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밑이 어두울 수도 있다. 양평 이야기다. 대도시 서울 옆에 이토록 깨끗한 자연을 품은 곳이 있을 줄이야.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경기 양평군은 식수를 보호하기 위해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인 곳이 많다.
양평은 조금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서울이 점점 커지고, 주변 지역들도 하나같이 신도시를 만들어 갈 때 양평은 자연을 보전해야 한다며 개발을 막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덕분이다. 청정 자연 속에서 뛰놀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예술적 영감을 자극해 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 이번 여름, 양평으로 떠나자. ‘촌캉스’ ‘뮤캉스’가 우리를 기다린다.
촌스럽게
농산물 수확·고기잡기에 밭두렁 달리기…황순원문학촌선 옛 정취 흠뻑
■연중무휴 농촌 체험 테마파크, 수미마을
양평수미마을은 국내에서 가장 성공적인 농촌 체험 프로그램을 구축, 운영하는 곳이다. 계절에 따라 이루어지는 농작물 수확 체험은 물론이고, 농촌에서 즐길 만한 액티비티를 다수 갖춘 채 여행객을 맞이한다. 여기까지만 설명한다면 다른 농촌체험마을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을 터. 수미마을은 체험 프로그램을 연중 상설 운영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언제든 농촌여행을 떠나올 수 있도록 조성한 셈이다. 말 그대로 농촌 체험 테마파크가 따로 없다.
그저 지나가다 가볍게 들러도 좋다. 강원도 여행을 가는 길에도, 반나절 정도 나들이를 다녀올 생각으로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주변에 펜션 등 마을 주민이 운영하는 펜션이 많다. 하룻밤 머무르며 여름휴가를 보내는 것도 가능하다.
일부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현장에서 곧바로 참여할 수 있다. 매표소에서 티켓을 구매한 후 해당 체험장으로 이동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되는 방식이다. 물론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예약이 꼭 필요하지만 말이다. 인기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한데 모아 패키지 형태로 할인 판매하기도 한다.
체험 프로그램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마을에서 수확한 농작물로 찐빵이나 피자를 만드는 체험이 가장 기본적이다. 여름철에는 물놀이를 하기에 적당한 수영장 시설을 갖추었으며, 남한강의 지류인 흑천이 바로 앞에 흐르기도 한다. 맨손으로 메기를 잡아보는 체험 프로그램은 수미마을의 시그니처다. 직접 잡은 메기는 장작불에 구워주기도 한다. 갓 잡아 구워 먹는 메기는 고소한 풍미와 담백한 맛을 자랑한다.
ATV(All-Terrain Vehicle)를 타고 밭두렁을 달려보는 것은 어떨까. 거친 비포장 길을 박차고 달리며 스릴을 느껴보자. 옥수수, 들깨 등등 수미마을이 재배하는 작물들이 길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모험적인 요소를 더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고기를 꼬치에 꽂아 숯불에 구워 먹는 바비큐 체험처럼 가볍게 즐길 만한 프로그램도 많다. 운영 방식, 마을 내 펜션 숙박 정보 등 자세한 내용은 수미마을 홈페이지(www.soomyland.com)에서 안내하고 있다.
■소나기 내리는,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어릴 적, 국어 교과서에서 한 번쯤 보았던 소설 <소나기>에는 ‘양평읍’이라는 지명이 나온다. 소녀가 외할머니댁에 오기 전 잠시 살았던 곳으로 등장한다. 딱 그 이유 하나로 양평에 황순원을 기리는 문학관이 생겼다(일반적으로 작가를 기리는 문학관은 고향에 생기기 마련이지만, 황순원은 이북 출신이니까).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이 그곳이다. 황순원의 일대기와 그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는 공간이다.
으레 문학관이라고 하면 단조로울 수도 있는 법. 그러나 이곳에서는 지루할 틈이 없다. 가장 먼저 가보아야 할 곳은 앞마당이다. 황순원문학촌 야외 공간에 <소나기>의 주요 장면을 재현해 두었다. 소년과 소녀가 만났던 시냇가와 징검다리는 물론이고, 한 시간에 한 번씩 사방에 소나기를 뿌려주는 스프링클러까지 설치되어 있다. 한여름에 방문한다면 이보다 더 시원한 순간은 없을 터.
아쉽게도 소나기가 쏟아지는 시간은 약 40초에 불과하다. 그러나 강수량만큼은 어마어마하다는 점을 잊지 말자. 우산을 챙겨도 버티기 쉽지 않을 수 있으니 주의할 것. 대신 비가 쏟아지는 순간에 두 주인공이 비를 피했던 수숫단에 들어가 보는 것은 어떨까. 정말이지 원작에 충실한 곳이다.
수숫단을 형상화한 듯한 전시관에 들어서면 더욱더 다채로운 볼거리가 이어진다. 생전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았던 작가의 여러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 한쪽에 자리한다. 황순원의 여러 작품을 디오라마로 구현해 둔 전시실, 소설의 주요 장면을 미디어아트로 재해석해 선보이는 공간이 관람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모던하게
컨템퍼러리·미디어 아트에 디자인 가구 등…다채로운 미술 세계 곳곳에
■여름엔 ‘뮤캉스’라, 양평 미술관으로
양평은 예술의 도시다. 인구 대비 예술인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그래서인지 양평 곳곳에 크고 작은 미술관이 많다.
수십 년 전부터 소규모 갤러리가 많았던 곳이지만, 최근 들어서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소개하는 대규모 미술관이 속속 들어서고 있기도 하다. 양평으로 ‘뮤캉스(뮤지엄+바캉스)’를 떠날 시간이다.
예술의 도시, 양평의 현재 모습을 살펴보고 싶다면 양평군립미술관으로 향하자. 2011년 개관한 이 미술관은 지역은 물론, 국내외를 대표하는 여러 예술가의 작품을 전시한다.
끊임없이 다양한 전시를 선보인다는 점이 양평군립미술관의 특징이다. 양평군이 직접 운영하고 있어서 관람 요금이 저렴한 축에 속한다는 점 또한 매력적이다.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구하우스 미술관은 세계적인 컨템퍼러리 아트 작가들의 작품을 한데 모아 놓은 곳이다.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이, 집에서 편안하게 작품을 감상하는 느낌을 받도록 실내를 구성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국내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로 손꼽히는 구정순 대표가 수집한 500여점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고, 세계 각지에서 활동 중인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2022년 개관한 이함캠퍼스는 국내 단추 제조 1위 업체, (주)두양에서 문화재단을 출연해 설립한 복합문화공간이다.
‘이함’이라는 이름은 빈 상자라는 뜻이다. 이 공간에 새로우면서도 다양한 문화적 시도를 담아내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개관 당시 독특한 형태의 미디어아트로 알려진 ‘사일로랩’의 <앰비언스> 전시를 개최하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으며, 현재 20세기 가구 디자인을 한눈에 살펴보는 <사물의 시차> 전을 진행하고 있다.
가볍게 작품을 둘러보고 싶다면 북한강변에 위치한 조용한 분위기의 스페이스 서종도 추천한다.
갤러리형 카페로, 커피 등 음료를 마시면서 전시된 작품을 감상하기에 좋은 곳이다.
>>양평에 간다면
2014년부터 북한강 옆에서 열렸던 플리마켓, ‘문호리 리버마켓’이 이제는 매일 방문객을 맞이한다. 그동안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선보였던 상품들을 더욱더 쉽게 만나볼 수 있게 됐다.
장소는 테라로사 서종점이 있는 ‘테라로사 타운’이다. 분위기는 그대로다. 감성적이면서도 활기가 가득하다.
이곳에 촘촘하게 매대를 편 채 각종 제철 농산물, 핸드메이드 소품 등 저마다 챙겨 나온 물건을 판매한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구매하기를 바란다.
양수리에서는 3~10월의 첫 번째 토요일마다 ‘두물뭍 농부시장’이 열린다. 남한강과 북한강 유역에서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이들이 모이는 직거래 장터다.
20여명의 농부가 자부심을 담아 기른 농작물을 직접 판매한다. 하나같이 농부들의 정성과 애정이 가득 담긴 먹거리들이다. 양평의 요리사들도 자신만의 레시피를 활용해 한쪽에서 작은 식당을 연다.
귀농, 귀촌에 관심이 있다면 농업과 관련된 체험 프로그램이나 강연을 눈여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