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의 땅’ 티베트를 가다

(상)‘강제노동교육 의혹’ 기술학교 가보니…자발성 강조하지만

‘특별 조정관’ 임명, 회담까지 소수민족 문제에 적극 개입 중 “내정간섭” 강력한 반발

티베트 학생들이 지난 19일 린즈시 바이구의 직업기술학교에서 다도 수업을 받고 있다. 린즈 | 박은경 특파원

티베트 학생들이 지난 19일 린즈시 바이구의 직업기술학교에서 다도 수업을 받고 있다. 린즈 | 박은경 특파원

‘강제노동교육’ 의혹 제기된
서비스 직업기술학교 첫 공개
학생들 ‘자발성’ 강조하지만
교육 누적인원 60만명 달해

‘빈곤 퇴치’ 명목 중국의 정책
고유 문화·정체성 훼손 눈총

베이징 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가 4시간 반 만에 중국 남서부 티베트자치구의 주도 라싸(拉薩)에 닿았다. 중국에서는 티베트를 ‘서쪽의 보물창고’라는 뜻의 시짱(西藏)이라고 부른다. 티베트는 인도, 네팔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군사적 요충지이자 우라늄, 구리, 석유 등 풍부한 자원을 품고 있으며, 환경·문화적 가치도 높다.

중국 정부의 초청으로 지난 14일부터 20일까지 일주일간 티베트의 라싸, 르카쩌(日喀則), 산난(山南), 린즈(林芝) 등 4개 도시를 취재했다. 로이터, 블룸버그, 타스, 교도통신 등 외신 11개사가 참가했으며 한국 매체로는 경향신문이 유일하게 포함됐다.

중국 정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2월 중순 이후 티베트에서는 코로나19 환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 때문일까. ‘티베트 전통건축의 걸작’ 포탈라궁은 관광객들로 북적였고, 라싸 시내 식당도 손님들로 활기가 넘쳤다. 형형색색의 타루쵸(오방색 깃발)가 황토 빛 산세에 생기를 더하고, 묵직하게 회전하는 마니차(경전이 적힌 통)가 고요한 아침을 깨웠다.

하지만 평화롭게 보이는 모습이 전부는 아니다. 티베트는 분리독립 움직임 등 이유로 중국 당국이 특수하게 관리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이 티베트 종교·인권 문제에 대한 개입 강도를 높이면서 더 복잡해졌다. 민감한 문제가 얽히면서 외신기자들의 취재는 물론 여행도 사실상 금지돼 있다. 중국 정부는 빈곤 퇴치 성과를 알리기 위해 수년 만에 티베트 취재를 허용했지만,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티베트의 속살을 엿볼 기회이기도 했다. 2회에 걸쳐 ‘금단의 땅’ 티베트 현황을 보도한다.

■ 논란의 현장을 찾다

티베트 직업기술학교를 지난 19일 찾았다. 린즈시 바이(巴宜)구에 위치한 이 학교는 티베트 내 12개 직업학교 중 하나다. 티베트 직업기술학교는 최근 강제노동교육 의혹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이슈로 국제뉴스에 오르내렸다. 미국 제임스타운 재단은 지난 9월 티베트 농부와 축산업자 50만명이 2020년 1월부터 7개월 동안 강제로 군대식 훈련을 받고, 공장 노동자로 탈바꿈됐다고 주장했다. 재단이 공개한 이들의 훈련 보고서를 보면 교과목은 ‘업무 규율, 중국어, 업무 윤리’ 등이며 ‘일을 할 수 없고, 하고 싶지 않고, 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태도’를 바꾸는 데 목적이 있다.

당시 중국 정부는 농촌 노동자 재교육은 빈곤 완화 정책이라고 반박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강조하고 있는 ‘극도의 빈곤을 올해 안으로 척결하겠다’는 정책 목표를 이행한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의혹이 제기된 후 이 학교가 경향신문 등을 통해 처음 공개된 것이다. 학교는 크기로 방문자들을 압도했다. 교실동과 기숙사동 등 건축면적만 1만3800㎡에 달했다. 지난해 가을 현재 위치로 확장·이전했고, 이를 위해 5400만위안(약 90억원)의 재정이 투입됐다고 학교 측은 밝혔다. 4000명을 수용 가능해 대규모 교육도 가능해 보였다.

라이잉하오(賴映浩) 교감은 “올 가을학기에 등록한 정규과정 학생은 총 2191명이며 이 중 티베트인 학생이 2177명으로 99%에 달한다”고 말했다. 교육 체계는 한국의 특성화 고등학교와 흡사하다. 관광산업, 문화예술, 자동차 등 11개 전공으로 나뉘는데 주로 린즈시 관광 수요에 따른 맞춤형 인재 양성에 집중돼 있다고 학교 측은 전했다.

중국 공안이 티베트 라싸의 포탈라궁 앞에서 보초를 서고 있다. 라싸 | 박은경 특파원

중국 공안이 티베트 라싸의 포탈라궁 앞에서 보초를 서고 있다. 라싸 | 박은경 특파원

■ “강제성 없다”는데…

이곳에서 만난 학생들은 자발적 입학을 강조했고, 입학 후 보통화(중국 표준어) 실력이 늘었다고 했다. 교실에서 커피 수업을 받고 있던 18세 가마스둬는 “고입 시험을 치른 뒤 여행가이드가 되고 싶어서 자원했다. 학교에 오기 전에는 부모님과 티베트어로만 대화했는데 입학 후 보통화 실력이 크게 향상됐다”고 했다. 중국어 수업은 주당 15교시, 티베트어 수업은 주당 2교시라고 했다. 학생들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이 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24시간 학교의 관리하에 있다. 티베트 농·목축민의 자녀들은 이 학교 교육을 통해 관광서비스업 종사자 등으로 성장하게 된다.

농·목축민에 대한 단기 교육도 실시 중이다. 민박 운영 같은 관광산업, 자동차, 컴퓨터 관련 기술을 익히고, 관련 분야에 취업하게 된다. 일각에서는 이 과정에서 지역 할당제, 강제교육 등이 이뤄진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리원치옹(李文瓊) 서기는 “모든 과정의 입학은 강제성 없이 자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자원 학생들이 많아 동원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일부 학생들은 산둥(山東)성 파견교육을 통해 3개월간 전기용접 등의 기술을 익힌 후 돌아와 ‘촨짱(쓰촨성~티베트)철도’ 건설 현장에 투입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현재까지 티베트에서 직업기술 교육을 받은 누적인원은 60만명으로 전체 인구(350만명)의 17%에 달한다고 정부 관계자는 전했다. 다만 농·목축민들에 대한 단기과정 수업은 취재진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 ‘빈곤 퇴치’만일까

중국은 올해 말까지 농촌 빈곤인구를 제로(0)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다. 티베트는 중국 내 6곳의 심각한 빈곤지역을 뜻하는 ‘3구3주(3區3州)’ 중 성(省)급으로는 유일하게 포함돼 있다. 그런만큼 이곳의 성패가 빈곤 퇴치 성공 여부의 가늠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 중국 정부 입장이다. 빈곤 퇴치를 위해 농·목축민들의 이주 및 직업교육이 이뤄졌을 뿐 강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라싸시 두이룽더칭구 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수랑왕무는 빈곤 퇴치 정책에 따라 해발이 낮은 현 지역으로 이주했다고 했다. 산에서 목축을 하던 부모님의 직업도 아버지는 경비원, 어머니는 청소원으로 바뀌었다. 두이룽더칭구 보마촌은 농촌에서 라싸시로 이주한 사람들의 정착마을 중 하나다. 2016년 100가구 403명이 입주한 이래 현재 544가구 1762명으로 늘어났다. 이 마을 주민인 츠마주잔은 “이주하면서 마을 사람들은 농업 중심에서 산업단지 노동 위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자율적으로 이뤄졌을까. 티베트인들은 언어, 종교, 역사, 문화, 생활 관습이 중국 주류인 한족과 다르다. 고전이 되어버린 <오래된 미래>를 보면 티베트인들은 거대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와 전통적 생활방식을 중시한다. ‘빈곤 퇴치’라는 명목하에 진행되는 중국 정부의 정책은 일부 티베트인들에게는 정체성 훼손 시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특히 철로 개통과 관광산업이 티베트 문화를 희미하게 할 것이라는 우려는 이전부터 있었다. 강제노동교육 의혹이 제기된 직업기술학교가 관광과 철도 분야에 집중하는 것은 우연일까.

■중국의 역린 ‘티베트 문제’ 쟁점화하는 미국

미·중 충돌이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면서 티베트(西藏·시짱) 문제도 갈등의 한 축으로 부상했다. 특히 미국은 티베트의 종교적, 문화적, 언어적 정체성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티베트 문제를 쟁점화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내정간섭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1월 하원에서 티베트 지역의 종교적 자유와 인권 확대를 지지하는 내용을 담은 ‘티베트 정책법(Tibet Policy Act)’을 통과시킨 것을 계기로 티베트 문제를 계속 쟁점화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 7월 중국이 미국 외교관과 언론인, 관광객의 티베트 지역 방문을 조직적으로 막아왔다면서 상호 접근법에 따라 이 같은 정책에 관련한 중국 관리들의 비자를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급기야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14일 로버트 데스트로 국무부 차관보를 ‘티베트 문제 특별조정관’으로 임명하고 티베트 문제에 적극 개입하겠다고 했다. 조정관 자리는 지난 버락 오바마 행정부 이후 쭉 공석이었다.

데스트로 차관보는 임명 직후 티베트 망명정부 수반인 롭상 상가이를 만났다. 버락 오마마 전 대통령,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티베트의 영적인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만난 적은 있지만 망명정부 수반을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반면 중국은 반발하고 있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과 소수민족 문제를 건드리는 것을 역린(逆鱗)으로 여긴다. 자오리젠(趙立堅)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20일 정례 브리핑에서 “티베트 문제는 중국 내정으로 그 어떤 외부 세력의 간섭도 용납하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데스트로 차관보가 롭상 상가이를 만난 것을 두고는 “미국에 엄정한 교섭을 제기했다”고 했다. 중국은 특정 사안에 대해 외교 경로로 항의한 경우 ‘엄정한 교섭을 제기했다’는 표현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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