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대홍수로 최소 184명 사망…"조기경보 시스템 실패”

윤기은 기자

서유럽 폭우로 독일과 벨기에에서 최소 184명이 목숨을 잃었다. 실종자도 1000명이 넘는다. 강이 범람해 주택과 도로가 침수되고 철도는 끊겼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정전이 발생하고 식수 공급도 중단됐다. 기후 변화로 인한 폭우와 홍수에 대비한 조기경보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17일(현지시간) 독일 서부 라인란트팔츠주 블레셈 지역의 가옥이 홍수로 인해 물에 잠겨 있다. 블레셈|AP연합뉴스

17일(현지시간) 독일 서부 라인란트팔츠주 블레셈 지역의 가옥이 홍수로 인해 물에 잠겨 있다. 블레셈|AP연합뉴스

17일(현지시간) 독일 바트노이에나르아르바일러 지역의 다리 일부가 홍수로 인해 무너져 있다. 바트노이에나르아르바일러|AP연합뉴스

17일(현지시간) 독일 바트노이에나르아르바일러 지역의 다리 일부가 홍수로 인해 무너져 있다. 바트노이에나르아르바일러|AP연합뉴스

로이터통신은 18일(현지시간) 대홍수로 인해 독일에서 157명, 벨기에에서 27명 등 184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독일 경찰은 서부 라인란트팔츠주에서만 최소 110명이 숨지고 670여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피해 지역에 통신과 전기가 끊기며 정확한 실종자 수는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외신들은 유럽에서 1000명 이상이 실종된 것으로 추산했다. 벨기에 위기 센터는 17일까지 103명이 실종됐다고 밝혔다. 네덜란드, 스위스, 룩셈부르크에서는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들 국가도 폭우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피해 규모가 가장 큰 독일은 이날 2만2000여명의 구조대를 투입해 수색 및 복구 작업을 펼쳤다. 로이터통신은 독일의 홍수 피해 복구에 수십억유로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폭우로 전기 공급망이 끊기며 전날 독일에서는 약 11만4000가구에 전기가 끊기기도 했다.

독일 라인란트팔츠주 진치히 지역의 장애인 요양 시설에서는 거동이 불편한 12명의 장애인이 익사한 비극이 일어났다. 지난 14일부터 내린 비로 빠른 속도로 건물에 물이 차올랐고, 1층에서 자고 있던 사람들은 밖으로 나갈 기회도 없이 홍수에 휩쓸렸다. 위층에 머물고 있던 24명은 신고 3시간 후 현장에 도착한 구조대에 의해 건물을 무사히 빠져나왔다.

홍수로 12명의 장애인이 익사한 독일 라인란트팔츠주 진치히 지역의 장애인 요양시설 현장이 지난 16일(현지시간) 카메라에 담긴 모습. 진치히|AP연합뉴스

홍수로 12명의 장애인이 익사한 독일 라인란트팔츠주 진치히 지역의 장애인 요양시설 현장이 지난 16일(현지시간) 카메라에 담긴 모습. 진치히|AP연합뉴스

17일(현지시간) 홍수 피해를 심각하게 입은 벨기에 뻬빵스떼흐 지역에서 소방관이 구조 및 수색 작업을 펼치고 있다. 뻬빵스떼흐|EPA연합뉴스

17일(현지시간) 홍수 피해를 심각하게 입은 벨기에 뻬빵스떼흐 지역에서 소방관이 구조 및 수색 작업을 펼치고 있다. 뻬빵스떼흐|EPA연합뉴스

폭우 현상이 드물었던 유럽국들의 재해 경보 시스템에 구멍이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유럽 당국들이 주요 강과 달리 작은 규모의 강 수위는 측정하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었다. 실제로 독일 라인란트팔츠주 환경당국은 지천이나 소하천에 대한 관측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재해 피해자들도 평소 잔잔했던 개울이 급격히 불어나며 집에 이어 다리까지 무너졌다고 증언했다.

유럽홍수조기경보시스템(EFAS)을 설계한 해나 클로크 영국 리딩대 수문학 교수는 당국이 적절한 대피 방법을 안내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벨기에 리에주와 룩셈부르크 일부 지방 정부들은 폭우가 내리자 주민들에게 집을 떠나라고 안내했다. 하지만 클로크 교수는 “대피를 위해 물 속으로 뛰어들거나 운전대를 잡는 것은 몹시 위험한 행동”이라고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말했다. 클로크 교수는 이 외에도 일관된 매뉴얼 없이 지방 정부에 모든 폭우 및 홍수 대책을 맡기는 독일의 시스템도 문제점으로 거론했다.

유럽 지역의 폭우와 홍수 현상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구 평균 온도가 1.5℃ 오르면 매년 약 500만명의 유럽 주민들이 홍수를 겪을 것으로 예측했다. 앞서 독일 쥐트도이체차이퉁은 이번 폭우에 대해 기온이 올라가면서 대기가 더 많은 수증기를 머금어 ‘물 폭탄’을 떨어뜨렸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독일의 평균 기온은 19℃로 1961∼1990년 6월 평균 기온보다 3.6℃ 높았다.

17일(현지시간)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왼쪽에서 두번째)과  아르민 라셰트 기독교민주연합(CDU) 당대표 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주지사(오른쪽에서 두번째)가 홍수 피해 현황을 보고받기 위해 에르프트슈타트 소방서로 향하고 있다.  에르프트슈타트|EPA연합뉴스

17일(현지시간)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왼쪽에서 두번째)과 아르민 라셰트 기독교민주연합(CDU) 당대표 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주지사(오른쪽에서 두번째)가 홍수 피해 현황을 보고받기 위해 에르프트슈타트 소방서로 향하고 있다. 에르프트슈타트|EPA연합뉴스

독일 정치권에서는 9월 총선을 앞두고 기후변화 문제가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기독교민주연합(CDU)의 당대표이자 차기 유력 총리 후보인 아르민 라셰트는 지난 16일 기자회견에서 “독일을 기후에 안전한 국가로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안나레나 배어복 녹색당 대표도 재해 현장을 찾아 “극단적인 기상 현상으로부터 주거지역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폴리티코 폴오브폴스에 따르면 폭우가 내리기 전인 지난 12일 기준 녹색당(18%)은 여당 기민당(29%)에 이어 지지율 2위를 기록했다.

유럽 정치인들의 재해 현장 방문도 이뤄졌다. 폭우 이후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피해 지역을 차례로 방문해 희생자들과 유족들을 향해 애도의 뜻을 표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옌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17일 벨기에 페팡스테르의 홍수 피해 현장을 시찰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방미 일정을 마치고 18일 홍수 피해 지역인 라인란트팔츠주의 마을 슐트를 방문해 피해자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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