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무노조' 고수한 아마존서 첫 노조 탄생…“세상 바뀌었다는 것 알려줄 것”읽음

김유진 기자

‘무노조 경영’을 고수해온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에서 사상 처음으로 노동조합이 탄생할 전망이다. 뉴욕시 아마존 물류 창고의 30대 청년 노동자들이 사측에 코로나19 방역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시작한 작은 움직임이 아마존의 수백만달러짜리 노조 저지 캠페인을 물리쳤다.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과도 같았던 아마존 노조 출범이 미국내 여타 아마존 창고는 물론 미국 노동 운동 전반에까지 바람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아마존 사상 첫 노동조합 설립을 이뤄낸 크리스천 스몰스(가운데)가 1일(현지시간) 노조 설립 투표가 가결된 직후 뉴욕시 브루클린의 노동관계위원회(NLBM)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두 손을 번쩍 들어올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아마존 사상 첫 노동조합 설립을 이뤄낸 크리스천 스몰스(가운데)가 1일(현지시간) 노조 설립 투표가 가결된 직후 뉴욕시 브루클린의 노동관계위원회(NLBM)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두 손을 번쩍 들어올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일(현지시간) 뉴욕시 스태튼아일랜드의 아마존 창고 JFK8 노동자들이 실시한 노조 설립 찬반 투표에서 깜짝 놀랄 만한 결과가 나왔다. 투표를 감독한 미 노동관계위원회(NLRB)에 따르면 전체 유권자 8304명중 투표에 참여한 4850명 가운데 과반이 넘는 2654명(54%)이 노조 설립에 찬성표를 던졌다. 노조 설립에 반대한 2131명(43%)을 10%포인트 이상 여유있게 넘어선 것이다. JFK8은 미 전역에서도 규모가 큰 아마존 핵심 물류 창고다.

누구도 노동자들이 이길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약 110만명이 몸담고 있는 아마존은 월마트에 이어 미국에서 두번째로 큰 민간 고용주다. 그러나 1994년 설립 이래 약 30년 동안 아마존에는 노조가 전무했다. 그동안 창업주 제프 베이조스는 아마존이 직원들에게 업계 최고 대우를 하고 있으며, 원한다면 직원들이 언제라도 사측에 직접 요구사항을 말할 수 있기 때문에 노조라는 ‘중개인’은 필요없다는 입장을 재차 밝혀왔다. 아마존이 최저임금보다 높은 시급, 의료보험, 유급 출산휴가 등을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마존의 과도한 직원 통제·감시, 잦은 해고, 열악한 노동 여건 등은 도마에 올랐다.

아마존 최초 노조 결성을 이끌어낸 주역은 뉴저지주 출신 33세 동갑내기 흑인 남성 크리스천 스몰스와 데릭 파머. 두 사람은 JFK8에서 관리자와 팀원으로 만났다. 두 사람이 속한 팀은 아마존이 직원 평가 명목으로 도입한 악명 높은 성과지표에서도 늘 상위권을 달렸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 이후 회사에 노동 여건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삶은 바뀌었다. 둘은 다른 몇몇 직원들과 함께 코로나19 바이러스부터의 직원 보호에 무관심한 사측에 항의하는 파업을 열었는데, 스몰스가 사회적 거리두기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파업 당일 해고된 것이다.

이후 이들은 아마존 노조 설립을 최우선 목표로 세웠다. 사측의 조직적인 노조 설립 방해 공작을 이겨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마존 본사의 10개 부서, 11명 이상의 부회장급 임원들이 노조 저지 캠페인에 관여했다. 어떨 때는 하루에 20차례나 직원 모두가 필수 참석해야 하는 회의를 열고 노조에 관한 부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아마존은 총 430만달러(약 52억4600만원)를 노조 저지 캠페인에 투입했다. 노동자들이 크라우드펀딩 사이트를 통해 모금한 활동 자금 12만달러(약 1억4600만원)보다 무려 35배나 많은 액수다.

그럼에도 스몰스와 파머는 11개월간 JFK8 창고 건너편에 마련된 천막에서 생활하며 오로지 노조 결성을 위해 달렸다. 특히 거대노조와 손을 잡는 대신 매일같이 창고에서 만나는 동료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집중했다. 앞서 노조 설립을 시도한 앨라배마주 배서마의 아마존 창고가 소매·도매·백화점노조(RWDSU)의 후원을 받은 것과는 다른 행보였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창고 근처의 마당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동료들과 대화를 나눴고, 직접 만든 요리를 포함해 다양한 음식을 나눠먹었다. 아마존 노조에 무료 법률 지원을 한 변호사 세스 골드스타인은 NYT에 “그간 없었던 아마존 노동자들을 위한 공동체를 만드려는 시도였다”고 말했다.

스몰스는 개표 직후 기자회견에서 “2년 전 내 삶은 영원히 바뀌었다. 나를 지지하는 노동자들을 대신해 옳은 일을 하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며 “(오늘 결과는) 우리가 함께 하면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모든 기업들에게 세상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에 ‘탑 도그(top dog·최고 또는 최강자라는 의미로 아마존을 지칭)’에 도전했다”며 “우리는 노조를 만들 것이며, 일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사측은 스몰스를 가리켜 “똑똑하지 못하고 말도 어눌하다”는 평가를 내렸지만, 이 내부 문건을 본 스몰스는 “(사측의) 그런 표현을 보고 노조를 시작해야겠다는 동기부여를 얻었다”고 말했다.

아마존 노동자들이 1일(현지시간) 뉴욕 브루클린의 노동관계위원회 청사 앞에서 노조 설립 찬반 투표가 가결된 뒤 얼싸안고 있다. EPA연합뉴스

아마존 노동자들이 1일(현지시간) 뉴욕 브루클린의 노동관계위원회 청사 앞에서 노조 설립 찬반 투표가 가결된 뒤 얼싸안고 있다. EPA연합뉴스

코로나19 상황에서 뉴욕 시민들의 ‘생명줄’ 역할을 하다시피한 JFK8 창고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미국 내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줄지도 관심사다. 미 전역의 아마존 창고는 100여개에 달한다. JFK8와 길 하나를 두고 떨어져 있는 아마존 물류 창고 LDJ5에서도 이달 말 노조 설립 찬반 투표를 치른다. 지난해 4월 투표 결과 71%가 반대해 노조 결성이 무산된 앨라배마주 배서머 창고는 사측의 투표 방해 의혹이 제기되면서 지난달 31일 재투표를 실시했다. 반대가 43%로 더 높게 나왔으나 유권자 자격 논란이 벌어져 수주 이내에 NLRB의 공청회를 통해 가결 여부를 가릴 전망이다.

파장을 우려한 아마존이 노조와의 단체협약 교섭을 일부러 지연시키는 전략을 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노동변호사인 데이비드 로젠필드는 CNBC에 “다른 지역의 조직화를 독려할 수 있기 때문에 아마존은 단체협약을 피하기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할 것”이라며 “아주 크고, 길고, 지저분한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아마존 첫 노조 결성은 최근 스타벅스, 구글 협력업체 등 미국 거대 기업에 맞선 노조가 잇따라 탄생하는 흐름과 맞물려 있다. 지난해 12월 뉴욕주 버팔로의 한 스타벅스 매장에서 노조가 처음으로 만들어졌고, 지난달에는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의 구글 파이버 협력업체도 노조 설립을 이뤄냈다. 지난해 미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역대 최저치에 근접한 10.3%다.

버니 샌더스 민주당 상원의원은 트위터에서 아마존 노조 결성을 축하하는 글을 올린 뒤 “미국 노동운동에 활력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새러 넬슨 미국 항공승무원 노조위원장은 NYT에 “앞으로 미국의 노조 조직화는 외부 사람들이 계획을 들이밀고 따르라는 식으로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며 “작업장 내에서부터 움직임이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아마존 물류창고 내부. 아마존 홈페이지

아마존 물류창고 내부. 아마존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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