은 750㎖ 기준 1200~2500원.

1970년대에 제작돼 영화관에서 상영된 밀주방지 홍보 영상. 대강양조장 갤러리에 가면 디지털 복원한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1970년대에 제작돼 영화관에서 상영된 밀주방지 홍보 영상. 대강양조장 갤러리에 가면 디지털 복원한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완성된 술을 거를 때 쓰는 도구인 ‘용수’로 만든 전등갓

완성된 술을 거를 때 쓰는 도구인 ‘용수’로 만든 전등갓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대강양조장의 체험관과 갤러리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대강양조장의 체험관과 갤러리

우리나라에 술을 빚는 양조장이 2000곳이 넘는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전통주인 막걸리와 청주·소주, 그리고 와인에 맥주까지 우리땅에서 난 신선한 재료로 특색 있는 술을 만드는 양조장들이 점차 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이 전국 방방곡곡 흩어져 있는 매력적인 양조장을 직접 찾아가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맛좋은 술은 물론 그 술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 사람들, 술과 어울리는 지역 특산음식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맛난 술을 나누기 위한 제보와 조언도 언제나 환영합니다.


Today`s HOT
러시아 미사일 공격에 연기 내뿜는 우크라 아파트 인도 44일 총선 시작 주유엔 대사와 회담하는 기시다 총리 뼈대만 남은 덴마크 옛 증권거래소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불법 집회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인도네시아 루앙 화산 폭발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전통 의상 입은 야지디 소녀들 시드니 쇼핑몰에 붙어있는 검은 리본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