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미래, 공화당의 미래, 미국의 미래

유혜영 뉴욕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중임이 가능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하는 선거의 결과는 보통 앞선 4년 집권기에 대한 유권자의 평가로 풀이된다. 2020년 선거 결과도 마찬가지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평가라는 분석이 많다. 동시에 이번 선거 결과는 앞으로 미국의 정치적 경쟁 구도가 어떻게 형성될지, 그래서 민주·공화 양당이 어떤 전략으로 다음 선거를 치를지 가늠하게 해줄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2020년 선거는 두 정당에 어떤 과제와 기회를 주었을까? 그래서 이번 선거 결과로 예상되는 미국 정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18일(현지시간) 정권 인수의 베이스캠프로 삼고 있는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퀸시어터에서 보건의료 노동자들과의 화상회의를 마치고 나서면서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윌밍턴 |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18일(현지시간) 정권 인수의 베이스캠프로 삼고 있는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퀸시어터에서 보건의료 노동자들과의 화상회의를 마치고 나서면서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윌밍턴 | AFP연합뉴스

우선 민주당의 상황부터 살펴보자.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지난 120년 동안 가장 높았다. 유권자 구성에도 주목할 만한 변화가 나타났다. 특히 세대에 따른 유권자 구성의 변화가 눈에 띈다. 지난 2016년까지 유권자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세대는 베이비붐 세대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이 본격적으로 전후 경제를 재건하며 번영을 구가하던 1946~1964년에 태어난 이들이다. 베이비붐 세대도 나이가 들면서 보수적 성향을 보였고,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을 향한 지지도 젊은 유권자들보다 아주 높았다.

2020년 선거는 1981~1996년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 그리고 미국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세대로 불리는 1997년 이후 출생한 Z세대 유권자들을 합친 숫자가 베이비붐 세대보다 많은 최초의 선거였다. 베이비붐 세대는 75%가 백인이다. 반면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는 인종 구성이 훨씬 다양하고, 거의 모든 이슈에서 베이비붐 세대보다 진보적이다. 앞으로는 Z세대가 18세가 넘어 새로 유권자로 유입되면서 이들의 비중이 더 커질 텐데, 이는 민주당에는 호재다.

변수는 선거인단이라는 독특한 대통령 선출 방식이다. 민주당 성향의 유권자가 많아져도 민주당이 선거에서 이길 확률이 꼭 높아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실제로 지난 8번의 대선 가운데 민주당 후보는 2004년을 제외하고 7번을 전체 득표에서 앞섰다. 그러나 2000년 조지 W 부시와 2016년 트럼프는 경합주에서 간발의 차로 승리하면서 전체 득표에서 지고도 선거인단 수에서 앞서며 백악관에 입성했다. 이번에도 조 바이든 당선자는 트럼프 대통령보다 550만 표나 더 받았지만, 가장 신경 썼던 러스트벨트 경합주에서 근소한 차이로 이기고 나서야 어렵사리 당선을 확정할 수 있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17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퀸시어터에서 외교·정보·국방전문가들과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윌밍턴 |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17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퀸시어터에서 외교·정보·국방전문가들과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윌밍턴 | AFP연합뉴스

바이든이 펜실베이니아, 미시건, 위스콘신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파란 장벽(Blue wall)을 간신히 다시 세웠지만, 여전히 경합주로 남을 이 지역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굳건히 지지한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들을 민주당은 앞으로도 쉽사리 외면할 수 없다. 물론 유색인종이 빠르게 증가해 전통적인 공화당 텃밭에서 빠르게 민주당 성향으로 바뀌고 있는 조지아나 텍사스주를 민주당이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면, 이른바 재정렬(realignment)이 일어나 민주당도 선거 전략을 다시 짤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민주당 내에서도 이민자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굽히지 않고, 변화를 극도로 거부하는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들에게 헛심 쓰지 말고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으로 떠오른 유색인종, 젊은 유권자들을 적극적으로 공략해 이들의 투표율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블루칼라 백인 노동자는 선거인단 셈법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서 바이든 당선자가 승리한 지역은 미국 경제 생산의 70%를 담당한다. 창출한 일자리 숫자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긴 지역보다 두 배나 많다. 미국도 혁신과 성장은 주요 대도시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자연히 일자리도 줄어들고, 살기 어려워진 시골 지역에선 가족과 공동체가 계속 무너지고 있다. 경제적으로 궁핍해진 이들에게 가짜뉴스가 파고들어 외국인, 이민자를 향한 근거 없는 혐오를 부추긴다. 그렇게 탄생한 극단적인 성향의 유권자들은 민주당이 선거에서 계속 이겨도 집권한 뒤 정책을 펴는 데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알려면 민주당이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갈지에 주목해야 한다.

18일(현지시간) 미국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워싱턴 백악관의 웨스트윙 건물에 불이 꺼져 있다.  워싱턴 | AP연합뉴스

18일(현지시간) 미국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워싱턴 백악관의 웨스트윙 건물에 불이 꺼져 있다.  워싱턴 | AP연합뉴스

2020년 선거가 공화당에 안긴 과제와 기회는 무엇일까. 우선 대학 졸업장이 없는 블루칼라 노동자, 특히 남성 노동자들의 공화당에 대한 지지는 더욱 공고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이민자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이민을 규제하는 정책을 쏟아냈지만,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오히려 지난 선거보다 늘었다. 특히 플로리다주에는 쿠바나 베네수엘라 등 사회주의 정권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반공 정서가 강한 라티노 유권자들이 모여 산다. 이들의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지지는 4년 전보다 10% 이상 늘었다. 전체 라티노 유권자를 놓고 보면 민주당 성향이 더 많지만, 라티노 유권자는 한 집단으로 뭉뚱그려 분석하기에는 그 비중이 갈수록 빠르게 커질 것이다.

출신 지역이나 후보, 이슈에 따라 라티노 유권자들의 표심도 더 세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그렇다면 공화당은 백인 유권자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기존 선거 전략을 바꿀 수 있을까? 갈수록 중요해지는 라티노 유권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이민자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를 누그러뜨리고, 유색인종이 겪는 차별 문제에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쉽게 그러지 못할 거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의 막강한 영향력에 있다. 선거에서 졌지만, 28년 만에 재선에 실패한 현직 대통령이 됐지만, 공화당 정치인과 공화당 지지자들에게 당장 더 중요한 건 트럼프 대통령이 7100만 표 넘는, 역대 2위에 해당하는 표를 얻었다는 점이다. 여전히 트럼프에 견줄 만한 인물이 공화당에는 없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과 측근들이 주도하는 정치행동위원회(PAC)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름도 정해졌다. ‘미국을 구하자’ 팩(Save America PAC)이다. 앞으로도 관행, 관례는 다 무시하고 공화당의 실질적인 보스로 남아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18일(현지시간) 아직 대선 개표가 완료되지 않은 애리조나주 마리코파카운티 피닉스의 선거사무소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피닉스 |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18일(현지시간) 아직 대선 개표가 완료되지 않은 애리조나주 마리코파카운티 피닉스의 선거사무소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피닉스 | AP연합뉴스

긴 개표가 끝나 바이든 당선자가 306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한 것으로 집계됐지만, 여전히 공화당 정치인 가운데 그의 승리를 인정하거나 축하를 건넨 인사를 찾기 어렵다. 이것도 트럼프의 그림자 때문이다. 당장 내년 1월에 이번 선거에서 최대 경합주로 떠오른 조지아주에서는 상원의원 두 명을 뽑는 결선 투표가 치러진다. 희박한 가능성이지만, 민주당이 조지아주 두 석의 상원을 모두 가져오면 상원도 다수당이 된다.

[글로벌 시시각각]민주당의 미래, 공화당의 미래, 미국의 미래

공화당으로선 민주당이 백악관과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는 악몽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트럼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들의 표가 필요하다. 그러니 트럼프 대통령더러 선거 결과에 승복하고 패배를 인정하라고 말하기 매우 부담스러운 것이다. 단지 이번 선거뿐만 아니라 2년 뒤면 금방 돌아올 중간선거에서 선거를 치러야 할 공화당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트럼프에게 ‘배신자’로 찍혀 미운털이 박히는 것만은 피하고 싶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행사할 수 있는 가장 큰 ‘권력’ 중 하나는 공화당 당내 경선에서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기성 정치인에 대항마를 내세워 ‘친트럼프 의원’을 배출하는 일이다.

공화당은 트럼프는 떠났지만 계속 트럼프의 정당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공화당이 앞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어떤 관계를 맺어 나가는지, 둘 사이의 구도가 어떻게 형성될지에도 미국 민주주의의 미래가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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