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힝야 학살 4년 끝나지 않은 비극 (3) 군부의 칼날, 이번엔 미얀마 시민을 향했다

김윤나영 기자

미얀마인 흐닌 흐닌(가명)은 지난 2월 양곤에서 있었던 군부 쿠데타 반대 시위를 회상하면 아직도 치가 떨린다. 총격을 피해 어느 가정집에 숨어든 그는 군인들이 한 청년을 군홧발로 두들겨 패는 모습을 숨죽여 지켜봤다. 군인들은 심한 욕설을 하며 주택가를 올려다보고 소리쳤다. “용감하면 내려와 봐. 정수리를 쏴 줄게.” 흐닌 흐닌은 25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미얀마 군부를 “자국민을 총으로 쏴 죽이는 악마”로 규정했다.

앤드루(가명·26)도 지난 2월28일 친구와 함께 양곤에서 열린 시위에 나간 뒤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군부가 쏜 총알이 한 청년의 눈을 관통했고 몇 초 뒤 그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모습을 바로 앞에서 목격했다. 같이 간 친구는 허벅지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

‘피의 일요일’로 불리는 그날 전국에서 18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는 친구 동생인 니 니 아웅 뗏 나잉(23)이 살해되는 현장도 봐야 했다. 니 니는 죽기 하루 전 페이스북에 이런 글귀를 적고 시위에 나갔다. “유엔이 행동에 나서기까지 얼마나 더 많은 시체가 필요합니까.”

니 니 아웅 뗏 나잉(23)이 지난 2월 28일 미얀마 군부가 쏜 총에 맞고 살해된 양곤의 거리에 핏자국이 남아 있다. 앤드루(가명·26)는 숨진 니 니 아웅 뗏 나잉이 친구의 동생이라고 했다. 앤드루 제공

니 니 아웅 뗏 나잉(23)이 지난 2월 28일 미얀마 군부가 쏜 총에 맞고 살해된 양곤의 거리에 핏자국이 남아 있다. 앤드루(가명·26)는 숨진 니 니 아웅 뗏 나잉이 친구의 동생이라고 했다. 앤드루 제공


지난 2월1일 새벽 쿠데타를 단행한 군부는 7개월 가까이 시민 살해, 방화, 약탈, 고문을 일삼았다. 군부의 전방위적인 인권 침해는 미얀마 소수민족 로힝야족에 가한 탄압 상황과 비슷하다. ‘로힝야 인권보고서’를 발간한 한국 시민단체 사단법인 아디의 김기남 변호사는 “두 상황이 비슷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2017년 로힝야족을 학살한 군부와 2021년 미얀마 시위대를 살해한 군부는 다르지 않다. 지난 2월 쿠데타를 일으킨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바로 로힝야족 학살의 총책임자였다. 그가 지휘하는 33경보병사단은 2017년 8월 라카인주의 마을 곳곳에서 로힝야족을 학살하고 성폭행하고 그들의 집을 불질렀다. 4년이 지난 후 33경보병사단이 이번에는 쿠데타 저항 시위 진압에 투입됐다. 노련한 저격수들이 만달레이 곳곳의 옥상에서 시위대의 머리를 조준해 사살했다.

로힝야족에게 범죄를 저지르고도 국내외에서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았던 군부는 4년 뒤 더 대담해졌다. 취약했던 미얀마 민주주의는 로힝야족 학살 이후 완전히 무너졌다.

■민주주의 붕괴로 이어진 로힝야족 학살

방글라데시 남부 콕스바자르의 쿠투팔롱 난민촌에 사는 로힝야족 알리힘(가명·29)은 고국의 쿠데타 소식을 착잡한 마음으로 접했다. 알리힘은 25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우리는 쿠데타로 미얀마에 더더욱 돌아갈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이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압도적인 총선 승리로 2016년 1월 최초의 문민정부가 들어섰을 때만 해도 로힝야족들은 안도했다. 로힝야족은 2012년 투표권을 전면 박탈당하기 전까지 NLD에 표를 몰아줬다.

하지만 희망은 1년8개월 만에 실망으로 바뀌었다. 군부는 문민정부 집권 2년 차인 2017년 8월 대대적인 로힝야 인종청소에 돌입했다. 로힝야족 2만5000명이 죽고, 75만명이 난민이 됐다. 그런데도 선출된 민주세력은 군부의 범죄를 두둔했다. 수지 고문은 2019년 네덜란드 헤이그 유엔 국제사법재판소 법정에 미얀마 정부 대표로 출석해 군부의 인종학살 혐의를 부인했다.

경향신문이 사단법인 아디를 통해 서면 인터뷰한 콕스바자르 난민촌의 로힝야족들은 배신감을 토로했다. 로힝야족 난민인 하심(가명·36)은 “수지 고문마저 우리의 권리를 부정하고 학살 책임자를 변호해서 슬펐다”고 말했다. 난민 베름(가명·43)은 “그동안 수지 고문을 믿고 투표했지만 철저히 배신당했다”고 했다. 알리힘은 “수지 고문도 우리처럼 군부에게 공포심을 느낀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수지 고문이 이끄는 집권 NLD가 군부를 견제할 수 없었던 구조적 요인도 있다. 군부가 2008년 일방적으로 개정한 헌법은 의회 의석의 25%를 군부에 자동 할당하고, 군 통수권과 비상사태 선포권을 군 최고사령관에게 부여했다. 군부는 헌법을 개정하려면 의석 75%의 동의를 얻도록 해 사실상 개헌을 영구히 막아놨다. 수지 고문으로선 군부의 협조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군부가 경제 권력까지 쥐고 있는 현실도 개혁을 방해한다. 군부는 1990년대에 만든 미얀마경제홀딩스(MEHL)와 미얀마경제협력(MEC)이라는 기업에 각종 특혜를 몰아줘 재벌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MEHL의 최대 주주이기도 하다. 쿠데타 세력이 재벌 총수까지 맡은 격이다. 미얀마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500달러(175만원)에 불과하지만 군 수뇌부의 자녀들은 해외에서 유학하고 부를 물려받아 호화생활을 누렸다.

미얀마 양곤 거리의 한 전봇대에 지난 2월 28일 “민주주의를 찾습니다. 찾으면 우리에게 돌려주세요”라고 적힌 전단지가 붙어 있다. 앤드루 제공

미얀마 양곤 거리의 한 전봇대에 지난 2월 28일 “민주주의를 찾습니다. 찾으면 우리에게 돌려주세요”라고 적힌 전단지가 붙어 있다. 앤드루 제공

■“국민통합정부, 로힝야족에게 사과해야”

수십년간 각종 특권을 누려온 군부는 자신들을 향한 비난의 화살을 다른 곳에 돌릴 필요가 있었다. 불교 인구가 90%에 가까운 미얀마에서 이슬람교를 믿고 언어와 외모도 다른 로힝야족은 손쉬운 표적이 됐다. 로힝야족은 방글라데시계 불법 이민자란 뜻의 ‘벵갈리 칼라(kala)’라고 불리는 혐오의 대상이었다.

교육자와 종교인들이 세뇌 교육에 가담했다. 한국에 사는 미얀마인 웨노에 흐닌 쏘(35)는 “한국이 예전에 반공교육을 했듯이, 어렸을 때 승려들이 인도사람처럼 생긴 ‘칼라’들이 아이를 많이 낳아서 미얀마 땅을 빼앗아갈 것이라고 우리를 세뇌했다”면서 “2017년 로힝야 학살 당시에도 군부는 로힝야 남성들이 미얀마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가짜 뉴스를 퍼뜨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2월 군부 쿠데타 이후 미얀마 내 기류도 바뀌기 시작했다. 2017년 군부의 학살로 미얀마 내에 얼마 남지 않은 로힝야족도 쿠데타 반대 시위에 힘을 보탰다. 로힝야족 학살에 사과하는 미얀마인들도 늘었다. 미얀마인 흐닌 흐닌은 “많은 사람이 군부가 오랫동안 시민들을 세뇌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면서 “많은 미얀마 시민이 이제는 로힝야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군사정권에 맞서 NLD 의원들이 주축이 돼 출범한 국민통합정부(NUG)도 로힝야 인권 문제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NUG는 지난 6월 라카인주의 로힝야족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고 외국인 등록증을 폐기하겠다고 밝혔다. 웨노에 흐닌 쏘는 “NLD 집권 5년간의 로힝야족 학살이라는 과거사에 대한 숙제를 풀지 않고는 미얀마에 진정한 민주 정부가 출발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NUG에 대한 불신은 여전하다. NUG가 국제사회의 인정과 지원을 받기 위해 로힝야족에게 지키지 못할 약속을 했다는 시각도 있다. 콕스바자르의 로힝야 난민 모하메드(가명·31)는 경향신문에 “미얀마의 135개의 소수민족 대다수가 로힝야 공동체를 싫어하기 때문에 미얀마 정부가 로힝야족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리라고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로힝야 학살 4년 끝나지 않은 비극 (3) 군부의 칼날, 이번엔 미얀마 시민을 향했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데칼코마니 2017년 군부와 2021년 군부

미얀마 정치범지원협회(AAPP)는 군부 쿠데타 205일째를 맞은 지난 24일까지 군부의 총탄에 목숨을 잃은 시민을 1014명으로 집계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사망자 중 최소 75명이 어린이라고 밝혔다. 로힝야족 2만5000여명도 4년 전인 2017년 8월 군부에 희생됐다. 사단법인 아디는 4년 전에도 군부가 로힝야 아동, 노인, 장애인, 임산부를 살해했다고 지적했다. 학살의 역사가 되풀이된 것이다.

군부가 시신을 탈취하거나 유가족 동의 없이 화장한 것도 비슷하다. 군부는 지난 3월 만달레이의 공동묘지에 묻힌 쩨 신(19)의 시신을 탈취하고 유가족 동의 없이 부검했다. 지난 4월엔 군경이 쏜 총에 맞고 사망한 예윈 나잉(15)의 시신을 몰래 화장했다.

사단법인 아디의 로힝야 인권보고서에는 “군부가 잔혹하게 살해한 사람들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도록 시신을 태우거나 시신의 얼굴에 산을 붓고 시신을 물가에 버렸다”는 대목이 있다. 한 로힝야 생존자는 “2016년 11월15일 우리가 시신을 수습하려 할 때 군이 총을 쏘기 시작해서 시신을 두고 와야 했다”고 말했다.

불법 체포와 구타, 고문도 반복되고 있다. AAPP는 쿠데타 반대 시위대 중 7470명이 체포됐고 그중 어린이 2명을 포함해 26명이 사형을 선고받았다고 밝혔다. 소셜미디어에는 고문과 성적 학대를 받는 미얀마 여성 수감자에 대한 인권 보장을 촉구하는 ‘시스터즈 투 시스터즈(#sisters2sisters)’ 해시태그 달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로힝야족들도 2017년 8월 불법 체포 후 고문을 당했다. 아디의 보고서는 “군경은 남자 성기에 화상을 입히고 치아를 부수거나 뽑았으며 혐오 표현을 사용했다”면서 “로힝야 사람들은 15~3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고 적고 있다. 여성은 성폭행 후 살해당했다.

군부는 약탈과 방화도 일삼았다. 지난 6월15일 중부 마궤의 킨 마 마을에 불을 질러 집 200여채가 탔고, 미처 도망치지 못한 80대 노인 부부가 숨을 거뒀다. 3월에는 군이 양곤의 한 마을을 약탈해 2000만짯(1700만원)어치 물건을 가져갔다. 한 피해 상인은 “트럭을 타고 온 군인들이 집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와 총을 쏘고 다 약탈해갔다. 무장강도였다”고 현지 매체 이라와디에 말했다.

지난 6월에는 무법천지가 된 국내 상황에 점점 대담해진 군경이 양곤에서 차를 타고 이동하던 한국인 5명에게 통행료 명목으로 25만짯(17만원)의 뇌물을 요구하는 일이 벌어졌다. 미얀마 주재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군경이 검문소에서 간혹 현금을 요구하는 상황이 생겨 교민들이 도움을 요청해왔다”면서 “대사관이 ‘현장에 직접 가야 통과시켜주겠다면 지금 바로 가겠다’고 하니 통과시켜주더라”고 말했다.

미얀마 정치범지원협회(AAPP)는 군부 쿠데타 205일째를 맞은 지난 24일 미얀마 군부의 총탄에 목숨을 잃은 시민 수를 1007명으로 집계했다. AAPP 화면 갈무리

미얀마 정치범지원협회(AAPP)는 군부 쿠데타 205일째를 맞은 지난 24일 미얀마 군부의 총탄에 목숨을 잃은 시민 수를 1007명으로 집계했다. AAPP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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