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기업의 시장 통제로 불평등 악화···국가가 노동자 보호해야”···훙호펑·베나나브·슈탑·임운택·강민형 좌담

김종목 기자

‘비판사회학회’ 세계 석학 초청…디지털·그린 전환의 미래를 논하다

비판사회학회 국제학술대회 ‘디지털-그린 전환과 사회의 미래’(4~5일 개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경제의 디지털화와 그린 전환의 가속화”가 한국 사회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최근 <제국의 충돌: 차이메리카에서 신냉전으로>를 출간한 훙호펑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 <자동화와 노동의 미래>를 쓴 아론 베나나브 미국 시라큐스대 교수도 참석했다. 필립 슈탑 훔볼트대 교수는 독일에서 주목받는 사회학자다. 경향신문은 임운택 비판사회학회 회장(계명대 교수), 강민형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을 포함한 5인 좌담을 지난 4일 진행했다.

‘불평등을 강화하는 플랫폼 기업’ ‘디지털 감시와 노동자 압박’ ‘미국의 사회주의 부상’ ‘미·중 갈등과 세계 경제’ ‘파시즘과 민주주의’ 같은 거시 문제를 압축적으로 논의했다. 사회는 임 회장이, 통·번역은 강 위원이 맡았다. 다음은 좌담 전문이다.

‘디지털-그린 전환과 사회의 미래’ 학회 참석 학자들이 지난 4일 경향신문사에서 좌담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아론 베나나브 미국 시라큐스대 교수,  필립 슈탑 훔볼트대 교수,  훙호펑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 임운택 비판사회학회 회장, 강민형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한수빈 기자

‘디지털-그린 전환과 사회의 미래’ 학회 참석 학자들이 지난 4일 경향신문사에서 좌담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아론 베나나브 미국 시라큐스대 교수, 필립 슈탑 훔볼트대 교수, 훙호펑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 임운택 비판사회학회 회장, 강민형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한수빈 기자

디지털 기술이 노동 양극화 원인?
약화된 노동조합 교섭력이 문제
플랫폼 시장에 적절한 규제 없어
노동의 조건이 전보다 악화된 것

임운택=디지털·그린 전환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부터 말씀해 주십시오.

슈탑=EU에서는 디지털·그린 전환에 따라 산업 정책이 되살아납니다. EU는 주로 미국에 본사를 둔 빅테크 기업, 대형 플랫폼 기업들을 규제하고, 디지털 경제에서 유럽 기업들의 입지를 다지려고 디지털 시장법, 디지털 서비스법, 데이터 법, 디지털 거버넌스 법, 플랫폼 노동 지침 등을 제정했습니다. 그린 전환을 두고는 수력이나 배터리 산업 투자를 진행합니다. 녹색 철강 산업 성장을 위해 화석연료를 사용해 생산한 철강재에 세금을 부과하는 규제도 마련했습니다. 유럽 특히 독일의 경우, 디지털·그린 전환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을 확인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긱(gig) 경제의 부상에 따른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가 존재합니다. 플랫폼 경제의 노동 집약적 부문을 담당하는 단시간 노동자들은 급속히 늘어납니다. 다만 전체 노동력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만큼 크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노동력 부족 현상이 나타났다는 인구학적 요인 때문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수적으로 가장 많은 베이비 붐 세대가 노동시장에서 은퇴하고 있습니다. 공급 측면에서는 노동력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예컨대,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전기차로 전환하면서 독일 자동차 산업에서 노동시간이 급격히 단축되고 고용도 감소하지만 베이비 붐 세대의 노동시장 퇴장에 따라 이러한 영향이 상쇄되는 상황입니다.

임운택=미국 상황은 어떻습니까?

베나나브=미국은 아마존과 구글 같은 강력한 빅테크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디지털 기업이 부상하면서 노동 불안정화, 노동시장 양극화와 같은 많은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합니다. 그런데 지난 몇 년 동안 명확해진 건 디지털 기술 그 자체가 노동시장 양극화의 원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경기 침체의 심화나 노동조합의 교섭력 감소가 이 문제를 악화하는 데 더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즉, 기술 변화 자체가 아니라 플랫폼 노동시장에 대한 적절한 규제 결여 때문에 노동조건이 악화한 겁니다. 우버의 경우, 캘리포니아에서의 AB·5 법(Assembly Bill 5, 주문형 노동 중개 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구하는 노동자의 법적 지위를 독립계약자 노동자로 재분류함) 통과로 우버 운전자 법적 지위를 노동자로 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지만, 사측은 이 결정을 뒤집는 데 성공했습니다. 결국 법원은 다시 우버 운전자들을 노동자로 간주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고, 바이든 정부는 행정 규칙 개정으로 법원 결정을 지지했습니다. 기술 변화가 노동시장 양극화를 필연적으로 낳는다고 주장하는 기술 결정론을 반박하는 많은 사례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미 지적 재산권 따라야 하는 중국
알리바바 등에 더 강력한 통제
바이든 정보는 중국 구실 삼아
그간 통과 어려운 법안·정책 제정

임운택=디지털·그린 전환은 동아시아에서도 전개됩니다. 중국의 디지털 전환과 미·중 간 기술 패권 경쟁은 오늘날 세계 경제에서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훙호펑 선생은 중국의 ‘내생적 혁신(endogenous innovation)’ 시스템의 부재를 강조하시는데요.

홍호펑 존스홉킨스대 교수가 4일  진행한 경향신문 특별 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홍호펑 존스홉킨스대 교수가 4일 진행한 경향신문 특별 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훙호펑=중국 정부는 2000년대부터 자국 기술 고도화를 위해 노력했죠. 대규모 공적 자금을 조성해 연구 개발에 투자했습니다. 중국 정부가 기술 고도화에 많은 자원을 투여했지만, 중국 기업들은 원하는 결과를 낳지 못했지요. 예를 들면, 중국은 수적으로 볼 때 세계에서 가장 많은 특허 출원에 성공했지만, 90% 이상의 특허가 5년 이후에는 갱신되지도, 사용되지도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본, 한국, 대만 등 후발 산업 국가들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과거 수입 기술에 의존했습니다. 미국 주도의 지적 재산권 보호 체제 형성 이후에는 미국 경제에 의존적인 이들 동아시아 국가들이 지적 재산권을 준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내생적인 기술 혁신을 촉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은 자체 기술을 보유한 제조업 강국으로 부상했습니다. 반면, 중국의 경우 새로운 지적 재산권의 글로벌 표준을 준수하지 않아도 될 만큼 (즉 미국에 대항할) 강력한 정치적인 힘을 가졌죠. 자생적인 기술 개발보다는 기술 도용을 선택했고 이는 기술 혁신에 장애가 됐습니다. 첨단 반도체 산업을 두고도 중국은 여전히 기술적으로 한국, 대만, 유럽 여러 국가 같은 미국 동맹국에 의존하는 상황입니다. 중국의 정치경제 제도는 기술 혁신과 고도화를 적절히 뒷받침하지 못했습니다.

임운택=중국의 빅테크 디지털 기업들은 세계적인 선도 업체로 부상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는지요?

훙호펑=중국에도 알리바바와 텐센트와 같은 민간 부문 빅테크 기업들이 존재합니다. 이들의 사업 아이디어는 미국 아마존이나 유튜브에서 유래하지만 이들 기업이 자체 기술 혁신을 달성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의 많은 빅테크 업체들은 중국 정부의 규제 사각지대의 덕을 봅니다. 예컨대, 미국의 자율 주행차 개발 실험에서는 막대한 책임 문제가 존재하지만, 중국은 이러한 문제를 무시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 개발에서도 그러한데요. 미국 정부가 개인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한계가 있죠. 권위주의 국가인 중국은 이런 제약에서 자유롭습니다. 한편 빅테크 기업들이 성장하자 중국 정부는 이들 기업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경계하기 시작했습니다. 알리바바의 핀테크 기술 개발에 중국 공산당은 매우 불편한 심기를 보였습니다. 사회를 통제하려는 권위주의 정부와 산업을 혁신하려는 민간 기업 간 이익이 상충할 수 있습니다. 현재까지 중국에서는 (산업 혁신에 대한) 민간 노력보다는 정부 통제가 강력한 것으로 보입니다.

강민형=베나나브 선생께서는 발표문에서 리쇼어링(해외로 생산시설을 옮긴 제조 기업들이 다시 국내로 생산을 이전하는 정책)을 비롯한 미국의 새로운 산업 정책과 국가 역할을 여러 차례 언급했습니다. 한국 독자들도 인플레이션 감축법이나 반도체 과학법을 언론을 통해 자주 접합니다. 이런 미국의 산업 정책이 성공을 거둘 것으로 생각하는지요?

베나나브=흥미로운 질문입니다. 혹자는 트럼프가 강력한 반중국 정책을 전개할 때 민주당이 집권하면 이런 경향이 다소 약화할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죠. 바이든은 오히려 더 강력한 반중국 정책을 추진합니다. 미국의 정치인들은 중국을 구실로 그동안 통과시키기 어려운 법안이나 정책을 제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론 베나나브 시라큐스대학교 교수가 4일 경향신문 특별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아론 베나나브 시라큐스대학교 교수가 4일 경향신문 특별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훙호펑=중국은 상징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옹호합니다. 중국은 생산의 아웃소싱 혹은 역외생산, 자유무역 같은 가치가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오히려 미국이 제조업 일자리를 다시 가져와야 한다고 말하거나 세계화와 자유무역에 대해 분노합니다(웃음). 유럽 연합의 녹색 탄소세의 경우,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중국산 제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서 보호무역주의를 옹호하고 있지요. 흥미롭게도 2022년 2월 시진핑과 푸틴의 새로운 세계 질서를 위한 공동 성명엔 녹색 탄소세에 대한 반대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 내용은 시진핑의 관심사였지요. 1990년대와 2000년대 미국과 유럽에서 자유무역이 금과옥조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지금은 중국이 자유무역을 옹호하고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부정적인 결과를 경험한 미국과 유럽이 자유무역을 반대하는 상황은 아이러니합니다.

슈탑=흥미로운 언급입니다. 유럽연합에서 주도권을 쥔 독일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수출 지향 경제이며 자유무역 의존도가 높습니다. 미·중 경쟁 속에서 독일, 한국과 같은 수출 경제 국가들이 중간에 끼인 상태가 됐습니다. 독일 올라프 숄츠 총리가 오늘(4일)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을 만날 예정인데, 회담 쟁점 중 하나는 중국 해운회사 코스코의 독일 함부르크 항만 지분 참여를 승인할 것인가입니다. 독일 처지에서 중국을 대체할 수출 시장이 없다는 사실을 중국은 잘 압니다. 심지어 독일이 최후 소비 시장으로서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이것이 독일의 대중 수출 의존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베나나브=이것은 독일과 한국 경제 모두에 매우 실질적인 위험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이 지속해서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취하고 중국 경제 성장이 계속 둔화한다면, 세계 시장에서 새로운 수요 창출은 매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현재 세계 경제가 새로운 침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고 판단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강민형=흥미로운 지적입니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 기간 한국의 동반 성장이 가능했던 이유는 대중국 자본재 및 중간재 수출 확대와 더불어 한국 대기업들의 세계 시장, 특히 미국 시장의 성공 때문입니다. 이 시기 국가 산업 정책보다는 대기업의 연구 개발 역량 강화나 글로벌 가치 사슬에서 선도 기업과의 협력이 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슈탑=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국가의 개입은 다시 증가하고 있습니다.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유럽의 에너지 위기에서도 알 수 있죠. 대부분의 유럽 국가 정부는 가계 에너지 비용을 보조하는 등 국가 스스로 자유 시장 경제 기본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베나나브=프랑스 정부는 주요 에너지 기업을 이미 국유화하고 전보다 낮은 가격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슈탑=향후 자유무역에 기반을 둔 세계화가 지속하려면 장기적인 산업 정책보다는 단기적인 적응 정책이 국가의 경제 정책 수립에서 더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임운택=과거 미국·EU·일본의 삼각 경쟁과 달리, 오늘날 미·중 간 경쟁의 격화는 새로운 산업 정책, 무역 정책, 투자 패턴을 낳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1990년대 세계 경제와 비교할 때 오늘날 세계 경제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임운택 비판사회학회 회장이 4일 경향신문 특별 좌담 중 다른 참가 학자 발언을 듣고 있다. 한수빈 기자

임운택 비판사회학회 회장이 4일 경향신문 특별 좌담 중 다른 참가 학자 발언을 듣고 있다. 한수빈 기자

베나나브=좋은 지적입니다. 세계 경제의 장기 침체를 고려할 때 오늘날 미국의 리쇼어링 같은 산업 정책의 성공 가능성이 작다고 평가합니다. 지난 10여 년간 세계 무역은 줄어들진 않았지만 더는 성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GDP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지요. 우리는 아직 세계 경제의 상호 의존성의 감소를 경험하고 있진 않습니다. 향후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의존도는 여전히 중요한 쟁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중요한 건 중국 경제가 앞으로도 경기 침체를 경험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민간 기업은 투자하지 않으려 하죠. 투자 부족의 문제는 장기 투자의 부재를 더욱 심각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국의 산업 정책에 회의적입니다.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TSMC가 밝혔듯이, 미국의 반도체 업체가 리쇼어링에 성공할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대만 기업의 발언은 정치적일 수도 있습니다만 사실에 가까운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흥미롭기도 하고요. 사실 1980년대 이래 미국 정부가 다양한 산업 정책을 추진해 왔지만 어느 하나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산업 정책이 성공하려면 정치적 위험 부담이 따르는 투자를 함께 결정하는 지배 엘리트의 통합이 매우 중요한데 미국은 (태양광 패널 제조업체인) 솔린드라의 실패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그러하지 못합니다.

훙호펑=한국이나 대만이 반도체를 생산하지만 공장의 기계 설비는 미국 기술에 의존합니다. 미국은 대규모의 무역 적자와 함께 대규모의 지적 재산권 수지 흑자를 경험한다는 점에서 매우 특이합니다. 많은 해외 제조업체들이 애플 같은 미국 기업들에 특허권 사용료를 지불하죠. 기업 엘리트들은 특허로 수입을 거둡니다. 이렇기 때문에 누가, 어디서 실제 물건을 생산하는가는 이들 기업의 수익을 결정하는 데 중요하지 않습니다.

‘알고리즘 통제 매커니즘’은
노동자의 창의적 활동 막고 압박
‘독점’으로 발생한 기업 수수료는
사실 노동자에 배분돼야 할 임금

임운택=디지털 기술 문제를 다시 논의하겠습니다. 슈탑 선생은 현재 EU가 추구하는 플랫폼 기업의 ‘시장 설계’ 개념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필립 슈탑 홈볼트대학교 교수가 4일 경향신문 특별 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필립 슈탑 홈볼트대학교 교수가 4일 경향신문 특별 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슈탑=구글, 애플, 메타, 알리바바, 텐센트 같은 빅테크 플랫폼 기업들은 오늘날 새로운 유형의 독점 기업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훙호펑 선생이 주로 지적 재산권에 있어서 독점을 언급했는데요. 저는 (빅테크 플랫폼 기업들이) 조직 차원에서 새로운 유형의 기업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습니다. 플랫폼 기업들은 마치 자신들이 시장 그 자체인 것처럼 행동합니다. 즉, 이들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시장을 보유한 브로커로 활동합니다. 그래서 빅테크 기업은 시장의 수요·공급을 모두 통제하는 포괄적인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합니다. 예컨대, 스마트폰 앱 제작업체들은 애플 생태계를 통해서만, 제조업체들은 아마존을 통해서만 수요자에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디지털 경제 공급자들은 수입의 30%를 시장을 보유하는 빅테크 기업에게 수수료로 지불해야 합니다.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은 수익 창출 면에서 독점에 의존하는 중상주의 모델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플랫폼 기업의 부상은 노동자에게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플랫폼 기업이 가져가는 약 30%의 수수료는 만약 플랫폼 기업이 없었다면 노동자 임금으로 배분될 수 있는 수입이기도 합니다. 플랫폼 기업 모델은 사회 불평등을 악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임운택=한국의 많은 노동자는 디지털 자본주의 논리 속에 따라오는 자동화가 삶에 미치는 영향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일자리 미래는 어떻게 될지, 노동 통제는 강화될지를 두고 말이죠. 실제로 금융과 서비스 산업에서는 빠른 속도로 일자리가 사라집니다. 제가 조사한 제조업에서도 자동화 도입으로 노동의 단순화와 함께 노동 통제가 강화되는 경향이 보입니다. 생산의 디지털화가 노동에 미치는 영향을 부연 설명해 주신다면요?

슈탑=빅테크 기업들은 디지털 수단을 통해 시장을 통제하려 합니다. 이를 위해 알고리즘에 의한 관리라는 매우 특수한 유형의 통제 방식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시장 참여자의 모든 정보를 통제합니다. 누가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지도요. 시장의 재화 가격을 통제하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런 모델에서는 시장의 무정부성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사실상 계획 경제라 할 수 있지요. 많은 플랫폼 기업이 디지털 자본주의에서 선도 기업들의 성공에서 교훈을 얻었는데, 이는 알고리즘에 의한 통제 메커니즘을 노동 측면에도 적용하는 전략을 수반합니다. 노동자에 대한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된 상황에서 플랫폼에서 일감을 찾기 시작한 노동자들은 나쁜 평판을 받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원칙은 플랫폼에 참여하는 기업들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죠.

임운택=미국 빅테크 기업에서 노동은 어떤 상황인가요?

베나나브=빅테크와 노동의 관계는 다른 나라의 관계와 기본적으로 유사합니다. 빅테크 기업은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기 때문이죠. 앞서 슈탑 교수가 지적한 부분과 관련해 기업이 노동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알고리즘 관리와 통제로 그런 정보를 수집하지만, 작업장에서 이 관행은 역사가 꽤 오래됐습니다. 기업은 노동자에 대한 수많은 정보를 수집하면서 노동과정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축적했습니다. 이는 공공기관에서 생산성을 높이려는 방안으로 고안됐지만 실제 그러한 결과를 낳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생산성 향상이 아닌 다른 결과를 낳았습니다. 예를 들어, 병원에서 의사의 수술 성공률을 측정하기 시작하자 병원은 성공률 유지를 위해 힘든 수술을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납니다. 미국의 차터 스쿨(일종의 자율형 공립학교)은 학업 성취도를 높이기 위해 장애인 학생들이 학교를 중퇴하도록 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디지털 감시와 노동과정에 대한 양화(量化)된 평가는 노동자들의 창의적인 활동을 막고 노동자들을 압박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습니다.

민간 투자로 경기 부양은 어려워
지금 경기 침체는 더 구조적 문제
기후위기·전쟁 등 위기 속 사람들
생존을 민주주의로 결정 안 해

임운택=신자유주의 전성기엔 국가의 쇠퇴를 논의했습니다. 지금 디지털·그린 전환기엔 국가는 이 전환을 추동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합니다. 오늘날 국가 역할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훙호펑=흥미로운 점은 많은 학자가 미국을 숨겨진 발전국가라고 평가했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의 셰일가스 추출 기술(fracking)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조지 W 부시 정부는 2000년대 에너지 관련 기술에 투자했고, 오바마 정부도 그린 에너지 기술에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코로나 백신의 경우, 막대한 정부 예산을 들여 대형 제약회사에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백신 개발을 독려했습니다. 포스트 신자유주의 시기 에너지 산업과 첨단 기술 개발 분야에서 국가 역할이 증대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산업 정책의 부상은 바이든 정부에서 더 명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1990년대와 2000년대 자유무역을 옹호하고 산업 정책을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했다면 이제는 실질적으로 신자유주의의 종언을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정책 담론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임운택=베나나브 선생은 1985년 출간된 테다 스카치폴의 <국가의 귀환(Bringing the state back in)>이라는 책을 기억하실 겁니다. 1980년대 중반과 비교할 때, 오늘날 국가의 귀환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국가의 역할에 희망을 가져도 되는 걸까요?

베나나브=희망은 항상 더 값비싼 대가를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웃음).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팬데믹 기간 국가는 적어도 직접적으로 사람들의 복지를 개선하며, 백신 접종을 하거나 일하지 않아도 일시적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조처를 해 왔다는 점입니다. 그런데도 제가 보기에 오늘날 국가의 귀환은 주로 민간 부문의 투자를 촉진해 경기 침체에서 빠져나오려는 전략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해법이 성공하리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오늘날 경기 침체는 더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민간 부문의 투자 촉진 정책보다는 코로나 기간 생계 보호를 위한 정부의 노력과 같은 더 직접적인 조치에서 국가가 효과를 거두리라 생각합니다. 오늘날 주 4일제 도입과 노동시간 단축이 논의되는데, 이는 일하는 사람들의 정신 건강뿐 아니라 그린 전환에도 이바지하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정부가 지금 같이 민간 투자 촉진 및 경기 활성화를 위한 역할에 주로 집중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미국의 경우, 연준이 노동자들의 교섭력을 높이고 실업률을 낮추기 위한 정책을 추진할 때도 있었지만, 현재 연준 의장은 앞으로 절대 그런 정책을 도입하지 않으리라 공언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자율을 높여 노동자들을 공격하고 있지요. 이러한 이유에서 실제 국가 역할은 매우 양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강력한 노동운동, 시민사회 운동이 부활해 국가의 공적 역할을 요구한다면, 국가는 공공 투자나 복지를 늘려 심각한 기후 위기, 환경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리라 생각합니다.

슈탑=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내용은 유럽의 많은 좌파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지점입니다. 신자유주의는 위협이 아니라 복지국가 실패에 대한 또 다른 약속으로 다가왔다는 점입니다. 신자유주의는 관료제의 동맥경화에 대한 대안으로 인식됐죠. 시장에서의 자기실현을 가치로 내세웠고요. 오늘날 가장 큰 변화는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약속이 깨졌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시장에서의 자기실현보다는 기후 위기와 전쟁에 따른 자기 보호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보호와 개인 생존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된 겁니다. 정치적 정당성과 안정성을 창출함을 두고 사람들이 이제는 생존 위기를 깨닫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기후 위기, 팬데믹, 유럽 전쟁 등 작금의 변화를 자기 보존에 대한 위협으로 여기죠. 이런 맥락에서 보호적인 테크노크라시가 힘을 얻으리라 생각합니다. 위기 상황에서 전문가 의견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생존 문제를 민주주의로 결정하지 않습니다.

강민형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원이 4일 경향신문 특별 좌담에서 참석자 발언을 듣고 있다. 한수빈 기자

강민형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원이 4일 경향신문 특별 좌담에서 참석자 발언을 듣고 있다. 한수빈 기자

대만·북한 등 지정학적 갈등은
세계 전쟁 가능성도 배제 못해
미국의 국제기구 지원 강화 같은
긍정적인 변화 이끄는 게 중요

강민형=생존과 전쟁 문제와 관련해 훙호펑 선생에게 미·중 간 점증하는 지정학적 충돌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중 갈등은 한국인과 한국 사회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문제라 생각하는데 향후 이러한 갈등이 어떻게 전개될 것이라 보는지요?

훙호펑=미·중 간 지정학적 갈등은 이러한 갈등 기저에 있는 미·중 기업 간 경쟁으로 앞으로도 심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양국 대결은 피할 수 없지만 이러한 갈등이 어떠한 결과를 낳게 될 지 아직 속단할 수 없습니다. 최악의 경우, 전쟁으로 치닫겠지만 필연적으로 이러한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미·중 간 경쟁이 UN, WHO, 세계 은행 등 국제기구에서 양국 영향력 확대를 위한 경쟁을 낳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선의의 경쟁 자체는 국제기구의 개혁 차원에서는 긍정적입니다. 예컨대, 미국은 오랫동안 WHO를 무시했지만 중국이 WHO에서 영향력을 확대해가자 바이든 행정부는 더 많은 예산을 약속하고 나섰습니다. 중진국들은 두 강대국 간 경쟁 속에서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물론 대만 해협에서 전쟁 가능성은 남아 있으며, 북한 문제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동시다발적인 지정학적 갈등과 세계 전쟁 확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겠지요. 이러한 지정학적 갈등을 상수로 고려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면서 미국의 국제기구 지원 강화 같은 긍정적인 변화를 견인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미 시민사회·노동운동 부활 동시
극우세력, 더 강력한 조직력 보유
인종차별적 ‘좌파 파시즘’도 득세
위협에 맞서 민주주의 수호 중요

임운택=대담 마지막 질문을 드리려고 합니다. 디지털 자본주의에서 노동과 자본의 갈등은 점점 은폐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한국에서도 1980~1990년대 민주화와 사회 개혁을 주도한 노동운동과 시민사회운동이 신자유주의를 거치면서 약화했고, 촛불시위에서처럼 비조직화된 시민저항이 때로는 전임 대통령의 탄핵과 정권교체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반면 디지털·그린 전환에 대한 개혁적 전망은 불투명하기 그지없습니다. 오늘날 디지털·그린 전환의 시대 저항의 주체가 누구인지 사회 변화의 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슈탑=저는 계급에 기반을 둔 사회운동이 새로운 미래사회 형성의 동력이 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소비지상주의 때문에 시민사회가 약화하고 계급운동이 쇠퇴하는 것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디지털 경제 구조를 둘러싼 갈등과 더불어 정치·경제 엘리트들 간 갈등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정치 엘리트들은 산업계 이익을 대변하면서 미국의 빅테크 기업에 반대하거나 유럽의 첨단 기술 회사나 인프라 업체를 사들이는 중국에 대항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유럽의 사회운동이나 계급보다는 유럽의 정치경제 엘리트 사이의 갈등이 흥미롭습니다.

베나나브=미국의 경험은 좀 다릅니다. 미국에서는 시민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이 부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운동은 다소 급진적인 요소를 지닙니다.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운동에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의 여러 급진적인 저항을 경험했습니다. 미국 민주 사회주의자 모임(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과 같은 완전히 새로운 세대의 젊은 사회주의자들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늘 정치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스타벅스나 아마존 창고 같은 곳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현장의 동료 노동자들을 노조로 조직하려는 기층 조직 전략(rank·and·file strategy, rank·and·file은 노동조합의 지도부나 간부가 아닌 평조합원을 뜻한다)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조 조직화에 맞서 사용자들은 노조를 와해하는 불법적인 대응을 하고 있는데 정부는 어느 정도 노조에 대한 지원을 표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버니 샌더스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AOC) 같은 정치인 또한 존재합니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이러한 급진적인 노동·시민사회 운동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들 저항운동 세력이 대중을 설득하는 데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죠. 새로운 노동운동이 단기간에 형성됐고 좌파에 비해 극우가 훨씬 더 강력한 조직력을 갖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의 미국은 매우 위험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훙호펑=노동자 계급의 운동이 종언을 고할 것이라는 예측은 늘 있어 왔지만 이는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습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탈 산업 사회의 도래에 따른 기술 발전으로 노동운동의 종언에 관한 예측이 나왔지만, 이는 시대착오적인 낡은 논의일 뿐입니다. 여전히 재화를 생산하려면 누군가 일을 해야 합니다. 다만 선진 산업국가의 노동자들은 금융화 등으로 이제 서비스 부문에 종사하게 됐고, 이들 중 상당수는 건물 청소 같은 저임금 일자리에서 일하고 있지요. 오늘날에는 플랫폼 경제 및 디지털 경제의 부상과 더불어, 아마존 창고의 물류 노동자와 같은 대규모 노동자가 선진 산업국에 존재합니다. 팬데믹 시기 아마존의 수익성은 매우 높았고 이에 따라 아마존을 통해 미국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판매하는 중국 제조업체들 역시 비약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이 시기 배달 플랫폼 노동자 역시 증가했지요.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노동력 구성의 변화와 노동계급의 존재 형태의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노동계급이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른 한편으로 저는 파시즘의 위협이 상존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체로 좌파 지식인들은 노동계급을 진보적인 집단으로 생각합니다만, 미국 노동운동만 하더라도 오랫동안 이민자와 흑인을 배제해 왔고 인종차별주의 성향을 보여 왔습니다. 전간기(戰間期)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노동운동 역시 상당수 노동자가 파시즘을 지지했지요. 따라서 어떻게 진보를 달성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미국과 이탈리아의 경우처럼 파시즘과 권위주의 정치체제의 부상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임운택=지금까지 대담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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