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전주 새벽시장
‘복닥복닥’ 곳곳서 모여드는 전라도 식재료
전주를 대표하는 음식 하면 비빔밥, 콩나물 해장국, 피순대 등을 떠올리곤 한다. 필자는 전주 음식 하면 우선 두부부터 떠올린다.
오래전, 22년 전이었다. 서울 양재동에 있는 aT센터에서 열린 식품박람회를 갔었다.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두부 코너에 시선이 꽂혔다. 그때는 진짜로 드물었던 국내산 콩으로 만든 두부였다. 하던 일이 국내산과 친환경 상품을 구하는 일인지라 다가가서 시식용 두부를 맛봤다. “오~~” 소리가 절로 나왔다. 두부 가격 4500원, “오…으억!” 자동 반사로 터져 나왔다. 지금이야 국내산을 쓰는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격이다. 20년 전에 대기업에서 나온 국내산 두부가 2000원 후반대였다. 다른 국내산 두부보다 두 배가량 비쌌다. 명함을 주고받고는 연락을 기다렸다. 가격을 떠나 맛이 좋았기 때문이다. 먼저 연락을 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잊고 지내다가 추석을 앞둔 여름 끄트머리에 함정희 사장님과 딸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두부를 여러 곳에 입점하기 위해 소개했다고 했다. 다들 맛은 좋으나 가격을 듣고는 거절했다고 한다. 농담 삼아 여기서도 거절하면 한강에 갈 생각으로 찾아왔다고 했다.
찾고 있던 상품이 저절로 찾아왔으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매장에 발주 요청을 했다. 처음에는 가격을 보고 놀라던 점주들이 하나씩 팔리는 것을 보고는 주문하기 시작했다. 먹어 본 손님은 그다음부터는 이 상품만 찾기 시작하면서 인기 상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함씨네 성공 이후 수많은 지역에서 우리콩으로 만드는 진한 두유의 두부 공장이 생겼다.
그렇게 20년이 지나는 사이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내가 최고의 맛으로 기억하는 전주 함씨네 두부가 최근 문을 닫았다. 두부와 청국장 맛을 본 손님들이 이대로 끝내서는 안 된다고 의기투합했다. 함씨네 살리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함씨네가 운영했던 한옥마을 한벽당의 뷔페는 지금도 가끔 생각날 정도로 맛이 뛰어났다. 밥이 맛있었고 두부가 전국에서 가장 맛있던 곳이다. 그런 곳이 여러 사람들이 힘을 모은 덕분에 부활의 날갯짓을 하고 있다. 이런 인연이 있기에 전주하면 무조건 팔복동에 있던 두부 공장부터 떠올린다.
남문시장 옆 강변 장터엔 구례·완주·순창 등
지역 농수산물 총집합
오일장 없어도 상설·로컬푸드 매장에서
충분히 만날 수 있는 ‘지역의 맛’
‘톡톡’ 터지는 식감이 일품인 민물새우에
씹는 맛이 좋은 두메부추 듬뿍
나만의 ‘전’ 과 ‘라면’ 완성
전주는 오일장이 서지 않는 도시다. 그런 곳이 꽤 있다. 강릉, 속초, 정읍, 목포가 그랬다. 대신 이런 곳은 상설시장이나 새벽시장이 오일장을 대신하곤 했다. 전주는 오일장 대신 상설시장과 새벽시장이 선다. 전주의 새벽시장은 남문시장 옆 강변에서 열린다. 6월에 새벽시장을 찾은 시간은 오전 6시30분. 장은 한창이었다. 이미 필요한 것 사서 빠져나가는 이도 있었다. 하천 주차장에 차를 대고는 다리 건너 시장 구경에 나섰다. 항상 하는 이야기가 ‘탐색’이다. 매번 가는 시장이라면 그럴 필요가 없지만 처음이라면 탐색이 먼저다. 시장에 뭐가 나와 있는지 먼저 봐야 한다. 시장에 나와 있는 상품의 원산지를 봤다. 멀리 구례에서 온 것부터 가까운 완주군 이서면까지, 예전에 전주로 집산이 몰리듯 근처 시군의 농산물이 모여 있었다. 탐색을 끝냈으면 필요한 거나 아니면 딱 봐서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사면 된다. 딱히 이거라는 것은 없었다. 새벽시장에는 지난번 의성장에서 샀던 조선배추도 있었다. 이미 열무김치를 담가 알맞게 익을 때라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시장 다니면서 여러 번 망설였던 민물새우가 눈에 들어왔다. 순창서 온 아주머니가 냉매 위에서 펄떡거리는 새우를 앞에 두고 있었다. 얼마인지 물으니 한 공기에 1만원이라고 한다. 민물새우탕은 시원하고 맛있다. 요새 식당에서 파는 새우탕의 원산지가 국내산인 경우가 드물다. 저수지라면 으레 있던 새우가 외국 유래 종의 범람으로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배스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민물새우 한 공기를 샀다. 민물새우는 몸통에 줄이 가 있는 줄새우다. 토하젓을 담그는 새뱅이와는 다른 종이다.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한다. 사 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봤다. 상자째 사 가는 식당 주인, 손잡고 구경 삼아 다니는 노년의 부부, 하천에 난 길을 뛰던 아저씨가 잠시 숨을 고르면서 물건 사는 모습 등 다양했다. 농산물 가격은 일반 오일장보다 저렴한 듯싶었다. 대야 크기에 따라 5000원, 1만원이 기본인 오일장과 달리 제각각이었다. 전주 새벽시장만의 매력인 듯싶었다.
전주는 새벽시장과 상설시장 외에 또 다른 시장이 있다. 지역 곳곳에 있는 로컬푸드 매장의 숫자로는 전국 최고라고 생각한다. 로컬푸드 매장이 잘 되는 김포도 두 개다. 전주는 마음만 먹으면 금세 갈 수 있는 매장이 완주를 포함해 대략 아홉 곳인 듯싶다. 매장이 잘 되는 곳은 상품이 가득 쌓여 있다. 가본 몇 군데 모두 상품이 많았다. 진열된 상품을 구경하다가 부추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세 가지 부추가 모여 있었다. 가장 많이 심는 일본 품종인 그린벨트, 솔잎처럼 생겼다고 해서 솔부추, 널찍한 잎이 특성인 두메부추까지 말이다. 세 가지 부추는 각각의 특성이 있다. 잘 자라고 수확량이 많은 그린벨트, 고소한 맛과 단맛이 좋은 솔부추, 씹는 맛은 두메부추가 있다. 셋 중에서 가장 맛이 좋은 것은 솔부추다. 그다음이 두메부추다. 지난번에는 솔부추를 샀으니 이번에는 두메부추를 샀다. 부추를 사면서 노지에서 생산한 애호박도 하나 샀다.
민물새우탕을 끓이려다가 새우부추전으로 방향 전환을 했다. 부추와 애호박을 송송 썰어 반죽하고는 마지막에 새우를 넣으면 반죽 완성이다. 제철 채소가 내주는 단맛에 톡톡 터지는 식감의 고소한 민물새우 맛이 일품이다. 그 어디서도 팔지 않는 나만의 민물 새우전이다. 민물새우가 조금 남았다면 라면에 응용하면 된다. 이만한 새우라면을 먹은 적이 없을 것이다. 인공 새우향이 나는 새우라면과 달리 자연이 주는 구수하고 시원한 새우라면 맛을 볼 수 있다. 끓는 물에 면과 스프 넣고 조금 끓이다가 새우 넣고 살짝 끓이면 그만이다. 요리 초보도 끓일 수 있다. 로컬푸드 매장을 나오면 바로 앞에 지역의 식재료를 활용해 반찬과 떡을 만드는 연미향이 있다. 다른 것도 맛나지만 바람떡이 맛있어 사러 갔다가 쑥떡만 사서 나왔다. 달지 않은, 예전의 떡 맛을 볼 수 있다. 완주로컬푸드협동조합 직매장 (063)253-5760, 지평선연미향 (063)223-1511
로컬푸드 매장만 있는 것은 아니다. 농가 레스토랑을 같이 운영하는 곳도 있다. 로컬푸드 매장에 농산물을 공급하는 농가의 물품을 활용해 요리하는 곳이다. 일반적인 한식 뷔페와 모양새는 같아 보인다. 다양한 음식이 진열되어 있기에 비슷해 보여도 속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일반 한식 뷔페는 음식이 더 많다. 고기를 비롯해 생선까지 다양하다. 다양한 만큼 음식 만들 때 들어가는 식재료 또한 다양한 나라에서 왔다. 돼지고기 한 가지만 보더라도 남미와 유럽, 미국, 캐나다까지 전 지구적이다. 로컬푸드 매장의 식재료 생산국은 대한민국이고 그중에서도 전주 주변의 농가다. 거창하게 탄소 발자국까지 꺼내지 않아도 남미에서 온 것과 이웃한 김제에서 온 거를 비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점심시간은 오전 11시30분부터다. 서둘러 갔지만 이미 만석 일보 직전이었다. 서둘러 계산하고 자리를 잡았다.
작년 김제 로컬푸드 식당에서 먹은 맛있는 쌈채 생각을 하며 채소를 담았다. 쌈을 싸서 먹었다. 맛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씹는다는 생각만 들었다. 로컬푸드 매장에 내는 채소 중에서 일부는 양액재배 채소가 나온다. 양액재배 하면 손님들이 선택하기 좋은 깔끔한 모양새다. 흙에서 재배하는 것보다 기후 영향을 덜 받기에 가격 변동 또한 적다. 여러모로 장점이 있으나 잃는 것 또한 있다. 맛과 향을 잃는다. 모양은 같아도 향과 맛이 여리다. 새벽에 수확해서 식탁 위에 올라왔음에도 향과 맛이 여렸다. 맛있는 찬에 다소 힘이 빠지는 채소였다. 그래도 한식 뷔페에서는 맛보기 힘든 맛이 농가 레스토랑에 있었다. 농가 맛집이라고 힘만 잔뜩 들어간 식당과는 달리 누구나 손쉽게 지역의 맛을 즐길 수가 있다. 농가레스토랑행복정거장 전북혁신점 (063)903-5756
4년 동안 유독 전주를 빼놓고 다녔다. 아마도 오일장이 없다는 이유와 국적 불명의 먹거리가 가득한 한옥마을에 대한 반감 때문일 수도 있다. 전주를 다녀왔다. 전라북도 모든 시군의 오일장을 마쳤다.
매주 식재료를 찾아 길을 떠난다. 먹거리에 진심인 만렙의 28년차 식품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