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 따라…단양의 어제와 오늘이 흐른다

단양 | 글·사진 김종목 기자

충주댐 완공 전 옛 중심 상방리, 지금은 벽화마을로 ‘생기’…

대표명소 도담삼봉도 수몰로 3분의 1 잠겨

고려 흔적 적성산성, 청동기 수양개 동굴…

일제강점기 터널 개조한 ‘빛터널’은 젊은층 입맛 맞춘 명소로

단양역 주변 풍경은 남한강 덕에  뛰어나다.

단양역 주변 풍경은 남한강 덕에 뛰어나다.

단양역 주변 풍광은 철도 역사(驛舍) 중 손꼽을 만하다. 역 앞 4차선 도로를 지나면 바로 남한강이 나타난다. 강 너머 단양 천주봉의 가파른 산세도 훤히 드러난다. 단양 산수의 일단을 단양역 쪽에서 볼 수 있다. 신선이 먹는 환약 연단과 햇빛이 두루 비친다는 조양을 합한, ‘연단조양(鍊丹調陽) 단양’의 풍광을 제대로 보려면 남한강을 따라가야 한다. 단양은 신단양과 구단양으로 나뉘는데, 구단양의 역사를 들여다보고, 그 규모를 헤아려야 연단조양이 더 뚜렷하게 잡힌다.

상방리 벽화마을 마늘 모양 버스 정류소.

상방리 벽화마을 마늘 모양 버스 정류소.

구단양은 1985년 충주댐 완공 때 수몰됐다. 옛 중심이 단성면 상방리다. 단양의 명동거리로 불렸다. 지금은 벽화마을이다. 2014년 단양미협 회원들이 작업했다. 단양의 산수와 사람들을 상방리 버스 정류장과 하방리 체육공원에 걸친 집과 담에 그렸다. 공원에서 산으로 200m 오르면 수몰이주기념관이 나온다. 퇴계 이황 등 구단양의 구체적 흔적이 남았다.

상방리는 구단양의 명동이라 불렸다. 지역 미술가들이 생기를 불어넣으려 벽화를 그렸다.

상방리는 구단양의 명동이라 불렸다. 지역 미술가들이 생기를 불어넣으려 벽화를 그렸다.

단양 하면 떠올리는 인물이 이황과 삼봉 정도전이다. 정도전의 유적 중 하나는 매포읍 도담삼봉이다. 강원도 정선군 삼봉산이 홍수 때 흘러 이곳까지 왔고, 소년 정도전이 ‘물길을 막으니 도로 가져가라’며 정선군에 더는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설화가 유명하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좋아하는 듯하다. 삼봉 경치 구경, 유람선과 보트 타기를 즐긴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통계를 보면, 지난해 465만명이 도담삼봉을 찾았다. 도담삼봉과 멀지 않은 곳에 동양 최대 규모라는 석문이 있다.

도담삼봉은 단양의 대표 명승이다. 남한강에 솟은 세봉우리가 빚어내는 경치에다 정도전이 등장하는 이야기, 보트타기 같은 레저가 어우러진다.

도담삼봉은 단양의 대표 명승이다. 남한강에 솟은 세봉우리가 빚어내는 경치에다 정도전이 등장하는 이야기, 보트타기 같은 레저가 어우러진다.

석회암 풍화 과정에서 문 같은 형태의 암석이 나와 석문이라 불렀다. 도담삼봉에서 300여m 거리에 있다.

석회암 풍화 과정에서 문 같은 형태의 암석이 나와 석문이라 불렀다. 도담삼봉에서 300여m 거리에 있다.

도담삼봉도 수몰로 원래 높이의 3분이 1가량이 잠겼다.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이 만들어낸 게 지금의 삼봉이다. 설화의 비과학 이야기를 빌리자면, 또 다른 홍수 때 다른 곳으론 흘러가지 않아 조선 시대 그 자리 그대로다. 이황도 단양군수로 일할 때 도담삼봉을 찾아 시를 남겼다. 남한강 지류 단양천에서 산보와 목욕도 즐겼다. 단양천변 바위 두 개에 각각 탁오대(濯吾坮), 복도별업(復道別業)을 새겨 넣었다.

맨 오른쪽이 탁오대(濯吾臺) 암각자다. 이황이 단양천 상류 탁오대 자리에서 매일 손발을 씻었는데, 마을까지 깨끗해졌다고 붙인 이름이다. 그 왼쪽이 신라 양식을 따라는 고려 석탑 부재, 이기중이 세운 우화교 비석, 맨 왼쪽이 복도별업(復道別業) 암각자다. 이황의 친필이라고 한다. 복도별업은 ‘아름다고 깨끗한 산수를 찾아 도를 회복한다’는 뜻이다. 이 돌들은 1985년 수물 때 이곳으로 옮겨졌다.

맨 오른쪽이 탁오대(濯吾臺) 암각자다. 이황이 단양천 상류 탁오대 자리에서 매일 손발을 씻었는데, 마을까지 깨끗해졌다고 붙인 이름이다. 그 왼쪽이 신라 양식을 따라는 고려 석탑 부재, 이기중이 세운 우화교 비석, 맨 왼쪽이 복도별업(復道別業) 암각자다. 이황의 친필이라고 한다. 복도별업은 ‘아름다고 깨끗한 산수를 찾아 도를 회복한다’는 뜻이다. 이 돌들은 1985년 수물 때 이곳으로 옮겨졌다.

수몰 때 이 바위들을 기념관 마당에 옮겼다. 단양군수 이기중이 1753년 단양천 우화교 건립 때 세운 비석도 이곳에 있다. 선경(仙境)과 신선에 대한 열망은 이곳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우화는 ‘날개가 돋아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된다’는 뜻의 ‘우화등선(羽化登仙)’에서 딴 이름이다.

‘수몰민’은 ‘살던 곳이 물속에 잠긴 사람’이란 뜻이다. 소멸과 죽음의 정서가 가득하다. 수몰과 수몰민의 기록을 살피려 기념관을 둘러보려 했는데, 문이 열리지 않는다. 단성면 사무소에 물어보니 “면사무소에 연락하면 직원이 문을 열어준다”고 했다. 마당 수몰 기념 비석을 보니, 수몰 가구 수 1937호, 인구 9594명, 토지 289만2219㎡란 기록이 나온다.

수양개유적로에 잇는 ‘시루섬의 기적’ 조형물. 1972년 대홍수 때 주민들의 연대와 희생, 고통을 다룬 것이다.  와중에 갓난  아기를 잃은 여성 동상에 누군가가 누군가가 붉은색 마크스크를 씌어놓았다.

수양개유적로에 잇는 ‘시루섬의 기적’ 조형물. 1972년 대홍수 때 주민들의 연대와 희생, 고통을 다룬 것이다. 와중에 갓난 아기를 잃은 여성 동상에 누군가가 누군가가 붉은색 마크스크를 씌어놓았다.

옛 문인들은 단양을 ‘신선이 사는 곳’에 빗댔다. 단양은 정감록에서 십승지지로 꼽았던 지역 중 하나다. 전란에도 침략당하지 않고 온갖 자연재해나 역병도 피해간다는 곳이다. 수해가 만만치 않았다.

1972년 대홍수로 큰 피해가 났다. 리베카 솔닛은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재난 때 평범한 사람들의 행동이 이성·이타적이고, 연대 의식도 경험한다고 했는데, 대홍수 때 ‘시루섬의 기적’이라 명명한 일화도 솔닛 분석에 부합할 듯하다. 그해 8월19일 시루섬 주민 250여명이 높이 7m, 지름 4m 물탱크로 대피했다. 노약자를 물탱크 위로 올린 뒤 청년들은 탱크 바깥에서 스크럼을 짜고 버텼다. 와중에 돌 지난 아기가 죽었다. 어머니는 사람들이 동요할까 봐 내색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가 지금은 사라진 물탱크 건너 수양개유적로에 조형물로 세워져 있다. 지난 10일 이곳을 찾았을 때 누군가가 붉은색 마스크를 씌워놓았다. 당시 보도를 찾아보니, 한 일간지가 슬픔과 충격으로 멍해진 그 여인의 모습을 실었다.

학계는 적성을 두고 신라가 남한강 상류로 진출하기 위해 쌓은 성이라고 본다.

학계는 적성을 두고 신라가 남한강 상류로 진출하기 위해 쌓은 성이라고 본다.

적성 왼쪽이 남한강이다. 파노라마 촬영

적성 왼쪽이 남한강이다. 파노라마 촬영

적성산성

적성산성

수몰이주기념관 앞 하방3리 길을 따르면 더 옛날의 단양이 나타난다. 남한강 전망대를 마련한 ‘춘천방향 단양팔경 휴게소’ 뒤편이 적성산성이다. 단양은 고려왕조 태조 건국 23년까지 적성현이라 불렸다. 산성에서 일대를 둘러보면 단양이 군사 요충지, 핵심 수운 교통로라는 걸 알 수 있다. 소백산맥 줄기 아래 남한강 본류가 흐른다. 고구려는 이곳에서 남진하려고 했고, 신라는 북진하려 했다. 온달산성 일대가 온달테마공원 등을 갖추면서 ‘관광지화’되었다면, 적성산성 쪽은 한적한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더 과거로 가려면 하방리 적성대교에서 시작하면 된다. 이 다리에서 도담삼봉까지 보행도로가 계속 이어진다. 차량 통행도 드물어 자전거 타기에도 좋다. 이 다리 부근 남한강변이 수양개 유적이다. 중기 구석기에서 청동기까지 유적이 쌓였다. 학계는 수양개 가까이 천연 동굴이 많아 선사인이 살기 좋았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금굴, 상시 바위그늘, 구낭굴 유적이 산재했다.

이끼터널엔 사랑의 서약이 가득하다.

이끼터널엔 사랑의 서약이 가득하다.

단양 남한강변 길 야생화. 단양군은 여러 길에 ‘느림보길’이라 이름 붙였다.

단양 남한강변 길 야생화. 단양군은 여러 길에 ‘느림보길’이라 이름 붙였다.

남한강변길 중 장미터널 부근.

남한강변길 중 장미터널 부근.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은 구석기 유적보다 일제강점기 때 건설된 터널을 개조한 수양개 빛터널로 더 유명해졌다. 근처 이끼 터널도 나온다. 옛 철길 자리에 든 도로다. 양쪽에서 드리운 나무가 터널을 이룬다. 도로 양쪽 시멘트벽에 서식하는 녹색 이끼엔 연인들이 남긴 하트와 이름이 가득하다. 이 길은 만천하스카이워크 잔도로 이어진다. 지난달엔 하부 매표소와 상부 전망대를 연결하는 모노레일을 개통했다. 20~30대가 좋아할 만한 관광 요소를 두루 갖춘 셈이다. 청년들은 패러글라이딩, 래프팅을 하러 단양을 찾는다.

만천하스카이워크나 도담삼봉 같은 현대와 전통의 단양 랜드마크를 연결하는 길(느림보 강물길·유람길)을 뒀다. 신단양 초입 삼봉로 쪽 강변길은 야생화와 장미로 단장했다. 평균 14~15도를 유지해 여름철에 인기있는 고산동굴로 가는 고수교 동쪽에서 단양역까지를 잇는 보행·자전거 겸용 달맞이길도 개통했다.

이황이 도담삼봉을 두고 지은 시 마지막 구절이 “별과 달이 금빛 물결에서 솟아오르기를 기다리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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