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강한 러시아” 내세워 ‘국영화 드리블’읽음

푸틴 “강한 러시아” 내세워 ‘국영화 드리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가 ‘기업형 국가’(Corporate state)로 바뀌고 있다.

영국 경제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19일 소련 붕괴 뒤 민영화됐던 러시아 기업들이 빠른 속도로 국영화되고 있다며 이같이 진단했다. 러시아가 푸틴 최고경영자(CEO)의 ‘주식회사’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형 국가의 가장 큰 특징은 국영기업 책임자들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개인적 인연을 맺은 인물들로 ‘정치’와 ‘기업’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국영 석유회사 가즈프롬의 회장은 푸틴의 비서실장 출신이며 현 부총리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맡고 있다. 크램린 행정부실장 이고르세친은 국영 석유회사 로스네프의 회장이었다. 러시아 국영철도 사장은 푸틴과 함께 일했던 블라디미르 야쿠닌이다.

신문에 따르면 11명의 행정관료가 국영기업의 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12명이 부서장급에서 일하고 있다. 장관이나 고위 보좌관 등도 이사직을 겸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실상 국가가 직·간접적으로 기업의 경영에 간섭할 수 있도록 돼 있는 국가 조직의 일부인 셈이다.

또 국영기업들은 인수·합병(M&A)을 통해 확장을 거듭하며 사실상 국가가 정책적으로 원하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가즈프롬으로 지난해 민간 석유회사 시브네프트를 인수해 지분을 51%로 늘렸다. 지난해 말에는 러시아 국영 무기수출 회사 로스오보론엑스포르트가 민간 자동차 업체인 아프토바즈와 카마즈의 경영권을 확보했다. 지난 3월에는 주요 항공기 제작사들을 모두 통합해 하나의 거대 국영기업으로 만들겠다는 대통령령이 발표되기도 했다. 유럽재건개발은행(EBRD)에 따르면 러시아 공공분야의 국가지분율은 지난해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의 30%에서 35%로 늘었다.

그렇다고 옛 소련의 국영화를 답습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에 대해서는 강한 통제권을 행사하지만, 외국자본에 대해서는 참여를 허용한다. 푸틴 대통령은 가즈프롬에 대한 외국인투자지분한도를 49%까지 늘렸다. 개방과 국유화를 병행하는 것이다.

기업형 국가로 가는 까닭은 ‘강한 러시아 건설’을 위해서라고 푸틴은 말한다. 그는 취임 직후 소련 붕괴 이후 민영화 과정에서 축적한 부를 바탕으로 정치를 주물러온 올리가르히(신흥재벌)를 과감하게 숙청했다. 언론과 에너지 분야 등 국가 기간산업을 장악했다. 석유기업 유코스의 CEO 호도르고프스키를 탈세혐의로 구속한 것도 국유화의 포석이었다는 풀이도 나온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주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기업 총수들과 만나 “옛 소련의 영화를 재현하기 위해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를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CEO 푸틴의 ‘기업형 국가’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전문가들은 경쟁이 사라지면서 효율성이 떨어질 가능성을 우려한다. 러시아의 한 사업가는 “국가의 명령에 의존하지 않는 기업만이 시장의 수요가 어떤지 알 수 있다”며 “지금 상황에서는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 국가에 어떻게 로비를 할 것인가만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의 경제고문을 지낸 안드레이 일라리오노프 역시 “국가가 원하는 회사가 되는 것이 가장 큰 목표가 됐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낙후한 국가산업을 단시간 내에 육성해 경쟁력을 갖추게 하기 위해서는 국영화가 필수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알렉세이 밀러 가즈프롬 사장은 “철도는 러시아의 국가 규모로 볼 때 매우 중요한 사업이며 이런 사업이 국가에 의해 경영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김정선기자 kjs0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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