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 빌, 나를 지지선언해주어서 고마워요. 그런데 좀 시간이 오래 걸렸네요.
빌 드블라지오: 미안해요, 힐러리. ‘CP타임’ 때문에 그랬어요.
레슬리 오돔: 어, 그건 내가 별로 좋아하는 농담이 아닌데요.
힐러리 클린턴: (오돔을 바라보며) 신중한 정치인에게 걸리는 시간(Cautious politician time)을 말하는 거겠죠. 나도 종종 그랬어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빌 드블라지오 뉴욕시장이 한 흑인배우를 옆에 두고 무대 위에서 주고 받은 이 농담이 왜 인종주의 발언으로 논란이 되는 것일까.
그것을 이해하려면 ‘CP타임’의 원뜻을 알아야 한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CP타임은 ‘흑인의 시간’(Colored People’s Time)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흑인들의 행동이 굼뜨다 또는 게으르다는 인종적 비하의 의미를 담고 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해밀턴>의 무대에서 이뤄진 이 짧은 대화는 힐러리 지지선언에 뜸을 들였던 드블라지오에게 힐러리가 익살스럽게 ‘뒤끝’을 보여주는 설정이다. 또한 힐러리 역시 동성결혼 합법화 지지, 키스톤 송유관 건설 반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혀정(TPP) 반대 등 각종 현안에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따라 진보적 입장을 표명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점을 익살스럽게 인정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이날 행사는 힐러리가 샌더스와 격돌하는 19일 뉴욕 경선을 앞두고 뉴욕 표심 모으기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하지만 이 뮤지컬에 출연한 흑인 배우 레슬리 오돔을 앞에 두고 한 이 농담은 부적절했다는 평가가 많다. 온라인매체 고커(Gawker)는 “어색하다”고 평가했고, 살롱(Salon)은 “민망하다”고 평가했다.
드블라지오 시장실은 성명을 내고 “분명히 하고 싶다. 풍자의 밤에, 이 풍자극으로 조롱하려고 했던 유일한 사람은 드블라지오 시장 그 자신이었다. 마침표. 그 무대 위에 아무도 다른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 의도는 없었다”고 밝혔다.
복스뉴스는 “CP타임이라는 말이 풍자극의 일환으로 쓰였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정치 지도자가 소수인종을 폄하하는 인종주의적인 고정관념을 끄집어내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라며 “그것은 버니 샌더스에 비해 소수인종 유권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클린턴의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고 논평했다.
힐러리는 지난 3월 22일 이후 치러진 민주당 경선에서 샌더스에게 1승 7패를 당했음에도, 그 전까지 치러진 남부 주들 경선에서 흑인과 히스패닉계로부터 70~90%의 지지를 얻은 덕분에 선두를 고수하고 있다.
한편 진보진영의 지지를 업고 2014년 말 뉴욕시장에 당선 드블라지오는 민주당의 다른 주류 정치인들이 일찌감치 힐러리에게 줄을 설 때에도 지지선언을 보류하다가 지난해 10월 지지선언한 바 있다. 드블라지오는 커밍아웃한 동성애자 출신의 흑인 사회운동가인 셜레인 맥크레이와 결혼한 개인적 배경 덕분에 뉴욕시장 선거에서 소수계의 많은 지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