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사고, 매년 15.7회 발생했다

이하늬 기자

지난 20년 동안 원전에서 발생한 사고는 314건이다. 간단하게 계산하면 1년에 15.7건, 한달에 1번 이상이 발생했다. 발전소가 가동되는 한 사고가 없을 수는 없다. 문제는 이를 대응·처리하는 과정에서 사업자(한국수력원자력)와 규제기관(원자력안전위원회)이 신뢰를 잃어갔다는 점이다.

방사능 누출만 안 되면 0등급
지난 2017년 10월 5일 경북 경주시 양남면에 있는 월성원전 3호기에서 냉각재가 누출됐다. 원자로와 연결된 밸브 고장이 원인이었다. 냉각재는 핵분열로 뜨거워진 원자로를 식히는 데 쓰인다. 이후 한수원은 원전 출력을 줄이기 시작했고, 14일 후 원자로를 수동 정지했다. 14일 동안 누출된 냉각제는 500㎏이다.

한수원은 “누출량이 적어 사고 부위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렸고, 보고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누출량이지만 원안위에 보고하는 등 안전조치를 충분히 취했다”며 해당 사고가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급 평가 매뉴얼상 가장 경미한 0등급이라고 밝혔다. IAEA는 등급 0~3은 ‘고장’으로 4~7은 ‘사고’로 분류한다. 한국에서 ‘원전 사고’가 0건인 이유다.

탈핵시민행동 회원들이 2019년 8월 22일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건설 앞에서 전남 영광 한빛 핵발전소 격납건물에서 발견된 157cm짜리 구멍 등 현대건설에 부실시공 책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탈핵시민행동 회원들이 2019년 8월 22일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건설 앞에서 전남 영광 한빛 핵발전소 격납건물에서 발견된 157cm짜리 구멍 등 현대건설에 부실시공 책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그러나 1년 뒤인 2018년 6월 11일, 월성원전 3호기에서 냉각재가 또 누출됐다. 현장 작업자 실수로 냉각재 밸브가 열린 것이 원인이었다. 냉각재 3630㎏이 누출됐고, 노동자 29명이 방사능에 피폭됐다. 한수원은 누출된 냉각재를 곧바로 회수했으며 피폭량도 경미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는 1등급으로 분류됐다.

원전 인근 주민들은 ‘경미한 사고’라는 말에 반발한다. 이상홍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등급은 결과론적인 것이고 주민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며 “게다가 고리와 월성은 30년이 돼가는 노후원전”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냉각제 누출은 간단한 사고가 아니다. 누출된 냉각재는 고농도의 방사능에 오염돼 있다. 곧바로 회수되지 않을 경우 핵발전소 작업자와 인근 주민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원 원장은 “IAEA 등급은 방사능 누출이 기준이다. 발전소 안에서 아무리 큰 사고가 나도 방사능 누출만 안 되면 0등급이다”며 “1·2등급은 유의미한 사고고 3·4등급은 원자력 발전 자체를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하는 수준의 사고”라고 말했다.

그럼 2등급 사고는 잘 관리됐을까. 2012년 2월 9일, 부산시 기장군에 있는 고리원전 1호기에 외부 전원 공급이 중단됐다. 이로 인해 비상디젤발전기가 작동하지 않아 전원이 12분간 상실됐다. 당시 원자로는 멈춰 있었지만, 사용후핵연료 저장조와 원자로에 냉각수가 채워져 있었고 잔열 제거 설비가 가동 중이었다.

원전은 발전을 중지해도 원자로에 열이 남아 있기 때문에 냉각수를 돌려 원자로를 식혀줘야 한다. 전원이 공급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비상디젤발전기가 있는 이유다. 비상디젤발전기까지 작동하지 않을 경우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36.9도를 유지하던 냉각수는 당시 58.3도까지 올라갔고, 사용후핵연료 저장조 온도는 0.5도 상승했다.

한수원은 이 사건을 규제기관인 원안위에 한달 이상 늦게 보고했다. 한수원이 세운 ‘방사선비상계획서’는 원전에서 사고가 나면 15분 안에 비상 발령을 하고 상황을 보고하도록 돼 있다. 한수원은 뒤늦게 해당 사고가 안전에 위험이 될 정도 문제는 아니었다고 밝혔지만 사고를 은폐하려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원전 사고, 매년 15.7회 발생했다

민관합동조사단을 요구하는 이유
이런 과정에서 한수원은 신뢰를 잃었고 규제기관인 원안위도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수원과 원안위는 원전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말을 되풀이 하고 있지만 국민 불신은 깊어졌다”며 “현재 원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상식선에서 납득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17년 전남 영광군에 있는 한빛원전에서 ‘민관합동조사단’이 꾸려진 것도 이런 불신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당시 한빛원전 4호기에서는 ‘망치’가 발견되는 황당한 일이 있었다. 정기검사 중에 증기발생기에서 11㎝ 길이의 망치와 1.5㎝ 크기의 금속 등이 발견됐다. 격납건물 철판 부식과 콘크리트 공극(빈틈이나 구멍)도 발견됐다. 한수원·원안위는 망치가 증기발생기 제작 때 들어가 20년간 있었던 것으로 봤다.

증기발생기는 원자로, 냉각재 펌프와 함께 원전을 구성하는 핵심시설이다. 증기발생기를 구성하는 관(세관) 8400개에는 방사성물질을 포함한 냉각재가 순환하고 있다. 증기발생기의 관들이 내부 이물질과 자주 충돌할 경우 손상될 가능성이 있다. 세관이 손상되면 냉각재가 누출된다.

부실공사 의혹이 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수원은 “망치가 증기발생기 내부 구조물에 끼여 고정된 상태여서 증기발생기는 손상을 입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용국 영광핵발전소안전성확보를위한공동행동 집행위원장은 “절대 발견돼서는 안 되는 것들이 발견됐고, 증기발생기 손상 없이 20년 동안 가동된 것은 천운이었다”고 말했다.

시민사회는 사용 전 검사와 운영허가 심사 그리고 16차례 정비를 진행하면서도 이를 파악하지 못한 한수원과 원안위를 믿을 수 없다며 ‘민관합동조사단’을 요구했다. 그렇게 원전에 대한 최초의 민관합동조사단이 꾸려졌다.

원전 사고, 매년 15.7회 발생했다
지난 10년간 월성원전1,2,3,4호기 사고 내역

지난 10년간 월성원전1,2,3,4호기 사고 내역

합동조사단은 1년 8개월 조사 끝에 격납건물 콘크리트 구조물 내 200군데 이상의 공극, 그리스(윤활유) 누출, 내부철판 부식에 따른 감도 변화 등을 발견했다. 나아가 한빛 3·4호기 외의 타 호기와 다른 원전까지 공극과 그리스 전수조사도 이끌어냈다. 한수원이나 정부 조사보다 낫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리고 이 경험은 한수원과 원안위에 대한 불신을 더 키웠다. 삼중수소 논란이 일었던 월성원전과 관련해서도 시민사회는 민관합동조사단을 요구한 바 있다.

이상홍 사무국장은 “원안위가 전문성이 있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경험으로 봤을 때 사실상 규제에 실패한 것 아니냐”며 “민관합동조사단을 만들어 영광처럼 전반적인 안전진단을 해달라는 것이 지역사회의 요구였다. 합동조사단이 없었다면 한빛원전 4호기는 지금도 가동 중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빛원전 4호기는 2017년부터 지금까지 정지된 상태다.

하지만 합동조사단이 답처럼 여겨져서는 곤란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합동조사단에 전문위원으로 참여했던 한병섭 소장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존재하는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국가가 제대로 역할을 했다면 없었을 기관”이라며 “원전 사고와 관련해 결국은 믿을 수 있는 제대로 된 감시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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