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임신중단’ 두 동강 난 미국…정치권도 찬반 들썩읽음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대법 판결문 초안 유출 파장

충돌 미국 연방대법원 앞에서 3일(현지시간) 임신중단 찬성론자와 반대론자들이 동시에 집회를 벌이다 충돌하고 있다. 연방대법원은 여성의 임신중단 권리를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한 1973년 판결을 뒤집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래 사진은 임신중단 찬성론자가 이날 시위에서 임신중단이 불법이었던 시절 음성적인 임신중단 도구로 사용된 옷걸이 위에 ‘절대 다시는’이라는 문구를 붙여 들고 있는 모습. 워싱턴 | EPA·AFP연합뉴스

충돌 미국 연방대법원 앞에서 3일(현지시간) 임신중단 찬성론자와 반대론자들이 동시에 집회를 벌이다 충돌하고 있다. 연방대법원은 여성의 임신중단 권리를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한 1973년 판결을 뒤집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래 사진은 임신중단 찬성론자가 이날 시위에서 임신중단이 불법이었던 시절 음성적인 임신중단 도구로 사용된 옷걸이 위에 ‘절대 다시는’이라는 문구를 붙여 들고 있는 모습. 워싱턴 | EPA·AFP연합뉴스

‘로 대 웨이드’ 뒤집기 결정문에
바이든, 이례적 정면 비판 성명

미국 사회가 여성의 임신중단(낙태) 권리를 둘러싸고 분열의 소용돌이로 빨려들고 있다. 연방대법원이 1973년 여성의 임신중단 권리를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기로 결정한 판결문 초안이 언론을 통해 유출되면서다. 임신중단 찬성·반대 단체와 시민은 물론 정치권까지 논란에 휩쓸렸다. 결정문 초안대로 대법원의 판결이 이뤄진다면 미국의 절반 가까운 주에서 여성의 임신중단 권리가 제약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법원의 판결문 초안이 공개된 다음날인 3일(현지시간) 워싱턴의 연방대법원 앞에는 임신중단 찬반론자 수백명이 몰려들었다. 찬성론자들은 ‘내 몸에 대한 선택은 내가 한다’ 등의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으려는 대법원에 항의했다. 반면 천주교 신자 등 임신중단 반대론자들은 “임신중단은 살인”이라며 대법원 결정을 지지했다. 경찰은 대법원 정문 앞 도로를 경찰차와 바리케이드로 막고 물리적 충돌에 대비했다.

정치권도 들썩이기 시작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여성의 선택권은 근본적이라고 믿는다”면서 “로 대 웨이드 판례는 거의 50년 동안 국법이었고, 우리 법의 필수적인 공평성과 안정성을 위해 뒤집혀선 안 된다”고 밝혔다. 행정부 수반이 초안 상태의 대법원 결정문을 정면 비판하는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임신중단권을 보장하기 위한 입법을 즉각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로 대 웨이드 판례를 연방 법률로 성문화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입법 시도는 상징적 제스처에 그칠 공산이 크다. 상원 의석의 절반인 50석을 차지한 공화당의 반대를 돌파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대체로 대법원의 입장을 환영하면서도 결정문 초안 유출 사태에 초점을 맞췄다. 공화당 하원 지도부는 공동성명에서 “(이번 사건은) 대법관들을 위협하고 방해하기 위한 조직적인 행동이 명백하다”면서 “우리는 생명의 존엄성을 옹호하기 위해 헌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유출된 초안이 진본이라면서도 대법원이나 대법관 개인의 최종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이번 일은 법원과 법원에서 일하는 공직자 공동체에 대한 모욕이자 신뢰에 대한 얼토당토않은 침해”라고 비난했다. 미국 언론들은 대법원 판결문 초안이 유출된 것은 미국 현대 사법사상 초유의 일이라고 지적했다.

공화당과 보수 진영은 진보 성향 인사가 유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로버츠 대법원장이나 브렛 캐버노 대법관 등 보수 성향이지만 임신중단 이슈에 대해 입장이 단정적이지 않은 대법관들을 압박하기 위해 보수 성향 인사가 유출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판례 무효 땐 50개 주 중 26곳
금지법 부활 등 가능성 높아

‘여성의 임신중단’ 두 동강 난 미국…정치권도 찬반 들썩

임신중단권 옹호 단체인 구트마허연구소는 로 대 웨이드 판례가 무효화 되면 미국 50개주 가운데 26개주가 임신중단을 사실상 금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화당이 우세인 지역을 중심으로 로 대 웨이드 판례가 나오기 전에 존재했던 임신중단 금지법을 부활시키거나 새로운 금지법 제정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경우 13~44세 미국 여성 가운데 4000만명이 임신중단이 제한되는 주에 거주하게 된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의 임신중단 건수는 1980년대 이후 계속 감소해 2017년 86만2320건으로 집계됐다. 로 대 웨이드 판례가 뒤집히면 최소 수십만명의 여성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번 사태가 11월 중간선거에 미칠 영향도 관심사다. 인플레이션 등으로 인해 고전하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은 여성의 임신중단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임신중단권을 옹호하는 진보 및 여성 유권자들을 결집시키고, 중간선거를 바이든 정권에 대한 평가가 아닌 공화당 심판 선거로 전환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공화당에서도 임신중단에 반대하는 유권자들이 다른 이슈에 비해 결집력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불리할 게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미국 사회는 당분간 임신중단 문제를 둘러싼 진보와 보수,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의 극한 대결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로 대 웨이드 판결

미국에서는 1970년대 초까지 대부분의 주에서 임신부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를 제외한 임신중단은 불법이었다.

1969년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강간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됐다며 임신중단 수술을 하려다 거부당한 노마 매코비는 텍사스주를 상대로 위헌소송을 제기한다. 그는 신변 보호를 위해 ‘제인 로’라는 가명을 사용했는데, 청구인인 그의 가명과 피고인이었던 지방검사 헨리 웨이드의 이름을 따 소송 명칭이 ‘로 대 웨이드’라고 불리게 됐다.

1973년 연방대법원은 태아가 산모의 자궁 밖에서 스스로 생존이 가능한 시기에 이르기 전, 여성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임신 상태에서 스스로 벗어나는 결정을 내릴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 당시 기준으로는 임신 약 28주차가 기준이 됐다. 현재 미국에서는 이 판결에 따라 임신 6개월 이전까지의 임신중단은 사실상 합법으로 인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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