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캐나다 서부, 사상 최고기온 경신하며 피해 속출
노인 등 취약층 잇단 돌연사
정전에 가뭄·화재도 겹쳐
북반구 덮은 고기압 ‘열돔’
“원인인 기후변화 해결해야”
미국과 캐나다의 기온이 사상 최고치인 49.5도까지 치솟으면서 폭염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캐나다 남서부에서는 노인 등 취약계층 돌연사가 잇따랐고, 미국 워싱턴주는 폭염으로 정전사태까지 겪었다. 뉴욕타임스는 기후위기로 폭염·가뭄·화재가 한꺼번에 왔다면서 “1000년에 한 번 있을 법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캐나다 환경기후변화부는 29일(현지시간) 서부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리턴 지역 기온이 49.5도까지 치솟았다고 밝혔다. 이 지역에서 기상관측이 시작된 1800년대 후반 이후 100여년 만의 최대 폭염이다. 2010년 동계올림픽이 열린 밴쿠버에서 북동쪽으로 260㎞ 떨어진 리턴은 서울보다 6~8월 평균기온이 1~3도 낮지만, 이날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아부다비보다 더 더웠다.
미국에서는 서부지역 주민 2000만여명에게 폭염 경보·주의보가 내려졌다. 특히 워싱턴주 시애틀과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전날 기온이 각각 사상 최고치인 42.2도, 46.1도로 관측됐다. 두 도시의 6월 평균기온은 20~23도다.
폭염으로 사망 피해도 속출했다. 캐나다 CBC방송은 지난 25일부터 이날까지 폭염이 이어지는 동안 밴쿠버에서만 100명 넘게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사망자 대부분은 노인이나 기저질환이 있는 취약계층이었다. 밴쿠버 경찰은 “보통 하루에 3~4명이 돌연사하는데, 29일에는 오후 1시45분 전에 20명이 숨졌다”면서 “슬프게도 수십명이 폭염으로 죽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애리조나주에서는 폭염이 이어졌던 지난 12~19일 마리코파 카운티에서만 53명이 사망했다고 지역신문 애리조나리퍼블릭이 전했다. 오리건주도 최근 농장 노동자 1명과 노숙인 2명의 돌연사가 폭염과 관련 있는지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워싱턴주는 이날 기온이 42.2도까지 오르면서 정전사태를 겪었다. 워싱턴주 스포캔 지역 9300가구에 전기를 공급하는 전력회사 아비스타 유틸리티는 “기록적인 폭염과 전례 없는 전기수요가 배전 시스템에 영향을 미쳐 전력을 차단했다”고 밝혔다. 포틀랜드는 전력 케이블이 녹고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고속 경전철과 노면전차 운행이 멈췄다. 일부 야외 수영장도 영업을 중단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가뭄으로 산불까지 발생해 비상이 걸렸다. 캘리포니아 소방당국은 전날부터 국유림이 있는 샤스타-트리니티 국립공원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를 이틀째 진압하고 있다. 인근 지역주민 1만명에게 대피령이 떨어졌다. 캘리포니아, 워싱턴, 오리건, 애리조나주는 소방 인력과 장비 충원, 피해 주민에 대한 재난지원금 지급을 대비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에 찜통더위가 닥친 이유는 뜨거운 고기압이 북반구 전체를 돔처럼 덮는 ‘열돔’(heat dome) 현상 때문이다. 가디언은 지난 50년간 태평양 북서부 기온이 1.7도 올랐다면서 “열돔 현상이 남서부 캘리포니아는 물론이고 캐나다의 북극 영토까지 확장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무분별한 화석연료 사용으로 미국에서 1960년대보다 3배 더 자주 폭염이 발생하고, 북반구의 폭염 피해 면적도 1980년대보다 25% 늘어났다”면서 지난 30년간 허리케인과 홍수 피해 사망자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이 폭염으로 죽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제이 인슬리 워싱턴 주지사도 “이건 영구적인 비상사태의 시작”이라며 “우리는 문제의 원인인 기후변화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사진)은 최근 미 의회가 초당적으로 합의한 1조2090억달러 규모의 인프라 예산으로 기후위기에 대비하겠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위스콘신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극한의 날씨에도 견딜 수 있도록 전력망을 현대화하고, 해안지대·제방 시설을 강화하고, 산불·홍수에 대비한 기반시설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포틀랜드의 기온이 46.7도였지만, 걱정 말라. 지구온난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우리 상상의 산물”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기후위기를 부정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