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중·미 관계 악화는 미국 탓”…미 “중국 행위 우려, 솔직한 대화”

베이징|이종섭 특파원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 트위터 캡쳐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 트위터 캡쳐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26일 중국 톈진(天津)에서 열린 셰펑(謝鋒) 중국 외교부 부부장과의 회담을 앞두고 트위터를 통해 “중국 허난성의 수해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에게 미국의 진심 어린 애도를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지난 3월 미국 알래스카에서 열린 고위급 회담에서 양국이 거세게 충돌한 뒤 처음으로 어렵게 성사된 고위 외교 당국자간 회담을 앞두고 중국에 유화적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4개월여만에 미 고위 외교관을 안방에서 맞은 중국은 작심한 듯 미국을 향한 공세를 퍼부으며 잘못된 정책을 바꾸라고 요구했다. 미국도 사이버 공간에서의 중국의 위협과 홍콩, 대만, 신장 문제 등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양측은 “솔직한 대화가 있었다”고 이번 회담에 의미를 부여했다. 셔먼 부장관은 이날 톈진에서 셰펑 부부장과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잇따라 만나 양국 관계를 비롯한 각종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셰펑 부부장은 이날 톈진시 빈하이 1호 호텔에서 열린 셔먼 부장관과의 회담에서 “중·미 관계가 교착 상태에 빠지고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한 근본 원인은 미국 일부 인사가 중국을 ‘가상의 적’으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악마화해 미국인들의 정치·경제·사회적 불만과 구조적 모순을 중국 탓으로 돌리려 한다”면서 “중국의 발전만 억제하면 미국의 패권이 계속될 것이란 잘못된 사고와 위험한 대중국 정책을 바꿀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미국이 대중 관계를 두고 얘기하는 ‘경쟁과 적대, 협력’의 삼분법은 중국을 억누르려는 속임수라며 “원하는 것이 있을 때만 협력을 말하고 자국이 우세한 영역에서는 봉쇄와 제재로 충돌을 불사하며 일방적인 이익만 얻으려 한다”고 비난했다. 양국 관계 악화의 책임을 미국에 돌리며 대중 정책 전환을 요구한 것이다.

셰펑 중국 외교부 부부장

셰펑 중국 외교부 부부장

중국은 이날 회담에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의 내정간섭 중단을 요구하며, 홍콩과 신장 인권 문제 등을 고리로 한 전방위적 압력에 굴하지 않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셰 부부장은 “소수 서방국가들이 자신들의 규칙을 국제 규칙으로 포장해 다른 나라를 억압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며 “이는 국제사회가 폭넓게 받아들이는 국제법과 국제질서를 파괴하고 약육강식의 논리로 자신의 이익만 챙기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미국을 향해서는 “전 세계 민주·인권의 대변자를 자처하지만 먼저 자신의 인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서 “중국 앞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말할 자격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4개월 전 알래스카 회담에서 양제츠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이 미국을 향해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라’고 일갈했던 모습을 그대로 재연한 셈이다.

이번 회담에서 중국이 보인 강경한 태도는 어느 정도 예견됐던 것이다. 중국은 회담 전부터 자국의 주권과 안전, 발전이익을 지키겠다는 확고한 태도를 표명하고 내정간섭 중단을 요구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왕이 외교부장은 한발 더 나아가 “미국이 평등한 태도로 다른 나라와 함께 지내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면 우리가 가르쳐 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도 당초 이번 회담에 큰 기대를 두지 않는 모습이었다. 미 정부 고위 당국자는 회담 배경을 설명하며 “주요 목적은 양국 관계에 대한 솔직한 의견 교환에 있다”면서 “구체적인 것을 협상하는 게 아니라 고위급 소통 채널을 열어두려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이날 회담에서 코로나19 기원 조사와 신장, 홍콩, 대만, 남중국해 문제 등을 놓고 미국의 언행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자국에 대한 각종 제재 조치의 개선을 요구하기도 했다. 셰 부부장이 셔먼 부장관에게 개선 요구와 우려 사항이 담긴 두 가지 목록을 제시했는데 개선 요구에는 중국 관료와 기관, 기업 등에 대한 제재 해제와 함께 멍완저우 화웨이 최고재무책임자에 대한 미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을 취소하라는 요구가 담겼다. 또 미국 내 중국인에 대한 부당한 대우와 중국 공관에 대한 공격, 아시아인 혐오와 반중 정서 고조 등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고 중국 측은 밝혔다.

셰 부부장은 회담 후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같은 회담 내용을 전하며 “미국은 레드라인을 침범하고 불장난으로 도발하는 것을 중지하라”고 거듭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그는 다만 회담을 전후해 일방적인 강경 발언을 전한 것과는 달리 “전반적으로 깊이 있고 솔직한 대화를 나눴고, 각자의 입장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면서 “중·미 관계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회담을 총평했다. 또 양측이 폭넓은 이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며 “미국이 기후변화와 이란 핵 문제, 북핵 문제 등에서 중국의 협력과 지지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셔먼 부장관은 셰 부부장에 이어 왕 국무위원과도 만났다. 미 국무부는 이날 회담 직후 성명을 통해 “두 사람은 다양한 문제에 대해 솔직하고 공개적으로 토론했고, 양국 간 열린 소통채널 유지의 중요성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셔먼 부장관은 “양국 간 치열한 경쟁을 환영하지만, 중국과 갈등을 추구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미 국무부는 덧붙였다. 셔먼 부장관은 이날 회담에서 신장, 홍콩, 티베트, 대만, 동·남중국해 문제와 중국의 사이버 해킹 문제에 대해 우려를 제기했다. 반면 기후변화, 아프가니스탄, 미얀마 등 현안과 함께 북한 문제를 협력 사안으로 꼽았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회담에서 나온 중국 외교부의 호전적 논평은 셔먼 부장관의 방문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 곪아있는 분쟁을 완화시킬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시사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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