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내각에 결여된 세 가지 : 여성·전 정부 인사·소수민족

김윤나영 기자
아프가니스탄을 재장악한 탈레반이 7일(현지시간) 내무장관으로 지명한 시라주딘 하카니에 대해 과거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배포했던 수배 전단의 모습. FBI는 오랫동안 하카니를 요주의 인물로 주목하고 1000만 달러의 현상금을 내건 바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을 재장악한 탈레반이 7일(현지시간) 내무장관으로 지명한 시라주딘 하카니에 대해 과거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배포했던 수배 전단의 모습. FBI는 오랫동안 하카니를 요주의 인물로 주목하고 1000만 달러의 현상금을 내건 바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을 무력 탈환한 탈레반이 무함마드 하산 아쿤드를 새 정부 총리 대행으로 하는 내각 구성안을 발표했다. 내각 전원을 탈레반에서 요직을 맡았던 남성 지도자로 구성하고, 테러 혐의 등으로 미국이나 유엔 제재 대상에 오른 인물도 내각에 포함시켰다. 탈레반이 약속했던 포용적 정부와는 거리가 먼 친정체제를 구축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7일(현지시간) 수도 카불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쿤드 총리 대행 등 과도 정부 구성을 공개했다. 다른 대변인 수하일 샤힌도 8일 자신의 트위터에 내각과 주요 보직자 등 33명의 이름과 직책 명단을 영어로 올렸다.

탈레반은 새 정치 체제의 구체적인 형태나 공식 국가 명칭 등은 아직 공개하지 않았다. 탈레반 최고지도자 하이바툴라 아쿤자다의 역할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다만 외신들은 탈레반이 이란식 신정일치와 유사한 체제를 택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최고지도자가 신의 대리인으로서 가장 큰 권위를 갖고 입법부 의원과 행정부 수반이 실무를 담당하는 체제를 말한다.

정부 수반으로 지명된 아쿤드는 최고지도자인 아쿤자다의 측근이다. 그는 탈레반 집권기인 1996~2001년까지 외무장관과 부총리를 맡았다. 당초 정부 수반으로 거론되던 조직의 2인자인 압둘 가니 바라다르는 제1부총리 대행을 맡았다.

내각 구성을 보면 그간 공언해온 포용적 정부와는 거리가 멀다. 탈레반은 내각에 여성 장관을 한 명도 두지 않았다. 탈레반과 공동 정부 구성 문제를 논의했던 하미드 카르자이 전 대통령이나 압둘라 압둘라 국가화해최고위원회 의장 등 아프간 전 정부 지도자들도 제외했다. 게다가 내각 인사 대다수는 탈레반의 주류 민족인 파슈툰족 출신으로 구성했다. 소수민족 장관은 33명 중 3명밖에 되지 않는다. 아프간 몽골계 소수민족인 하자라족은 1998년 탈레반 집권 당시의 학살이 재현될까 두려워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전했다.

내각 일부 인사가 서방국가의 제재 대상이라는 점도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총리 대행인 아쿤드부터 유엔 제재 대상에 올랐다. 내무장관 대행인 시라주딘 하카니는 미 정부가 테러단체로 지정한 ‘하카니 네트워크’ 설립자의 아들이다. 하카니는 2008년 미국 시민을 포함한 6명이 사망한 폭탄테러 혐의로 미 연방수사국(FBI)의 수배를 받고 있다. 그는 2008년 하미드 카르자이 전 아프간 대통령 암살 시도 계획에도 연루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방장관 대행은 탈레반의 공동 창설자 무함마드 오마르의 아들인 무함마드 야쿠브가, 외무장관 대행은 아프간 정부와의 평화협상에 참여했던 모울비 아미르칸 무타키가 맡았다.

이번 인사는 내부 투쟁에서 강경파가 승리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탈레반 강경파들은 “외국 세력이 내각 구성에 관여하게 둘 수 없다”는 주장을 관철했다고 BBC가 전했다. 특히 탈레반의 2인자이자 온건파인 바라다르가 부총리 대행으로 밀렸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이번 내각이 ‘과도 내각’이라고 밝혔으나 탈레반이 민주적 선거를 치를지는 미지수다.

최고 지도자인 아쿤자다는 내각 구성안 발표 직후 성명을 통해 “새 아프간 정부는 샤리아를 따라 국가를 통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는 불륜을 저지르면 돌로 쳐 죽이고 도둑질하면 손발을 자르는 등 가혹한 형벌을 적용한다. 탈레반이 여성 인권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으리라는 우려도 커졌다. 탈레반은 1990년대 집권 당시 극단적인 샤리아법을 적용해 여성의 취업과 교육, 외출을 제한한 바 있다.

탈레반의 이번 정부 구성안을 볼 때 국제사회에서 정상국가로 인정받아 경제를 살리겠다는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아프간은 전체 예산의 75%를 국제 원조에 의존해왔는데, 탈레반 집권 이후 서방 국가들의 국제 원조가 끊겼다. 미 국무부는 7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내각 명단에 오로지 탈레반이나 제휴 조직원들만 이름을 올렸고 여성은 아무도 없다는 점에 주목한다”면서 “내각 인사 몇몇의 소속과 행적도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탈레반이 과도 정부 내각을 제시한 것으로 이해한다”면서 “말이 아니라 그들의 행동으로 탈레반을 평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탈레반이 기본 통치 원리로 내세운 샤리아도 아프간 경제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 탈레반의 음악·영화·미용산업 제한 조처로 이미 관련 일자리 수천개와 수백만명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 압둘 카디르 피트랏 전 아프간 중앙은행 총재는 현지 매체 에틸라아트로즈 기고에서 “아프간 경제 붕괴가 임박했다”면서 “탈레반은 전쟁과 파괴가 성공적인 경제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것보다 더 쉽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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