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타고 파주시티 투어
어디든 떠나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어디로 갈지, 누구와 떠날지, 어떤 음식을 먹을지, 운전하고 갈지 등 결정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모든 것들을 간단하게 해결해주는 여행이 있다면 어떨까? 파주 여행은 보통 자가용을 이용하게 마련이지만, 운전 등 세세한 결정의 부담까지 내려놓고 싶다면 파주시티투어 버스를 고려해봐도 좋다. 요일별로 테마가 달라서 취향껏 선택할 수 있고, 문화해설사의 친절한 설명이 무엇보다 장점이다. 태어난 김에 세계 일주는 못해도 타본 김에 파주 여행은 즐길 수 있겠다. 마침 금요일에 떠나는 ‘파주시티투어 인기코스’를 신청, 파주시티투어 버스에 몸을 실었다.
천년고찰의 품격을 간직한 ‘보광사’
파주시티투어 버스에 다시 올라 두 번째 목적지인 보광사로 향한다. 보광사로 향하는 10분여의 짧은 시간 동안 문화해설사는 보광사의 역사, 놓치지 말고 꼭 봐야 할 것 등에 대해 소상하게 설명해준다. 같은 음식도 누구와 먹느냐에 따라 맛이 다르게 느껴지듯 같은 역사 이야기도 문화해설사의 설명에 여행 팁까지 더해지니 설렘 또한 더욱 커진다.
보광사 앞에 내리자마자 늘어선 식당과 찻집 등이 보인다. 보광사가 자리 잡은 앵무봉에서 채취한 각종 나물로 만드는 산채비빔밥이 가장 좋다는 문화해설사의 추천 덕분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소나무집 식당으로 향했다. 산채나물정식은 취나물, 미나리, 시래기, 버섯, 고사리, 고구마 줄기 등 10여가지 나물이 가득한 그야말로 산나물 풀코스였다. 고소한 들기름 한 방울, 고추장 몇 숟가락을 넣어 비벼 먹으니 신선이 부럽지 않을 정도다. 차를 가져오지 않았으니 막걸리 한잔을 누리는 호사도 빠질 수 없다.
보광사는 통일신라 진성여왕 8년(894) 왕명으로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 고려 고종 2년(1215)과 우왕 14년(1388)에 다시 지었으나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타 없어졌다. 조선 광해군 14년(1622)에 재건, 영조 때에는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의 복을 비는 절로 삼기도 하였다. 이곳 대웅보전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화려한 팔작지붕이 특히 아름답다. 그리고 또 하나 특별한 점은 대웅보전 벽면에 있다. 보통의 벽이 회벽인 데 비해 이곳은 특이하게 나무판으로 되어 있고 양 옆벽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지만 알고 보니 아름다움도 뿌듯함도 배가된다. 대웅보전 내부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상이 모셔져 있으며, 인도의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는 석가모니불과 설법을 듣는 모습을 그린 영산회상도도 있으니 당시 경기 지역 불교회화의 특징도 놓치지 말고 살펴보자. 대웅보전 앞에 있는 동종은 안정적인 균형미, 역동적인 조각과 생동감 있는 장식으로 17세기 동종 중에서도 최고의 수작으로 뽑힌다.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아 경기도 유형문화재에서 보물로 승격되었다. 원래 자리에 있는 것은 모조품이고, 진짜 동종은 대웅전 안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보광사 이곳저곳을 천천히 둘러보던 중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대웅전 건너편 만세루 지붕 아래에서 비를 피했다. 잠시 만세루 마루에 앉아 대웅전을 바라보자니 이곳이 그야말로 명당이었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는 산사의 고요함을 웅장함으로 가득 메웠다. 가만히 눈을 감고 이 순간을 즐기니 그동안의 걱정과 고민에서 잠시나마 해방되는 느낌이 들었다.
출렁다리를 건너고 둘레길 한바퀴 ‘마장호수’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에서 9시에 출발한 파주시티투어 버스가 파주 운정역에서 남은 일행을 태우고 30분여를 달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광탄면에 있는 마장호수다. 이곳은 파주시와 양주시의 경계가 되는 곳으로, 2000년 농업용 저수지였던 곳을 마장호수공원으로 조성하면서 도심형 테마파크로 재탄생했다.
‘아시아의 레만 호수’라 불리는 마장호수의 출렁다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출렁다리로 길이 220m, 폭 1.5m 규모다. 돌풍과 지진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되었지만 다리를 건너기 시작하면 이름처럼 흔들림이 느껴진다. 다리 길이에 비해 흔들림이 다소 강한 편이라 시작부터 주저앉은 사람, 누군가의 손을 꼭 잡고 거북이걸음으로 건너는 이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특히 다리 18m에 설치된 방탄유리 구간에서는 가슴이 콩닥콩닥한다. 다리 중간에서 잠시 멈춰 강을 따라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마장호수의 고즈넉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마에 송글 맺혔던 땀방울도 금세 마른다.
다리를 건너지 못하겠다면 호수 전체를 산책할 수 있는 총 4.5㎞ 둘레길을 따라 걸어도 좋다. 둘레길을 따라 카페와 맛집들이 곳곳에 있고 카누와 카약(파주시 운영), 수상자전거(민간 운영) 같은 수상레저도 즐길 수 있다. 마장호수는 산책로를 비롯해 트레킹 코스, 둘레길, 캠핑길까지 다양한 코스로 되어 있어 혼자 느긋하게 걷기도 좋고 가족과 연인, 아이들과 함께 걷기에도 제격이다. 생수 한 병과 손수건 하나 챙겨서 각자의 속도에 맞춰 마음이 닿는 거리만큼만 걸어보자. 해 질 무렵 마장호수를 걷는 것도 추천한다.
생각보다 가까운 북녘땅 ‘오두산통일전망대
마지막 목적지인 오두산통일전망대로 향하는 길에 빗방울은 더욱 거세졌다. 이런 날씨에 북녘땅을 과연 볼 수 있을까 싶었지만 실내 볼거리도 많다는 문화해설사의 말에 위안을 얻었다. 1992년 지어진 오두산통일전망대는 서울의 젖줄인 한강과 북에서 흘러 내려온 임진강이 만나는 서부전선 최북단 휴전선에 위치한다. 118m 오두산 정상에 있어 북으로는 개성 송악산, 남으로는 여의도의 63빌딩까지 볼 수 있으며 자유로를 따라 임진각과 제3땅굴, 판문점을 연계하는 통일안보관광지다. 최근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여행자들이 DMZ와 더불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곳으로 꼽는 등 이곳에 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던데, 궂은 날씨에도 외국인 여행자가 많아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본래 입장료는 3000원이지만 올 1월1일부터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1층 무인발권기에서 입장권을 셀프 발권하면 된다. 로비에서 안내 책자를 챙겨 가장 먼저 3층 전망대로 향했다. 실내 전망대에는 궂은 날씨임에도 제법 많은 사람이 있었다. 중앙에 임진강을 중심으로 현재의 위치를 쉽게 알 수 있는 조감도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으니 먼저 살펴보자. 날씨가 좋은 날에는 육안으로도 잘 보이지만 망원경을 이용하면 더욱 선명하게 북쪽 모습을 볼 수 있다. 실내 전망대에서 이어진 실외 전망대에서는 북에서 불어오는 임진강 바람과 거센 강의 물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오두산통일전망대의 망원경은 모두 무료다. 4층 전망라운지에는 카페와 ‘멍때리기 존’도 설치되어 있어 잠시 휴식을 취하기 좋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면 분단의 현실을 느끼게 해주는 특별한 전시물이 있다. 바로 ‘통일의 피아노’다. 통일 피아노는 2005년 광복 70주년을 계기로 통일부에서 제작한 피아노로, DMZ 철조망을 사용해 피아노 현을 제작했다. 철조망이 만들어내는 둔탁하고 거친 불협화음은 한민족이지만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한을 노래하는 듯하다.
1층 상설전시관에서는 분단의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고 통일 한국을 염원하는 전시물을 관람할 수 있다. 북한의 도발, 한국전쟁 이후 정전, 판문점 평화 회담 등에 대한 자료가 시간순대로 전시되어 있다. 또 서울에서 출발한 KTX 열차가 평양을 지나 파리로 향하는 조형물을 비롯해, 지하 1층에는 어린이 체험관이 있어 아이를 동반한 가족 여행자들에게도 추천할 만한 장소다. 평소 통일에 대한 관심이 없던 우리의 일상이지만 오두산통일전망대를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미래 통일 한국을 염원해보는 특별한 시간이 될 것이다.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운정역을 거쳐 다시 홍대입구역으로 가는 길. 조금씩 차가 막힐 시간이었지만 오전에 떠났던 길보다 훨씬 더 가깝게 느껴졌다. 생각보다 꽤 가까운 곳에 파주가 있고, 파주를 즐기기에 파주시티투어 버스에 몸을 싣는 것만큼 쉽고 편리한 나들이가 또 있을까 싶다.
여름철 호우와 폭염 등으로 휴무 기간을 가졌던 파주시티투어(www.pjcitiytour.kr)가 지난 8월27일 운행을 재개했다.
파주시티투어는 대중교통으로 이동이 어려운 관광지를 권역별로 묶어 파주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파주시가 지원하는 지역관광 사업이다.
역사유산부터 자연경관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파주의 매력을 편리하게 즐길 수 있다.
승하차 지점은 홍대입구역 3번출구 혹은 운정역 1번출구이며 일반 상품은 1인 7000원, 토요일 평화관광은 1만4000원이다.
요일마다 코스가 다른데, 화요일은 자연과 웰니스(영국군 설마리 전투 추모공원-감악산 출렁다리 율곡수목원), 수요일은 자연과 역사(마장호수 출렁다리-보광사-혜음원지-용미리 마애이불입상), 목요일은 관광특구(오두산 통일전망대-프로방스 맛고을-파주프리미엄 아울렛-헤이리-장단콩 웰빙마루), 금요일은 파주시티투어 인기코스(마장호수 출렁다리-보광사-오두산통일전망대), 토요일은 평화관광(6·25전쟁납북자기념관-임진각 관광지-DMZ평화관광)으로 매일 다르고 매월 셋째 주 토·일요일에는 1박 2일의 핵심관광 투어(8만 원)을 별도로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