캬~ ‘가을 숲’이 내는 감칠맛읽음

김진영 MD

(92) 충북 영동 오일장

핵산계 감칠맛의 최고봉 버섯과 아미노산 계열 감칠맛의 지존 올뱅이가 만났으니 맛이 없을 수가 없는 능이올뱅이국.

핵산계 감칠맛의 최고봉 버섯과 아미노산 계열 감칠맛의 지존 올뱅이가 만났으니 맛이 없을 수가 없는 능이올뱅이국.

버섯 좀 먹어본 사람이라면 갖은 버섯의 씹는 맛과 끝내주는 국물을 품은 잡버섯 찌개를 고른다.

버섯 좀 먹어본 사람이라면 갖은 버섯의 씹는 맛과 끝내주는 국물을 품은 잡버섯 찌개를 고른다.

노란 가을이 먼저 들판에 내려앉는다. 잠시 머물다 이내 산으로 넘어가 들불 같은 단풍으로 변신한다. 시월, 본격 가을의 시작이다. 가을다운 것들이 쏟아진다. 햅쌀은 연중 가장 맛이 있을 때이고, 팥이며 잡곡도 서서히 나오는 시기다. 어디를 가든 모든 것들이 가장 맛날 때 충북 영동으로 떠났다. 연휴의 시작인 지난 8일, 일부러 오전 7시 전에 출발했다. 수도권만 조금 막히고는 이내 영동까지는 수월하지 않을까 했다. 착각이었다. 나와 같이 생각한 이들이 너무 많았다. 대전 정도 갔을 때 이미 12시가 넘었다. 출발 전, 영동에 너무 일찍 도착하면 뭐할까 쓸데없는 고민을 했었다. 1시가 되어서야 겨우 도착했지만, 날은 너무도 좋았다. 다음날은 비가 왔지만 말이다.

영동군은 포도 생산지로 유명하다. 가을이면 모든 것이 맛나다고 이야기했다. 포도 또한 마찬가지다. 여름에 먹는 포도는 원래 포도 맛의 반이고 가격만 두 배다. 10월은 8월이나 9월과 달리 포도 가격이 저렴하다. 맛은 두 배로 오르고 가격은 반값이다. 지금은 한 송이도 다 못 먹을 정도로 달다. 다들 포도송이 큰 것을 좋아하지만 가격만 비싸다. 작은 송이는 크기만 작을 뿐 당도까지 모자라지는 않다. 2㎏ 기준 두 송이 큰 것은 3만원대, 세 송이 이하 작은 것은 2만원 이하다. 선물용이 아니라면 작은 송이를 고르는 게 좋다. 영동 어디를 가나 쉽게 만나는 게 포도와 감이다. 영동 시내를 빠져나오면 가로수처럼 흔히 감나무가 보인다. 영동의 포도는 달기로 유명하다. 그 덕에 와인 또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오일장 취재 갔던 날, 와인 축제가 영동에서 열리고 있었다.

가을비에 장터는 서는 둥 마는 둥
그 와중에 능이, 토종팥이 반갑다
로컬매장의 신품종 배, 달고 그윽

사방이 산, 자연산 버섯이 특산물
능이올뱅이국과 잡버섯 찌개
남다른 맛과 향…끝내주는 국물 맛
엉덩잇살 아닌 ‘진짜 돼지갈비’도

영동의 능이버섯

영동의 능이버섯

영동 오일장은 시내 중심부에 있는 영동전통시장에서 4와 9가 든 날에 열린다. 오랜만에 장터다운 장터를 보겠지 하는 부푼 기대감이 있었다. 기대는 항상 만족할 수 없는 법. 가을을 재촉하는 비에 장터는 서는 둥 마는 둥이었다. 몇몇이 삼삼오오 여기저기 모여 있는 수준이었다. 사방팔방 산으로 둘러싸인 영동이기에 가을에만 반짝 보이는 버섯을 볼까 하는 기대가 비에 무너졌다. 비가 온 탓에 능이만 겨우 시장에 나와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더라도 볼 것은 보고, 살 것은 사야 하는 법. 시간을 두고 기다리니 사람들도 나오기 시작하면서 흥정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살 것이 있나 보다가 반가운 토종팥을 봤다. 1년 중 이맘때부터 잠깐 보는 팥이다. “찹쌀하고 밥하면 고소해.” 봉지에 담아주면서 한마디 보탠다. 붉은팥이 대세일 뿐 팥이 붉은 것만은 아니다. 노란 것도, 파란 것도 있다. 콩도 마찬가지다.

토종팥과 동부콩.

토종팥과 동부콩.

비 오는 시장 이곳저곳을 다녔다. 가을 즈음 갔던 충주 시장이 생각났다. 분위기가 비슷해서가 아니다. 충주라면 아케이드 천장이 있는 시장통에서 장이 섰을 것이다. 파는 것 사는 것에 있어 공통점이 있다. 깻잎지는 충주보다 파는 곳이 적지만 파는 양은 비슷할 정도로 많았다. 가을 시작할 때 노랗게 물든 깻잎을 팔거나, 소금에 절인 것을 팔고 있었다. 먹어본 적이 없기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해보니 고기하고 참 잘 어울릴 듯싶었다. 사진도, 물건도 눈에 띄었을 때 사거나 찍어야 한다. 오는 내내 깻잎지와 또 하나 안 산 것을 두고 후회했다.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곳 중에 떡 파는 할머니가 있었다. 어떻게 파는지 여쭈니 “1000원에 네 개” 한다. “1000원어치만 주세요.” “안 돼. 2000원부터야.” 콩고물 묻힌 떡이 먹음직스러웠으나 운전하면서 먹다 보면 나중에 청소할 일이 부담스러워 그만두었다. 떡 안 산 것이 영 후회됐다. 이맘때 예산장에서 사먹은 떡도 생각났기에 후회는 더 컸다.

오일장과 로컬매장의 장점은 평소 보기 힘든 상품을 가끔 만난다는 것이다. 영동 또한 로컬매장이 역 앞에 있다. 다른 곳처럼 크지는 않지만, 영동에서 생산한 와인이나 농산물을 살 수 있다. 구경삼아 갔다가 배 신품종 ‘그린시스’를 만났다. 색만 봤을 때는 황금배인가 싶었지만, 반점이 없는 거로 봐서 역시 그린시스였다. 작년부터 관심을 뒀던 이 배의 맛이 궁금했다. 집으로 와서 맛본 배는 과즙이 많고 달곰했다. 한아름과 원황을 합쳐 놓은 듯한 풍부한 과즙과 약간의 서걱거림이 좋았다. 껍질이 얇아 사과처럼 껍질째 먹으니 그윽한 배향까지 더했다.

영동은 산악지대다. 태백처럼 높은 산은 아니지만, 사방이 산이다. 산이 있으니 강물이 지난다. 무주 또는 영동에서 시작한 금강 줄기가 흐르면서 다슬기를 내준다. 산과 물 좋은 곳마다 다슬기 식당이 있다. 섬진강과 지리산의 구례와 곡성, 남한강 지류가 흐르는 영월이나 정선이 그렇다. 문경 또한 빠지면 섭섭하다. 다슬기 외에 부르는 명칭이 있다. 문경서는 골뱅이라 부르기도 한다. 여기서는 올뱅이라 부른다. 다슬기로 끓인 국은 비슷한 모양새다. 맑게 내는 곳도 물론 있지만 보통 된장 바탕에 우거지나 아욱을 넣는다. 들어가는 다슬기의 양이나 된장 맛에 따라 다양한 국물 맛이 난다. 거기에 잘 익은 김치면 그만이다. 영동에서도 황간면에 가면 올뱅이국 파는 곳이 몇 집 모여 있다. 이 동네의 특징은 버섯이 들어간 올뱅이국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 손님은 올뱅이만 든 것을 고른다. 가격이 1만원 정도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자연산 버섯이 든 국물맛이 궁금했다. 처음 간 식당의 능이올뱅이국은 2인분부터 주문이 가능했다. 서운했지만 식당 규칙이니 대신 올뱅이국을 택했다. 구수한 된장과 우거지가 잘 어울렸다. 곰삭은 김치와 새콤한 오이김치가 올뱅이국물과 조화로웠다. 다음날 아침으로 다른 식당의 올뱅이국을 선택했다. 다행히 여기는 능이올뱅이국을 주문할 수 있었다. 맛보기 전까지는 국물이 좋을 거라 상상만 했다. 실제로 먹어보니 버섯이 내는 핵산계 감칠맛에 아미노산 계열의 감칠맛을 내주는 올뱅이와 된장이 내는 맛이 기대 이상이었다. 자주 먹는다면 1만원 이상의 가격 차이가 부담스럽겠지만 어쩌다 1년에 한 번 정도 가을에 먹는다면 내 선택은 이거다. 경부고속도로 황간 나들목을 나오면 바로 있다. 오다가다 밥때라면 들를 생각이다. 해송식당 (043)745-8253, 안성식당 (043)742-4203

영동 갈빗집은 대부분 진짜 돼지갈비를 내준다.

영동 갈빗집은 대부분 진짜 돼지갈비를 내준다.

돼지갈비 식당은 많다. 다들 ‘수제’임을 내세운다. 실제 돼지의 갈비 부위를 손질해서 내주는 곳은 극히 드물다. 90곳 넘는 지역의 오일장을 다니면서 봐도 돼지갈비를 내주는 곳은 극히 드물었다. 강릉과 인제, 포항 정도가 생각난다. 영동도 돼지갈비 메뉴를 내놓은 곳이 꽤 있었다. 다른 곳과 달리 여기는 대부분 돼지갈비를 주문하면 진짜 돼지갈비를 내준다. 돼지 엉덩잇살을 손질한 뒤 수입한 뼈에 붙여 왕갈비라 파는 것이 아니라, 모양이 제각각인 손질 돼지갈비가 나온다. 가격도 저렴해서 다른 곳 엉덩잇살 1인분 가격이면 여기서는 2인분에 공깃밥까지 가능하다. 돼지갈비 1인분 가격이 9000원이기에 그런 셈이 나온다. 엉덩잇살로 만든 갈비맛은 달다 못해 질린다. 여기는 은은한 단맛이 매력이다. 생갈비는 1만2000원으로 조금 비싸고 미리 예약해야 한다. 영동 시내에 있는 웬만한 돼지갈빗집은 돼지갈비를 내준다. 돼지갈빗집에서 돼지갈비를 먹는 것,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홍능갈비 (043)744-1185

과즙이 풍부하고 달곰한 신품종 배 그린시스.

과즙이 풍부하고 달곰한 신품종 배 그린시스.

장이 섰을 때 비가 온 탓에 버섯 구경을 못했지만 미리 맛본 덕에 서운함은 덜했다. 소백산맥의 중간이 영동인지라 자연산 버섯을 내는 곳이 많다. 특히 영동군 상촌면 일대에 모여 있다. 나처럼 혼자인 사람은 대부분 버섯육개장을 선택한다. 몇 해 전 버섯 산지인 괴산군 청천 시장에서 맛본 육개장은 아직도 기억날 정도다. 도시에서 파는 버섯육개장과는 맛과 향이 다르다. 여럿이라면 찌개나 전골을 선택한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능이나 송이로 요리한 것도 맛볼 수 있지만 내 선택은 잡버섯 찌개. 능이와 송이가 아니기에 잡버섯이라 하지만 찌개에 넣는 버섯은 각각의 이름이 있다. 밀버섯, 가지버섯, 밤버섯, 가다바리(뽕나무버섯부치), 싸리버섯 등이다. 닭다리버섯(흰가시광대버섯)도 들어가 있다고 했다. 민간에서는 데친 뒤 찬물에 담가 독성을 빼서 먹는 버섯이다. 다만 나라에서는 독버섯으로 규정하고 있다. 돼지고기와 버섯이 내는 국물 맛도 좋지만 각각의 이름을 지닌 버섯의 씹는 맛이 달라 송이나 능이 먹을 때 예상할 수 있는 맛과는 다른 재미를 더한다. 끝내주는 국물은 덤이다. 청학동 (043)743-1837.



[지극히 味적인 시장]캬~ ‘가을 숲’이 내는 감칠맛

▶김진영

매주 식재료를 찾아 길을 떠난다. 먹거리에 진심인 만렙의 27년차 그린랩스 팜모닝 소속 식품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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