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1월 대선에서 재집권을 노리는 것에 발맞춰 워싱턴의 이른바 보수 성향 ‘싱크탱크’들의 움직임도 바빠지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친소 관계를 놓고 일부 싱크탱크 전문가들 사이에선 치열한 경쟁도 벌어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핵심 참모들이 포진해 ‘트럼프 싱크탱크’로 불리는 미국우선정책연구소(AFPI)는 이달 초 ‘미국 안보에 대한 미국 우선 접근법’이라는 보고서를 펴냈다. 트럼프 2기를 내다보고 외교안보 공약과 실행 청사진을 담아낸 보고서는 단번에 관련 업무 종사자들을 위한 필독서 지위에 올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와 연계해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해 온 만큼 한국에서는 “주한미군은 북한·중국 억제를 위해 핵심적”이라는 보고서 기술이 주로 관심을 모았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일했던 전직 관료들이 2021년 설립한 AFPI는 산하에 국가안보 분야 외에도 대중국 정책, 무역, 교육, 이민, 에너지·환경, 보건, 사법 등 주제별 센터를 두고 있다. 각 분야 공공정책 연구를 수행하고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싱크탱크의 조직 형태를 갖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모든 연구나 정책 제안이 트럼프 집권 계획을 위해 존재한다는 점에서 ‘유사 선거조직’에 가깝다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평가다. 관련 사안에 밝은 소식통은 “정책 생산기능을 하는 싱크탱크라기보다는 원하는 의제를 관철하려는 애드보커시(지지·변호) 기능이 지배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1973년 설립된 보수 싱크탱크의 대표주자인 헤리티지재단은 보수단체 80여곳을 규합해 차기 공화당 정부 국정과제를 제시하는 ‘프로젝트 2025’를 주도해 왔다. 지난해 4월에는 ‘리더십을 위한 지침: 보수의 약속’이라는 제목의 900쪽 분량 트럼프 공약집을 펴냈다.
프로젝트 2025는 헤리티지재단 소속이 아닌 전직 트럼프 행정부 관료들(폴 댄스, 러셀 보트)이 이끌고 있지만, 재단이 보유한 경제적·인적 자원이 막대하게 투입되고 있다. 취임 3년째인 케빈 로버츠 회장은 “트럼피즘의 제도화”를 기관의 사명으로 제시할 정도로 노골적이다.
재단은 보수 인재 풀을 관리하며 트럼프 2기 출범 시 행정부 인선을 구상하고, 자신들의 국정철학과 배치될 만한 연방부처의 직업 관료들을 축출하기 위한 계획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트럼프 1기 때 주가가 급상승한 허드슨연구소는 이번에는 트럼프 진영과 다소 거리를 두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눈길을 끈다. 트럼프 집권기 동안 허드슨은 행정부 고위 인사들은 물론 민주당과 공화당 거물들을 한 자리에 불러모은 것은 물론 모금 활동에서도 두각을 드러낸 바 있다.
허드슨연구소는 지난달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마지막까지 경쟁한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를 ‘월터 P 스턴 석좌’로 영입했다. 헤일리 전 대사는 첫 공식 행사에서 “트럼프는 완벽하지 않지만 그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지지 의사를 밝혔지만 트럼프의 대외정책 공약에 대해선 날카롭게 비판했다.
지난 16일에는 하원 중국 미·중 전략경쟁특위 위원장을 지낸 마이크 갤러거 전 의원(공화)이 펠로우(연구원) 자격으로 합류했다. 의회의 대표적인 대중 강경파로 ‘틱톡 금지법’을 주도한 그는 우크라이나·이스라엘·대만 안보 지원을 적극 지지했다. 미국의 국제문제 개입을 최소화하자는 쪽인 친트럼프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한 공화당 내 ‘고립주의’ 노선과 확연히 다른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