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기로에 선 미국, 시위와 대선의 함수관계는

유혜영 뉴욕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노스캐롤라이나주 윌밍턴을 찾아, 이 도시를 미국 최초의 2차 세계대전 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이벤트를 하며 연설하고 있다.  윌밍턴 |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노스캐롤라이나주 윌밍턴을 찾아, 이 도시를 미국 최초의 2차 세계대전 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이벤트를 하며 연설하고 있다.  윌밍턴 | AP연합뉴스

미국 친구들은 올 대선이 “내 생애 가장 중요한 선거”라고 입을 모은다. 4년마다 나오는 말이긴 하지만, 이번 선거를 다루는 언론 기사들을 보면 분명 예년과 다른 비장함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선거다. 미국은 갈림길에 서 있다. 인종 구성이나 산업 구조 등 나라의 체질은 지난 50년간 빠르게 바뀌었다. 1970년 전체 인구에서 이민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4.7%였는데 2019년엔 13.6%로 늘어났다. 1970년에는 백인이 인구의 80% 이상이었다. 명실상부 ‘백인의 나라’였다. 그런데 점점 백인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 2055년에는 50% 아래로 낮아질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산업 구조도 빠르게 변했다. 백인 블루칼라 남성 노동자가 대부분이던 제조업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줄었다. 대신 의료나 교육 등 서비스 분야가 몸집을 키웠다.

이런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기회로 삼을 것이냐, 아니면 변화를 거부하고 예전의 정체성을 되찾으려할 것이냐를 두고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가려는 방향이 엇갈린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 캠프의 선거 구호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였다. 변화가 불편하고 싫은 사람들은 이민자가 적고 백인의 삶의 방식이 미국의 표준이던 ‘위대했던 시절’로 돌아가자는 열망을 담아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줬다. 조 바이든과 민주당 지지자들은 미국이 위대한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는다. 이들은 다양한 사람이 모여 경쟁하고 협력할 수 있어야 미국다운 가치를 만들어낸다고 믿는다. 이들에게 변화는 혼란과 무질서가 아니라 발전이고 진보다.

인종차별 항의시위가 격렬하게 벌어진 위스콘신주 커노샤에서 1일 시위대가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항의하며 소리치고 있다. 이날 커노샤를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를 폭도들에 의한 ‘국내 테러’라고 불렀다.  커노샤 | AFP연합뉴스

인종차별 항의시위가 격렬하게 벌어진 위스콘신주 커노샤에서 1일 시위대가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항의하며 소리치고 있다. 이날 커노샤를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를 폭도들에 의한 ‘국내 테러’라고 불렀다.  커노샤 | AFP연합뉴스

미국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이번 미국 대선은 중요하다. 팬데믹부터 기후변화까지, 온 지구가 같이 풀어야 할 문제들에 미국이 어떻게 대응할지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세계 무대의 리더였다. 무역, 분쟁, 난민, 기후변화 등 사안마다 협력의 정도와 깊이는 달라도 다른 나라와 협력해 문제를 풀어간다는 대원칙을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공유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원칙을 뒤집었다. 무조건 미국 이익 최우선주의를 내세웠다. 3년이 좀 넘는 재임 기간에 자유무역협정, 파리기후협약, 유엔 인권이사회 등 여러 협약과 국제기구에서 미국의 이름을 지웠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중국의 꼭두각시에 불과한” 세계보건기구(WHO)를 탈퇴하겠다고 선언했다. 그가 재선에 성공하면, 세계는 국제 협력이 필요한 수많은 사안을 미국 없이 처리해야 한다. 반대로 바이든이 당선되면 미국은 국제무대에서 다시 예전의 리더십을 되찾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다.

한반도에도 미국 대선은 그냥 남의 나라 대통령 선거 이상으로 중요하다. 남북, 한일, 한중 관계를 비롯해 우리 외교는 미국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미국 유권자들에게는 외교 정책이 크게 중요하지 않을지 몰라도,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우리에게는 중요한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정책은 한 마디로 ‘예측 불가능’이다. 정치 신인 트럼프가 2016년에 당선됐을 때 우려와 기대가 공존했다. 정치나 외교 경험이 전무한 그가 국제 정세를 한없이 불안하게 만들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었다. 동시에 눈에 보이는 성과나 국무부·의회 등의 ‘절차’를 건너뛰고 본인이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하는 걸 좋아하는 성향 덕분에 북미 관계에 뜻밖의 돌파구가 마련될 수도 있다는 기대도 있었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2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유세를 하며 코로나19 대응과 학교 방역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윌밍턴 |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2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유세를 하며 코로나19 대응과 학교 방역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윌밍턴 | 로이터연합뉴스

그 덕에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북미 정상이 직접 만나기도 했지만, 실제로 관계를 개선하고 양측이 신뢰를 쌓는 과정까지는 가지 못했다. 바이든이 당선되면 한반도 정책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의 ‘전략적 인내’로 회귀하고, 민주당과 바이든 본인이 더 오래 일해 온 중동 이슈에 우선순위를 둘 가능성이 크다. 미국 대북 정책의 불확실성은 줄겠지만 새로운 돌파구를 기대할 여지도 자연히 같이 줄어들 것이다. 북한 문제에 대한 두 후보의 접근법과 철학이 다른 만큼 한국도 누가 승리하느냐에 따라 외교 전략을 완전히 다르게 짜야 한다.

이렇게 중요한 2020년 미국 대선에서 주목해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는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개되는 양상이다. 지난 5월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이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를 살해했다. 많은 사람이 분노했고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 시위가 전국적으로 크게 일어났다. 이제 미국에선 ‘구조적 인종차별이 문제’라는 여론이 절반을 넘는다. 시위는 대체로 평화적으로 진행됐으나 일부 도시에선 가게를 약탈하고 경찰서에 불을 지르는 등 폭력적으로 변하기도 했다.

시위의 양상은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친다. 1960년대 흑인 민권운동을 연구한 논문들은 시위가 평화적으로 진행될 동안에는 시위를 지지했던 민주당이 유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시위대가 폭력이나 약탈에 가담하면 언론이나 정치권이 ‘법과 질서유지’를 강조하게 되고, 이를 우선시하는 공화당에 유리했다. 올해도 다르지 않다. 시위가 평화적으로 이뤄지고 ‘경찰 해체’ 같은 급진적인 주장이 적절히 견제되면 바이든에게 유리할 것이고, 반대로 폭력 시위가 퍼지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유리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에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공연·예술 종사자 지원과 경제활동에 숨통을 틔워줄 것을 촉구하는 ‘리스타트’ 캠페인에 동참한다는 뜻으로 붉은 불이 켜져 있다.  뉴욕 | AFP연합뉴스

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에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공연·예술 종사자 지원과 경제활동에 숨통을 틔워줄 것을 촉구하는 ‘리스타트’ 캠페인에 동참한다는 뜻으로 붉은 불이 켜져 있다.  뉴욕 | AFP연합뉴스

둘째, 코로나19로 무너진 미국 경제의 회복세다. 올초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은 거의 떼어 놓은 당상이었다. 실업률은 3.5%로 2차 대전 이후 가장 낮았고 주식시장은 연일 호황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실업률이 15%까지 치솟았고 실업급여를 신청한 사람이 4000만 명이 넘는다. 거시경제 전문가들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를 극복하려면 우선 바이러스 확산부터 차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 손’에도 손세정제가 필요한 시기”라는 것이다. 바이러스부터 차단해야 코로나19 이후 경제를 구상할 수 있다.

그런데 우선순위를 잘못 둔 탓에 미국에선 이미 코로나19로 19만명 가까이 숨졌고 매일 수만 명씩 확진자가 나온다. 확산 초기부터 중국 탓만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 트럼프 대통령의 탓이 작다고 할 수 없다. 마스크를 쓰는 기본적인 과학조차 정치적인 논쟁거리로 만들어버린 트럼프 대통령이다. 이제 와서 갑자기 정책의 방향을 바꾸기도 어려워졌다. 대신 ‘연내 백신 개발’을 반전 카드로 삼으려 하지만, 팬데믹 내내 과학을 무시한 전력 때문에 미국인들은 그가 승인한 백신을 신뢰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편투표와 투표율도 관건이다. 미국에선 투표하기가 굉장히 까다롭다. 선거 전에 유권자 등록을 마쳐야 하고, 투표소에 가도 몇 시간씩 줄 서서 기다리기 일쑤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투표를 참관하거나 개표에 참여할 봉사자를 비롯한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투표가 불편해지면 그만큼 투표율이 낮아질 수 있다. 그래서 대안으로 우편투표를 확대하는 방안이 떠올랐다.

[글로벌 시시각각]정체성 기로에 선 미국, 시위와 대선의 함수관계는

미국에는 이미 전부 다 우편으로만 투표하는 주도 있고, 따로 신청하지 않아도 투표용지를 사전에 보내서 원하면 우편투표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주도 있다. 정치학자들의 연구를 보면, 우편투표를 확대했을 때 투표율은 전반적으로 오른다. 반면에 특정 정당에 유리하거나 불리하다는 주장은 통계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근거 없이 다짜고짜 우편투표를 “사기와 부정 선거의 온상”으로 규정하고, 우편투표를 진행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관인 우체국 예산을 삭감하려 하고 있다. 최대한 우편투표에 차질을 빚어 투표율을 낮추고, 집계가 늦어져 개표 결과가 늦게 나오면 이를 문제 삼아 선거 결과에 불복하려는 사전 작업이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공화당 전당대회는 ‘바이든의 미국’이 얼마나 끔찍할 것인지를 부각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바이든은 2일 “지금 우리는 트럼프의 미국을 살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실정과 그로 인한 폐해를 비판했다. 갈림길에 선 미국은 어떤 길을 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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