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쿠바 정책’ 으름장, 라울에겐 안 통했다

김진호 선임기자

관계정상화 뒤엎는 수준 아닌 데다 시간도 여유…발끈 안 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6일(현지시간) 냉전시대로 역행하는 듯한 쿠바정책 전환방침을 공표했지만 쿠바 정부는 짧고 덤덤한 성명으로 답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2015년 관계정상화 결정을 뒤엎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일단 피한 데다 구체적인 정책은 석 달 뒤에나 나오기 때문인 것으로 관측된다. 트럼프의 변덕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의연함도 감지된다.

라울 카스트로 쿠바 정부는 같은 날 성명을 내고 “미국 정부와 양자 현안 협상은 물론 상호이해를 주제로 대화와 협력을 계속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거듭 밝힌다”고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마이애미의 리틀 아바나 연설에서 쿠바의 인권실태를 비난한 것은 그냥 넘기지 않았다. 성명은 “쿠바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시스템을 바꾸겠다는 미국의 전략은 실패할 것”이라고 되받았다.

쿠바 정부의 미지근한 반응은 트럼프의 리틀 아바나 연설에서 발표된 조치의 내용 자체가 미지근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백악관이 발표한 메모랜덤에는 2년 전 오바마 행정부가 정한 대사급 관계정상화, 항공·해운·우편 재개, 개인 송금 허용, 미국인의 쿠바 물품 미국 반입 등 정책의 골간은 흔들지 않았다. 다만 미국 기업의 쿠바 투자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쿠바 군·정보 당국과 연계된 기업 및 단체와의 금융거래나 미국인의 해당 기업·호텔·식당 이용을 금지했다. 단체관광은 허가받은 미국 기업이 조직한 경우에만 허용했다. 이러한 조치들은 미국 재무·상무·국무부 등의 재검토가 완료되는 90일 뒤에 확정, 시행된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가 폐기한 ‘젖은 발-마른 발(Wet Foot-Dry Foot) 정책’을 다시 실시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은 것은 트럼프 정책의 어정쩡한 성격을 상징한다. ‘젖은 발-마른 발 정책’은 미국에 불법입국한 쿠바인들에게 1년 뒤 체류를 허용한 것으로 이른바 ‘자유를 위한 탈출’을 유도한 것이었다.

미국 내 쿠바인 반공 망명단체들은 트럼프가 연설에서 쿠바 공산정부의 인권탄압을 비판, 궁극적으로 체제전복을 암시한 데 일단 지지를 표명했다.

쿠바의 모든 소매 체인점과 57개 호텔, 여행버스, 식당 등 쿠바경제의 40% 정도를 점유하는 군부기업 가에사(GAESA)를 겨냥한 것도 이들에겐 호감을 샀다.

하지만 실제 이행된다면 쿠바 정부 못지않게 급증하는 미국 관광객 덕에 살아나던 소소한 자영업자들이 오히려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내다봤다. 쿠바 국민이 아닌 정부에 타격을 주려는 트럼프의 약속이 정반대의 효과를 보일 것임을 시사한다.

지난해 쿠바를 찾은 미국인 관광객은 61만4433명(쿠바계 미국인 32만9496명 포함)이었다. 가에사와의 거래금지는 모든 미국인에게 적용되지만 나머지 조치는 일반 미국인 관광객에게만 해당된다. 전체 외국인 관광객은 지난해 처음으로 400만명을 돌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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