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힝야 학살 4년 끝나지 않은 비극 ②콕스바자르 난민촌의 삶읽음

김윤나영 기자

미얀마 로힝야족인 바하마드(가명·23)는 한 번도 미얀마에 가본 적이 없다. 바하마드의 부모님은 1991년 미얀마 군부의 학살을 피해 목숨을 걸고 방글라데시 국경을 넘어왔고, 그는 1998년 콕스바자르의 쿠투팔롱 난민촌에서 태어났다. 쿠투팔롱 난민촌은 그가 아는 세계의 전부다.

방글라데시 남부의 해안지역 콕스바자르는 원래 휴양지다. 바닷가에는 125㎞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천연 백사장이 있다. 고급 호텔이 즐비한 해안가에서 차를 타고 1시간 정도 들어가면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소수민족’ 로힝야족이 사는 쿠투팔롱 난민촌이 나온다.

이 난민촌을 세계 최대 규모로 만든 건 미얀마 군부의 거듭된 학살이다. 로힝야족 25만명이 1991~1992년 군부의 학살을 피해 이웃 국가 방글라데시로 넘어왔다. 군부가 2017년 8월에도 대대적인 학살을 시작하자, 또다시 75만명이 집을 잃고 국경을 넘어야 했다. 그 결과 여의도 3배가 채 안 되는 면적의 땅에 로힝야 난민 100만명이 다닥다닥 붙어산다.

쿠투팔롱 난민촌의 로힝야족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경향신문은 로힝야족 난민촌의 현실을 생생하게 알리기 위해 사단법인 ‘아디’를 통해 쿠투팔롱 난민촌 주민들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로힝야 난민들이 지난 3월 22일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난민촌에 쳐진 철조망 주변에 모여 있다. | 휴먼라이츠워치 화면 갈무리

로힝야 난민들이 지난 3월 22일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난민촌에 쳐진 철조망 주변에 모여 있다. | 휴먼라이츠워치 화면 갈무리

■“난민촌 곳곳에 철조망, 새장 같다”

로힝야족들은 뿌리깊은 차별과 학살을 피해 인간적인 삶을 추구하기 위해 미얀마를 떠났다. 하지만 그들은 방글라데시의 난민 캠프에서도 여전히 이방인이고,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며 살고 있다. 로힝야 난민 알리힘(가명·29)은 “미얀마에서는 ‘벵갈리 칼라’라고 불렸는데, 방글라데시인들은 우리를 ‘버마야’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두 단어 모두 로힝야족을 가리키는 혐오 표현이다. 전자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불법 이민자’라는 뜻이고, 후자는 ‘미얀마에서 온 불법 이민자’라는 뜻이다. 난민들은 “방글라데시에서도 이동의 자유, 교육을 받을 권리 등 인권이 보장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라고 입을 모았다.

무엇보다 그들은 난민촌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방글라데시 당국은 2019년부터 안전상의 이유로 난민촌 외부와 내부 곳곳에 철조망을 쳤다. 바하마드는 24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우리는 쿠투팔롱 난민촌이라는 거대한 새장에 갇힌 새 같다”고 말했다. 심지어 난민촌 내 이웃 마을 방문조차 금지됐다. 그는 “친척이 아프거나 죽었다고 해도 한 난민촌에서 다른 난민촌으로 여행하는 것이 금지됐다”고 말했다. 특히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이동 통제가 심해졌다. 로힝야 난민 하산(36·가명)은 “방글라데시 당국이 곳곳에 철조망을 두르고 난민촌 입구를 지키고 불심검문을 한다”고 말했다.

난민촌 안에서 경제활동을 할 수도 없다. 하산은 “난민에게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사업, 거래, 일하는 것이 전면 금지됐다”고 말했다. 절대 다수의 난민들이 세계식량기구(WFP)의 원조에 의지해 살아가다 보니 먹을 음식도 늘 부족하다. 하산은 “사람들은 쌀, 기름, 완두콩, 설탕, 달걀 등 최소한의 식량을 배급받지만 생존에 필요한 다른 녹색 채소, 생선, 과일 등은 돈을 내고 사야 한다”고 말했다. 알리힘도 “푸드센터에는 한 달 내내 식량이 부족하고, 돈이 없는 사람들은 며칠씩 굶고 있다”고 말했다.

주거 환경도 열악하다. 로힝야 난민 무함마드(가명·25)는 “부모님을 포함해 가족 8명이 단칸방에 살고 있다”면서 “누이 세 명도 이미 성인인데 좁은 방에서 함께 살아가는 건 매우 힘든 일”이라고 했다. 하산은 “난민촌에 갈수록 인구가 늘어나 일부는 텐트에서 살고 있다”며 “바람이 많이 불고 산사태도 잦기 때문에 텐트에서 자다가 죽거나 다치고 실종되는 사건들도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이들을 가르칠 교육시설도 없다. 알리힘은 “로힝야 교육자와 지역 주민들이 학교를 만들려고 해도 방글라데시 정부가 학교 건립을 허용하지 않는다”면서 “난민촌 내부에 몰래 학교를 지으면 현지 당국이 와서 건물을 부순다”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대다수 어린이가 학교에 못 가고 글도 읽지 못한다”고 그는 말했다. 일부 로힝야 난민들이 자체적으로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쳤지만 이제는 임시 공부방마저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폐쇄됐다.

학교에 못 가는 아이들은 강제 결혼, 아동 노동의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미국 공중보건협회는 지난해 로힝야 15~19세 청소년 중 남성의 8.2%, 여성의 21.5%가 조혼했다고 보고했다. 유엔 이민국은 2018년 “콕스바자르에 있는 로힝야 소녀들은 가장 큰 인신매매 피해자”라고 보고했다. 세이브더칠드런도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코로나19 위기가 로힝야 난민의 조혼이나 아동 노동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부 난민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등 주변국으로 탈출을 시도한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지난 19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지난해 콕스바자르 일대의 난민촌과 미얀마 라카인주에서 배를 타고 탈출을 시도한 로힝야 난민 2413명 중 3분의 2는 여성과 어린이였다고 밝혔다. 그 중 218명은 탈출 도중 바다에서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탈출시켜준다는 말을 믿고 브로커에게 돈을 냈다가 인신매매범에게 팔려가는 경우도 많다. 캐나다 토론토에 본사를 둔 비영리단체 세계평화를 위한 기구(OWP)는 지난해 인신매매에서 구출된 콕스바자르 로힝야 난민이 529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지난해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난민촌과 미얀마 라카인주에서 배를 타고 탈출을 시도한 로힝야 난민 2413명 중 3분의 2는 여성과 어린이였다고 밝혔다. 그 중 218명은 탈출 도중 바다에서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유엔난민기구

유엔난민기구(UNHCR)는 지난해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난민촌과 미얀마 라카인주에서 배를 타고 탈출을 시도한 로힝야 난민 2413명 중 3분의 2는 여성과 어린이였다고 밝혔다. 그 중 218명은 탈출 도중 바다에서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유엔난민기구

로힝야 학살 4년 끝나지 않은 비극 ②콕스바자르 난민촌의 삶

■격리와 본국 송환에만 관심인 방글라데시 정부

방글라데시 정부는 콕스바자르 쿠투팔롱 난민촌의 인구 과밀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그들을 무인도로 이주시키는 정책을 펴고 있다. 2018년부터 벵골만의 무인도 바샨차르에 난민 수용시설과 홍수 방지벽을 짓고, 로힝야 난민 2만여명을 강제 이주시켰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로힝야 난민 총 10만명을 이주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시민단체는 바샨차르섬이 홍수로 물에 잠길 수 있는 지대가 낮은 섬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하산은 “방글라데시 정부는 유엔 같은 국제기구에서 자금을 받아 바샨차르 수용시설을 유지하고 싶겠지만 나는 감옥 같고 안전하지 않은 그 섬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알리힘도 “인간을 위한 시설도, 기회도 없는 새장 같은 곳에 절대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지난 14일엔 여성과 어린이 등 로힝야 난민 20여명이 바샨차르섬에서 탈출을 시도했다가 보트 침몰로 목숨을 잃었다.

방글라데시 정부가 로힝야 난민의 미얀마 송환 정책을 추진하는 것도 논란거리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지난 2월 방글라데시 정부는 “로힝야족 난민의 자발적 송환 절차를 진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기 바란다”는 성명을 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1991년 11월에도 미얀마 군부와 난민 송환 협정을 추진했다. 미얀마 군부가 라카인주에서 로힝야족을 학살하던 중이었음에도 1992년 4월까지 콕스바자르 지역에 있던 난민 2만5000명을 강제 송환했다.

난민들은 쿠데타가 일어난 미얀마에는 더더욱 돌아갈 수 없는 형편이다. 난민 아자쟈(가명·42)는 “로힝야족을 미얀마로 돌려보내는 것은 다시 활활 타는 불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는 것과 같다”면서 “로힝야족은 미얀마 시민권 없이는 어떠한 권리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하마드는 “지금 미얀마에 보내진다면 전보다 더 많은 박해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힝야 난민 어린이들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홍수 피해를 입은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의 쿠투팔롱 난민촌에서 놀고 있다.  콕스바자르 난민촌에는 이날부터 일주일간 폭우가 내려 난민 수천명이 집을 잃었다. 콕스바자르|AP연합뉴스

로힝야 난민 어린이들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홍수 피해를 입은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의 쿠투팔롱 난민촌에서 놀고 있다. 콕스바자르 난민촌에는 이날부터 일주일간 폭우가 내려 난민 수천명이 집을 잃었다. 콕스바자르|AP연합뉴스

■화마에 홍수에…바람 잘날 없는 난민촌

콕스바자르 쿠투팔롱 난민촌에는 방화가 자주 일어난다. 로힝야 난민들은 방글라데시 정부가 방화를 방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화마가 지나가면 기다렸다는 듯 홍수까지 찾아온다.

로힝야 난민 하산(36·가명)은 지난 3월 22일 콕스바자르 쿠투팔롱 난민촌에서 일어난 화재로 집이 전소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 화재로 어린이 3명을 포함한 15명이 사망하고 400명 넘게 실종됐다. 하산은 난민촌 곳곳에 쳐진 철조망에 갇혀 도망치지도 못하고 까맣게 탄 아이들의 시신을 목격했다.

로힝야 난민들은 화재 원인이 방화였는데도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하산은 “화재 당시 몇몇 소방대원들이 진화하지 않고 거리에 그냥 서 있었다”면서 “혼란을 틈타 인근 현지 주민들이 로힝야족을 때리고 물건을 약탈했고, 남아 있는 난민 대피소에도 불을 질렀다”고 말했다. 처음 불을 지른 사람은 로힝야 난민들로 밝혀졌지만 이들 역시 처벌받지 않았다고 그는 덧붙였다. 로힝야 난민 아불(가명·31)은 “여전히 거의 매일 방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면서 “방글라데시 정부는 난민을 여기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사람들이 불을 지르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 4월15일 올해 들어 쿠투팔롱 난민촌에 크고 작은 불이 최소 84건 발생했고, 그 중 45건은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20여일간 집중적으로 발생했다고 밝혔다. 지난 3월29일 하루에만 10건의 화재가 동시에 일어났다. 바마하드는 “매일 다른 마을에서 화재가 여러 번 일어났다”면서 “우리는 불이 나도 철조망 때문에 탈출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로힝야 사람들이 화재를 너무 무서워했다”고 말했다. 난민촌은 천막이나 나무로 만들어진 데다,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화재 피해를 입기 쉬운 구조다.

화재가 쓸고 간 자리에는 홍수가 닥쳤다. 지난달 26일부터 일주일간 난민촌에 폭우가 쏟아져 난민 20여명이 사망하고 30만명이 고립됐다. 아불 가족은 홍수로 살던 판잣집을 잃고 일주일간 천막으로 지어진 임시 대피소에서 지냈다. 그는 “대피소에서도 방수포가 찢어지고 대나무 몇 개가 파괴돼 계속 비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콕스바자르 난민촌은 야산, 골짜기, 하천둑 근처에 있어서 몬순 기간마다 산사태 피해를 겪어왔다. 아불은 “난민촌에 보호시설이 충분하지 않고 안전도 취약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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