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시, 대만 찾아 시진핑 직격···중국 ‘군사행동·경제보복’ 착수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낸시 펠로시(왼쪽) 미국 하원의장과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3일 대만 타이베이 총통궁에서 만나 포즈를 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대만 총통부 제공

낸시 펠로시(왼쪽) 미국 하원의장과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3일 대만 타이베이 총통궁에서 만나 포즈를 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대만 총통부 제공

중국의 군사적 위협 속에 대만을 찾은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직격하며 “대만 민주주의를 보장하려는 미국의 결심은 매우 확고하다”고 강조했다. 펠로시 의장을 접견한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군사적 위협에 물러서지 않고 민주주의의 방어선을 지키겠다”고 화답했다. 중국은 펠로시 의장 도착 직후 대만을 둘러싸고 대대적인 군사행동에 돌입하고 경제적 보복 조치에도 착수했다. 대만해협에 불어닥칠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펠로시 의장은 이날 오후 대만을 떠나 한국 방문길에 올랐다. 펠로시 의장은 4일 국회에서 김진표 국회의장과 회담한 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방문할 예정이다.

아시아 순방 일정 중 대만을 방문한 펠로시 의장은 3일 오전 총통부를 찾아 차이 총통을 예방했다. 펠로시 의장은 이 자리에서 “현재 세계는 민주주의와 권위주의라는 두 가지 선택에 직면해 있다”며 “미국은 대만과 전 세계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데 주력하고 있고, 그 결심은 매우 확고부동하다”고 말했다고 대만 중앙통신사가 보도했다.

펠로시 의장은 이어 “이번 방문은 미국이 43년 전 대만관계법을 통과시켰을 때 대만에 대한 매우 확고한 약속을 했고 대만과 함께 서 있다는 점을 모두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라며 “우리는 대만에 대한 약속을 절대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대만은 지금 수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이번 방문은 미국과 대만의 단결을 세계에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권위주의 국가인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대만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것이다.

펠로시 의장은 전날 대만 도착에 맞춰 워싱턴포스트를 통해 공개한 기고문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중국을 겨냥했다. 그는 “현재 대만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며 “미 국방부는 중국군이 대만을 무력 통일하고자 비상사태를 준비할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 지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집권을 강화하면서 혹독한 인권 기록과 법치에 대한 무시는 지속되고 있다”며 “대만과 민주주의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계속된 위협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펠로시 의장은 이날 차이 총통 예방에 앞서 대만 입법원(의회)을 방문해 미국이 중국 견제용으로 만든 반도체 법안을 언급하며 “미국과 대만 반도체 산업 협력에 좋은 기회”라고 강조했다. 또 오후에는 중국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 당시 학생 지도자 등 중국 반체제 인사들을 면담했다. 펠로시 의장은 이날 오후 대만을 떠나 한국 방문길에 올랐다.

펠로시 의장의 이 같은 행보는 중국의 강력한 반발을 야기해 미·중 간 긴장을 고조시키고 대만해협에도 후폭풍을 불러오고 있다.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은 1997년 이후 25년만에 이뤄진 것이다.

중국은 즉각적으로 반발하며 행동에 나섰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이날 발표한 담화에서 “펠로시 의장이 중국의 엄정한 교섭에도 대만을 방문한 것으로 중국의 주권을 악의적으로 침해하고 공공연히 정치적 도발을 한 것”이라며 “이는 일부 미국 정치인이 중·미 관계의 ‘트러블 메이커’로 전락했고, 미국이 대만해협 평와와 지역 안정의 ‘최대 파괴자’가 됐음을 다시 한번 증명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중국의 평화적 굴기를 깨려는 것은 완전한 헛수고이며, 반드시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게 될 것”이라며 “미국에 의지해 (대만) 독립을 도모하는 것은 죽음의 길이며 대만을 이용한 중국 억제는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는 전날 펠로시 의장이 대만에 도착한 직후에도 비판 성명을 냈으며 한밤 중에 니컬러스 번스 주중 미국대사를 초치해 직접적인 항의를 전달했다.

곧바로 대만을 겨냥한 군사행동과 경제적 보복도 시작됐다. 대만 일대를 관할하는 중국 인민해방군 동부전구는 전날 밤 대만 주변에서 일련의 연합 군사행동을 전개한다고 밝혔다. 인민해방군은 펠로시 의장이 대만을 떠난 다음날인 4일부터 대만을 빙 둘러싼 형태로 6개 구역을 지정해 실사격 훈련을 포함한 중요 군사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다. 군은 “이번 행동은 대만 문제에서 미국의 부정적 움직임이 중대하게 심화한 상황에 맞서 엄중한 공포 조치를 취해 대만 독립 세력에 엄중한 경고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상무부와 해관총서는 대만에 대한 천연 모래 수출과 일부 대만산 식품의 수입을 중단시켰고, 국무원 대만판공실은 일부 대만 기업·기관과의 교역 및 협력을 금지하며 경제 제재에 착수했다.

대만을 겨냥한 중국의 군사적 위협과 경제적 보복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향후 대응 계획에 대해 “있어야 할 조치는 모두 있을 것이고, 관련 조치는 결연하고 힘 있고 실효적일 것이며 미국과 대만 독립 세력이 계속 느끼게 될 것”이라며 “우리는 한다면 한다. 더 인내심과 믿음을 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관영 환구시보는 사설에서 “중국의 대응책은 일회성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단호하며 꾸준히 진전되는 조치의 조합이 될 것”이라며 “그것은 근본적으로 국가 통일 과정을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엄포를 놨다. 이에 대해 차이 총통은 “의도적으로 고조되는 군사적 위협에 물러서지 않고 민주주의를 위한 방어선을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

당분간 대만해협의 위기는 계속 고조될 것이고 미국이 군사적 억지력을 동원한다면 이는 미·중 간 충돌 국면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CNN방송은 이날 “만약 그의 방문이 중국으로 하여금 대만의 평화와 번영을 뒤흔드는 조치를 취하도록 만들거나 미·중 관계를 영구히 악화시키고 초강대국의 불가피한 대결을 끌어낸다면 이번 방문은 엄청난 오산이 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홍콩 명보는 이날 사설에서 “펠로시 하원의장이 (중국의) 경고를 무시하고 대만을 방문하면서 미국과 중국은 한국전쟁 이후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어젯밤은 세상을 바꾼 밤이었을지도 모른다”며 “대만해협의 상황이 한동안 요동칠 수 있고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결과는 모든 당사자의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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