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해외상장 전 안보심사부터 받아라”…디디추싱 사태 후 미국 겨냥 규제안 내놔

베이징|이종섭 특파원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 인터넷안보심사방법 개정안 의견수렴 통지문. 홈페이지 캡쳐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 인터넷안보심사방법 개정안 의견수렴 통지문. 홈페이지 캡쳐

중국이 자국 인터넷 기업의 해외 증시 상장시 사전 심사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규제안을 마련했다. ‘중국판 우버’로 불리는 차량공유업체 ‘디디추싱(滴滴出行)’의 뉴욕 증시 상장으로 촉발된 규제 움직임이 구체화된 것이다. 미국과의 갈등 속에서 자국 기업의 미국 증시 상장을 막고 당국의 통제권 안에 두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은 지난 10일 ‘인터넷안보심사방법’ 개정안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오는 25일까지 의견을 수렴한다고 밝혔다. 100만명 이상의 가입자 정보를 보유한 인터넷 서비스 운영자가 해외 증시에 상장하려면 반드시 당국의 사이버 안보 심사를 거쳐야 한다는 게 개정안의 주요 내용이다. 그동안 별다른 규정을 두지 않았던 자국 기술 기업의 해외 상장에 대해 사전 심사 절차를 의무함으로써 당국의 통제를 강화한 것이다. 14억명의 인구를 감안할 때 가입자 100만명 이상이라는 기준은 중국에서 거의 대부분의 인터넷 기업에 적용된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해외 증시에 상장하려는 중국 인터넷 기업은 신고서와 함께 국가안보 영향에 관한 보고서와 기업공개(IPO) 자료 등을 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규제 당국은 이를 근거로 중요 데이터와 대량의 개인정보가 유출되거나 외국 정부에 의해 통제·악용될 위험이 없는지 등을 사전 심사하겠다는 방침이다. 심사를 위해 인터넷정보판공실에는 인터넷안보심사판공실이 신설되며 국가발전개혁위원회와 공업정보화부, 공안부, 국가안전부, 재무부, 상무부, 인민은행,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 등 13개 기관이 공동으로 심사 체계를 구축하게 된다.

개정안에는 특정 국가가 명시돼 있지 않지만 이번 규제안은 사실상 미국 증시에 진출하려는 자국 기업들을 겨냥해 만들어진 것이다. 최근 디디추싱의 뉴욕 증시 상장은 이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됐다. 중국에서 5억명에 이르는 이용자를 가진 차량공유업체 디디추싱이 뉴욕 증시에 상장되자 규제 당국은 안보 심사에 착수하고, 디디추싱 관련 애플리케이션(앱)을 잇따라 앱스토어에서 퇴출시켰다. 미국과 전방위적 갈등을 빚고 있는 중국은 방대한 지리 정보나 고객 정보 등을 가진 자국 기술 기업이 미국 증시 보다는 홍콩이나 상하이 증시에 상장해 당국의 통제권 안에 있기를 원한다. 기업들이 가진 민감한 정보가 미국 증권감독 당국이나 주주들에게 넘어가는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국 기업들의 성장 이익이 미국 투자자들에게 돌아가는 것도 중국으로선 못마땅한 대목이다. 하지만 규제 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자국 내 상징적인 인터넷 서비스 기업이 뉴욕 증시 상장을 강행하자 본격적으로 칼을 빼들고 나선 것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미국 증시 상장을 준비하던 중국 기업들도 하나둘 발을 빼고 있다. 중국 의료 데이터 플랫폼 ‘링크닥’은 디디추싱 사태 이후 뉴욕 증시 상장을 위한 IPO 절차를 중단했고, 피트니스 앱 ‘킵’과 음성 콘텐츠 플랫폼 ‘히말라야’ 등은 상장 계획을 백지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리서치회사 플레넘의 파트너인 펑추청은 블룸버그통신에 “100만 사용자라는 기준은 IPO를 준비하는 모든 인터넷 기업에 해당될 수 있다”며 “이런 규정은 중국 인터넷 기업들이 앞으로 안보 심사를 피하기 위해 외국 대신 홍콩 증시를 선택하도록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중국이 향후 기업의 해외 상장 자체를 전면적으로 차단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컨설팅업체 트리비움차이나의 켄드라 섀퍼는 “중국은 궁극적으로 기업의 해외 상장을 막으려는 것이 아니라 통제 메커니즘과 절차를 갖추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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