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도, 폭염도 감당 못해…미 서부 “SOS”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기후 재난이 드러낸 빈부격차 사회의 민낯

19일(현지시간) 미국 최대 인공호수인 네바다주 볼더의 미드호가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볼더 | EPA연합뉴스

19일(현지시간) 미국 최대 인공호수인 네바다주 볼더의 미드호가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볼더 | EPA연합뉴스

집값 30% 뛴 애리조나 피닉스
초여름에 48도…가뭄도 덮쳐
전기료 급등에 ‘에너지 난민’
온열질환 사망 노숙인 급증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문제는 치솟고 있는 게 집값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직 여름 초입인 6월인데도 피닉스의 수은주는 벌써 48도를 기록하고 있다. 에어컨이 나오는 아파트 집세를 감당하지 못해 트레일러로 밀려난 사람들은 말 그대로 ‘쪄 죽을’ 위기에 놓여 있다. 해마다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미 남서부의 폭염과 가뭄은 빈부격차라는 사회적 재난과 맞물리며 ‘퍼펙트 스톰’의 상황을 낳고 있다.

후안 구티에레스(22)는 건설현장 노동자다. 그가 살고 있는 피닉스의 집값은 지난해 30%가량 상승했다. 코로나19로 오히려 호황을 누리고 있는 정보기술(IT) 노동자와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월세도 8%씩 올랐다. 부동산 가격 상승은 피닉스뿐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코로나19 이후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저소득층에게 미친 듯이 상승하는 집세와 기온은 이중, 삼중의 고통을 안기고 있다. 구티에레스는 해가 뜨기 전부터 일을 시작하지만 오전 7시에 이미 32도를 넘어선 기온은 한낮이 되면 47~48도에 육박한다. 4세 때 미국에 왔지만 여전히 불법체류자 신분인 구티에레스는 뉴욕타임스에 “피부가 타버릴 것 같지만 이 일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한낮 최고기온이 50도까지 치솟는 뙤약볕 아래서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목숨을 걸어야 한다.

에어컨 때문에 늘어난 전기료 부담은 이들을 더욱 어려운 선택지로 내몰고 있다. 저소득층은 집세를 내기 위해 에어컨을 끌 것이냐, 에어컨을 틀기 위해 강제퇴거의 위험을 무릅쓰고 집세를 밀리게 할 것이냐의 기로에 놓여 있다. 이동식 주택인 트레일러에서 생활하는 존 나이리(70)는 전기요금 걱정에 웬만하면 에어컨을 틀지 않는다. 대신 에어컨이 나오는 인근 식료품점에서 자주 더위를 식히지만 한밤이 돼도 내려가지 않는 기온이 무섭다. 2년 전 여름 한 이웃이 뜨거운 태양열에 달궈진 트레일러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적도 있다.

에어컨이 켜지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등은 대가뭄으로 호수의 수위가 낮아져 수력발전소들이 가동 중단 위기에 처하면서 전력난도 우려되고 있다. 이미 텍사스에서는 폭염으로 발전기 가동이 잠시 멈추면서 240만가구에 정전이 발생했다.

거리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홈리스에게 폭염은 특히 위험하다. 지난해 피닉스 지역에서 온열질환으로 사망한 323명 가운데 절반이 노숙인이었다. 문제는 집세를 내지 못한 세입자들이 다음달부터 무더기로 거리로 쏟아져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코로나19로 인해 경제적 피해를 입은 세입자가 월세를 내지 못해도 집주인이 강제퇴거를 하지 못하도록 연방정부 차원에서 유예시켰는데 이 조치가 이달 말 종료될 예정이다. 미국 인구조사국은 코로나19 대유행 동안 임차료를 내지 못한 세입자가 820만명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멜리사 과르다로 애리조나 주립대 교수는 “극도의 폭염은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훨씬 극명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로 극단화된 날씨가 빈곤과 극한 노동, 에너지 난민 등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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