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아동, 500만명 기근에 굶어죽었단 소식도…5명 중 1명은 강제 노동”읽음

박하얀 기자

탈레반, 아프간 장악 100일

세이브더칠드런 아프간 사무소 직원 인터뷰

<b>위태로운 눈빛들</b> 세계 아동의날인 20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부르카를 입은 여성과 아이들이 유엔 세계식량기구가 지원하는 현금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유엔은 아프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식량난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겨울이 다가오면서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카불 | AP연합뉴스

위태로운 눈빛들 세계 아동의날인 20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부르카를 입은 여성과 아이들이 유엔 세계식량기구가 지원하는 현금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유엔은 아프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식량난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겨울이 다가오면서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카불 | AP연합뉴스

착취의 위험에 무방비 노출
무장단체 신병으로 가기도
식료품 가격 50% 이상 폭등
의료시설은 17%만 가동 중

22일은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인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지 100일째 되는 날이다. 지난 8월15일 탈레반 깃발이 끝내 카불에 꽂히자 시민들은 탈레반 1차 집권기(1996~2001년)에 겪었던 ‘암흑의 시대’가 재연될 것이라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공포는 현실이 됐다. 탈레반은 이슬람 율법(샤리아)의 틀 안에서 여성의 권리를 존중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일터, 학교, 그 밖의 공적 영역에서 여성은 지워졌다. 안전한 울타리가 사라진 아이들은 강제 노동과 강제 결혼(조혼)에 내몰리고 있다. 탈레반이 장악한 이후 해외 원조가 끊기면서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는 2400만명가량(어린이 1300만명 포함)이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경향신문은 지난 17일 화상 인터뷰를 통해 지난 6월부터 카불에서 구호활동을 하고 있는 막달레나 로스만 세이브더칠드런 아프가니스탄 사무소 사업개발관리 디렉터를 만났다. 로스만 디렉터는 현지 사업의 진행 상황 및 전략을 점검하는 역할을 한다. 시리아, 티그라이, 동부 우크라이나 등 분쟁 현장에서 10년 넘게 구호활동을 해온 그는 “아이들이 착취의 위험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아프간 아동, 500만명 기근에 굶어죽었단 소식도…5명 중 1명은 강제 노동”

■ “구호활동 최근에야 재개”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하자 비정부기구(NGO)가 존폐의 갈림길에 섰다는 어두운 전망을 담은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NGO는 8월 말 미군이 철군한 이후 아프간에 남은 시민들에게 사실상 유일한 지원 통로다.

- 세이브더칠드런 아프간 사무소도 탈레반의 아프간 점령 이후 현지에서의 구호활동을 잠정 중단했다고 들었다.

“당국(‘탈레반’을 지칭하는 용어)이 카불을 장악한 후 안보 문제, 직원들의 안전 등을 이유로 지원 프로그램을 중단했다가 최근 다시 시작했다. 나 역시 8월에 카불을 떠났다가 지난주 동료들과 돌아와 구호활동을 하고 있다.”

- 현재 아프간 상황은 어떤가.

“매우 위태롭다. 수십년 동안 무력 충돌을 겪어온 데다가 반복되는 자연재해, 코로나19 대유행 등의 영향까지 더해졌다. 경제도 무너져 최근 식료품 가격이 50% 넘게 치솟았다. 500만명의 아이들이 기근 상태 직전까지 갔다. 현재 의료시설의 17%만 가동되고 있다.”

- 아프간에 남은 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듣고 있나.

“아이들은 학교에 갈 수 없다면서 자신들의 꿈을 이룰 수 있을지 걱정한다. 우리는 매일 아프간 어린이들과 가족들의 상황이 악화하는 것을 보고 있다. 최근에 카불에서 아이들이 굶어 죽었다는 소식도 보고받았다.”

성별 분리를 강제하는 탈레반 집권하에서 여성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여성 활동가들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이들을 향한 위협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여성 인권 보장을 요구해온 20대 여성 운동가를 비롯한 여성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로스만 디렉터는 이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다만 ‘여성 활동가들은 단독으로 활동할 수 없냐’고 묻자 “이전부터 아프간 특정 지역들에서 여성들은 외딴 장소 등에 갈 때 남성 친척과 동행해야 했다”며 활동에 제약이 있음을 시사했다.

- NGO가 아프간에서 구호활동을 이어가려면, 탈레반으로부터 지속적으로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들었다. 탈레반 집권 후 NGO 활동에 제약은 없나.

“우리는 독립적인 단체다. 아프간에서 수십년 동안 구호활동을 하면서 분쟁 지역, ‘당국’의 통제하에 있는 곳도 지원해왔다. 당국에 관계없이 지원이 필요한 곳들에서 구호활동을 이어갈 것이다. 구호단체들에 중요한 것은 당국(탈레반)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국제적 수준의 합의’가 이뤄지는 것이다.”

■ “아프간의 위기=아이들의 위기”

로스만 디렉터는 아프간의 암울한 상황을 전하면서 ‘아이들’을 여러 번 언급했다. 현재 아프간의 위기가 곧 “아이들의 위기”라고 짚었다. 아프간 어린이 1000만여명은 인도주의적 지원 없이 살아남기 힘들고, 16명 중 1명은 5번째 생일을 맞이하기 전에 생을 마감한다고 단체는 밝혔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연말까지 5세 미만 영·유아 320만명이 급성 영양실조로 고통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강제 노동에 내몰리는 아이들도 늘고 있다. 특히 여아들은 가중된 위험에 직면했다. 탈레반은 초등학교 교육은 성별과 관계없이 받을 수 있다고 밝혔지만, 중등학교 이상부터는 여학생들의 교육을 제한했다.

- 일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되나. 아이들이 처한 상황은 어떤가.

“정확한 집계는 아직 없지만, 아프간 어린이의 20%가 일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아이들이 하는 일은 위험한 일이 상당수다. 집 밖을 전전하며 팔 만한 물건들을 줍거나, 비정규직으로 일하거나, 신병을 모집하는 무장단체에 들어가기도 한다. 규제받지 않는 영역에서 경제활동을 하다 보니 더 큰 위험에 노출돼 있다.”

- 여아들의 강제 결혼은 아동학대이자 성폭력 문제이기도 한데, 현지 NGO가 개입할 여지가 있나.

“우리가 접근하기 조심스럽고 민감한 부분이 있다. 성에 기반한 폭력을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폭력이 늘고 있다. 여학생들이 교육 기회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없다면 여성 의사·교사·공무원 등이 나올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고 아프간은 앞으로도 계속 인도주의적 원조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 국내 실향민이 늘고 있다. 고향을 떠난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나.

“8월 이후 아프간 실향민은 2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급하게 집을 떠났고 이 과정에서 아이들이 보호자(부모 등)로부터 분리되는 일도 흔하다. 아예 가족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역할은 무엇인가.

“사상 최대 규모의 인도주의적 위기를 맞은 아프간 상황이 겨울에는 더 나빠질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어디에 있든지 필수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지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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