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어디서나 맛보는 밤빵? 아뇨, 합천에서 즐기는 밤파이!읽음

김진영

합천 황후시장

합천의 농부가 계란보다도 크게 키워낸 역작 ‘대명왕밤’은 아삭한 식감에 단맛까지 겸비했다. 밤이 유명한 합천에서는 율피를 이용한 별미 피자도 맛볼 수 있다(작은사진).

합천의 농부가 계란보다도 크게 키워낸 역작 ‘대명왕밤’은 아삭한 식감에 단맛까지 겸비했다. 밤이 유명한 합천에서는 율피를 이용한 별미 피자도 맛볼 수 있다(작은사진).

몇 해 전, 모 신문사에 식재료 관련한 글을 썼었다. 글쓰기 여러 소재 중에서 밤도 있었다. 1958년에 전국적으로 토종밤 나무가 죽어 나갔다. 아주 작은 벌레인 밤나무혹벌 탓이었다. 그 영향으로 일본 품종이 국내로 들어왔다. 겨우내 군밤 장수들이 주로 사용하던 일본 도입종인 단택도 그때 들여왔다. 밤도 종류가 다양했다. 그중에 대명왕밤이 있었다. 경남 합천의 농부가 육종한 품종으로 무게가 평균 80g 나가는 대형 종이었다. 몇 가지 밤을 사면서 왕밤도 같이 구매를 해봤다. 다른 밤과 비교해 보니 두세 배 큰, 달걀하고 비슷한 크기였다. 크기가 크면 조직이 연할 거라 생각했다. 생으로 먹어 보니 아삭한 식감에 단맛 또한 훌륭했다. 맛을 보고 기사를 쓰면서 꼭 한 번 가봐야지 하다가 몇 해가 훌쩍 지났다. 모든 게 맛있어지는 가을,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주저 없이 경남 합천을 선택했다. 대명왕밤이 합천에서 나기 때문이다. 대형 품종을 만든 이유는 단순했다. 수매할 때 품종을 떠나 큰 것이 가격이 좋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크다는 것은 대략 25g 정도의 밤이다. 40년 가까이 육종하면서 크기가 세 배 넘는 밤 품종을 만들어 냈다. 촌로의 경험이 만들어 낸 역작이다. 대명왕밤농장 (055)932-4210

합천 명소 영상테마파크의 숨은 맛집은 진솔함이 가득한 로컬푸드 백반 식당이었다.

합천 명소 영상테마파크의 숨은 맛집은 진솔함이 가득한 로컬푸드 백반 식당이었다.

합천 중앙에 있는 황후시장. 상설 시장으로 3, 8이 든 날이 돼야 비로소 장터 분위기가 난다. 왜 황후일까? 살짝 궁금했다. 굳이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시장 입구 카페에 설명이 있었다. 고려 왕건의 다섯 번째 황후가 합천 출신이라는 이유다. 1000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겨우 만날 수 있는 이를 굳이 21세기에 끄집어낸 까닭이 더 궁금했다. 쓸데없는 궁금함은 아주 잠시, 현실 속 오일장 구경에 나섰다. 시장 물품이 “이제 가을”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단감, 사과도 가을 작물이 맞지만, 시장 여기저기 가득 쌓여 있는 총각무, 배추가 저리 말하고 있다. 무와 배추가 전국 각지에서 나오고 있다는 의미다. 한창 더울 때는 무와 배추가 강원도에서만 나왔다. 가을은 충청도, 경상도에서 쏟아져 나오기에 여름보다 저렴하거니와 맛도 좋다. 찬 바람이 불수록 푸성귀의 단맛은 올라간다. 푸성귀 파는 곳에서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봤다. 사지는 않더라도 물어보는 이들이 많다. 흥정이 끝나면 바로 총각무 손질을 한다. 김치 담가 본 이들은 알 것이다. 총각무 껍질 벗기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란 것을. 누군가가 까주면 참 편하겠다 싶은데, 그걸 해주고 있다. 한 곳만 그런 것이 아니라 총각무 파는 곳은 다 그러고 있다. 마트와 다른 오일장만의 판매 서비스다.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찾은 물건이 있었다. 가을이면 꼭 사 놓는 것이 말린 토란대. 경주, 봉화, 태안, 충주 오일장에서 말린 토란대를 찾았지만 없었다. 이번에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상으로 토란대를 말리고도 남았을 듯싶었다. 실제로 몇 군데서 판매하고 있었다. 다른 시장에서는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으로 너무 일찍 찾았다. 마음만 급했을 뿐, 모든 일에는 때가 있음을 가끔 까먹는다. 토란대는 육개장 끓일 때 빠져서는 안 된다. 육개장 이름은 고기가 주인공이라 이야기하지만, 숨은 주인공은 토란대다. 육개장은 토란대와 대파 듬뿍 넣고 끓여야 제맛이 난다. 토란대가 빠진다? 그럼 육개장이 아니라 국밥이 된다. 국물 잔뜩 머금은 토란대 씹는 맛이 있어야 육개장이다. 집에서 가끔 육개장이나 닭개장을 끓인다. 이번에는 장터에서 돌아와 닭개장을 끓였다. 냉장고에 있는 토종닭 한 마리 삶아 국물 내고는 불린 토란대 잔뜩 넣고 끓였다. 가을 햅쌀로 밥을 지었다. 가을이 듬뿍 담긴 한 상이었다. 전어와 낙지만이 가을에 맛있는 것이 아니다. 쌀도, 토란대도 가을이 가장 맛있다.

시장 골목에서 맛본 진한 멸치육수 향 배인 수제비. 고추 짠지의 매운 맛이 포인트다.

시장 골목에서 맛본 진한 멸치육수 향 배인 수제비. 고추 짠지의 매운 맛이 포인트다.

구경을 얼추 끝내고 밥 먹을 생각으로 시장 골목을 다녔다. 시장 한편에 유명한 백반집이 있지만, 맛있게 먹으려면 2인분 이상 주문해야 한다. 그렇게 할까 하다가 문 열릴 때까지 시간이 남아 구경을 더 했다. 시장통에는 국숫집, 순대국밥집도 있었지만 내 선택은 수제비. 칼국수와 수제비 둘 중 선택이라면 대부분 칼국수를 선택하겠지만 나는 언제나 수제비다. 어릴 때 집에서 칼국수 하는 날이면 엄마는 따로 수제비 한 그릇을 끓였다. 칼국수 먹지 않는 막내를 위해서 말이다. 성인이 된 지금도 이상하리만큼 칼국수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수제비 선택은 당연한 일. 게다가 작은 골목에서 풍기는 진한 멸치육수 향을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다. 기다란 테이블과 의자가 놓인 작은 가게에 앉아 수제비 한 그릇 주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장 구경 나온 할배 두 분도 자리를 잡았다. “아재 바쁘요?” “왜요?” “아니 안 바쁘면 같이 끓여도 되나 싶어서요?” “아… 예.” 사실 시장 구경은 이미 끝냈고, 올라가는 길에 김천에서 미팅 약속이 있었다. 시간이 얼마 지체되겠나 싶어 그리하라고 했다. 수제비가 내 앞에 놓였다. 옆 할배들보다 양이 조금 더 많았다. 부러 조금 더 넣어 준 듯싶었다. 막 나온 수제비는 뜨겁다. 숟가락으로 먹다가는 입술 댄다. 처음에는 젓가락으로 먹다가 숟가락으로 옮겨야 한다. 수제비를 씹는데 살짝 매운맛이 숨어 있다. 국물을 먹어 보니 매운맛이 또렷해졌다. 맑은 국물에 감자와 수제비 외에는 고추가 보이지 않았다. 뭐지 하다가 나중에 보니 고추 짠지가 바닥에 있었다. 맛 포인트가 마지막에 본 모습을 드러냈다. 수제비 하나만 한다. 할매수제비 (055)932-0062

달걀 크기의 묵직한 대형 밤 생산
생으로 먹어도 아삭한 단맛 훌륭
흔한 밤빵 대신 밤파이가 특산물
밤 듬뿍 넣은 피자·돈가스도 유명

작은 골목 안 얼큰한 수제비 일품
저렴한 값 ‘한우’ 식당들 옹기종기
영상테마파크 ‘백반집’ 들러볼만

지역마다 소 브랜드가 있고 이름난 생산지와 소비지가 있다. 합천은 삼가면이 유명하다. 합천 한우를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는 식당들이 모여 있다. 대명왕밤 농장 가는 길에 삼가면을 그냥 지나쳤다. 소고기라는 게 지역마다 맛의 차이가 있다고들 한다. 나는 구별을 못 하기에 굳이 찾아 먹지 않는다. 농장 일을 끝내고는 합천영상테마파크를 찾았다.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지만 내 목적은 아니었다. 테마파크 입구에 있는 로컬푸드 매장이 목적지였다. 1층은 로컬푸드 매장, 2층은 합천의 농산물로 만든 음식을 내는 식당이다. 오일장 취재마다 제일 먼저 찾는 것이 로컬푸드로 만든 음식이다. 있으면 찾아가서 먹는다. 역사에서 꼬투리 하나 잡아 침소봉대한 이야기가 가득한 특산물보다 몇 백 배 맛이 있기 때문이다. 2층 식당은 전망이 좋았다. 앞은 합천호 보조댐이, 뒤쪽은 테마파크가 한눈에 들어왔다. 식당은 백반 하나만 한다. 한 상 차림은 아니고 자율배식이다. 밥과 몇 가지 찬과 국이 전부다. 화려함은 없어도 진솔함이 가득하다. 보통은 바깥에서 식사할 때 물을 자주 마신다. ‘단짠’한 음식이 많기 때문이다. 여긴 간이 적당히 맞아 물의 도움이 굳이 필요 없다. 한동안 농가 맛집이라고 해서 한정식 비스름한 콘셉트를 정부 정책에서 민 적이 있다. 어떤 농부가 저리 먹었을까 싶을 정도의 과한 상이었다. 게다가 상차림을 위해 수입 식재료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런 거품 가득한 한정식보다는 반찬 하나하나 정성이 든 이런 밥상이 더 좋다. 지역에서 로컬푸드를 찾는 이유다. 행복한농부 (070)7755-9680

합천은 밤이 유명하다. 보통 특산물이 유명하면 이상하리만큼 빵에 집착한다. 대게, 단풍, 사과, 황태 등등. 모양은 비슷하게 만들지만, 속 안은 대동소이. 팥이거나 커스터드이거나다. 밤빵이 있겠거니 했다. 밤빵은 없고 밤을 넣은 파이는 있었다. 그것 말고도 밤 속껍질인 율피로 만든 음식도 있었다. 율피로 가루를 내서는 찹쌀 반죽할 때 넣어 떡을 만들고, 밀가루와 섞어서는 피자를 만든다. 돈가스와 파스타도 있었다. 피자를 주문하니 율피떡이 나왔다. 잘 치댄 떡에 팥소의 적당한 단맛이 꽤 괜찮았다. 율피는 피자 도우 반죽에도 사용하지만 다른 견과류 가루와 섞어 반죽해서는 작은 크기로 토핑도 했다. 율피가 건강에 좋다고 해도 일단 음식은 맛있어야 하는 법. 피자도 서울 유명한 집 못지않게 맛도 있거니와 올려진 밤 토핑도 색달랐다. 가족 단위의 여행이라면 돈가스와 파스타를 같이 주문해도 좋을 듯싶다. 특산물을 활용한 음식이 특별할 필요는 없다. 일상에서 즐길 수 있다면 그만이다. 율피카페 (055)931-9311



[지극히 味적인 시장](67)어디서나 맛보는 밤빵?  아뇨, 합천에서 즐기는 밤파이!

김진영
제철 식재료를 찾아 매주 길 떠나다보니 달린 거리가 60만㎞. 역마살 ‘만렙’의 26년차 식품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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