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첫 좌파 대통령 페트로 “불평등 깰 변화, 오늘부터”

박은하 기자

무장 게릴라 출신의 정치인

대선 도전 세 번째 만에 당선

“석유 탐사 금지·기업 과세”

미의 ‘중남미 동맹’ 변화 촉각

<b>“새 정치, 할 수 있다”</b> 대통령 결선투표가 치러진 19일(현지시간) 콜롬비아 역사상 첫 좌파 대통령으로 구스타보 페트로 후보(62)의 당선이 확정되자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칼리 | AP연합뉴스

“새 정치, 할 수 있다” 대통령 결선투표가 치러진 19일(현지시간) 콜롬비아 역사상 첫 좌파 대통령으로 구스타보 페트로 후보(62)의 당선이 확정되자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칼리 | AP연합뉴스

콜롬비아에서 역사상 첫 좌파 대통령이 탄생했다. 중남미 핑크타이드(좌파물결)가 또다시 확인되면서 국제 정세의 변수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엘파이스에 따르면 19일(현지시간) 치러진 콜롬비아 대선 결선투표에서 좌파연합 ‘역사적 조약’의 구스타보 페트로 후보(62)는 50.5%를 얻어 47.3%를 얻은 무소속 로돌포 에르난데스 후보(77)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페트로 당선인은 승리가 확정된 후 보고타 무비스타 아레나의 연단에 올라 “우리는 콜롬비아, 라틴아메리카, 세계를 위한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있다. 우리의 이야기는 유권자들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며 희망, 대화, 이해에 기반한 정치를 약속했다.

콘서트홀에서는 지지자들 수천명이 어깨에 국기를 두르고 “우리는 할 수 있다”고 외쳤다. 거리에서는 페트로 후보의 당선을 축하하는 불꽃놀이가 벌어지고 자동차 경적소리가 울려퍼졌다. 엘파이스는 우려했던 선거 불복이나 소요 등은 없었다며 “콜롬비아는 새로운 정치 시대로 들어섰다”고 평했다.

콜롬비아 역사상 첫 좌파 대통령이 된 구스타보 페트로 후보가 19일(현지시간) 당선 확정 후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콜롬비아 역사상 첫 좌파 대통령이 된 구스타보 페트로 후보가 19일(현지시간) 당선 확정 후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페트로 당선인은 좌파 무장 게릴라 출신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지만 30년 이상 제도권에서 경력을 쌓은 정치인이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수도 보고타 북쪽의 광산촌에서 자랐다. 18세가 되던 1978년 좌파 무장조직 M-19에 가입해 빈곤 지역에서 활동했다. M-19가 1989년 정부와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제도권 정당으로 변신하면서 페트로 후보도 제도권 정치인으로 변모했다. 그는 두 차례 하원의원을 지냈고 2018년부터는 두 번째 상원의원 임기를 보내고 있다. 2012~2015년에는 보고타 시장을 지냈다. 대선 도전은 이번이 세 번째다.

콜롬비아에서 첫 좌파 대통령 후보가 당선된 배경에는 만성적 불평등이 있다. 2022년 기준 빈곤선 이하 인구 비율은 42.5%에 이른다. 재정적자가 심각해지자 중도우파인 이반 두케 현 대통령이 지난해 서민층의 부담을 늘리는 세제 개편안을 추진해 시민들의 분노를 샀다.

페트로 당선인은 과도한 석유 수출 의존과 지나치게 번창한 불법적 코카인 사업 등이 ‘빈익빈 부익부’를 부추기는 근본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새로운 석유 탐사를 금지하겠다고 공약했다. 또 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과세를 강화해 일자리, 공공보건 시스템 강화, 고등교육 보장 등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페트로 당선인은 올해 초 인터뷰에서 “오늘날 우리의 상황은 이른바 (국가 경제) 모델의 부재로 생긴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자신을 “새로운 유형의 진보주의자”라며 사유재산 몰수 등의 과격한 조치는 취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콜롬비아 첫 좌파 대통령 페트로 “불평등 깰 변화, 오늘부터”

블룸버그통신은 “페트로의 당선은 (콜롬비아의) 경제 변화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수십년 동안 이어졌던 미국과의 강력한 동맹관계를 뒤흔들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페트로 당선인의 경제정책에 대한 불안감도 있다.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석탄·석유 산업의 축소는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내 농민과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시행하는 수입 관세 인상 등과 같은 보호주의적 무역정책은 다른 국가들과의 무역갈등을 불러올 수도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좌파연합이 의회에서 아직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한 탓에 페트로 당선인이 공약을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멕시코,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에 이어 콜롬비아까지 좌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중남미 핑크타이드는 더욱 짙어졌다. 오는 10월 브라질 대선에서도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하면 중남미 경제 규모 상위 6개국 모두 좌파가 집권하게 된다.

중남미에서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1차 핑크타이드 물결이 일었다. 탈냉전으로 인해 미국의 중남미 영향력이 약화되고 그 빈자리를 중국이 차지하기 시작했으며 원자재 시장이 호황을 맞았던 것이 배경이었다. 하지만 국가 경제가 국제 원자재 가격의 등락에 취약해지고 부패 스캔들까지 겹치면서 다수의 중남미 좌파 정권들이 2010년대에 우파 정권에 다시 자리를 내줬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정책과 불평등 심화에 반발이 거세지면서 2010년대 후반부터 다시 2차 핑크타이드가 일고 있다.

페트로 당선인은 오는 8월 두케 대통령의 뒤를 이어 취임한다. 보고타 부시장이자 환경운동가 출신인 프란시아 마르케스(40)가 부통령이 된다. 콜롬비아 역사상 첫 흑인 여성 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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