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짜장편’-탕탕, 면은 때려야 제 맛
시인이 밤보다 검다고 노래한 짜장면은 비주얼보다 냄새가 더 강렬하다. 코끝을 스치는 짜장면 냄새에 당할 자가 있을까. 한동안 먹지 않으면, 먹고 싶어지는 것도 짜장면이다. 촌스런 그릇에 두툼한 면발, 그 위로 야채와 고기를 넣고 볶아내 윤기가 자르르한 짜장이 올라앉아 있다. 얼른 비벼 한 젓가락 입에 넣는 순간 세상을 얻은 것처럼 미소가 절로 번진다.
그래도 제일 맛있는 짜장면은 갓 뽑은 면에 따뜻한 춘장 소스를 끼얹은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손으로 직접 면을 뽑는 곳을 찾기가 이제는 힘들다는 것. 면 잘 뽑는 전설의 고수들이 옛날 방식 그대로 짜장면을 만드는 집을 맥이 끊기기 전에 찾아 떠나본다. 탕탕, 손으로 치댈수록 반죽은 더 쫄깃해진다.
에효, 오늘도 배부른 소리다.
⑤제주 제주시 ‘송림반점’
제주 원도심. 삼도2동에 있는 ‘송림반점’은 제주 사람들에겐 추억 어린 식당이다. 1950년대 화교가 처음 장사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제주 토박이라면 어린 시절 한번쯤은 가봤던 추억이 있으리라. 지금도 옛날을 떠올리며 찾는 단골 손님들이 있다.
남루한 건물에 빛바랜 간판만큼 역사도 길다. 3명의 사장을 거쳐 지금의 주인장이 1979년부터 이 가게를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60여년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허름한 중국집에서 노부부가 음식을 만든다. 언뜻 시간이 멈춘듯한 공간이 중년에게는 향수를, 젊은 층에는 독특함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송림반점은 수타 반죽을 쳐 면발을 뽑아내는 집은 아니다. 수타는 아니지만 자가제면 방식으로 직접 면을 뽑는다고 해서 찾아가 보기로 했다. 전국에 면장들이 손으로 면을 뽑는 곳이 거의 사라진 마당에 조금 양보하기로 한 것이다. 무엇보다 한 곳에서 그 지역의 근현대사를 함께 견뎌온 오래된 가게에 가보면 뭔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끌림이 있었다.
송림반점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쯤. 다행히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저기 줄 서야 해요. 자리 없어요.”. “(그러면 그렇지, 이리 쉬울리가 없지).” 가게 안은 만석이었다.
그제야 송림반점 옆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고기집 앞에서 비를 피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비가 오고 바람까지 부는 궂은 날인데도 줄은 점점 늘어났다. 송림반점은 대기 번호표가 없다.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손님들이 나오면 눈치껏 들어가서 앉아야 한다. 주인장 혼자 홀을 보다 보니 자리 안내까지 기대하기 힘들다.
그렇지 않아도 자리에 앉기 전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다. 비를 피하느라 식당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대기 줄이 생겼는데, 그 줄을 보지 못하고 식당으로 그대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자꾸 생겨났다. 이들 모두 어김없이 다시 나와서 줄을 섰지만 남성 2명은 나오지 않았다.
“아닐거야, 사장님이 나가라고 하겠지” 하면서 기다렸지만 문 입구에 있던 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자리를 잡은 듯 했다. 내가 들어갈 순번이기도 했고, 그 뒤로도 줄이 길어서 바로잡아야 했다.
“사장님, 좀 전에 두 분이 그냥 들어가셨는데 나오지 않으셨어요. 지금 다들 기다리고 있거든요.”
물론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어디에 앉아 있는지 이미 파악한 뒤였지만 그쪽은 쳐다보지 않았다.
“아, 죄송해요. 줄 안 서고 앉으신 분 누구에요?”
결국 자리에 앉았던 남성 2명을 밖으로 내보내고 그 자리에 앉았다. 별 의도 없이 자리를 꿰차고 앉은 그들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줄 모르고 한 일이었다.
테이블 5개가 전부인 실내는 깨끗했다. 화장실 문을 피해 테이블을 놓아서인지 테이블 위치가 제각각이었다. 이 집의 대표 메뉴인 간짜장과 볶음밥, 탕수육을 주문했다.
송림반점은 수타 고수들이 운영하는 여느 중식당처럼 노부부가 운영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 이 곳의 주방장은 부인이다. 남편이 홀 서빙을 한다. 어느새 허리가 약간 굽은 할아버지가 상을 차리고, 주방에선 할머니가 덜그럭 덜그럭 춘장을 볶고 탕수육을 튀겨 낸다.
탕수육이 먼저 나왔다. 방문 후기 등에서 듣던 대로 양이 상당했다. 튀김옷이 바삭하지는 않았지만 고기는 잡내가 없고 부드러워서 돈가스를 먹는 느낌이었다. 어릴적 엄마가 만들어준 탕수육처럼 느끼함이 덜해 소스 없이 그냥 먹어도 훌륭했다. 화려하지 않은 진짜 옛날 탕수육 맛이다.
간짜장은 윤기가 잘잘 흐르는 면에 반숙 계란 프라이가 올려져 나온다. 고명으로 얇게 썬 오이를 올리고 깨를 뿌려냈다. 그 위에 갓 볶아낸 소스를 부었더니 옛날식 면과 잘 어우러졌다. 송림반점의 주방장은 특이하게 간짜장에 깻잎을 넣는다. 그래서인지 독특한 향이 느껴진다. 간짜장은 짜지 않고 순한 맛이었다. 계란국과 함께 나온 볶음밥도 밥알이 살아 있었다. 송림반점의 음식은 모두 양이 많고 간이 자극적이지 않아 먹고 난 후에도 속이 더부룩하지 않았다. 게다가 값도 싸다. 간짜장과 볶음밥은 6000원, 탕수육은 1만5000원이다.
손님들이 계속 오는 통에 영업을 마칠때 쯤 다시 찾아갔다. 출판사 영업사원을 하다 중국집을 열었다는 주인장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서울에서 출판사 영업일을 하던 이헌주 사장(78)은 직장을 제주지사로 옮기게 되면서 제주로 왔다. 어느 날이었다. 송림반점을 운영하던 지인이 서울로 이주하게 됐다며 가게를 맡아서 해 볼 생각이 없는지 물었다.
“처음에야 짜장면의 ‘짜’자도 몰랐어. 그래도 영업을 오래 했으니 장사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고 해야 하나. 직장을 그만두고 가게를 맡기로 마음먹었지.”
당시에는 장사도 잘됐다고 한다. 지금이야 송림반점이 있는 이 일대가 구도심이으로 상권이 죽었지만 시청이 옮겨가기 전만 해도 제주의 중심지였다.
“직원을 5명 두고 했는데 장사가 잘돼도 따져 보면 남는 게 별로 없더라고. 인건비로 다 나가니까. 그때만 해도 주방장 등쌀에 힘들고, 가불해가고는 다음날 안나오는 직원도 많고 해서 사람 다루는 일이 쉽지 않더라고. 맘 고생 많이 했지.”
이 사장은 한 주방장이 일러준대로 음식을 배워서 직접 해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요리는 자신이 없어서 주방은 부인 정순희씨(69)가 맡고, 배달은 이 사장이 나섰다. 제주 중학교 등 인근에 배달이 많아서 장사는 꽤 괜찮았다고 한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주요 행정기관 등이 이전하면서 원도심 유동인구가 빠져나갔고 하나둘씩 점포들도 사라졌다. 식당이 있는 건물도 재개발 계획으로 곧 헐린다고 했지만 개발 계획이 취소되면서 송림반점은 아직 남아있다.
이 집의 면은 다른 중국집보다 가늘다. 언제부턴가 대부분의 중국집에서 공장에서 생산된 중화면을 당연한 듯 사다 쓰고 있지만 송림반점은 반죽을 해서 직접 뽑는다. 수타는 아니지만 자가제면 방식으로 만드는 면에 대한 자부심도 있다.
그는 “우리집은 밀가루, 식소다, 소금만 넣어서 반죽을 한다. 집사람이 오래하다 보니 잘 한다”며 “다른 주방장들이 왜 이렇게 힘들게 하냐고 하더라. 밥도 직접 볶고, 간짜장도 소스를 매번 볶아서 내려니 힘이 든다”고 말했다. 그래도 이렇게 하는 이유를 물어보니 답은 간단하다. “손님들이 맛있다고 좋아하니까….”
식당에는 부부와 이들을 돕는 이웃 주민 1명, 직원 1명 모두 4명이 있다. 부부의 자녀들은 모두 다른 직업이 있어 이 일을 이어받을 사람은 없다. 이 사장은 “우리 부부가 힘 닿는데까지 할 것이다”라고 했지만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둬야 하는 집이 또 하나 늘었다.
이 사장은 방송에서 자꾸 연락이 오지만 출연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래도 손님들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SNS) 등에 송림반점을 소개해 주는 글을 올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덕분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늘었다.
“동네 주민들한테는 미안해, 외지에서 손님들이 많이 오다 보니 동네 사람들이 우리 음식을 통 못 먹게 됐어.”
송림반점은 제주 공항에서 멀지 않다. 식당 바로 앞에 차량 몇대 정도 세울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바로 옆에 공영주차장도 있다. 오전 11시30분에 문을 열고 오후 4시30분쯤 문을 닫는다. 재료가 떨어지면 일찍 문을 닫을 수도 있으니 전화를 해보고 가는게 좋다. 제주까지 가서 하필 중국집이냐고 하겠지만 가보면 안다. 간짜장 한그릇에 마음이 차오른다는 것을. 맛만 따진다면 이름난 중식당들이 차고 넘치지 않는가.
송림반점 벽에는 누군가 써놓은 헌시가 걸려 있다.
“제주시 삼도일동 857 번지에는/ 아주 오래된 추억이 있다./ 한그릇의 짜장에 온갖 희로애락이 녹는다./ 이제는 일흔이 넘어버린 주방장의 웍 돌리는/ 소리가 애처롭다 못해 가슴 한편이 시려온다./ 하지만 나는 짜장맛을 잊지 못해/ 40년 동안 이곳을 찾는다.(중략)/이곳을 찾는 청춘들도!/ 나처럼 40년 동안 그맛에 취해 있겠지!”(2020년 8월6일 정병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